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원은 더 이상 고문실 용납 안 돼”
부천 W진병원 17일만에 사망, 진상규명 요구
당사자‧가족‧시민단체 124개, 정신병원개혁연대 출범
국가인권위 조사 “과도한 격리‧강박 24.9%경험”
“최근 대한신경정신의학회에서 성명문을 내고, 격리와 강박이 고도의 전문적인 치료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부천 W진병원의 희생자는 샤워실에서 설사를 한다는 이유로 격리실에 처박혔습니다. 그리고 사지가 묶였고, 17일 만에 사망하셨습니다. 이게 고도의 전문적 기술입니까?”
지난 5월, 부천 정신병원에 입원한 30대 여성이 17일만에 격리‧강박과 약물 과다투여된 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해 충격을 주었다. 2022년 춘천정신병원, 2023년 11월 인천 등의 사망사건 이후에도 정신병원의 격리와 강박이 시정되지 않고, 정신장애인들에 대한 심각한 인권침해와 사망사고가 계속되고 있는 현실에 분노한 정신장애 당사자, 가족단체와 시민단체 124개 단체가 모여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정신병원 개혁연대가 출범하고 23일 국회의사당앞에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사진 김진이
23일 ‘정신병원개혁연대’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출범 기자회견을 갖고 정신병원 내에서 벌어지는 격리 및 강박 행태를 강력히 규탄하며, 정부에 실질적인 대책을 촉구했다. 기자회견 사회를 맡은 이한결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전략기획본부장은 지난 5월 발생한 부천의 정신병원 사고의 문제점을 고발했다. 정신병원개혁연대에는 (사)정신장애와인권 파도손,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사)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17개 지부, 한국조현병회복협회, 한국정신장애인가족지원활동가협회, 한국동료지원쉼터협회, 정신장애인전국권익옹호기관 등이 함께 하고 있다.
이정하 정신장애인 파도손 대표가 고문수준의 정신병원 현실을 고발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 김진이
“보도되고 있는 정신병원의 사망사건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저도 거기 있었습니다. 내 옆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그 현장에 있었습니다. 병원에 강제입원되어 ‘내가 여기서 살아나갈 수 있을까’를 염려하는 그 공포를 아십니까? 우리가 무슨 죄를 지었나요? 이렇게 학대를 받고 나온 당사자는 퇴원을 하면 가족과 철천지 원수가 됩니다. 한국의 정신장애인 당사자와 가족은 국민이 아닙니까?”
정신병원에 강제입원되어 같은 경험을 갖고 있는 이정하 정신장애인 파도손 대표는 현실을 고발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 대표는 “보호 입원 동의를 폐지하고 지역사회에 선택할 수 있는 정신장애인 동료 지원센터를 마련해야 한다”며 “국민들이 우리들의 투쟁을 지켜봐 주시고 연대해 주시기 바란다”는 부탁을 전했다.
“가족이 행동하지 않고 무지했던 것이 당사자를 죽음으로 내몬 것 같아 죄스럽기만 합니다. 우리는 정신병원에 가면 치료가 될 줄 알았습니다. 정신병원은 아픔을 치료하는 곳인 줄 알았습니다. 당사자인 우리 가족의 말보다 정신과 의사의 말을 믿었습니다. 그렇게 회복하기를 기도하며 보냈던 정신병원에서 가족이 죽었습니다. 지금도 정신병원은 사태가 심각한 줄도 모르고 여전히 고문에 가까운 강박을 하고 있습니다.”
이진순 한국정신장애인가족지원활동가협회 회장은 참여단체 발언에서 가족들의 안타까움과 분노를 담아냈다. 이 회장은 “대한신경정신의학회, 대한정신의료학회는 부천, 춘천, 인천 등의 정신병원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는 동안 사과문이라도 냈느냐. 더 이상 인권을 유린하는 정신병원을 옹호하지 말고, 정신병원내 강박을 금지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병원은 문을 닫게 해야한다”며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계속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정신질환자로서 이번 부천병원의 사건이 저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이 자리에 서게 되었다”는 권혜경 송파정신장애동료지원센터 활동가는 “당사자와 조력인, 가족들이 하나로 연대하여 죽음에 이르는 정책, 현실을 고발하고, ‘희망은 없고, 사망 있는’ 정신병원을 개선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가 2003년 경기도 양평의 정신요양원을 방문 했을 때 그곳에는 200명의 정신장애인들이 민간응급이송단인 129에 의해 이송되어 철문 속에 갇혀서 생활하고 계셨습니다. 그 해에 충남 연기군의 ‘은혜 사랑의 집’이라는 곳에는 150명의 정신장애인들이 갇혀 있는 현실을 목격하였습니다. 정부 조사를 받고 잠시 문을 닫았다가 현재는 정식 허가를 받아 정신요양시설로 변경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지금의 대한민국 현실입니다. 인간의 존엄을 파괴당한 채 강제 수용, 입원되어 장기입원, 강제입원, 강제치료를 받으며 많은 희생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다시는 이런 희생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더 이상 빈곤이나, 부모가 없다는 이유로 자행되어지는 폭력은 멈춰져야 합니다.”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는 “장애인 거주시설과 정신요양 시설에서의 강제입소를 금지하고, 문제가 있는 시설들을 축소, 폐쇄하는 법안을 만들고, 피해자들을 위한 배보상 법안을 발의하려고 준비하고 있다”며 “탈시설, 탈원화된 사회,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싸우겠다”고 말했다.
배점태 조현병회복협회 회장은 “국가가 환자들의 치료의 책임을 가족에게 지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 김진이
배점태 조현병회복협회 회장은 “국가가 환자들의 치료의 책임을 가족에게 지우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가족들은 치료를 포기하거나 방치하거나, 존속살해 같은 안타까운 일도 벌어지고 있다”며 “당사자들이 인권을 침해받지 않는 보다 나은 환경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정부에서 정신병동 관련 적절한 조치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한결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전략기획본부장이 사회를 보고 있다. 사진 김진이
정신병원개혁연대는 “201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격리‧강박 지침을 법령으로 강화, 대체 프로그램 개발, 격리실의 구조와 설비, 강박을 표준화할 것을 보건복지부장관에게 권고하였으나 국가가 직무를 유기하고, 이를 방치하는 동안 피해자가 계속 나오고 있다”며 “정신병원내 강박 원천금지, 비강압적 치료 적극 도입, 인권침해 정신병원 폐쇄, 인권침해 정신병원 책임자 및 담당의사 처벌, 정신과 약물 과처방에 대한 제재 방안 마련, 동료지원쉼터 확대, 비자의 입원제도 개선, 사람중심 권리기반 정신건강 정책 선포 등을 위한 1인 시위 등 대투쟁 활동을 펼쳐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부천 병원의 사망 사고와 관련하여 한국정신장애인연합회 등 관련 단체와 활동가들이 26일 부천보건소를 방문하는 등 진상규명 활동을 계속해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