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영월버스터미널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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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부터 예미까지 38번 국도를 쭉 따라가는 흥미로운 여정 중 하나였는데,
그로부터 정확히 10년이 지나 다시 이곳에 오게 되었다.
그 당시 그 자리에서 똑같은 외관을 유지하고 있는 이곳이,
10년이라는 세월 속에 얼마나 많은 것이 달라졌는지 궁금한 마음에 선택을 하게 되었다.
오랜만에 오는 영월버스터미널, 그 속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고한에서 40여 분을 차로 달려 비로소 영월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오는 영월읍에서의 첫 소견은, 비로소 처음으로 '사람 사는 동네'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날 다녔던 수많은 곳들 중 가장 사람도 차도 건물도 많아서,
같은 읍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굉장히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영월읍은 이날 다녔던 곳들 중 가장 인구가 많은 곳이다.
영월군의 인구(40,067명)는 평창(43,092명)보다 적고 정선(38,173명)보다 조금 많은 정도지만,
중심지로 따지면 영월읍 21,650, 평창읍 8,910, 정선읍 11,177명으로 가장 독보적이다.
즉, 그 넓은 영월에서 절반 이상이 사람들이 읍내에 모여 산다.
그 덕분에 1980년대 말쯤 지어진 영월버스터미널은 이웃들과 비교해도 규모가 큰 편이다.
물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이게 뭐가 크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군 단위의 버스터미널치고는 나름 화려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다만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버스터미널은 예전과 한치도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다.
10년 전 똑같은 자리에서 찍었던 사진을 비교해보니 역시나 세월의 영향을 무시할 수가 없다.
'영월버스터미널' 간판을 제외한 모든 가게들이 다 바뀌었으며,
건물을 뒤덮은 벽돌과 스테인리스 간판이 그간 심히 때가 타고 녹이 슬었다.
겉보기에는 같아 보이지만 시간이 많이 흘렀음을 느낄 수 있는 장면이다.
오랜만에 도시에 온 것처럼 느껴졌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평창 및 정선과 비교했을 때나 그렇지,
영월읍내가 진짜 도시처럼 규모가 크지는 않으므로 도로와 인도가 매우 좁다.
따라서 건물로 드나들기에는 불편한 요소가 꽤 많은데,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달라진 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건물 이곳저곳에 때와 녹이 묻은 건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탓도 있지만,
그만큼 우리가 사는 사회가 많이 바뀐 영향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 시점에 찍은 사진을 보니 '추억의 물건'이 될만한 것들이 많이 보이는데,
그 당시에는 딱히 오래된 것이라는 언급을 하지 않았다.
대합실의 사진을 보면 오히려 그전보다 더 옛날 같은 분위기가 흐른다.
그 시절에는 난방시설이 전혀 없었는데 지금은 석유난로가 생겼고,
창문에 붙어있지 않았던 '영월시외버스터미널' 스티커가 어느샌가 붙여졌다.
석유난로와 창문 스티커 모두 전형적인 20세기형 물건인데,
21세기가 된 지 한참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설치되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매표소의 위치도 역할도 변함이 없으나,
역시나 다른 곳들처럼 최신식 물건인 '승차권 발매기'가 자리 잡기 시작했다.
매표소는 여전히 한 명의 직원만 근무를 하는데,
미소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상냥하고 친절한 안내 멘트를 하신다.
시간표를 곰곰이 살펴보니 놀랍게도 10년 전보다 노선 수가 증가하였다.
동서울행(직행)은 그때나 지금이나 하루 8회 운행하며 막차 시간까지 똑같고,
수원행 6회 → 8회, 안산행 5회 → 6회, 인천행 3회 → 4회 및 안양-부천, 용인, 인천공항행 신설 등등
전반적으로 경기도로 가는 버스가 크게 증가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연당, 쌍룡, 제천, 신림, 원주를 경유하는 완행 노선은 큰 폭으로 감소하였다.
10년 전에는 제천 41회, 원주 39회로 평균 20분 간격으로 완행버스가 운행하였으나,
지금은 제천 20회, 원주 18회로 절반 이상 배차가 깎여나갔다.
원주 경유 동서울행은 하루 15회에서 7회로 팍 깎여 겨우 명맥만 잇는 수준으로 전락했다.
상동 경유 태백행은 하루 14회에서 9회로 역시 큰 폭으로 횟수가 줄었고,
평창 경유 강릉행은 8회 → 1회, 정선행은 6회 → 2회로 폐지 위기에 몰렸으며,
하루 세 번 있던 춘천행은 아예 사라졌다.
그나마 명맥을 잇는 건 주천 경유 원주행 및 고양행, 의정부행 등이다.
그나마 고양, 의정부 방면은 대체 노선이 없기 때문에 유지가 될 뿐,
완행으로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보기는 어려운 노선들이다.
이번 여정에서 느낀 사실이 여기서도 피부로 체감되었다.
완행은 팍 줄고 급행 위주로 노선이 재편되었다는 사실 말이다.
시골 면 단위 지역 인구가 줄고 자가용에 대한 의존도는 더 증가하면서,
완행버스는 더 이상 설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여기서까지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원래부터 높았던 수도권에 대한 의존도가 지금은 더욱 심해졌다.
수도권 노선을 제외하면 원주 가는 완행 및 태백, 정선, 강릉, 고한, 광주행이 전부인데,
하루 한 번만 남은 강릉, 광주행을 제외하면 최종 목적지는 전부 수도권이니,
강원도 산골이면서도 수도권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종합해보면 그동안 로컬 주민들의 버스터미널 의존도가 크게 낮아지고,
상대적으로 관광객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음을 간접적으로 추측할 수 있다.
아무리 수도권 집중 현상이 심해졌다고 해도 결국 생활권은 주변 도시들로 한정되게 마련이다.
영월의 경우 제천, 원주의 영향을 크게 받고 평창, 정선과 어느 정도 교류가 있는 지역이다.
그러나 이들 지역으로 가는 노선 수가 그새 절반 이상 줄어들었으니,
자가용으로 대부분의 수요가 이탈하여 버스의 역할이 사실상 무의미해졌음을 뜻한다.
반면 수도권의 경우 영월까지 일상적으로 오가는 수요는 거의 없다.
직장 및 대학 문제로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도 자주 왕래해봤자 한 달에 두세 번이면 많은 것이다.
즉, '일상'으로서의 버스터미널은 존재감을 잃고 '일탈'하는 사람들에 의존하게 된 씁쓸한 현실이,
버스터미널 시간표에 고스란히 반영된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 탓인지는 몰라도 10년간 지붕 빼고는 아무것도 바뀐 게 없는 낡은 승차장은,
KD그룹의 보라색 버스가 온통 이곳을 지배하고 있었다.
10년 전에도 영향력이 있긴 했지만 영월에 드나드는 수많은 업체 중 하나에 불과했던 KD가,
지금은 영향을 끼치지 않는 노선이 없는 공룡이자 사실상의 독점 회사가 되어버렸다.
버스터미널뿐 아니라 읍내까지 관광객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모양이다.
평범한 시골 읍내 전통시장으로 주로 노년층이 찾던 영월서부시장이,
기왓장과 지붕을 올리고 말끔히 꾸며져 관광객 특화시장으로 바뀌었다.
입구에 환영 문구 가득한 LED와 영어로 된 안내판 및 관광 안내 지도는 물론이요,
초장부터 닭강정과 국밥 등등 배를 자극하는 음식점이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서부시장과 터미널 사이에 놓인 도로는 버스, 택시, 자가용이 맞물려 매우 복잡하다.
정신없는 도로와 낮은 건물들 너머로 해가 어느덧 지평선을 넘어갈 채비를 하고 있다.
영월버스터미널은 10년이라는 세월에도 그 모습 그대로 유지를 하고 있지만,
그간 생긴 속사정이 있었는지 너무도 많은 현실이 바뀌어 있었다.
반가움과 동시에 씁쓸한 감정이 지나가는 복잡한 감정을 마음 한켠에 묻어둔 채,
더 늦기 전에 이날의 마지막 여정을 준비하러 다시 터미널에 들어갔다.
첫댓글 ㅎㅎ 저의 고향에 다녀 오셨군요.
맥시멈님 덕분에 고향 사진 보니
반갑네요.
제가 중ㆍ고등학교 다닐때랑
변한게 없네요.
제천~삼척 고속도로 가 생기면
좀 나아 지겠지요.
건강 잘 챙기세요.
여기가 고향이셨군요. ^^ 예전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더군요.
보라돌이박에없군요
고생하셧어요
실제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제가 갔을땐 KD가 절반을 훌쩍 넘는 것 같았습니다.
영월발 제천,원주행이 90년대까지는 5분~10분 간격으로 매우 촘촘한 배차였었죠.
1일 100회 정도가 넘어가니 시각표에 다 표기를 할수 없어 첫차, 막차와 몇분 간격이라 표기하는게 대부분이었죠.
운수사도 꽤 여러회사(경기대원,영암화성,친선,대성,서울,강원운수,강여동원)가 참여해서 경쟁이 심했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그 당시에 주요 경쟁노선들 최소가 3분 간격이기도 했죠.
이젠 제천행도 20회로 많이 줄었고, 강남행도 반이 준걸 보게 되니,
세월의 흐름을 사람의 나이만큼이나 피해갈 수 없음을 새삼 느끼고 있습니다.
90년대에는 5~10분 배차로 운행했었군요. 정말이지 세월의 흐름이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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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동기가 영월 사람이 있어서 그 친구 경조사 때 영월을 방문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때 본 영월하고는 많이 다르게 느껴집니다. 터미널이 있는 중심가를 가 보지 않아서 그런지 생각보다 터미널 주변 분위기가 전에 다녀오신 곳들보다 훨씬 활기가 도는 모습입니다. 영월도 동강을 비롯하여 관광 자원이 많다보니 아무래도 그런 관광지에 대한 수요자들이 많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대중교통편이 집중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강남행 배차가 적은건 다소 의외이기도 합니다. 주요 수도권 노선을 KD가 가지고 있다보니 KD의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는 것 역시 피할 수가 없는 일 같습니다.
경조사 때 방문하셨던 영월하고 어떻게 다른가 궁금하네요. ^^ 영월이 은근히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보니, 정선이나 평창만큼은 아니어도 수도권 주민들에 대한 소비 의존도가 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강원도쪽은 도시권이 아닌 이상 대체로 동서울 위주로 노선이 짜여져서, 저는 오히려 강남행이 있는 게 다소 신기했었습니다. ^^
@Maximum 터미널과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질 않으나 그때 주로 영월의료원 주변에서 일을 보고 있었고, 그 주변은 정말 한적하기 이를데 없었습니다. 근처에 강이 흐르고 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잠시 스치듯이 다녀갔던 지역이라 깊은 인상을 받지는 못했는데 맥시멈님의 글을 보니 새로운 모습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다음 글은 어느 지역 이야기를 맛깔나게 풀어주실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강원도의 경우에는 군이든 시든 강원도 내의 이동보다 수도권과의 이동이 많습니다. 이런 이유로 강원도를 오가는 버스들은 한산하고 여유 있게 타고 다닐 수 있는 편이죠. 직장 때문에 강원도에 근무한다고 해도 가족들은 여전히 수도권에 머물어서 주말마다 수도권을 오가는 수요도 꽤 있으며 가족 전부 이주는 꺼리는 경우가 많죠. ' 내 일터 영월군으로 주소를 옮겨주세요'가 있는 이유가 다 있습니다.
그렇군요. 하긴 제 주변에도 일 때문에 수도권에 올라온 사람들이 몇몇 보입니다. 확실한 거점 도시가 존재하는 다른 지역과 달리 고만고만한 도시 몇 개가 전부고, 그들도 수도권 의존도가 크기 때문에 더 그런 것일 수도 있겠네요.
영월하면 영화'라디오 스타'가 생각납니다...영화에서도 잠깐 터미널이 나온것 같은데... 시골읍내의 정겨움이 느껴집니다...
라디오 스타에 여기가 나왔는지 확인해봐야겠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