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방송 정파에서 우리가 얻을 교훈
기업, 주주, 노조, 그리고 정치논리
솔로몬의 해법은 어디에?
2005/02 205호
경인방송(iTV)정파 사태의 충격
경인방송이 정파 한 달을 맞는다. 지난 해 12월 21일 방송위원회가 재허가 추천을 거부함에 따라 2004년 12월 31일 오전 11시 10분을 기해 방송 송출을 중단한 경인방송 사태는 우리나라 방송사상 최초로, 지상파 방송도 문제가 있으면 방송을 중단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충격적으로 보여준 사례였고, 향후 후속조치에 따라 우리나라 방송사에 또 다른 이정표가 될 수도 있는 현재 진행형의 사건이다. 경인방송은 지난해 12월 23일 공식적으로 부도 처리됨으로써 문을 닫았지만, 방송재개를 위하여 인천지역 시민단체들과 전 iTV 노동조합원들이 만든 iTV 희망조합, 대주주인 동양제철화학 등이 저마다 다양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경인방송은 어디로 가는 걸까. 경인방송 사태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방송개혁이 논의되고 있는 지금, 우리는 경인방송 사태를 통해 무엇을 얻어야 하는 걸까.
경인방송 탄생과 몰락의 드라마
경인방송이 탄생한 것은 1997년 10월. 문민정부 출범이후 공보처의 지역민방 설립계획에 따라서였다. 애초에 인천지역에 민방설립 계획은 없었지만, 시민단체 중심으로 인천지역에도 TV 방송이 설립돼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면서 인천지역에 기반이 있는 동양제철화학을 최대주주로 설립됐다. 설립 당시만 해도 경인방송은 서울과 가장 가까운 수도권이란 점에서 제 2의 서울방송이 될 것이란 기대와 우려가 끊이지 않았다. 다른 지역 민방들과 달리 100% 자체제작 방송으로 시작한 것이나, 우리나라 방송사상 최초인 본격적인 6mm VJ 시스템의 실험, 1998년 박찬호 경기 독점 중계 등은 그 같은 기대의 반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IMF와 서울방송의 견제, 정치적 상황변화 등에 의해 그 같은 기대는 현실화되지 못했다.
결국 방송 7년 만에 누적 적자만 천억여 원, 경인방송은 지배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노조의 파업과 회사 측의 직장폐쇄에 이어, 방송위원회의 재허가 추천 거부로 문을 닫게 됐다. 숙원사업이던 계양산 디지털 텔레비전 중계소 설치도 이제야 가능해졌고, 올해 1월부터는 케이블 TV를 통한 역외전송도 가능해졌는데. 경인방송은 결국 송출을 중단한 것이다.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몰락의 원인은 어디에
방송위원회가 밝힌 재허가 추천 거부 이유는 지배주주의 재정능력 부족, 2002년 재허가 추천당시 200억 증자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점, 향후 실효성 있는 재무구조 개선방안이 없다는 점 등이었다. 실제로 동양제철화학은 투자에 소극적이었다. 장부상 경인방송의 자본금은 811억, 적자가 천억여원으로 완전 자본잠식상태다. 부도처리 당시 1순위 채권단인 캐피털 지에 127억 원, 퇴직금 110억 원, 업체 미지불금 46억 원 등 3백억 원에 가까운 부채가 남아있다.
하지만 정작 대주주인 동양제철화학은 큰 손해를 보지 않았다는 것이 노조를 비롯한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동양제철화학은 7년간 모두 399억 원을 증자했지만, 그 중 건물 임대료로 250억, 장비임대료로 268억을 가져가게 돼있어 실제로는 투자금을 거의 회수했다는 것이다. 인천시 남구 학익동의 사옥은 동양제철화학 소유. 경인방송은 고액의 임대료를 내야했지만 동양제철화학은 오히려 그 일대의 지가상승으로 부동산에서 이익을 보았다는 것이다.
2002년 재허가 추천당시 약속한 200억 원의 증자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향후 디지털 방송으로의 전환 등에 천억 원대의 자금이 필요하지만, 동양제철화학과 대한제당이 밝힌 투자계획은 2백억 원 선. 뻔히 눈에 보이는 적자분과 들어가야 할 돈을 생각하면 대안이 없는 액수다. 7년간 회장이 세 번, 사장이 여섯 번이나 바뀌는 원칙 없는 경영도 도마 위에 올랐다. 7년간 단 한차례의 장비투자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들어 아예 방송 의지가 없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하지만, 일부에선 주주들만 대책 없는 투자에 나서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실제 경인방송의 광고단가는 여타 공중파의 8분의 1수준. 광고공사가 광고를 나눠주지 않는다면 100% 자체제작의 제작비를 충당할 자생력은 거의 없는 셈이다. 시청권이 서울방송과 겹치는지라, 다른 지역민방처럼 서울방송의 지방국 역할을 할 수도 없었고, 전파는 경기 인천지역을 넘어설 수 없는 상황에서 설립 당시부터 적자는 예상된 것이었다는 얘기다. 결국 동양제철화학 등 대주주는 밑 빠진 독에 물붓기를 포기했고, 열악한 환경과 열악한 방송, 인지도 저하, 광고 수주 실패의 악순환은 정도를 더해가며 사측과 노조측의 대립만 불러왔다.
공익적 민영방송으로의 변신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한 경인방송 노조의 주장은 이처럼 대안 없는 상황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일각에선 스스로 재허가 추천 거부를 요구했던 강성노조의 활동이 경인방송의 몰락을 가져온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지만, 노조가 없었다 하더라도 경인방송이 가진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는 사라지지 않는다. 언제고 터질 문제에 노조활동과 재허가 추천 거부 요구가 오비이락 격의 빌미를 제공했을지언정, 노조가 근본적인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관리감독 기관으로서의 책임은 도외시한 채, 또한 별다른 대안 없이 재허가 추천거부라는 강수를 둔 방송위원회에 대해서도 비판이 없지 않다.
문제의 본질은 오히려 탄생과정 자체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재허가 추천거부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 속에 드러난 바에 따르면, 시장논리에 의해서는 생존해나가기 힘든 방송이 정치논리에 의해 만들어지면서, 방송업에 큰 관심도 전문성도 없는 기업에게 맡겨졌고, 결국 재허가 추천거부라는 결말을 맞고 만 셈이다.
이제는 어디로 가야하나?
이 같은 과정에서 상처를 입은 것은, 해당기업과 경인방송의 직원들뿐 아니라, 경인지역 1,030여만의 시민들이다. 경인방송이 송출을 중단한 이래, 경인지역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경인지역 새 방송 준비위원회’가 새 사업자 선정 등 구체적 대책을 요구하며 활동하고 있는 것도 그 같은 이유 때문이다.
현재 전 경인방송 노조원들도 ‘iTV 희망노조’를 설립해 퇴직금을 출연해 10억원 규모의 새 방송 설립기금을 조성하겠다고 결의한 상태다. 경인방송측도 지난 1월 12일 인천 YMCA 이창훈 회장을 대표이사로 영입해 새로운 대책을 모색하는 눈치다. 지난 1월 27일 언개련과 언론정보학회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서는 경인방송이 지역 프로그램과 외주프로그램을 절반씩 편성하는 시민주도형 참여민방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모델이 제기돼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문광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외주전문채널이 경인지역 기반의 지역방송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애초의 설립취지와는 어긋나고, 근본적인 문제인 권역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자생력이 없다는 점에서 현실적 가능성은 미지수다. 새 사업자 선정권을 가진 방송위원회는 아직 구체적인 후속조처와 일정을 발표하지 않고 있어 정파 한 달을 맞고 있는 경인방송은 여전히 표류하고 있는 셈이다.
어떻게든 결말은 나겠지만, 경인방송을 지켜보는 방송인과 국민들은 이번 사태를 통해 얻어야할 교훈이 충분히 반영된 발전적인 대안을 기대하고, 또 다른 정치논리가 방송의 운명과 시민들의 방송권을 좌우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계양산 송신탑건설에만 7억, HD 전환을 위한 중계차 구입비만 50억 등, 향후 현상유지를 위해서만 1,000억 원의 자금이 필요한 경인방송의 존속과 시민들의 경인방송을 위한 솔로몬의 해법은 어디에 있을까.
글 김주영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