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14 봄을 부르는 눈/묵향
검푸른 겨울 하늘이 구름을 머금을 기색이 보이지를 않았던 지난겨울...
호남지역과 제주도엔 대설주의보가 발령되었지만 이 나라의 기후특성상 강원도 하면 눈,
눈 하면 강원도의 이미지가 변하고 말았다.
지구의 온난화로 인하여 북극의 빙산이 녹아가며 계절을 뒤바꿔 놓고 있는 것은 알았지만
남쪽의 위도보다도 훨씬 북쪽에 위치한 이 곳이 겨울가뭄으로 몸살을 앓고 있음이 이해하기 어렵다.
이러다가 평창동계올림픽 개최에 큰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닌지 근심스럽다
평년의 12월 말경이면 춘천댐 호수가 두꺼운 얼음 층을 형성하며 나무마다 하얀 서리꽃이 피어선
카메라를 든 작가들이 소양3교와 소양5교의 주변을 서성이며 멋진 사진을 담으려
자리싸움까지 벌어지는 판인데 이 겨울은 전에 없이 양지엔 파리가 기어 다니고 있다.
그러나 하늘은 이 겨울을 그냥 명분 없이 보내지 않으시려는지 대한(大寒)이 지난 어느 날부터
15년만의 추위란 기록을 남기며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며 철모르고 피어났던 진달래꽃에 동상을 입혀
숨을 죽여 놓더니 겨울비를 이틀 여를 내리게 하신다.
“눈이 내리지 않으려면 비라도 듬뿍 내려 주소서”
반가움에 하늘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울타리 밑에서 갈잎이 요란하게 바스락 거린다
작년 겨울에 왔던 산토끼가 다시 찾아왔다는 생각을 하며 다가갈 때 두 마리의 고라니가 줄행랑을 친다.
눈이 예뻐 미워하지 않으려 마음을 먹었던 그 녀석들이 이젠 반가운 손님이 아니다
봄이 오면 이 녀석들이 또 얼마만큼의 농작물에 피해를 줄지 모르는 일이다
그러기 위하여 울타리의 보수작업을 해놓고는 고라니의 잔꾀에 속지를 말아야 한다.
고무줄 새총으로 조약돌을 먹여선 맞히지도 못하지만 겁을 주어 좆아 버리며 경계를 한다
이젠 겨울눈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을 하던 엊그제 저녁 무렵부터 싸리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일기예보를 미리 접하지 못한 관계로 얼마만큼의 눈이 내릴지 알 수가 없이 밤을 보내고
아침을 맞는 창밖에는 어머니의 모시저고리 같은 하얀 눈이 장독에도 마당에도 조팝나무
잔가지에도 마치 꽃이 핀 것 같이 환상적인 겨울을 펼쳐놓고 있었다.
언젠가 이 곳 산골짜기에 둥지를 틀고 첫봄을 맞아 파종을 했을 때의 일이다
파릇파릇 돋아난 새싹이 한 뼘은 자랐을 즈음 춘설(春雪)이 심술을 부려 작물이 동사를 하면 어쩌나 근심을 했던
적이 있다.
근심은 기우에 지나지 않고 무릎이 빠질 정도의 눈 속에 묻혀 있으면서도 나약할 것만 같던
그 여린 싹들은 꿋꿋하게 고개를 들고 하늘을 향하여 밝은 미소를 짓던 모습에
사람보다도 의지가 강하고 생명력이 질긴 삶에 대하여 많은 배움을 얻었던 기억이 있다
겨울은 비보다는 눈이 내려야 함은 동토에 스며들지 않는 비는 흘러가면 그만이지만
눈은 월동을 하는 마늘, 파와 식물들에게 이불 역할을 하여 삭풍의 아림으로 동상을 막아
주는 동시에 해빙과 함께 대지에 습기를 심어주어 만물의 생명에게 수분을 공급한다.
다행히 丙申 年을 맞아 씨앗을 뿌리기 전에 축복의 하얀 눈을 듬뿍 내려준 하늘에 감사한다
우리들의 삶도 이와 같이 혹독한 시련의 연속을 감내하며 인내하고 양보하고 내려놓으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항상 좋은 일과 풍요로움을 누리며 살 수는 없는 것이 삶의 이치요 순리일 것이다
말 못하는 초목과 산짐승들도 혹한을 이겨내며 아린 겨울을 흙 잠을 자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존귀한 구성체가 이정도의 시련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체면을 구기는 일일 것이다.
너무 영리해서 잔머리를 굴리며 사는 것이 인간이지만 때론 묵묵히 서있는 나무들처럼
바람이 불어 잎사귀를 앗아가도 슬퍼하지 않고 새싹을 돋우는 너그러움을 익히며 사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가을바람은 봄에 해야 할 일을 미리 해놓는다.
긴 여름 겨울을 준비하며 축적한 에너지를 잎사귀를 통하여 저장하고 키우며 튼실한 뿌리에게
빛의 먹이를 내리면 뿌리는 그 잎 새에게 목마르지 않게 감로수를 제공하며 상부상조(相扶相助)하는 모습을
우리는 닮아야 하지 않을까
낙엽의 절차를 도우며 혼자서는 움직일 수 없는 가지를 흔들어 잎사귀를 떨쳐 버리며 공생하는
나무와 바람의 관계가 참 아름답다 느껴진다.
가지의 눈은 이미 봄을 담금질 하려 작은 눈을 틔워놓고는 겨울에게 혹독한 시련을 안긴다
그 매운 한풍(寒風)으로 고통을 견딤은 한여름의 타는 듯 한 열풍을 견디라는 훈련일 것이다
별 것 같지 않은 자연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배워야할 것들 깨우쳐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그들의 번식력과 어려움이 닥치면 숨을 죽이고 가장 낮은 자세로 머리를 숙이고
에너지를 아끼고 있지만 결코 죽어 있는 것이 아니요 살아있음이다.
내가 살기 위하여 상대를 해하지 않는 그들을 바라보며 공존의 원칙에 충실 한다는 생각이 든다.
참 아름다운 자연...
참 정직한 자연...
그 자연 속에 작은 모래알과도 같은 우리들의 참모습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비록 인간이기에 자연을 정복하며 살지만 대자연의 작은 티끌에 불과하다는 겸손을 잃지 않는다면
아마도 위대한 자연의 일원으로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하늘은 자연의 고사를 막기 위하여 소중한 축복의 눈을 내려 주셨다
이제 곧 만물의 태동이 시작될 것인데 씨앗을 틔워야 하는 책무를 이행하게 하기 위하여
하늘은 그렇게 때맞추어 눈을 듬뿍 뿌려 주셨다
주먹 같은 함박눈이 내리던 날...
산속 토막집을 향하여 오르는 기분이 황홀하다
사륜구동의 jeep이 오르막을 치달으며 뒤꽁무니가 좌우로 요동질을 치지만 핸들을 잡은 손은
자연스레 페달을 밟는 발과 공조를 조화롭게 한다
장독대엔 하얗게 눈이 쌓이고 어머니의 모습이 보일 것 같은 포근함이 넘쳐 난다
눈이 하얗게 쌓인 마당엔 강아지가 꼬리를 물고 맴돌 것 같은 정겨움이 흐르며 마음의 평화가 가득 넘친다.
대문을 열어 젖히고 거실로 들어서는 저 편 방에선 아버지가 곰방대를 재떨이에 터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눈 오는 날이 아름답다
어깨에 눈이 내린다.
장작을 한 아름 안고는 아궁이 앞에 당도하여 마른 밤송이 껍질을 넣고는 그 위에 불 쏘시개를 얹는다.
다시 그 위에 장작을 얹고는 불을 지핀다.
풍로로 바람을 주입시켜 넣으면 화다닥 화다닥 불꽃이 일며 방고래를 향하여 빨려든다.
겨울밤의 매운바람이 소나무가지 사이를 뚫는 소리가 요란하지만 뜨끈한 방바닥에 지지는 등짝은
세상 부러울 것이 없는 행복이다
거실의 난로에도 잣송이에 불을 붙여 노란 불꽃이 훨훨 날개 짓을 하면 마치 숲속의 공주가
차 한 잔의 여유로움으로 하얀 겨울밤을 보내는 것과 같은 풍경이다
봄을 재촉하는 눈이 내리던 날의 초상화는 이렇게 그려졌다
정월 대보름을 구름 속에 머물렀던 달이 이젠 새악시의 눈썹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새벽잠을 깨우려 하듯 창문을 타고 넘어 얼굴에 입맞춤을 한다.
무엇이 그리운지 낮에 나온 달이 되어 아침을 맞는다.
첫댓글 덕분에 감사합니다
건강, 사랑, 행복
.가득한 즐거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머물러 주신 머슴님께 행운이 가득하시기 바랍니다 ^^
이제 이 눈이 녹아들면
아지랑이 고물대는 봄이겠지요
행복이 가득한 오늘이 되시기 바랍니다 ^^
묵향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강원도 아침은 아직은 춥지요 오즘어떻게 지내셨어요
오랜에 안부여쭈어요
어릴 적 추억이 떠올리는글이에요
풍로불을 때 던시절 시절이
그리워요 불소시게 참오랜만에 들어보네요
어릴때 제아버지가 소나무있는게 있는데요 이름은 생각이 안나고요
아주 노오란 빛깔인데 여기에다 불을 붙이면 지지직 하면서 불이 잘붙어서 그걸로 불소시게를 했어요
아버지께서는 늘그걸 많이 준비를 해주셔서불을 땔때마다 그것을 이용했어요
아주 오래된 소나무에만 있는것 같아요 소여물 끓일때 콩골라 먹던것도 기억나네요
시골의정겨움이물씬풍기네요 썰매 타던 기억도 있어요
좋은추억에 머물다 갑니다
향기로운 꽃잎 님^^
안녕하셨지요?
봄이 아롱아롱 눈앞에 당도하고 있어요
겨우내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난로에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게을러진 글을 팽개치곤 간혹 노래를 부르는 겨울이었답니다
지난 겨울엔 소나무 옹이로 불을 많이 지폈어요^^
그것을 보고 관솔이라고 한답니다
소나무의 송진이 가득배인 옹이지요
소나무 기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렇게 구들장에 등을 지지며
성과없는 겨울을 보내며 봄을 맞고 있답니다
멋진 새봄을 맞아야 하는데...
햐기로운 꽃잎 님께서도 화사한 봄날이 되시기 바랍니다
건강 하시구요^^
고맙습니다
좋은글에 잠시 머물다 갑니다
좋은 한주간 되세요 정겹습니다
그대로 님^^
봄이 내려앉고 있습니다
나목의 마디 마다 봉우리를 틔우고 있어요^^
살구나무에도 몽울 몽울 꽃망울을 부풀리며
봄날의 어느날을 기다리고 있지요
화사한 봄날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내시기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