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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3반 동기들은 2015년에 반창회를 결성하고 전국각지의 명승지를 여행하면서 옛추억을 되살려 우정을 다지고, 남은 인생 동반자가 되어 새로운 추억을 만들며 즐겁게 지내고 있다고 자랑합니다.
경주 신라 유적지 탐방기
하상 문창욱
6월17일 일요일 . 3-3 반창회가 결성되고 4년 째 되는 해이다.오늘은 년 중 행사인 서울을 떠난 세번째 순회 정기 반창회가 경주에서 열린다.
경주행 srt를 타기 위해 수서역으로 내 닫는다. 될 수 있는 한 많은 반원들이 동참하기를 독려하고 애를 쓴 결과 전국서 11명이 참석하기로 했다.
열차가 09시5분 출발하는데 08시30분까지 대합실서 만나기로 했다. 도착하니 집이 안양이라 제일 먼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국섭이가 1시간 먼저 나와 시형이랑 나를 반긴다. 그래 고교시절에도 집이 먼 친구가 항상 먼저오고 학교 정문 코 앞에 사는 친구가 늦게 헐레벌떡 쫓아 등교하곤 했었지. 곧 이어 기성이도 정시에 도착하고 서울팀 4명 다 왔다. 일요일인데도 이른시간이라 그런지 열차 좌석은 드문 드문 비어있다.
시형이와 경주 규현 반장( 우리는 학창시절 반장직책 그대로 부른다 )이 도착 시간을 주고 받는다.서울거주 15명 반원 중 4명이서 신청해 경주로 간다. 같이 가기로한 성진 부반장은 막판에 긴치 못한 스케줄로 여행을 포기하게 되어 우리 한테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 빨리 달리니 지루하지 않고 좋다.
옛 시절 제일 빠르다는 새마을호도 대구까지 3시간 40분 걸리는데 1시간 40분만에 중간 기착지 동대구역에 도착하니 지루하지 않고 좋다 아주 젊게 차려입은 희끗 희끗한 머리의 사나이 누구 한 사람이 우리 칸으로 다가온다. 대구 종무다 일어나 얼싸안고 반갑다. srt로 서울을 출발한지 2시간만에 경주역에 도착하니 반가운 얼굴 규현이가 픽업 대기 중이다.
경주역은 전에 보았던 소나무가 낮게 깔린 고풍스런 기와 건물이 아니다. 새로 고속철 역사를 따로 건립했다. 이름도 신경주역이다.고도 다운 멋은 찾아 볼 수 없고 그냥 크게 현대식으로 잘 지었다.
규현이가 명함을 준다. 개명을 했나 이현석( 규현 )이라고 적혀있다. 그래 이제부턴 새 이름으로 부르자. 그래야 개명을 한 그 뜻에 부응을 하는거니까 우리를 태울 똥(?)차가 대기하고 있단다. 현석 본인이 그런다. 똥차라니? 날렵한 9인승 새 승합차가 한 대 보인다. 많은 식구가 한꺼번에 같이 타고 여행하기에 딱 안성맞춤이다. 현석이는 평소에 산행을 자주해 애견 진도개를 태우고 산에 오를 때 이런 승합차가 필요하단다.
이제 부터 계획된 경주관광이 시작된다. 작년에 대7 50주년 기념 단체여행 때는 시내에 있는 첨성대, 안압지만 보고 불국사로 갔으나 우리 이번 스케줄은 포석정을 중심으로 시내에 산재해 있는 유적지를 두루 탐방하고 감포 문무대왕릉 해안으로 넘어가기로 짜여졌다.
또 한 친구 상구가 구미에서 고속버스로 내려와 터미널서 기다린다고 연락온다. 가는 도중에 또 벨이 울린다. 논산서 홀로 드라이버 종영이 경주에 도착했다고 연락 온다. 8명이 먼저 만나 금강산 아닌 경주도 식후경이라 점심은 먹어야재 대능공원 옆을 지나 삼미정 두부 전문집 식당으로 향한다.
대구서는 급한 스케줄을 처리하고 늦게 상만이가 희준이를 픽엎해 출발해서 15시30분에 경주 박물관에서 만나기로 했다. 완희는 울산에서 17시에 감포로 곧장 오기로 되어 있다. 모두 11명이 참석하는 적지않은 인원이다.
가는 승합차 안에서 경주하면 유명한 황남빵 이야기가 나온다 외지에서 알기로는 황남빵이 진짜 경주 빵으로 알려져 있지만 경주 토박이 현석에게 속 내를 듣고 보니 최영화빵이 정말로 진짜 진짜 원조라고 한다. 마침 시외버스 터니널 근방에 원조 최영화빵 본점이 있다며 잠시 차를 세우고 현석이가 두박스를 사온다. 맛을 보니 적당히 달고 맛있다. 작년 대7 50주년 행사때 왔을 때는 우리 동기 옆지기 몇 몇이 기를쓰고 그 먼 곳 까지가서 줄을서서 황남빵을 사왔는데 알고보니 원조가 아니다. 부자지간에 상품 등록건으로 갈라졌는데 부모쪽이 등록을 하지않아 상권을 보호 받지 못하지만 진짜 빵이름이 최영화빵이다. 경주 사람은 최영화빵만 산다. 그래서 그런지 좌우지간 맛있다.
빵 맛을 보며 잠시 후 삼미정에 도착해 두부전골에 향토 막걸리 몇순배에 옛 고교시절로 젖어든다. 3-3반 모임에 처음나온 국섭이는 현석이가 제일 반가운 모양이다. 친했던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현석이는 요즈음 기 연구에 흠뻑 빠졌는데 수맥 찾을 때 쓰는 뾰족한 스텐봉 같은 막대를 양손에 들고 설명하는 수준이 상당한 지식에 도달한거 같고 인간 뿐 아니고 각 사물에도 기를 통한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고 또 그 장면을 눈으로 확인하는 우리로서는 신기할 뿐이다.
정해진 시간이 촉박해 점심 맛있게 먹고 포석정으로 향한다. 찬란했던 신라 문화가 굽이 굽이 흐르는 저 물위에 표주박 잔 하나되어 주거니 받거니 신선 놀음에 도끼 썩는 줄 모르고 흐느적 거리다가 한가롭던 주연상이 견훤군대의 칼끝에 추풍낙엽 쓰러지 듯 온통 아수라판되고 적장 발아래 벌벌기는 신라귀족들의 비겁하고 초라한 모습이 역사의 한장면되어 파노라마처럼 지나간다.
신라의 마지막이 얼마나 비참했겠나 그래도 마의태자의 굳은 정신은 백성사랑을 뒤로하고 입고있던 비단 옷은 벗어던지고 마의를 걸친채 당당하게 걸어 금강산으로 퇴장하는 그 의연한 모습은 왕건에게 목숨을 구걸하며 살아가는 아버지 경순왕과는 극명하게 대조되어 우리 후손들에게 각인된다.역사는 반복된다는데 알면서도 대처 못 하는 후손들이여 작금의 우리는 어디쯤 와있는가?
슬픈역사의 포석정을 뒤로하고 분황사로 향한다. 분황사는 신라 선덕여왕때 창건한 절인데 지금은 석탑만 남아있다. 석탑은 벽돌로 쌓은 것 같으나 자세히 보면 돌을 벽돌처럼 깎아서 만든 탑이라서 모전석탑이라고도 한다. 절에는 솔거가 지은 관음보살상이 있었으나 고려때 몽고족 침범과 또 이조 임진란때의 두번의 전란으로 완전히 소실되어 지금은 석탑만 남아있다. 유명한 황룡사지도 두번의 전란으로 전소되어 지금은 황량한 벌판만 남아 그 웅장함은 상상만 해본다.그 옛 날을 다시 복원 중이라 그러니 25.000평 그 사찰 넓은 유적지를 언제 볼 수 있을려나?
우리 민족은 침범만 당했지 다른 민족을 침범할 줄 모르는 법없이도 사는 무법자(?) 인가 보다. 한없는 비애를 뒤로하고 경주 박물관으로 향한다.
많은 신라의 찬란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지만 지금 떠오르는것은 거서간( 왕을호칭 )이 쓰던 반짝반짝 빛나는 금관과 금관 벨트 밖에 생각안난다. 왜냐고? 금값이 천정부지로 장난이 아니라니까…… ㅋㅋㅋ. 컴컴한 실내를 한참 돌아다녀 관람하다보니 답답도하고 해서 밖으로나왔다.
대구서 출발한 상만이와 희준이가 올 시간이 다 되었구나 하고 어디 주차장 쪽으로 가보까 그러는데 이층에서 시형이 소리가 나고 그 옆에 보니 이미 상만이하고 희준이가 도착해 이야기를 나누고있다. 곧장 올라가 반갑게 하이파이브를 하고 박물관 안으로 다시 같이 들어갔다.
한시간 지나 흩어져 있던 반우들 다같이 만나 기념촬영하고 이제 문무대왕릉이 있는 감포로 향한다. 대왕께서 바다 한가운데 바윗돌 무덤사이로 석관으로 안치되어 죽은 후에도 침범하는 왜구들을 격퇴한다는 숭고한 나라 사랑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런 멋진 지도자가 많이 나와야 되건만 현실은 어떤가? 주위에는 방풍림이 병풍을치고 모래 밭 저쪽엔 바다 바람이 파도타고 철썩되는데 바닷길 500m쯤 되는 곳에 바위무덤에 대왕이 지금도 동쪽 왜구를 향하여 두눈을 부릅뜨고 포효하는 듯 감회가 가슴을 친다.
발을 돌려 인근에 있는 감은사지로 향한다. 3층석탑이 하늘에 닿을 듯 뾰쪽하다. 그 끝은 어디를 향하는가? 아들 신문왕께서 아버지 문무대왕을 향한 절절한 효도가 극에 달한 절규인가. 탑 밑으로 흐르는 수로가 아주 과학적으로 설계되어 있어 그 시대엔 여기까지 바닷물이 찬 듯 유구한 세월을 감탄해 한다. 역사의 뒤안길이 뭔가 아쉬운 듯 반우들이 좀체로 감은사지를 떠나지 않는다.
이미 울산서 완희가 감포 읍내 식당에 도착해 있다고 연락온다. 참가 한다는 친구들 100% 다 왔다. 처음 반창회 태동할 때 이렇게 호응도 높으리라고 효시자 기성이는 알았을까? 몰랐을까? 아마 알았으니까 자신있게 발의했제 흐뭇하겠다. 얼굴에 표정관리 해도된다. 처음 발의는 이렇게 되었다. 어느 날 기성이가 나에게 전화를 했다. 어느 모임에 가보니 반창회를 하던데 참 재미있고 유익한 분위기더라 우리3반도 한번 해봤으면 하는 생각이 나서 나에게 한번 시도해보는게 어떠냐고 타전을 해 좋다 들어보니 괜찮은 생각도 들었지만 많은 소모임이 있는지라 약간 망설이다가 그러면 시형이한테 얘기를 하자 나 보다 더 마당발(?)이고 적극적일 수 있다. 이렇게되어 시작되었는데 처음에는 분파주의에 흐른다고 많은 반대에 부딪치고 어려움도 있었지만 이제는 안착된거 같고 보람찬다. 이런 모임이 전염(?)이 되어 3-2 반창회도 작년에 태동했다. 사진을보니 대구는 물론이고 먼데서 온 건우 현재 동진 얼굴도 보이고 지금 잘 되고 있으리라.
예약한 저녁 동은식당으로 옮긴다. 완희가 눈이 빠졌을랑가 기다리고있다. 어둑 어둑 할 무렵 감포 읍네 동은 횟집 선창으로 차가 미끄러져 들어간다. 저만치 완희가 웃음으로 손짓한다. 늦은것 같은데도 그냥 반가운 표정이다. 선창가 밤이 슬슬 녹아든다. 일요일 이지만 늦은 관광객 몇팀이 우리와 옆을 같이한다.이제 저녁이 우리의 하이라이트 아닌가 없던 이야기 있던 이야기 숨은 이야기 그 반원이기에만 알던 이야기 슬~슬 재미 속으로 빠져든다.
도시서 먹던 감성돔과는 회 맛 차원이 다르게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비로소 11명 모두 한자리 했으니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름 한번 불러보자. 국섭.희준 .상만.상구.시형.종무.종영.창욱.기성.완희.현석(규현). 11명이다. 3번째 모임이니 지난 날 추억의 꾸러미가 한바탕 널품하게 깔릴테지.
ㅎㅎㅎ 회상해 보면 원년 순회시는 팔공산 가산산성 기슭에서 유성스포츠 유현이 스폰서하여 밤새 즐거웠고 두번 째 순회 때는 논산 시골 전원 마을서 종영이 스폰서로 밤새 즐거웠고 이번이 세번 째 나들이라 신라의 달밤이 사뭇 기대된다.
그 밤이 바야흐로 지금부터 아닌가 반원만이 있어 우리만 아는 추억들이 쏟아질테지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재미있게 놀고 한 이야기 중 여기 소개하고 싶어 앞에 잠깐 언급했지만 지난 청년 시절 있었던 현석(규현)이와 국섭이 얽힌 사연 하나. 이 밤에 나온 따끈한 이야기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주인공 현석이 직장 경찰 말단 시절 국섭이 선친께서 뒷 바라지 한 숨은 야그 그래서 현석이 오늘의 위치에 이른 원동력을 이 반창모임를 빌어 고마움을 이야기하건만 정작 본인 국섭이는 아버지가 현석이 한테 도움준 스토리를 지금까지 전후좌우를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오늘에야 현석이 설명하고 고마움을 표시하니 참으로 이런 반창회 모임 아니면 누가 그런 알찬 추억 속의 사실을 알까 모를까? 그냥 묻혀 넘어가도 되겠지만 현석이가 국섭이 바로 앞자리 턱밑에 앉아 45년 전 선친과의 숨은 고마운 이야기를 하니 국섭이는 물론이고 듣는 우리도 감명 받는다. 아 이게 반창회만 갖는 묘미 갈수록 알맹이가 굵어지겠구나. 자세한 구체적 이야기는 들은데로 사적 다른 자리에서 해도 재미있고 감명 깊은 이야기다.
이런 모임 매 몇년은 모두가 건강이 유지되는 한 즐겨야지 싶다 모임때 마다 항상 10명은 족히 모이니까 최소한의 정족수는 채우니 건너뛰지는 않을거고. 울산 완희는 이 밤중에 다시 울산 간단다. 멀리서 온 반우들 보러 와서 잠깐 있다가며 찬조금도 내어놓고 서둘러가는 모습보며 뭔가 가슴이 짠해진다. 현석반장도 경주 집에 갔다 손주들 좀 챙겨놓고 내일 아침에 온다고 한다. 바쁜 중에도 친구들, 손자들 챙기느라 바쁘다 바빠.
저녁을 먹고 맹숭하게 잘 수는 없는거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이는 어쩔 수 없나보다. 시끄러운 분위기보다 다들 조용하게 밤 하늘 쳐다보며 하루 밖에 안지나가는데 집 걱정들 하나보다. 전화로 안부묻고 그러다가 늦은 부두 또 언제 이런 밤 맞이할까 국섭이 기성이와 같이 캄캄한 선창가 새벽 출항 고깃배 손질하는 어망 밟으며 희미한 등대 불 따라 좀 더 방파제 깊숙히 갔다가 파도소리 귀에 담고 숙소로 돌아오니 몇 몇이 취침 준비한다.
종영이는 독일 유학파 출신이라고 밤 늦게까지 월드컵 독일 맥시코전 본단다.. 거들어 줘야지 치맥은 아니라도 소주 멍게 차려서 한 딱까리 하자고 주인장께 협조 구한다.소주 멍게 해삼 한 상 차려오니 종무 옆방서 실무시 넘어온다. 맥주 몇병 시키고 월드컵 중계보다 나는 깜박 깜박 중간에 잠들었다. 새벽인가 누가 투덜댄다. 독일이 졌다고 꼬냥대는게 술이 인자 오르는가 보다 종영이다. 독일이 자네 조국이냐?
새벽 녘에 일어나 보니 옆에는 종영이 자고 희준이도 자고 있다. 앞방에는 아직 어떤가 자나 깼나 살며시 방문 열어보니 아무도 없다. 새벽 다섯시인데 상만이 기성이 이불을 박차고 몸은 안보인다. 새벽 산책 나갔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모범생들이다. 옆방은 또 어떤가? 시형이만 맛있게 자고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남구만의 시조에 나오는 상구는 벌써 발딱 일어나 국섭이하고 산책 나갔다.
아침 밥 주인장 전복죽으로 한상 채리니 유명한 서울 본죽집이 울고간다. 맛있으니 마누라 생각나나 한사발씩 챙겨간다. 평소 때 잘하지 지금처럼 생각나면 순댓국 먹을 때도 한 그릇 따로 국밥 먹을 때도 한그릇 그렇게 챙기는 것도 괜찮겠다. 바닥 헤매고 있는 경제에 도움도주고 마눌한테 점수도따고 좋다 좋아. 아무튼 모든게 좋은 아침 맛있게 걸치고 개인 봇따리 주섬 주섬 챙기고 마지막 행선지 골굴사와 기림사 그리고 양동마을로 향한다.
월요일 오전이라 국도는 한산하다. 9세기경에 골굴암 바위에 직접 세겼다는 석불상 크기4m의 마애불좌상을 보러 가파른 철재 100여개 계단을 국섭이 상만이와 함께 올라갔다. 골굴암 정상에서 발아래 내려다보니 올라 올 때는 못 느낀 어찔한 현기증이 순간을 스치면서 약간 매서꺼움을 느낀다 괜히 올라왔나 두려움을 가졌지만 이내 평정심을 찾아 하산한다. 고생스럽게 정상에 올라 석불상을 바라보며 국섭이 한마디 한다. 저 밑에 쉬고 있는 중생보다 ( 올라오지않고 앉아 잡담하고있는 동기들 보며 ) 우리가 확실히 부처님 은공을 더 받을 것이다고 하며 연신 예를 갖춘다. 평소에 불자인가 보다.그건 맞지 똑 같이 주면 와 올라오는데 상만이는 올라왔던 철재 계단으로 다시 내려가고 국섭이와 나는 반대편 암자 있는 철재 계단을 이용해 내려가기로 하고 발을 옮겼다.그런데 올라왔던 계단보다 이 쪽이 더 가파르다. 조심 조심 몸은 바위에 착 낮게 엎드리고 보호용 난관 철책을 꽉 움켜쥐고 살금 살금 하여튼 더 이상 아찔했던 상황을 서술 하지 않겠다. ( 이 글을 읽어시는 식구들께 혹시 원망들을 수 있으니 ) 그렇게 가파르게 내려왔다. 식은 땀이 어깨를 적신다.
국섭이는 골굴암 바위타고 힘들게 올라가 예불 한것을 여기온 보람 중에 최고로 생각하는 것 같아 희색이 만연하다. 골굴사가 어딘가 원효대사께서 골굴사를 짓기 수세기 전에 가까운 천연굴에서 거처했다는 설(삼국유사)이 있는 곳 아닌가?
함월산 기림사는 선덕여왕 때 창건한 절로 불국사의 말사다 경내는 평일이라 조용하다. 스님 몇이여 불도를 닦는 불경소리가 평화롭기만하다. 평화롭다는게 이를 이름인가 돌 뚫고 내뿜는 청량수 한바가지 벌컥 벌컥 마시니 콜라가 이 맛인가 사이다가 이 맛인가?
올라 오지않은 동기 몇이 계곡 옆 갖고온 깔판위에 앉아 시원한 맥주마시며 한담 중이다. 모든게 한가롭다. 시간이 멈춘것 같아 바깥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거 같고 자연이 이렇게 인간을 힐링하고 있건만 또 아웅다웅 저 속세로 가야하는 인간들 사는게 그 목적이 뭔지 옳게 아는 사람있는가?
마지막 목적지 양동마을은 월요일 이라 주차장도 더 넓게 조용하고 시원스럽다. 아마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많은 차량이 방문하다보니 이렇게 넓은가 보다. 시형이가 추천한 양동마을에 들어서니 옛 정취가 물씬 풍긴다 서울서 보던 용인민속촌과는 또 다른 맛이다. 마을 어귀에는 홍자색 해당화가 붉은장미와 함께 흐드러져 있고 살구나무가 마을을 향기롭게 수놓아 한폭의 수채화다. 기와집 사이 사이로 실제로 후손들이 드문 드문 살면서 일상 생활을 공유 하고있다.
마을 안에 향토음식점 우향다옥서 옛 음식 한상 가득 원님상 받아 호박잎 된장찌게 각종 나물 조기반찬 힐링 밥 한 그릇 동동주 띄워 뚝딱 비우고 무첨단을 방문하니 씨는 한뿌린가 여주이씨와 고성이씨가 교감을 이룬다.정좌하고 어느대학서 한문을 강의한다는 무첨단 후손과 시형이 예를 갖추고 덩달아 우리도 예를 갖춰 대청마루에 오르니 집안 종부께서 다과상을 급히 차린다. 항상 방문객이 들이닥치니 각종 과일과 생과자가 대청마루 중앙에 준비된 듯 급히 자리한다. 무례한(?)방문인가 싶어 우리 중 상구가 그래도 봉투로 예를 갖추니 시형이나 우리 모두가 체면치례는 했다. 상구 고마워라.
마을을 둘러보고 주차장에서 행사 마지막 고별인사를 하고 서울팀 대구팀 논산 종영이 이렇게 아쉬운 석별을 나누며 내년에는 순회 나들이를 종영이가 통영으로 아예 이사를 한다니까 동양의 나폴리라 불러 손색없는 옛 충무 통영으로 가던지 그렇지 않으면 안동 청송으로 가계획을 잡고 대 장정의 막을 내린다.
따로 서울팀은 신경주역으로 가는 길에 김유신 장군묘를 참배한다. 경건하게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장군께 존경의 예를 갖춘다. 대 장군묘는 왕릉에 버금가는 웅장함을 느낀다. 출발시간 정확하게 신경주역에 도착했다.
주도면밀하게 스케줄 짠 시형이와 소홀함없이 대접해 준 우리 영원한 반장님 현석. 찬조를 해 주신 상만님 상구님 완희님 또 서울 수서역서 뒷풀이 해준 국섭님. 그리고 서울 대구 논산 친구님들 마이 마이 고맙심데이. 사랑 합니데이. 또 만납시데이 안녕히 가입시데이!!!
2018. 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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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3학년 3반 경주 신라 유적 탐방기를 단락을 구분해 읽기 쉽게 재 편집했다.
내용 파악이 쉬워진 것 같다.
하상의 글 솜씨가 대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