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법(末法)에
섭수(攝受)·
절복(折伏)이 있으니
소위악국(所謂惡國)·
파법(破法)의 양국(兩國)이
있기 때문이니라.
일본국(日本國)의 당세(當世)는
악국(惡國)인가
파법(破法)의 나라인가를
알지어다.
개목초(開目抄) 하(下)
어서 235쪽
젊은날의 일기
1949년 10월 24일 (월) 맑음 –21세-
제4회 창가학회 총회를 마친 어제에 이어 오늘도 쾌청하고 상쾌한 가을 날씨가 계속되었다. 오전에 O부장에게 회사 장래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모험소년의 제명을 〈소년일본〉으로 개명한 지 3개월. 사업이 대자본에 밀려 힘든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 분야가 아니다. 나는 나에게 부여된 일을 하는 것이다.
<소년일본〉 ― 얼마나 풍요롭고 힘찬 단어인가. 미래로 뻗어가는 소년. 봄과 같이 쾌활한 몸동작. 가을 하늘처럼 맑은 눈동자. 광야와 같이 끝없는 희망. 순수한 소년은 존귀하다.
미래의, 차대의 사회를 건설하는 일꾼이기에 일본의 보배로 생각해야 한다,
올해는 이들 소년을 벗으로 하여, 〈소년일본〉의 대상자로 하여 정진해 온 셈이다.
거룩한 일이라고 확신한다.
소년이여, 소년이여. 세계의 청년들이여. 바라건대 언제나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명랑하여라, 용감하여라, 천사와 같을지어다.
정오에 작가 M씨, 화가 I씨 댁을 방문했다. 소녀들의 꿈을 그림으로 부탁하기 위해. 신년호의.
I씨 댁은 신천지인 미나미다마에 있다. 쾌활한 선생님은 이해해 주셨다.
조용한 대지. 황혼의 정적이 감도는 풀밭을 헤치고 6시 20분, 오다큐 전차를 타고 돌아왔다.
I씨는 기독교 신자라고 한다. 기백은 있으나 진정으로 자기 자신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그 사람에게서 아무것도 배울 수 없었다.
하늘에는 초승달이 밝게 빛나고 있다.
7시 30분에 회사로 돌아왔다. 선배와 이것저것 협의. 10시 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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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10월 24일 (월) 비 한때 흐림 –27세-
선생님의 한없는 경애, 구상 등에 대하여 절실하고 깊게 그 위대함을 알아가는 하루하루다.
끊임없이 나의 경박함을 맹렬히 반성한다.
오후, 1시 20분 도쿄발 열차를 타고 누마즈로. 4시 10분 도착.
T1씨, R군, A군과 함께 실업가이자 정치가인 T씨를 방문하였다.
1시간 정도 기다린 후, 근 9시까지 간담. 충분히 이야기했다.
국토 개발, 중앙 도(中央道), 경제, 정치 등에 관하여 의견 교환.
결론적으로, 깊숙이 이야기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상당히 과학적이고, 구체적으로 자기주장을 말해도 어쩐지 비현실적이다.
9시 50분발 상행 열차를 타고 도쿄에 도착했다.
12시 50분, 우리 집으로.
정치가도 학자도, 과학자도, 실업가도 모두 그 한 사람의 힘으로 위대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대인 관계에서, 혜택 받은 환경에서, 전통에 의해 그리고 파벌에서, 조직에서, 가문에서 ― 등등 다분히 우연적으로 결정되고 연출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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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10월 24일 (목) 흐림 –29세-
닛쇼 상인에 대한 추선 공양을 올리는 밤샘 제목 ― 총본산.
12시, 도쿄 역발 열차로 분쿄 사람들과 출발. 선생님은 사모님과 1시 30분발 급행으로 오셨다.
리쿄보(본부)에서 간부회. 나에 대한 선생님의 배려에 깊이 감동.
선생님의 위대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기쁘다. 솔직한 청년이어야 한다.
저녁 7시 ― 객전애서 추선 공양 의식. 니치준 법주 상인의 출사(出仕). 1시간마다 도사 교대 ― 다음 날 아침 5시까지 근행 회향(回向)함.
참석자 ― 지구 담당원 이상 1500명.
청년부 수뇌 회의를 자쿠니치보에서 개최. 청년부가 주체가 되는 차대를 위해.
시대를 규명하는 통찰력을 원한다.
리교보 ··· 선생님 곁에서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