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일러스트=양인성 기자 in77@chosun.com
강원대 의대나 제주대 의대처럼 해당 지역의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은 곳은 타(他) 지역 출신비율이 훨씬 더 높다. 강원도 춘천시에 있는 강원대 의학전문대학원의 올해 신입생 40명 중 강원도 출신은 6명에 불과했다. 최근 강원대 의대에서 특강을 한 서울의 한 의과대학 교수는 "수업 시간에 강원도 출신은 손들어 보라고 하니까 두세 명만 손을 들어서 깜짝 놀랐다"며 "지방 의과대학에 해당 지역 학생이 이렇게 적은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제주대 의대도 사정은 비슷하여, 내년도 의학전문대학원 지원자 209명 중 제주대 출신은 9명에 불과하다. 비율로 치면 4%선이다.
이 같은 변화는 의학전문대학원을 도입하면서 두드러졌다. 전국국립대의대협의회 조사에 따르면, 경남 진주시에 있는 경상대 의대의 경우 2003년도에는 경남·부산 지역 출신 학생이 93%를 차지했으나, 의학전문대학원 제도를 도입한 2006년도에는 그 비율이 24%로 급락했다. 대신 서울·경기 출신이 61%를 차지했다.
경북대 의학전문대학원 이유철 입학실장은 "의학전문대학원 입학이 고시 공부화되면서 이를 준비하는 학원이 밀집된 서울에서 공부한 학생들의 점수가 좋아 이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 41개 의과대학 중 의학전문대학원으로만 신입생을 뽑는 학교는 14곳, 예전대로 고등학교 졸업생만 뽑는 의대는 14곳, 이 둘을 반반씩 뽑는 곳이 13개 학교다.
문제는 이렇게 서울, 인천, 분당, 일산 등에서 지방으로 내려간 의대생들 대부분이 졸업만하면 바로 서울 지역에 있는 대형병원에 와서 인턴·레지던트 등 전문의 과정을 밟으려 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지방에서는 우수 의료 인력을 확보하기가 점점 어렵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서울의 A대형병원의 경우, 올해 159명의 인턴 의사를 선발했는데, 이 중 서울 소재 의과대학 인턴은 65명뿐이며 나머지는 지방 의대 출신 의사들로 채워졌다. 그중 상당수는 지방 의대에서 수석, 차석 등을 한 성적우수자이거나 서울 소재 고등학교 출신 의사들이다. 최근 3년간 전남대 의대 졸업생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전남·광주 출신 신규 의사의 80%는 그 지역에 남아서 근무하고 있는 반면, 다른 지역 출신 의사는 27%만 남고, 10명 중 7명은 서울 지역으로 떠났다.
부산시 동아대 의대 서덕준 학장은 "서울 학생은 지방에 대한 애착도 적고, 연고도 없기 때문에 졸업하면 바로 서울로 되돌아간다"며 "이는 지역 의료 발전에 필요한 우수 의료 인력을 양성한다는 지방 의과대학의 설립 취지나 기능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자칫 지방 의과대학이 서울 학생의 '의사 대리 양성소'가 될 처지라는 얘기다.
미국·캐나다 등 선진국에서도 의사 양성에 지역 간 불균형이 심해지자 각 의과대학이 지역 출신 학생을 우선 선발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South Carolina)의대는 "우리 대학은 이 지역에서 활동할 우수한 의사를 배출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며 "지역 학생은 입학 선발에 우대된다"는 문구를 입학 요강에 명시하고 있다.
미국 내 최고 의과대학 중에 하나로 꼽히는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프란시스코캠퍼스(UCSF)도 "캘리포니아 출신 학생을 우대한다"고 명시하고 매년 정원의 80%를 이 지역 학생으로 선발하고 있다.
전남대 의학교육학과 정은경 교수는 "특별 전형 시 지역 학생에게 가산점을 주기도 하지만 타(他) 지역 학생을 차별한다는 논란 때문에 그 수는 극히 일부에 그치고 있다"며 "지방 의료 발전을 위해서는 해당 지역 출신 학생을 의대 입학 시 우대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