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현실 사이에서 / 홍속렬
잠자면서 꾸는 꿈과
잠시 제정신으로 돌아와 지난 일에 대해 떠오른 영상과 겹치는 본정신에서 오는 두 가지가 합쳐 떠 오르는 환상? 두 가지 영상이 겹치며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어려운 일에 빠지게 된다.
그러면서 생각케 되는 일은 안타깝게 이루지 못한 꿈이 서럽게 가슴으로 다가오며 뼈에서 우러나오는 아픔으로 가슴을 찔러 오는데 내 삶 전체가 그렇지만 오직 슬픔과 연민과 아픔으로 가득한 그런 인생? 그런 아픔의 삶이었다는데 생각이 멈춰 선다
정말 나만큼 축구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축구로 수많은 사람들을 즐겁고 행복하게 해줬다
군대에서 그 어둠의 세계에서도 휴일날 사병들 외출 못 나가는 병사들을 모아 그룹별로 팀을 만들어 축구경기를 시켜 건빵 내기를 해서 즐겁고 행복하게 휴일을 보내게 해줬고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게 만들어 잡 생각 이를테면 고향 부모 애인? 등등 향수를 느끼지 않고 군대가 가정 같게 건전하고 생산적인 시간을 만들어 슬퍼할 시간을 갖지 않게 축구로 온 부대를 물결치게 하고 요동치게 해서 병사들의 사기를 높여주는 일부터 부대대항 축구경기를 할 땐 선수를 모아 훈련 시켜 우리 부대를 우승의 영광을 차지하도록 승부사로 그렇게 용기와 도전하도록 부대 전체를 이끌었었다.
그러니 부대장께서는 자연히 나를 인정해 주고 늘 중요보직을 주었었다
한 마디로 축구로 부대를 요동치게 하고 건전 문화를 정착시키고 사병들의 사기를 높이는데 축구로 이끌어 올린 것이다 그래 내가 속해 있는 부대는 사고가 제로였다.부대교회 신우회 회장을 맡아 병사들의 어려움과 고통을 해결해줘 탈영도 구타도 없는 부대 홍속렬이가 속한 부대 그런 표현으로 말할 수 있었다.
그래 군대에선 꼭 있어야 할 사람으로 인정받아 군대에서는 모든 지휘관들이 인정하는 그런 군인. 그래 무명 축구인인 내가 대 육군 대표 축구 감독까지 올라가게 되었고 팀을 맡자마자 팀 성적을 이끌어 올려 최고의 팀을 만들었다.
곧 그것은 열정이고 도전이며 최선을 다하는 결과에서 오는 상급이었다.
이 밤에도 그런 꿈을 꾸고 나서 허탈한 마음으로 마을을 추스르며 이제 생을 마감하고 결산하는 의미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지휘를 잘한다
어느 단체든지 앞장서서 이끌어 나가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1공수 여단 시절 전두환 장군은 “너 홍속렬은 삼 천명을 지휘할 수 있다” 고 말씀 하셨다
그래 군대에서 이등병에서 상사까지 초고속 진급을 해 가장 어린 나이 24세에 육군 상사로 진급을 했다.
이제 영원히 축구에서 은퇴해야 할 것은 목사님들과 며칠 축구를 했는데 도무지 움직일수 가 없을 정도로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리고 다리 근육이 뭉쳐 아프고 걸음조차 걸을 수 없을 정도다
왼쪽 무릎은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다 바위에 부딪혀 수술을한 적이 있는데 그 부위가 너무 아파 아 이젠 아니구나. 축구게임은 하면 안 되겠구나, 내가 갖고있는 운전 면회가 1종 대형 면회이고 가장 열악한 선교팀을 14년간 무보수로 지도하며 전국을 운전하며 얼마나 많은 운행을 했던지 지구 몇 바퀴를 돌고도 남을 정도였는데 면회를 반납하고 그날 밤은 아쉬워서 밤을 눈 뜨고 지샌 기억이 있다.
1종 대형 면허? 따기도 어려웠지만 다 낡은 버스를 운전하며 겪은 고난? 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고난의 길이었다.
스스로 만들어 고난의 삶을 살아왔던 노병이 이제 모든 일에서 놓여나 자유를 만끽해야 하나 은퇴를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하는 일은, 변화를 받아드리려는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리라
이젠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일을 놓고 편히 쉬어야 하는데 자꾸일을 하려는 마음부터 추스러야겠단 생각을 이 새벽에 하는 것이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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