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환-타는목마름으로.mp3
타는 목마름으로 - 김지하
신 새벽의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너무
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속 목마름의 기억이
내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 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소리 호르락소기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
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 죽여 흐느끼며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타는 목마름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
1966년 8월 29일 전라남도 화순군에서 태어난 이한열 열사는 1986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학생으로1987년 6월 항쟁 당시 시위를 하던 중 전투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고 사망하였다.
<이한열! 그대 그리운 사람이여.. >
- 독재의 망령과 냉전의 유령에 맞서 이제 우리가 앞줄에 서야
"빠바방.. 후두둑"
최루탄이 터지고 연기가 자욱해지자 나는 필사적으로 뛰었어. 연막 밖으로 벗어나서야 나는 비로소 정문 앞 바로 그 자리에 쓰러져 있던 형을 발견했지. 최루탄에 뒤통수를 얻어 맞은 형은 이미 숨을 헐떡이며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고 있었어.
<중략>
그러나, 스치듯 날아오르는 비둘기의 날개짓에서도 최루탄의 악몽이 되살아나 주저앉게 될때나, 나 보다 먼저 결의한 누군가가 남긴 안락의자 위에 축늘어진 나 자신을 발견할 때마다, 형은 결코 죽지 않은 한자루 '죽비'가 되어 내 머리를 후려졌어.
" '나의 삶이 안온하다'는 것은 첫 줄에 서있는 누군가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형은 내게 말하지. 그리고 그 헌신의 완성은 내 등 뒤에 숨어있을지 모를 누군가에게 손내 밀때 이뤄진다는 것도 이젠 알게 됐어. 나로부터 너에게로 내 손과 어깨를 '나누는 일'이야 말로 공동체의 사랑이며, '진정한 나눔'은 자신에게 하나 뿐인 것을 내놓을 수 있을 때만이 가능한 것임을 형은 보여주었어.
아직도 이땅엔 형을 죽인 지난 시대의 온갖 불온한 기운이 가득해. 되살아나는 독재의 망령과 냉전의 유령들 그리고 사방으로 가로막힌 벽들과 무관심. 더 이상 그들과 함께 할 수 없기에 이제 앞줄에 서보리라 다짐해보지만, 오늘도 나는 이렇게 뒷줄에 서 있네.
그런데, 형.. 만일.. 그날 형이 내 앞에 없었더라면 정말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당시 이한열이 머리에 최루탄을 맞고, 같은 대학 학생 이종창에 의해 부축당한 채 피를 흘리는 위 사진은 뉴욕타임즈 1면 머릿기사에 실리기도 하면서 독재정권의 폭압적인 무력진압의 잔인성을 여실히 드러냈다
일부 전경이 시위진압도중 시위대를 겨냥해서 최루탄SY44를 총처럼 수평으로 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뒷머리를 최루탄에 맞고 한달동안 사경을 헤매다가 사망한 이한열의 절명 직전의 안타까운 모습.
그의 죽음에 오열하는 이한열의 친구들.
이한열의 죽음은 6월 항쟁이 걷잡을 수 없게 번지는 도화선이 되었다.
그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광장에 몰린 100만명이 넘는 인파들.
그리고 ....
2008년 되풀이 되는 지난날의 역사.
첫댓글 어제 촛불집회에 실명한 사람도 있고, 갈비뼈가 폐를 찔러 생사가 불분명한 사람도 있다고 하던데. 정확한 기사가 안나오네 ㅜㅜ 이놈의 나라가 어찌 될려고
참 이게 뭔지.. 이게 민주주의??
모든게 꿈이었으면...
ㅠ.ㅜ
매일 악몽에 시달리고 있는 느낌... 현실이라는 사실이 치가 떨리도록 슬프고 무서워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