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 조계종 25교구 본사순례 두번째 제2교구 수원,화성시 효찰대본산 (용주사)
일 시 : 불기 2555(2011)년 9월 5일 약사제일 좋은 날
주 소 : 경기도 화성시 송산동 168번지
종무소 : 031-234-0040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 효찰대본산 (용주사) 안내비
용주사 사천왕문 위에 용주사란 편액 입니다.
용주사를 들어 가는 사천왕을 모신전각 천왕문 입니다.
수원 용주사 사적비문 이네요.
효찰대본산 답게 홍살문을 들어가기전에 자세하게 안내를 하고 있는 설명을한 글이 있네요.
다른 사찰에서는 찾아볼수가 없는 (홍살문) 입니다.
다른 사찰에서 볼수가 없는 홍살문이 있었던 이유는 정조대왕께서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용주사를 창건하고 호성전을 건립하여 아버지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셨기 때문이다. 기록에 의하면 용주사에서는 사도세자와 경의황후(혜ㅒ경궁홍씨). 정조대왕과 효의황후의 위패를 모시고 일년에 여섯번의 재를 모셔왔다 한다. 그러나 1907년을 끝으로 일제감정기 이후로 중단되어 왔다.
100년만에 사도세자 제246주기 제향을 모시면서 홍살문을 복원하고 호성전의 현판을 제막하는 것은 효찰대본산 용주사 창건 당시의 모습을 회복하여 우린라 효문화를 선양하는 한편 정조대왕께서 돌아가신 아버지 사도세자에게 못 다한 혼정신성의 효를 사후에라도 실천 하고자 하였던 뜻을 계승 하고자 함이다.
여기에 들어가게 되면 정조대왕이 쓰던 물건과 왕실에서 보관하던물건 부모은중경판도 있답니다.
들어가는 입구에 작은 9층탑이 있습니다.
주위에는 동자들과 불상도 있고요.
용,주,사,불(龍,珠,寺,佛)
용주사 삼문인데 자세히 보시면 오른쪽에서부터 제일윗쪽부터 용주사를 넣으서 시를 적어 두었습니다.
동서의 옆문 과 중앙의 대문에 각각 문이 있어 삼문이라 부르며 정면 도리 위에는 일제감정기에 활동한 죽동(안순환)의 글씨로 용주사라는 현판이 자리 하는데 부드러우 면서도 힘 있는 글씨가 인상 적이며 오른쪽 옆문에는 중앙선원 의 현판이 세로로 걸려 있습니다. 삼문 의 네 기둥은 상단부는 목재이고 하단부는 석재의 초석인데 역시 안순환의 글씨 입니다. 용의 꽃 구름속에 서려있다가 여의주를 얻어 조화를 부리더니 절문에 이르러 선을 본받아 부처님 아래에서 중생을 제도 한다. 이내용은 정조가 낙성식 전날 밤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 하는 꿈을 꾼 후 절 이름을 용주사라고 하였다는 연기 와 상통합니다.
삼문 앞에는 화마를 물리친다는 석도 해태상 두 마리가 버티고 서 있으며. 간결하고 굵게 처리한 조각 기법이 해학적으로 나타나 우리 민족의 여유 있는 정서를 상징하는 듯 하다.
문이 3개라고 하여 (삼문) 이라고 한답니다.
천보루 왼쪽에는 (만수리실) 이고 오른쪽은 (나유타료) 입니다.
(천보루) 와 부처님 (세존사리탑)입니다.
천보루는 1790년에 조성이 되었으며, 경기문화 제36호로 지정이 되어있답니다.
삼문을 지나 절 경내로 들어서면 한 눈에 대규모의 누각이 정면에 나타 납니다.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36호인 천보루는 1790년 절의 창건 당시 지어진 정면 5칸 측면3칸의 누각인데 도편수는 경상도 영천 은해사 쾌성 스님이 맡았고 강원도 삼척영은사 의 팔정스님이 단청을 하였다고 합니다. 천보루의 아래층은 대웅보전으로 가는 통로로써 여섯개의 목조기둥아래 높다란초석이 건물을 받들고 있는데 기둥을 받치는 초석 이라기 보다는 그 자체가 석조기둥 과 같이 조성이 되었다고 한다.
오른쪽 불사중인 전각이 대웅전입니다.
보수공사중이라서 부처님은 관음전에 임시로 옮겨두고 참배객을 맞이 하고 있습니다.
용주사 대관음전입니다.
여기에서 모든 법회(행사)가 이루어 지고 있는것 같습니다.
위(2층)에는 관음전이고 1층은 종무행정을 보는 사무실로 사용을 하고 있네요.
용주사 대웅전에서 임시로 관음전에 모셔둔 불상입니다.
대웅보전도 1790년도에 조성이 되었으며.개금불사는 2006년도에 했답니다.
주불로는 석가여래불을 가운데 모시고 좌측에는 약사여래불,우측에는 아미타불을 모셨는데 나무(목불)로만들었답니다,.
용주사( 법고각) 인데 (북) 홍고라고도 한답니다
대웅보전 왼쪽에 위치하는 단칸 3평의 아담한 건물로 내부에 북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법고는 홍고라고도 하며. 보통 북이라고도 합니다. 북은 예불과 의식에 쓰이는 사물의 하나로서 짐승세계의 중생들을 위하여 소리를 냅니다. 또한 북소리가 널리 퍼져나가는 것 처럼 부처님의 가르침이 널리 퍼져 모든 이에게 참다운 이치를 전 한다는 으미를 갖습니다.
용주사 (범종각)
1911년무렵에는 보신각이라고 불렀다. 성황산 (갈양사) 때 범종입니다.
효성전은 1790년에 조성이 되었으며,6번재를 올리고 조성을 하였다고 합니다.
부모은중경 탑
부모은중경 탑 과 (효성전) 전각 입니다.
정조대왕께서는 일반적인 제사 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였던 듯 현륭원 옆에 사도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한 원찰로 용주사를 창건하고, 대웅보전 옆에 아ㅓ지 사도세자의 제각으로 호성전을 건립 하였다. 호성전은 팔각지붕의 궁궐형식으로 지어진 전각으로서 사도세자의 위패를 모셔두고 매일새벽,한낮,해질력,초저녁,한밤중,자정,이후 등 하루에 여섯번의 재를 올렸다고 합니다.
이후 호성전에는 정조대왕,경의황후(혜경궁 홍씨) 효의황후 김씨 (정조의 왕비)를 차례로 모시게 되었는데 이때마다 49재(영산재)를 베풀것은 물론 속절제와 기신제를 올려 극락왕생을 발원 하였다. 호성전은 용주사 창건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으나 1950년 한국전쟁으로 인해 파괴된 후 일반 맞배지붕으로 중수되었다.
호성전 안에 모셔져있는 사도세자(장조) 혜경궁홍씨 (정조대왕어머니) 정조대왕,효의황후(왕비) 의 위패를 모셨다.
용주사 천분의 부처님을 모신 전각 천불전(千佛殿) 입니다.
현재 천불전 자리는 과거에는 노전(爐殿),또는 향로전(香爐殿),이라고 불리던 건물이 있던 곳이다.이 자리에 최근 3년동안 법당불사를 하여 1993년3월에 건물을 완성하고 천불전이라고 이름 하였다. 건물내부에는 천개의 작은 불상을 봉안하였고 이 다불사상(多佛思想)에 근거한 것으로 주로 현재의 현겁천불을 이룹니다.
주불은 (석가모니)부처님을 모시고 좌측에는 (비로자나) 부처님,우측에는 (아미타) 부처님을 모셨네요.
용주사 천불전에서 참선을 하고 계시네요.
전강영신대종사 사(리탑) 이라고 쓰여 있네요.
전강영신대종사 사(리탑) 인데
용주사에서 제일 윗쪽에 모셔져 있습니다.
용주사 (십방칠등각) 이라고 쓰여져 있는데 다른 사찰에서는(삼성각) 이라고 한답니다.
좌측에는 산신님을 모셨으며, 가운데에는 칠성 탱화를 오른쪽에는 독성(나반존자) 을 모셨네요.
용주사 신도회 사무실과 용주사 불교 교육원이 랍니다.
용주사 천왕문을 지나 도로 옆에 있는 수련회(템플스테이)
오늘 108순례 회향을 서울 조계종 총본산 조계사에서 하고 오후에는 조계종25교구 본사 순례와 적멸보궁,암자순례 입제를 하고 제2교구본사 수원용주사순례를 마치고 내려오니 신가이 많이 소요가 되어서 통도사 휴계소에서 소고기공탕을 한그릇씩 하고 밤10시에 부산에 도착을 하였답니다. 오늘 순례 이 인연공덕으로 저희들을 알고 계시는 모든 불자님들께 복밭에 복이 조금식 이라도 돌아갈수 있도록 발원을 하겠습니다. 그동안 많은 도움을 주신 회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순례자일동~~~
첫댓글 잘보았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