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935) - 행복한 동해안 걷기
가정의 달이자 계절의 여왕인 5월에 접어들었다. 대지에 싱그러움과 생동감이 넘치는 날들, 모두가 넉넉하고 행복한 날들이소서.
지난주 동호인들이 한 달여간 걷고 있는 해파랑길의 강릉~속초구간을 함께 걸었다. 부산에서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이어지는 해파랑길은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걷기코스, 2015년에 한국관광공사가 주관하고 한국체육진흥회가 총괄한 해파랑길 770여km의 개통걷기에 참가한 인연으로 애착이 깃든 노정이다.
지난 수요일(4월 27일, 수), 오전 9시 20분에 청주에서 강릉행 시외버스에 올랐다. 원주를 거쳐 2018 동계올림픽이 열린 평창을 지나 대관령을 넘어가는 차창 밖의 풍광이 수려하다. 세 시간여 달려 강릉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 합류할 일행들에게 연락하니 두 시간 후 경포해변에 이를 것이라는 대답이다.
시내버스로 경포해변에 도착하니 오후 1시가 가깝다. 식당을 찾아 점심식사 후 송림 우거진 해변 따라 한참 걸으니 반대편에서 열심히 걸어오는 일행들이 눈에 띤다. 손뼉을 마주치며 반가운 인사, 만난 지점에서 이내 경포호수 방향으로 꺾어들어 호반에 들어선다. 경포호의 둘레는 4.3km, 걷는 길에 조선시대 유명한 여류시인 허난설헌기념공원이 있고 관동팔경의 으뜸인 경포대를 지난다. 6년 전 개통걷기 때는 그냥 지나쳤던 곳, 추후 확정된 코스에 호수둘레걷기가 추가된 듯.
풍광이 아름다운 경포호
경포 호수 한 바퀴 돌아 다시 경포해변의 송림숲길과 사근진해변 순긋해변, 순포해변 지나 사천항에 이르니 오후 5시가 지난다. 이곳에서 일정을 마무리, 숙소가 마땅하지 않아 택시를 이용하여 강릉시내로 향하였다. 숙소는 시내초입의 경포, 덕분에 40여 년 전 가족들과 여름휴가 때 머물렀던 경포해변의 추억을 되살릴 수 있어 좋았다.
둘째 날(4월 28일, 목), 오전 8시 10분 발 시내버스로 경포를 출발하여 전날 걷기를 종료한 사천해변으로 향하였다. 사천진해변, 하평해변 지나니 연곡해변과 영진항 거쳐 주문진읍에 들어선다. 주문진항은 강릉에서 가장 큰 항구, 싱싱한 해산물이 즐비한 수산시장을 한 바퀴 돌아본 후 언덕배기의 주문진등대에 올라 항구를 조망하는 풍광이 아름답다. 주문진의 대표어종은 오징어, 수산시장 복판의 오징어를 형상화한 비석에 담은 옛적의 활발한 어장모습이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등대에서 바라본 주문진항의 모습
등대에서 내려와 주문진해변에서 점심식사, 주문진해안 벗어나니 꽃길이 아름다운 황호 저수지에 접어든다. 황호를 한 바퀴 돌아 큰 길 쪽의 버스정류소에 이르니 부산에서 아침 일찍 출발한 또 다른 동호인이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정성껏 준비한 간식을 한 봉지씩 건넨다. 먼 길 찾아준 것만도 고마운데 맛있는 먹거리까지. 셋이서 걷다가 네 명이 되니 활기가 넘치네.
황호를 지나니 강릉시에서 양양군으로 경계가 바뀐다. 양양은 남과 북을 가른 38선이 지나는 곳, 가는 길목에 군사시설이 여럿 보인다. 남애항으로 들어서는 길, 일행 중 한 명이 도로변에 떨어진 스마트폰을 발견하고 집어 든다. 전화번호를 열어 ‘울 여보’라 찍힌 곳에 연결하니 반색한다. 스마트폰의 소중함은 누구나 아는 일, 이를 건네받은 이들의 안도감이 실감된다. 서로 돕고 상생하자.
서핑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죽도해변에 들어서니 오후 5시가 가깝다. 숙소가 마땅치 않아 내쳐 걷노라니 가랑비가 내린다. 이어서 지나는 곳은 3‧8선, 이곳을 지날 때 마다 분단의 아픔을 체감한다. 언제나 갈라진 남북이 하나 될 날 맞을까? 3‧8선 휴게소 지나니 기사문 항, 적당한 숙소가 눈에 띠어 여장을 풀었다. 밤새 비가 내린다.
셋째 날(4월 29일, 금), 비가 계속 내려 평소보다 늦은 오전 9시경에 우장을 갖추고 숙소를 나섰다. 이내 비는 소강상태, 현북면소재지 지나 경관이 아름다운 하조대에 접어든다. 조선개국공신 하륜과 조준이 머물렀다는 정자의 경관이 아름답고 건너편의 등대가 운치 있는 명승지, 비를 맞으며 찾은 발걸음이 아깝지 않다. 하조대 거쳐 동호리에 이르는 송림이 아름다운데 몇 년 전의 화재로 불에 탄 자욱이 아직도 남아 있다. 최근에도 동해안의 산불이 위세를 떨치는 중, 재해를 막는 대비가 소중함을 새긴다.
비가 오는 하조대에서
오산리 선사유적지 입구와 오밀조밀한 수산 항 거쳐 남대천 지나노라니 이곳에서 치어로 나간 연어가 수천km 대양을 거쳐 산란을 위해 회귀한다는 자연의 섭리가 뇌리를 스친다. 이곳 출신 시인의 표현, ‘태백준령 남으로 발원한 남대천이요 선사문화 꽃 피었던 오산리는 취락의 요람이라. 선림에 누운 세월 천년은 가고 타는 단풍에 연어가 온다. 보아라, 곤두박질로 온다.’
남대천 지나 바닷가로 이어지는 해안 길 한참 걸어 낙산해수욕장에 이르니 오후 5시가 가깝다. 해수욕장의 길이가 2km 남짓, 끝자락의 명승 낙산사에 들러 아름다운 동해안의 경관을 조망하고 내려와 숙소를 찾으니 주말인데도 의외로 맞춤한 곳이 있어 다행이다.
넷째 날(4월 30일, 토), 새벽에 해변을 산책하며 구름 속에 떠오르는 해돋이를 바라본 후 아침 7시 반에 숙소를 나서 속초로 향하였다. 전날 내린 비가 높은 산에는 눈으로 변하여 정상에는 하얀 눈 모습도 보이네. 4월말의 설경이 아름다워라. 예전에 없던 위락시설들이 들어서고 지금도 공사 중인 곳이 여럿, 몇 해 사이에 몰라보게 달라진 해안풍경이 낯설다. 쾌적한 날씨에 주말이라 찾는 이들로 북적, 해변에 가득 들어선 텐트촌에서 아침을 드는 젊은이들의 표정이 밝다. 코로나로 힘든 날들, 시원하게 날려버리라.
몽돌이 아름다운 정암해변과 힘차게 솟구쳐 오르는 모습의 연어조각이 볼만한 물치공원, 동해의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가족 및 연인과의 사랑과 남북의 화해를 염원하며 사랑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라는 설악해맞이공원의 사랑의 길 지나며 일행들과 정담을 나누노라니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불현 듯 낙산사의 고목 아래 새긴 경구, ‘길에서 길을 묻다’가 떠오른다. 걸으면서 새기는 삶의 교훈 아니런가.
속초에 이르는 동안 내륙으로는 설악산의 위용이 웅장하고 바다 쪽으로는 노도처럼 몰려오는 동해의 물결에서 약동의 힘이 느껴진다. 대포항, 외옹치항, 속초항, 장사항으로 이어지는 해안 풍광이 한 폭의 그림 같고 북쪽의 피난민들이 정착한 아바이 마을, 이어서 등장하는 설악대교에서 바라보는 속초 시내의 모습이 아름답다. 옛적 운행수단인 갯배가 운항중인 물길도 볼거리.
장사해안에서 안쪽으로 들어서니 넓은 호수가 펼쳐진다. 한 바퀴 도는데 한 시간 이상 걸리는 큰 호수, 신라 화랑 중 한 낭도의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영랑호에서 바라보는 설악산과 울산바위의 풍취가 늠름하고 호수둘레를 산책하는 행락객의 표정이 활기차다.
영랑호에서 바라본 설악산의 웅자
영랑호 빠져나와 장사항을 벗어나니 이내 고성군 경계에 이른다. 5km쯤 걸어 이른 곳은 봉포 해변, 이곳에서 나흘째 걷기를 마무리하고 숙소를 찾으니 마땅한 곳이 없다. 일행들은 전날 묵은 낙산해변의 숙소가 마음에 든다며 버스 편으로 되돌아가기를 제안한다. 다행이 버스 편이 낙산사까지 순조롭게 연결, 전날 묵은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걸으면서는 해안 길, 버스로는 시내를 관통하며 속초를 제대로 살필 수 있어 모두들 좋아한다. 힘들어 걸었던 코스를 단숨에 달리며 되돌아보는 것도 묘미.
마지막 날(5월 1일, 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낙산해변과 낙산사 경내를 두루 살폈다. 오전에 일행들과 작별하고 귀가 길에 오르느라 평소처럼 아침 걷기에 나선 것, 2km 남짓의 해수욕장을 왕복하고 방파제 끝에 설치된 등대를 살핀 후 낙산사에 이르니 일출을 맞이하려는 이들이 꽤 많이 몰려든다. 관람명소는 의상대, 5시 반에 떠오르는 일출장면이 장관이다. 의상대 바로 앞의 철운조종현대선사시조비(鐵雲趙宗玄大禪師時調碑)에 새긴 의상대 해돋이 묘사,
‘천지개벽이야
눈이 번쩍 뜨인다
불덩이가 솟는구나
가슴이 용솟음친다
여보게 저것 좀 보아
후끈하지 않은가’
낙산사에서 바라본 일출 모습
낙산사에서 하루 더 묵으면서 여러 차례 이곳을 지나면서도 시간에 쫓겨 차분히 살피지 못한 주변풍광을 여유롭게 돌아볼 수 있어 좋구나.
오전 7시 지나 숙소를 나서 버스정류소로 향하였다. 7시 반에 속초행 버스 탑승, 속초고속버스터미널에서 일행들과 작별하고 서울 행 버스에 올랐다. 강남터미널에서 청주행 고속버스에 탑승하여 집에 돌아오니 오후 1시, 저녁 무렵 일행들로부터 무사 도착을 확인하는 전화가 걸려왔다. 이어서 올라온 카톡, ‘댁에 잘 도착하셨네요. 교수님과 행복한 해파랑길 걷기였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보낸 답신, ‘즐거운 걷기를 함께하여 좋았습니다. 모두 건강하고 평안하게 마무리 잘 하기 바랍니다.’ 일행들은 다음날(5월 2일) 최종목적지인 고성 통일전망대까지의 걷기를 무사히 마무리하였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어려움 이겨내고 열심히 걸은 동호인들이여, 수고하였습니다. 남은 때 건승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