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봉제공장에서 일하던 열여덟 살 순옥은 월급날이면 돈을 시골집에 보냈다.
어머니는 편지마다 돈을 그만 보내라고 썼다. 순옥은 그 말을 읽고도 다음 달이면 다시 우체국에 갔다. 아버지가 겨울마다 기침을 한다는 것도, 어린 동생이 학교에 들어갔다는 것도 편지로만 알 수 있었다.
6-25 전쟁이 터진 뒤 공장은 문을 닫았다. 순옥은 재봉틀 옆에 걸어 두었던 작업복을 가방에 쑤셔 넣고 고향으로 향했다. 기차를 탈 수 없어 사람들을 따라 걸었다. 길 위에서는 누구나 어디론가 가고 있었지만,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사흘째 되던 날, 낮게 날아온 비행기 소리에 사람들이 논두렁으로 몸을 던졌다. 순옥도 엎드렸다. 폭발음이 지나간 뒤 일어나 보니 왼팔 소매가 피에 젖어 있었다. 조금 전까지 함께 걷던 여자가 길가에 누워 있었다. 순옥은 그 여자에게 다가가려다가, 다시 비행기 소리가 들리자 엎드렸다.
고향집은 지붕이 내려앉아 있었다. 부엌 아궁이만 제자리에 남아 있었다. 순옥은 무너진 담 사이에서 어머니가 쓰던 놋그릇을 찾아냈다. 가족이 어디로 갔는지 묻고 다녔지만, 마을에 남은 사람들은 저마다 다른 방향을 가리켰다.
그때 지프차 한 대가 마을 앞길로 들어왔다. 순옥은 차 앞으로 나가 손을 들었다. 멈출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차가 섰다. 운전석의 젊은 미군 병사가 창밖을 내다보았다.
순옥은 아는 영어가 없었다. 무너진 집을 가리키고, 손가락 세 개를 폈다. 부모와 동생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길 쪽을 가리키며 두 손을 모았다. 병사는 그녀의 피 묻은 팔을 먼저 보았다.
“Hospital?”
순옥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다시 물었고, 순옥은 다시 집과 길을 가리켰다. 한참 뒤에야 병사가 차에서 내려 뒷좌석 문을 열었다.
그의 이름은 데이비드였다. 그는 근처 피란민들이 모였다는 곳까지 가는 길이었다. 순옥은 차에 올라타서도 놋그릇을 놓지 않았다.
그날 가족을 찾지는 못했다. 데이비드는 순옥을 의무실에 데려가 팔을 치료받게 했고, 다음 날 피란민 명단을 적는 사람에게 그녀의 가족 이름을 전해 주었다. 순옥은 며칠 동안 명단이 붙은 곳을 찾아다녔다. 데이비드는 지나갈 때마다 차를 세워 새 소식이 있는지 물었다.
두 사람이 나눌 수 있는 말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는 명단 앞에서 기다리는 순옥에게 물 한 병을 건넸고, 순옥은 얻어 온 주먹밥을 반으로 나누어 주었다. 데이비드는 자기 몫을 받지 않으려 했지만, 순옥이 그의 손에 쥐여 주었다.
두 달 뒤, 순옥은 동생을 찾았다. 동생과 함께 피란을 갔던 부모는 그사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없었다. 순옥은 어린 동생 앞에서 울지 않으려 했다. 그날 저녁 데이비드가 찾아왔을 때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순옥 곁에 앉아 있었다. 순옥이 고개를 숙인 채 놋그릇 가장자리를 만지는 동안에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전쟁 중에도 두 사람은 만날 수 있는 날을 기다렸다. 데이비드가 가지고 온 것은 새 물건보다 헌 담요나 비누 같은 것이었다. 순옥은 그의 찢어진 소매를 꿰매 주었다. 한 번은 바늘이 없어서, 옷깃에 꽂아 두었던 바늘을 빼냈다. 데이비드는 수선한 자리를 손끝으로 문질러 보고 웃었다. 순옥도 따라 웃었다.
전쟁이 끝나기 전, 두 사람에게 첫아들이 태어났다. 이듬해에는 둘째 아들이 태어났다. 아이들이 잠든 밤이면 순옥과 데이비드는 좁은 방에 나란히 앉아 앞으로 살 곳을 이야기했다. 데이비드는 영어로, 순옥은 서툰 영어와 한국말을 섞어 말했다. 알아듣지 못한 말은 몇 번이고 다시 물었다.
데이비드가 미국으로 돌아갈 때 순옥은 두 아이의 손을 잡고 함께 갔다. 동생은 한국에 남아 공부를 마치겠다고 했다. 순옥은 그 약속을 여러 번 되물은 뒤에야 배에 올랐다.
미국에서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다. 사진 속 순옥의 원피스는 허리 부분이 조금 컸다. 이웃에게 빌린 옷이었다. 데이비드의 구두도 오래 신어 앞코가 닳아 있었다. 사진을 찍기 직전 그가 순옥의 옷깃을 바로잡아 주는 바람에, 두 사람은 정면을 보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살림은 빠듯했다. 막내딸이 태어난 뒤에는 순옥이 동네 세탁소에서 일했고, 데이비드는 일터에서 돌아와 아이들을 씻겼다. 전기요금을 내고 나면 냉장고에 넣을 것이 별로 없는 주도 있었다. 그런 날 순옥이 밀가루 반죽을 얇게 밀면, 데이비드는 세 아이에게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잘라 달라고 했다. 둥근 것, 길쭉한 것, 별처럼 삐뚤빼뚤한 것. 아이들은 어느 것이 자기 몫인지 다투며 냄비 앞을 떠나지 않았다.
밤이면 순옥은 다시 바느질을 했다. 세 아이의 옷소매를 늘리고 해진 자리를 기웠다. 데이비드는 옆에서 단어 카드를 펼쳤다. 순옥이 새 영어 단어를 읽으면 발음을 고쳐 주었고, 순옥은 그에게 한국말을 하나씩 가르쳤다.
“기다려.”
데이비드가 그 말을 배운 날, 순옥은 웃으며 다시 시켰다. 그는 몇 번이나 발음을 틀렸다. 그래도 오래 지나도록 그 말을 잊지 않았다.
순옥에게는 해마다 고향 생각이 심해지는 날이 있었다. 봄비가 흙에 스미는 냄새가 떠오르면 부엌에 오래 서 있었다. 데이비드는 그럴 때면 설거지를 맡고, 아이들에게 어머니가 어릴 적 살던 마을 이야기를 물어보라고 했다. 순옥은 처음에는 짧게 대답하다가, 어느새 아버지와 어머니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여행 경비를 모으는 데는 여러 해가 걸렸다. 어느 날 데이비드가 식탁에 종이 두 장을 놓았다. 서울까지 가는 비행기 표였다.
순옥은 한참 동안 날짜를 바라보았다.
“같이 가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한국에서 순옥의 동생을 만났다. 사라진 옛집 자리에도 가 보았다. 순옥이 무너진 담이 있던 쪽으로 걸어가는 동안 데이비드는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그녀가 돌아오자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세월이 흐르자 첫아들은 의사가 되었고, 둘째 아들은 교수가 되었다. 막내딸은 간호사가 되었다. 명절이면 세 아이가 배우자와 자녀들을 데리고 부모의 집에 모였다. 식탁에 자리가 모자라 아이들은 무릎 위에 접시를 올려놓고 먹었다. 데이비드는 손주들의 이름을 부르다가 가끔 순서를 틀렸고, 순옥은 그럴 때마다 웃으며 고쳐 주었다.
“할머니, 저도 아빠처럼 의사가 될까요?”
어느 날 손주 하나가 묻자 순옥이 아이의 접시에 감자 한 조각을 더 얹어 주며 말했다.
“네가 좋아하는 일을 해. 그리고 네 곁의 사람을 잘 보렴.”
데이비드는 늙어서 병상에 누웠다. 어느 저녁, 순옥이 그의 이불 끝을 고쳐 덮어 주자 그가 힘겹게 손을 뻗었다.
“당신과 살아서 행복했어.”
순옥은 그의 손을 두 손으로 감쌌다.
“나도 그랬어요.”
데이비드는 일주일 뒤 세상을 떠났다. 순옥도 그 뒤 오래 살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곁을 지킨 큰아들에게 그녀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네 아버지는 내게 하늘이 보내 준 선물이었단다.”
장례를 마친 뒤 큰아들은 낡은 사진첩을 펼쳤다. 첫 장에는 팔에 붕대를 감은 어머니가 있었다. 그 옆에서 젊은 아버지가 카메라를 보며 어색하게 웃고 있었다. 다음 장에는 한국에서 태어난 자신과 동생이 부모의 품에 안겨 있었다. 사진첩 뒤로 갈수록 사람이 늘었다. 여동생과 그 배우자, 손주들, 그리고 다시 손주들의 아이들. 모두 합하면 스무 명에 가까웠다.
그는 사진 몇 장을 인터넷에 올리고 부모의 이야기를 짧게 적었다. 다음 날 수만 명이 글을 읽고 댓글을 남겼다. 한국의 한 방송국에서도 연락이 왔다.
방송에서 진행자가 부모의 사랑을 어떻게 기억하느냐고 묻자, 큰아들은 잠시 생각했다.
“어머니가 그러셨어요. 그날 지프차가 멈춘 건 평생 고마운 일이지만, 아버지가 더 고마웠던 건 그다음 날도 찾아와 준 거라고요.”
방송이 나간 주말, 가족들은 부모의 집에 다시 모였다. 큰아들이 사진첩을 식탁에 놓자 조카들이 둘러앉았다. 누군가 젊은 순옥의 팔에 감긴 붕대를 가리키며 무엇을 다친 거냐고 물었다.
큰아들은 오래전 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를 처음부터 들려주었다. 길을 걸어 고향으로 내려간 일, 무너진 집 앞에서 차를 세운 사람,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찾아온 사람의 이야기를. 희망이 없는 땅에서도 들꽃같은 사랑을 피워낸 기적같은 이야기들이 어딘들 없으랴?
첫댓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사랑으로 핀 꽃과 열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