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망치는 것은
흔히들 조선은 유교 때문에 망했다는 말을 쉽게 한다. 그러나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 직후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을 발표했던 애국자 장지연 선생은 말하기 “유교 자체는 어디까지나 이상적인 정치를 할 수 있는 방법을 교시하고 있는 사상이다. 문제는 그것을 이용하여 통치에 임하는 사람들이 참다운 유자(儒者)인가 아닌가에 있다.”라고 하여 나라를 쇠약하게 만든 책임은 주로 유학의 이상을 내세우면서도 실제 행동은 여기에서 벗어나 정치를 잘못한 위선적인 사람들에게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이다.(출처: 방일영문화재단, ‘우리사상 100년’).
이후 우리 대한민국은 비슷한 처지에 있던 일본이나 대만과는 달리 유교의 장점조차도 구분하지 아니하고 모두 폐기하는 즉흥적인 태도 일변도의 행태를 이어왔는데, 이후로는 주로 기독교 사상이 크게 들어와서 주류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 특히 청교도정신은 오늘날 서구 선진국을 일으켜 세운 핵심적인 사상이라고 할 것인데, 이를 크게 받아들인 오늘날의 우리 대한민국은 왜 이다지도 혼탁하고 위태로운 나라가 되어 있는가?
생각건대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의 기독교인들의 삶의 실제가 참다운 기독교인이 아니며 또 우리나라의 불교도들이 참다운 불교도다운 삶을 살지 않는 데에 크게 기인한다고 본다. 한편 우리와 같이 유교를 받들던 일본과 대만은 왜 오늘날 우리나라보다 정치사회적으로 더 안정된 모습을 보이는가? 그들은 우리와 달리 유교의 장점을 계속 유지하고 개선 발전시키는 자세를 지속적으로 견지해왔다는 데 큰 이유가 있다고 본다.
여기서 우리가 깨닫고 명심할 바는 “네 선조가 세운 옛 지계석(地界石)을 옮기지 말지니라”는 잠언 22장 28절의 말씀이다. 이는 옛 가르침을 익히고 익힘으로 이로부터 새로운 경지로 나가라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정신과 일맥상통하는 것인데 우리는 이런 진리의 가르침을 너무 소홀히 하여 왔던 것이다.
아울러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반드시 정직하고 진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선적인 삶을 살지 말라는 것이다. 일찍이 안창호 선생은 우리민족은 거짓말을 잘하는 국민성 때문에 망한다고 했다는데 오늘날 우리 후손들은 어떠한가?
거짓말과 위선이 우리나라처럼 판을 치는 나라는 없어 보인다. 여론조사조차, 신문 사설조차, 전 대통령, 대통령, 여당대표, 야당대표의 말조차 믿지 못하는 것이 지금 우리들의 형편이다. 이러고도 대한민국이 계속 발전해 나갈 수 있겠는가? 흔히들 우리민족은 머리가 좋다고 하는데 근본이 악하고 거짓말을 밥 먹듯 하면 오히려 머리 좋은 것은 독이 되는 것이다. 지난해 가을에 있었던 전라북도가 주최한 ‘세계잼버리대회’가 왜 세계의 비난거리요 웃음거리가 되었는가? 바로 이런 위선적이고 거짓말 잘하는 못된 풍토 때문이다. 그런데 이후 정부는 감사를 버린다고 난리를 치더니만 이후 감감 무소식이고 그 후속조치 또한 보이는 것이 없다. 이런 것이 바로 나라를 망하게 하는 한탄스런 모습이 아니고 무엇인가?
하지만 지금 무엇보다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는 부정선거 척결이다. 이제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 국가존망을 가를 중대한 문제를 국회의원 총선거를 목전에 두고 수많은 애국국민들이 부르짖는 데도 대통령이 침묵으로 일관하며 외면하고 있다. 이래 가지고 나라가 안 망하면 오히려 비정상이 아닌가? 그리고 국사범의 중대한 죄를 지은 자들이 거짓말로 일관하며 희희낙락하며 거리를 활보하는 지금의 모습을 빨리 바로잡지 못하면 나라의 정의는 실종되고 불의가 판치는 나라가 될 터이니 그 장래는 과연 어떠할 것인가? 약육강식의 풍토가 만연하다가 머지않아 망하고 말 것이다. 그래도 조선은 5백년을 갔다 대한민국이 백년을 가겠는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무너지면 공산·전체주의가 들어서서 인간다운 삶은 실종되고 말 것이다.
우리나라는 교육 수준이 매우 높다. 일찍이 백강 이경여 선생은 위태로운 길에 빠져 개인과 나라를 망치는 것을 미리 막고 하늘의 복(福)을 받는데 학문하는 목적이 있다는 뜻을 아래의 시(詩)에서 밝히고 있다.
學貴多聞 且闕疑 升高致遠 有前期(학귀다문 차궐의 승고치원 유전기)
千塗萬轍 同歸一 要把人心 戒入危(천도만철 동귀일 요파인심 계입위)
학문은 많이 듣고 널리 물어 의아(疑訝)한 것을 아는데 귀함이 있는 것이니, 그 배움이 높고 멀리 이르고자 하면 먼저 기약함이 있어야 한다.
학문하는 길은 천 가지 길과 만 가지 수레바퀴가 있으나 궁극은 하나이니, 반드시 민심(人心)을 옳게 파악해서 위험한 길에 들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2024. 1.26. 素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