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하게도 이제껏 살아오면서 병원에 입원할 만큼 큰 병을 앓은 적도 없고, 몸이 허약해져서 직접 보약을 지어먹은 적도 없다. 타의에 의해 보약을 먹어본 적은 한 번 있지만…몇 해 전 태풍에 날아간 목사관 지붕의 복구 작업이 거의 끝나가고 있을 때 선배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김 목사, 조만간 택배로 무언가 배달될 테니 잘 챙겨들어."
"선배님, 무얼 보내시든 고맙게 잘 받겠습니다."
배달된 물품의 포장을 뜯어보니 보약이었다. '십전대보탕'이라는 한자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뜻밖의 보약을 받아든 나는 선배님의 깊은 심중을 헤아리면서도 여간 난감한 게 아니었다. 아직 보약 먹을 나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선배님, 뭐 이런 걸 다 보내셨어요?"
"다들 복구 지원의 손길을 교회로만 보냈을 거야. 하지만 그 교회에서 실제로 몸을 부려 일하고 힘쓰는 사람은 김 목사잖아."
당시 내가 섬기던 교회는 어른 교우가 한 명도 없는 교회였다. 간혹 동료 목회자들이 찾아와 도와주긴 했지만 그 교회는 내게 맡겨진 교회였고 나는 남보다 더 많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선배의 마음 씀씀이는 정확하고 고마운 것이었다.
"그렇게 일하다가 몸이라도 축나면 교회도 손해고 하느님도 손해이실 것 아닌가? 피해를 복구하느라 힘들었을 테니 꼬박꼬박 잘 챙겨 들고 더 힘껏 일하시게."
"처음 접하는 보약이지만 선배님의 말씀대로 할 게요. 선배님, 고맙습니다."
그렇게 고마운 마음을 써주신 선배님 내외가 얼마 전 휴가를 겸하여 물이 아름다운 여수를 찾으셨다. 나는 선배님 내외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들어 드리고 싶었다.
"선배님, 이곳 여수에서 하시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씀하세요."
"김 목사하고 낚시나 해볼까 해."
소위 '포인트'라는 곳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하고 낚싯대를 드리우면 물고기들이 달려와 붙어줄 만큼의 기량을 갖춘 나이지만 선배님께 낚시를 권해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낚시는 전국 어디서나 경험할 수 있는 일이고, 한 쪽은 잘 낚는데 다른 쪽은 잘 낚지 못하면, 낚지 못하는 쪽이 그만큼 속상할 것이고, 동행한 여인들은 물끄러미 바다만 바라볼 것임에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참여한 사람 누구나가 똑같이 재미를 보고, 똑같이 평등해질 수 있는 것이 필요했다. 나는 선배님께 다른 제안을 드렸다.
"선배님, 카누 타 보셨어요?"
"아니, 그런 걸 경험할 수 있어?"
"그럼요, 잊지 못할 추억 하나 만들어 가시죠."
때마침 순천에 계신 카누 전문가 홍 목사님으로부터 초대를 받아놓은 터였다. '상사댐이 방류 중이고 상사천에서 순천만까지 카누타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이니 한 번 오라'는.
일행이 순천으로 달려가 평화학교에서 홍 목사님을 만났다. 그 학교에서 내준 점심 식사를 마치자, 홍 목사님이 카누 세 대를 싣고 일행을 상사댐 직전까지 안내하셨다. 남도의 아름다운 강변이 내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벗은 발을 물에 담그니 너무 차고 맑아 오래 담글 수 없었다. 저마다 카누에 바람을 주입하고, 홍 목사님으로부터 카누 탈 때의 주의사항을 간단하게 전달받았다. 카누를 상사천에 띄우려 하는데 홍 목사님이 선배님 부부와 우리 부부를 향해 농담을 던지셨다.
"파트너를 바꿔보는 게 어때요?"
그러자 선배님이 농담으로 맞받아쳤다.
"그냥 부부끼리 타야 할 것 같습니다. 내 것은 물에 빠뜨려도 되지만 남의 것을 물에 빠뜨리면 그 뒷감당을 어찌하겠습니까?"
그 소리에 다들 상사천이 떠나가라 웃었다. 선배님 부부, 우리 부부, 홍 목사님이 카누 한 대씩을 띄우고 상사천의 흐름에 온 몸을 맡겼다. 상사천이 순천의 젖줄이라고 하니 우리 일행은 순천의 젖가슴을 더듬어 내려가는 셈이었다. 눈부신 햇살이 위에서 내리꽂히고, 강물은 나지막한 소리로 파문을 일으키며 빛살을 되받아쳤다. 강변의 대숲은 한층 싱그럽고 우람했으며, 둔치에 심겨진 배롱나무숲도 색다르게 다가왔다. 천변의 꽃창포도 샛노란 꽃망울을 터뜨리고서 간간이 일행의 눈길을 낚아챘다. 도로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경치가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저마다 비밀을 펼쳐보였다. 카누에 올라탄 이들의 얼굴이 발그레 상기되었다.
카누에 몸을 싣고 있으면 물 속을 들여다보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을 올려다보아야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수면에서는 아무리 낮은 산도 높게 보이고, 아무리 작은 것도 크게 보이는 까닭이다. 주위에 베풀어진 모든 것을 커다란 선물로 갈무리하고 모든 이를 나보다 낫게 여기는 또 하나의 방법, 그것은 수면과 키를 같이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디에 있든 내 마음의 눈높이가 물위 만큼이면 좋겠다. 그러면 나는 내 앞에 다가온 모든 것을 선물로 여기고, 모든 이를 천사로 환대할 수 있을 테니까. 자기에게 다가온 이들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다가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한 아브라함처럼…
일행 가운데 누구도 자기를 내세워 거슬러 오르려 하지 않았다. 강물은 그런 우리를 편안히 받아들였고, 우리는 강물과 한 몸이 되어 천천히 흘렀다. 흐르고 흘러 목표 지점인 상사면 마륜리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벌어진 입을 쉬이 다물지 못했다. 깎아지른 듯한 산과 휘감아 도는 강물, 소나무 우듬지에 앉아 명상에 빠진 백로 한 마리, 큰나무들을 타고 올라가 하얀 꽃등을 주렁주렁 내건 마삭줄, 그 꽃등에서 풍겨 나와 줄곧 따라붙는 은은한 향기, 잔잔한 물위를 떼 지어 유영하는 쇠오리들이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풍광이었다. 그런 산수화 속에서라면 당장 죽어도 좋을 것 같았다. 우리는 벅찬 숨을 겨우겨우 갈앉히며 산수화 속으로 천천히 노를 저어 들어갔다. 우리의 난데없는 방문에도 백로는 한동안 날아가지 않았고, 마삭줄 꽃향기는 더욱 짙어 사그라질 줄 몰랐다. 카누에서 내리기가 못내 아쉬웠는지 선배님 부부는 한참을 산수화 속에서 노닐었다.
"감흥이 어떠세요?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드셨는지 모르겠네요?"
"말이 필요 없구먼. 마침 오늘이 우리 부부 결혼기념일이야."
"그래요? 그것 참 잘 되었군요. 댐이 물을 방류하는 날을 맞추는 일도 쉽지 않고, 방류하는 날에 카누를 타는 것도 좀처럼 만날 수 없는 행운인데, 오늘이 마치 선배님 부부의 날인 듯싶네요. 하여튼 복 있는 분들이에요."
"그러게 말이야."
돌아오는 길에 홍 목사님의 안내로 순천의 '산/들/바람이'라는 전통 찻집에서 차를 마시고 홍 목사님과 헤어졌다. 여수로 돌아오면서 서로의 얼굴빛을 살폈다. 다들 얼굴이 발그스름하니 익었다. 햇볕에 그을린 것인지 카누 탈 때의 감흥이 그때까지 여운으로 남아 있었던 것인지 쉬이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바닷가에서 살다보니 사시사철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여름철 손님이 많다. 나 역시 녹색별을 찾은 손님일 뿐이니 이곳을 찾는 손님들과 어우러지는 것도 내 삶을 구성하는 한 부분이다. 손님들이 하늘빛 바다를 찾는 것은 분주하고 고단한 삶을 내려놓고 잠시 '구멍 뚫린 나날'을 보내면서 마음의 깊이를 되찾기 위해서이리라.
구멍 뚫린 날이라. 듣기만 해도 시원하고 가슴이 탁 트이는 말이 아닐 수 없다. 북새떨면서 강박적으로 일하지 않아도 되는 날, 숨 가쁜 경쟁의 대열에서 슬쩍 빠져나와도 마음이 공허하지 않은 날, 하는 일 없이 마냥 빈둥거려도 부끄럽지 않은 날,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볼 수 있고, 꽃 한 송이, 풀 한 포기, 흐르는 물줄기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날, 풀벌레 소리에 온전히 귀 기울일 수 있는 날, 걷고 있는 인생길을 깊이 돌아볼 수 있는 날, 무엇보다도 들숨과 날숨에 주의를 기울이며 마음의 흐름을 볼 수 있는 날, 그게 바로 시원하게 구멍 뚫린 날이 아닐까? 이렇게 구멍 뚫린 날을 대자연 한가운데서 보낸다면 더없이 좋으리라.
대자연 한가운데 들어서면 자연스레 우리의 마음과 귀를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 있다. 피조물 형제자매의 소리가 그것이다. 온갖 소음, 고막을 찢을 듯한 경적 소리, 온갖 기계소리가 난무하는 도시 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현대인이 피조물의 소리를 귀담아 듣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렇게 우리의 삶과 내면으로 쉴 새 없이 파고드는 시끄러운 소리를 뒤로하고, 더운 여름을 식혀주는 매미들의 합창, 어둔 밤을 더욱 깊게 하는 풀벌레들의 교향악, 간간이 불어들어 잎사귀를 간질이는 바람소리, 깊은 계곡을 두루 돌아 흐르는 물소리, 맑은 아침을 여는 새소리, 무거운 마음을 시원하게 쓸어내리는 파도소리를 귀담아 듣는 일은 우리의 마음을 갈 데 없이 들뜨게 하는 경험이다. 초록 사원으로 들어가서 피조물의 전언을 듣고,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와 대화를 나누고, 울녘을 에워싼 피조물과 어우러져 창조주 하느님을 기리는 것은 아주 색다른 경험임에 틀림없다.
이처럼 녹색 사원을 찾아가서 녹색 은총을 경험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급적 입을 적게 열고 귀를 많이 열어두어야 한다. 기계 소리 울리는 도구들을 손에서 내려놓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피조물의 설교를 듣는 일은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이것은 성서의 창조 전통에 섰던 분들이 아주 오래 전부터 사용했던 방법이다. 예수님은 창조 전통의 가장 확실하고 가장 분명한 대변자이셨다. 예수님은 대지와의 관계, 대지 위에서 단순하게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가장 친밀하게 맺으셨던 분이다. 예수님은 하늘을 나는 새, 들의 백합, 물고기들, 양떼, 염소들, 태양과 비, 겨자씨 등과 사랑에 빠졌던 분이다. 예수님의 비유 속에는 그분께서 피조물 형제자매와 맺으셨던 깊은 관계가 진하게 녹아 있다.
우리는 우주와 동떨어진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가죽 장정의 성서도 읽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주라는 책을 읽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주의 가슴팍에는 하느님의 말씀이 깊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성서의 창조영성에 눈뜬 사람들은 비슷한 목소리를 낸다.
만물 안에서 하느님을 느끼십시오. 하느님은 만물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개개의 피조물은 하느님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에 관해 기록된 한 권의 책입니다. 개개의 피조물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마이스터 엑카르트).
창조의 시는 중단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듣는 귀를 가진 사람은 드물다(헨리 데이빗 소로우).
이들 모두는 생명의 둥우리에서 창조주 하느님을 보는 맑은 눈의 소유자가 아닐 수 없다. 이들의 목소리는 우리가 신적인 지식과 사랑에 푹 잠기려면 사물을 맑고 투명하게 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사물을 통해 그들의 신적인 근원을 보고, 사물의 투명성과 창조주의 직접성을 경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사물의 투명성과 창조주의 직접성을 경험하려면 마음을 열어야 한다. 인간이 사물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을 접고, 겸손하게 몸을 낮추어야 한다. 우리가 겸손한 자세로 피조물에게 다가가서 피조물이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우주라는 책을 읽고자 힘쓸 때, 피조물이 우리에게로 다가와서 우리의 귀에 대고 모든 것을 말해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피조물과 우주가 분출하는 건강한 에너지에 흠뻑 젖고, 그들을 통해서 우리의 영적인 상태와 마음 상태를 점검하는 뜻 깊은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우주의 책갈피에서 말씀을 길어 올리고, 피조물의 신적인 근원을 알아채는 경험은 언제나 새롭고 멋지다.
손님들과 이곳 계동에 사는 아이들 그리고 우리 교우들에게 뜻 깊은 경험을 소개하기 위해 카누 두 대를 마련했다. 한 대는 우리가 장만하고 나머지 한 대는 앞에 소개한 선배님이 장만해주셨다. 그것들이 우리를 계동 바다의 구석구석으로 실어 나르면, 바다는 드넓은 품을 열 것이고, 고이 간직했던 신비와 경이로움을 차근차근 보여주고 들려줄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너나할 것 없이 바다처럼 드넓은 하느님의 품에 둥지를 틀고 있음을 생생히 일깨워 줄 것이다.
이 여름, 나는 손님들과 바다를 이어주는 중매쟁이가 되고 싶다. 하늘빛 바다, 바다의 너그러움, 바다의 드넓은 품을 소개하려면 내가 먼저 바다를 연인으로 삼아야 하리라. 바다와 결혼해야 하리라.
바닷가에 구르는 조약돌이 되어도 좋으리라. 그러면 임께서 나를 가지고 수제비를 뜨시겠지? 바다 속으로 던지시겠지? 임께서 던지시면 나는 저항을 그리 오래 하지 않으리라. 수면에서 잠시 파문을 일으키겠지만 이내 잠잠해지리라. 깊고 고요한 곳에 이르러 있을 테니까. →김순현 |
첫댓글 목사님, 자연속에서, 특히 바다와 더불어 주님과 대화 나누고팠는데.... 현민, 현승이 데리고 카누타러 계동에 가고픈 맘 굴뚝같은데.... 시아버님이 임종을 앞둔 상태라서.... 오늘 주일 예배 후 영전 사진을 담을 사진틀을 액자가게 가서 준비하면서 가슴이 참 쓸쓸했답니다. 제차 나온 날 제일 먼저 시아버님 계신 병원에 운전하고가서 아버님 모시고 바람 한번 쐬드리지 못해서 너무도 안타까웠구요. 욕창이 너무 심해서 뇌 수술 후 8월 7일이면 만 9개월을 채우는데 혈압이 낮아지고 있답니다. 무의식인 상태로 9개월의 시간이 흘렀거든요. 이제는 주님 품으로 가셔서 편안히 쉬시길 기도하고 있답니다. 죽음에 대해 참 생각을
해본 세월이었습니다. 제 생각도 생활도 여러면에서 변화가 많은 세월이었구요. 기회가 주어지는대로 갈릴리 교회에 아이들 데리고 다시 가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동두천안에서는 어디든 갈 수 있을 정도로 운전석에 앉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답니다. 고속국도 운전연습을 몇차례 더 한 뒤에 고향순천에 가게되면 꼭 찾아가겠습니다.
목사님... 오랫만에 오솔길을 찾았습니다. 작은배(?)두 척과 푸른 바다...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목사님의 깊고... 맑은 글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