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던 해 나는 스물여덟 살이었다. 그날은 양력으로 1월 3일 새해벽두였고, 음력으로는 섣달 열이틀이었는데 굳이 그 날짜를 택한 것은 신부가 스물아홉 살이 아니라 아직은 스물여덟 살임을 강조하고 싶어서였다. 그래도 여기저기서 신부의 나이가 꽉 찼다느니 어쨌다느니 듣기 싫은 말이 오갔을 것 같다.
당시 결혼하기 딱 좋은 처녀의 나이는 스물대여섯 살쯤이었을 것이니까. 그 후로 결혼적령이 갈수록 늦어지더니 지금은 40을 넘은 처녀들도 수두룩하다. 아마 지금 스물여덟 살이라면 너무 어리고 철없는 나이라 할 것이다.
요즘 젊은 여성들은 결혼은 선택사항이요 직업은 필수사항이라고 한다. 특히 전문직을 가진 여성들은 독립과 더불어 자유를 선포하면서 자기발전을 도모하기에 바쁘다. 어쩌다가 마음이 바뀌어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꼭 낳아야 할까 망설인다.
소위 딩크(double income no kids)족이라 하여 정상적인 부부인데도 의도적으로 자녀를 두지 않는 맞벌이부부도 있다. 복잡한 세상에서 아이 낳아 교육시키기가 쉬운 일이냐고 보통 벌어서는 그 뒷바라지하다가 내 인생이 없어지고 만다고 강변한다.
그러니 외아들을 둔 집에 들어와 겨우 딸 하나만 낳고 그만 낳겠다고 손 털고 일어서는 며느리에게 시어머니는 속이 쓰리고 아파도 뜻이나 볼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예전의 여성 선배들은 어떻게 그 세월을 살아냈을까?
방아 찧어 아궁이에 불을 때서 대가족들 삼시 세끼 밥해 먹이고, 냇가에 나가 빨래하고 시집살이 하면서 보통 7남매 8남매 애를 낳아 기르고 밤이면 등잔불 아래서 길쌈하고 헤진 옷을 깁고 다듬이질하면서 어떻게 견디고 어떻게 참으면서 살았을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초능력을 발휘했던 것 같다. 하기야 그때는 시부모 시할머니 시동생 시누이 위아래동서 시아주머님과 조카들이 줄줄이 있었다. 이들은 마냥 귀찮고 골치 아픈 존재만은 아니었다. 고모나 삼촌이, 할머니나 숙모가 서로 어린애를 봐주기도 했을 것이다. 바쁠 때는 불도 때주었을 것이고, 물도 길어주었을 것이다. 함께 빨래를 하고 마르면 함께 개고, 살림의 지혜도 서로 가르쳐주었을 것이다.
비록 식구들이 상을 물린 다음 부엌에서 몇 숟가락 뜨는 둥 마는 둥 다시 일통에 빠지면서도 옛날 여성들은 그것이 곧 인생이려니 했을 뿐 꿈에도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여자가 밥하는 사람이냐? 왜 남자들이 하루 세끼 모두 집에서 먹으려 드느냐? 왜 여자만 아이를 낳아야 하느냐? 그런 말은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오늘날은 핵가족으로 세 식구 혹은 네 식구가 단출하게 살지만, 아이들 유치원 들어가면서부터, 피아노학원, 미술학원, 태권도수련장, 영어학원, 웅변학원, 논술학원, 영재원...적어도 이중 두세 군데는 실어다주고 다시 데려오고 하느라 전업주부들도 쉴 틈이 없다.
그래도 일손이 많은 대가족제도를 다시 불러와 서로 돕고 살면 어떻겠느냐고 묻는다면 백이면 백 ‘No thank you’라고 부르짖을 것이다.
남성과 동등하게 고학력자인 현대의 여성들은 그에 비례하는 자유와 권리를 누리고 있지만 아직도 꿈꾸던 이상적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혼과 출산만이 자기의 임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물론, 자기개발을 완전히 이루지 못한 억울함 속에 갇혀 있다.
결혼 후에 집안에 틀어박혀 겨우 이런 일이나 하려고 머리 싸매고 공부하여 명문대학에 갔는가. 겨우 이런 짓이나 하려고 어렵게 취직한 일류기업에 사표를 냈던가. 자신의 처지를 참담하게 생각한다. 그들 중에는 인간의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가 의심하면서 우울증을 앓고 자기혐오를 느끼는 사람도 적지 않다.
가끔 가치관의 혼란을 느낄 때면 침묵하는 바위와 같았던 옛날 여성들을 생각한다.
행불행의 절대량은 애초부터 정해져 있는가. 다만 그것을 어떻게 경영하고 관리하며 느끼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가. 나야 그럭저럭 과도기적인 시대를 건너왔다 치더라도, 내 딸과 손녀와 손녀의 딸들, 내 아들과 손자와 손자의 손자는 장차 어떤 인생을 살 것인가. 천평에 그들의 행복을 달아 그 절대량을 확보하는 연습부터 시켜야 할 것인가.
너무나도 평범하고 시시한 생각인데도 두루 흡족한 결론이 쉬 나오지 않을 것 같다.
팔다리에 힘이 쪽 빠지는 것 같다.
(이향아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