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端七情論辯의 名學的 解釋* - 정 재 현
目 次 1. 서론 2. 사단칠정 논변이란? 3. 사칠논변에 관한 기존의 해석 4. 명학적 해석 5. 명학적 해석의 의의 參考文獻 Abstract
1. 서론
사단칠정논변1)은 16세기 퇴계와 고봉으로부터 시작하여, 율곡과 우계를 거쳐 이후 300년 이상 조선의 거의 모든 학자들에 의해 언급이 될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된 논변이다.2) 이것은 情(감정, 의식일반3))을 이기론과 연결시킨 점4)에서 성리학 사상 주목할 만한 논쟁이라 할 수 있고, 바로 이 논변을 기원으로 삼아 조선 성리학의 양대 조류라 할 수 있는 퇴계학파(영남학파, 주리파)와 율곡학파(기호학파, 주기파)가 성립되었으므로, 사칠논변은 조선 성리학이나 한국철학의 성립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바로 이 때문에 근대 서구학문이 도입된 이후 이 논변에 대한 철학적 의의를 다룬 논문이나 책이 그 어느 주제보다도 많고 다양하게 되었다.
이 글의 주된 목적은 이러한 사칠논변을 동아시아인들의 논변사상(名學)을 통해 이해해 보는 것이다5). 이 글은 사칠논변이 동아시아에서 벌어진 하나의 논변인 이상 그것은 동아시아 사람들이 논변에 대해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함유하고 있고, 이런 배경적 지식들을 우리가 의식적으로라도 끄집어서 사칠논변을 바라본다면, 서구의 논리사상을 무의식적으로 이 사칠논변에 적용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오해를 줄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취지 하에 이 글은 먼저 사칠논변에 대한 기존의 해석들의 성향을 개략적으로 살펴보고 나서, 명학을 고려한 해석이 어떤 점에서 사칠논변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져다 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의의는 무엇인지를 말하는 순서로 진행하려 한다.
2. 사단칠정 논변이란?
1553년 秋巒 정지운은 天命圖를 해설하는 가운데, “四端發於理 七情發於氣”(사단은 리에서 발하고, 칠정은 기에서 발한다)라고 말하고, 이러한 표현의 타당성을 퇴계에게 물었다. 퇴계는 추만의 표현을 “四端理之發, 七情氣之發”(사단은 리의 발현이고, 칠정은 기의 발현이다)로 고쳐 제시하였고, 이것이 고봉에 의해 비판을 받자 궁리 끝에 “四端之發純理故無不善 七情之發兼氣故有善惡”(“사단이 발하는 것은 純理이기 때문에 선하지 않음이 없고, 칠정이 발하는 것은 兼理氣 때문에 선․악이 있다”)라고 약간 완화된 사용을 써서 고봉에게 보냈는데, 고봉이 여전히 이를 비판하고 나서자, 퇴계와 고봉간에 8년에 걸쳐 편지글이 오간 것이 퇴계와 고봉간에 벌어진 사칠논변의 전말이다.
퇴계와 고봉의 사칠논변은 단적으로 말해 四端과 七情의 관계에 대한 논변이다. 사단은 맹자가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예로 들은 이타적, 도덕적 감정이고,6) 칠정은 예기에서 인간의 감정을 일곱 가지7)로 표현한데서 기원한 것으로 인간감정 일반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사칠논변은 일차적으로 도덕적 감정과 감정일반의 관계에 관한 논의라고 볼 수 있다.8) 그러나 사칠논변은 감정의 관계를 다룸에 있어서, 성리학의 理, 氣나 心, 性, 精의 개념들은 물론이고, 개인의 수양과 사회개혁의 실천이라는 성리학의 기본패러다임을 총체적으로 건드리고 있기에, 단순한 감정의 논의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먼저, 사단과 칠정을 이원론적으로 파악한 퇴계는 그 이원론의 근거로 理와 氣간의 근본적 차이를 말했다. 그래서 사단이 理의 發인 반면, 칠정은 氣의 發이기 때문에 사단과 칠정은 다르다라고 주장할 수 있었다. 사단과 칠정을 일원론적으로 파악하는 고봉도 사단과 칠정이 출현하게 되는 맥락이나 의미가 다르다는 것을 반대했다기보다는9), 理와 氣의 차이에 입각해 사단과 칠정을 구분해서는 안 된다고 했었다. 이렇게 볼 때, 사칠논변은 理氣개념들간의 관계해명이 중심이 되는 논의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칠논변을 ‘사단칠정에 대한 理氣論的 解釋’10)이라고 부르고, 그 핵심적 입장의 차이를 퇴계의 理氣互發說(리와 기가 서로 발함을 주장하는 이론)과 고봉의 氣發而理乘說(기가 발하고 리가 거기에 탐을 주장하는 이론)로 표현한 것은 이 때문이다.
퇴계와 고봉은 사단과 칠정의 관계를 논함에 있어서 理氣개념 이외에 본성(性)의 개념을 끌어들인다. 퇴계는 사단과 칠정을 각각 리와 기에 분속시키는 그의 의도를 이해시키기 위해 氣質之性과 本然之性의 구분을 사용한다. 사단과 칠정의 구분은 그 의미(所指而言)와 유래(所從來)의 차이에 따라 이루어진 것인데, 이것은 마치 본성을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으로 나누어 보았던 것과 유사한 것이라는 것이다.11) 물론, 고봉은 퇴계와는 달리 본성과 감정의 이런 유비관계를 받아들이지 않는다.12) 여기서 고봉과 퇴계의 사칠에 대한 견해 차이가 단순히 감정에 대한 견해차이가 아니라,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이라는 본성개념의 견해차이까지가 얽혀서 생긴 것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사칠논변의 평가에는 이렇게 理, 氣와 心, 性, 情개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13) 어쩌면 성리학의 근본적 목표인 수신․제가의 개인 수양 문제는 물론 치국․평천하라는 사회개혁의 실천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14) 뒤에서 말하게 되는 동아시아의 언어와 논리사상이 그렇기도 하지만, 학문의 목표를 성인 되기에 둔 성리학의 틀 안에서 이루어진 논변은 특히 더 이러한 실천의 측면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사단칠정의 논변에 대한 이해와 평가에는 한마디로 이론과 실천을 아우르는 성리학의 기본 패러다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했다.
성리학의 기본 패러다임이란 먼저 리기론의 원리와 이에 기반한 심성론의 체계는 물론이고, 나아가 개인의 수양과 사회 개혁이라는 유학본연의 목표까지를 다 가리킨다. 理氣論의 기본원리란 모든 현상과 사물은 근본 원리인 理와 그것을 현실적으로 가능하게 하는 재료인 氣로 이루어졌고, 이러한 理와 氣는 상호 대립적인 관계인 不相雜과 상호 의존적인 관계인 不相離를 동시에 유지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원리인 理는 無作爲이고, 재료인 氣는 作爲의 것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理氣論의 기본 원리에 따라 유학 전통의 心性情 개념도 재 규정되었는데, 장재, 정이천, 주자 등에 의해 이것들은 心統性情(마음이 본성과 감정을 통섭함)과 性發爲情(성이 발해진 것이 정이다) 등으로 표현되었다. 여기서 말해진 것은 性은 未發의 것으로 純理인 반면, 情은 已發로 未發의 성이 표출된 것이고, 理氣가 겸해있다고 한다. 또, 心은 바로 未發의 성과 已發의 정이 속해있는 곳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심성정에 관한 이론들의 배후에는 하나의 중요한 원칙이 개재되어 있는데, 그것은 性卽理(본성이 바로 이치이다)의 원칙이다. 성즉리란 인간의 본성은 순수한 리이고 이것은 기를 포함하지 않은 것이기에, 즉 어떤 조건이나 재료에 의해 제한되지 않으므로, 절대적으로 선하다는 것이다. 성리학자들은 이 성즉리란 말로써, 맹자의 性善說은 완벽하게 뒷받침되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또한 이러한 순수한 본연의 성 이외에 氣를 포함한 기질의 성을 말하였는데, 이를 통해 악으로 흐르기가 쉬운 인간의 감정과 욕구의 존재가 성선론과 큰 마찰 없이 깔끔하게 해명되어졌다고 보았다.
이러한 리기론에 기반한 심성이론 이외에도 우리는 성리학이 유학인한 갖게되는 수양과 사회개혁의 실천 목표를 성리학의 주요 부분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성리학의 체계에 따르면 純善한 理가 氣와 만남으로써 善惡이 생기게 되었으니, 또 선악의 정도는 氣의 淸濁과 純粹度에 따르게 되니, 수양의 목표는 탁하고 조야한 기를 어떻게 깨끗하고, 순수한 기로 변화시켜 본래의 순선한 리를 드러낼 수 있느냐에 있게된다. 이렇게 기를 순화시켜야 인간의 본성이 드러난다는 생각과, 기가 악의 근원이라는 믿음으로부터 점차적으로 存天理滅人欲(천리를 보존하고 인욕을 없앰)나 尊理賤氣(리를 높이고, 기를 천시함)의 사유가 생기게 되었다. 존리천기의 입장은 위와 같은 개인의 수양과 실천의 차원에서는 물론이고, 또한 치국․평천하라는 사회개혁과도 맞물려있다. 특별히 사회개혁을 위한 이상론과 현실론의 대립을 지적할 수 있다. 理氣論이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성리학의 체계에서 理는 흔히 이상에 비유되는 개념이고, 氣는 현실상황을 의미하는 개념이기에 리와 기는 사회에 있어서는 이상과 현실사이의 갈등을 가리키는 것으로도 사용되어질 수 있다. 이렇다면, 리와 기를 대립시키고, 그 중에서 기를 우연적인 것으로 천시하고 리를 절대적인 것으로 존중하려는 성리학의 구도가 사회 실천면에서도 두드러진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리와 기의 선악적 대립성이나 리의 자발성이 두드러지는 것은 개인적 수양, 실천의 차원과 사회개혁의 차원에서 그러하다.15)
고봉은 기본적으로 퇴계의 주장은 심성정과 이기의 개념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하였다.16) 사단과 칠정은 다 情이므로, 이것은 모두 리와 기를 포함하는 현상이며 따라서 사단과 칠정을 리와 기의 개념으로 나누어 서로 대치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단과 칠정을 리와 기로 나누어 대립시키면, “칠정은 性에서 나오지 않고, 사단은 氣를 타지 않는 것”17)처럼 된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사단은 비록 리나 본연지성과 연관이 있는 것이지만18) 리나 본연지성처럼 純善한 것은 아니다. 사단은 기본적으로 未發이 아니라 已發의 마음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미 氣가 섞여있기에 不善이 없을 수는 없지만19) 그러나 여기서는 氣의 작용이 상대적으로 적은 반면, 理의 작용이 활발하여 상대적으로 純善하다는 것이다.20) 또 이렇게 사단에는 氣가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아 理라고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칠정의 경우에는 氣를 위주로 한다든지 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고, 어디까지나 理氣를 兼한다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21) 사실 고봉의 경우에는 칠정은 물론 기질지성도 兼理氣로 표현해야 한다.22) 나아가 기질지성의 경우는 그 강조점이 기질에 있다기보다는 기질에 갇힌 본연지성에 있기 때문에 선하다고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한다.23) 결국 고봉의 생각은 사단을 善이라고 볼 수는 있지만, 칠정을 惡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24) 이렇게 이해한다면, 고봉은 퇴계의 ‘四端이 理發’이라는 표현의 불합리성보다는 ‘七情이 主氣’라는 표현의 불합리성을 지적하였다고 볼 수 있다. 반면 퇴계는 사단과 칠정 모두가 理氣를 겸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사단과 칠정을 主理와 主氣의 측면에서 각각 理發과 氣發로 보는 것이 왜 불가능하냐고 묻는다.25) 그는 개인의 수양과 사회개혁이라는 유학적 취지에 주목하여,26) 사단과 칠정을 善과 惡처럼 대립적으로 거론하고, 본연지성과 기질지성도 그렇게 대치시켰으며, 리와 기도 그렇게 상호 대립시켰던 것이다. 퇴계는 물론 이러한 對擧가 약간의 이론적 문제가 있음을 인정했으나,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신의 對擧가 나름대로 성리학적 근거가 있는 것임을 주장한다.27) 이렇게 본다면 사칠논변은 성리학의 상이한 해독을 토대로, 사단과 칠정을 선과 악처럼 서로 대립시킬 수 있다는 퇴계와 사단과 칠정은 그렇게 대립시킬 수 없다는 고봉간의 논변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 논변이 이렇게 지리한 과정을 겪고서도 그 이후 수 백년간을 쉽게 결론을 낼 수 없었던 것은 바로 이 논변이 성리학이나 유학이 갖고 있는 원래의 갈등요인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또한 비교적 추상의 영역에 속하는 본성을 다룬 것이 아니라, 실제의 영역의 감성과 열정을 다룸으로써 더욱 첨예한 의견대립을 가져온 측면이 있다.
3. 사칠논변에 관한 기존의 해석
사칠논변에 대한 기존의 해석들은 대체로 세 가지 점에 주의를 기울여왔다. 첫째, 퇴계와 고봉이 둘 다 충실한 주자학자였던 점에 착안해서, 누가 더 성리학 특히 주자학의 기본원리에 충실했는지를 물었다. 둘째, 왜 그들은 같은 주자학자이면서도, 그래서 주자로부터 기인하는 주장들에 충실했으면서도, 왜 서로 다른 측면만을 고집했던 것일까를 물었다. 즉 그들의 입장 차이가 가지는 의미를 물었다. 셋째, 그들은 성리학을 떠나서 일반적으로 누가 더 일관된 체계를 구성했는지를 물었다.
많은 학자들은 먼저 퇴계의 理發이라는 표현이 성리학에서 성립가능한가를 의심함으로써 퇴계의 입장이 성리학 특히 주자학에서 일탈하고 있다고 생각했다.28) 고봉이 주장하듯이 주자에게서 理는 일차적으로 無作爲의 定態的 원리이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理弱氣强(리는 기의 제한을 받음)의 상황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또 한편으로 주자는 리의 활동성이나 자발성을 적어도 수양이나 실천의 측면에서는 인정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리가 기본적으로 절대적으로 善한 윤리원칙으로 인정되는 한, 그것이 단순히 주위환경이나 여건과 관계가 있는 기에 제한되어 있다고, 즉 理弱氣强이라고는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리의 절대성, 초월성, 자발성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주자의 체계 내에서 리발이라는 표현도 가능하다고 하는 것이다.29) 理에 이처럼 두 가지 해석이 다 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단순히 퇴계가 성리학의 입장을 벗어난 것은 아니라는 해석도 가능하고,30) 따라서 이제 문제의 초점은 누가 더 주자를 잘 추종하느냐의 문제보다, 즉 누가 논쟁에서 이겼느냐의 문제보다 왜 그들이 성리학의 두 측면 중의 하나를 잡고 나아갔는지, 다시 말해 퇴계와 고봉의 각각의 입장들의 의도와 선택의 성격을 묻는 것이다. 사람들은 여기서 자연스럽게 퇴계는 보다 윤리적이고, 실천적인 반면, 고봉은 보다 객관적, 정태적, 혹은 이론적이었기에 그러했다고 본다.31) 그런데, 유학, 특히 성리학이란 이론적 탐구라기 보다는 실천적 탐구를 의미하는데, 퇴계만을 이런 흐름에 편입시키는 시도는 정말 타당한 것일까? 퇴계와 같이 理를 강조하면, 실천, 수양을 강조한 것이 되고, 고봉과 같이 氣에 주의를 두면 수양보다는 이론을 강조한 것일까? 그런데 사실은 퇴계만큼 실천에 있어서의 이론적 작업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람도 드물지 않은가?32) 퇴계 자신은 조정암의 개혁실패를 그의 비철저한 도학의 이해에 기인한 것으로 보았는데, 이렇게 본다면 퇴계는 학문이나 이론이 실천에 대해 갖는 힘을 강조한 철학자이다. 즉 퇴계는 이론이 굳건히 되어있지 않으면, 실천에서 실패를 볼 수밖에 없다고 믿은 성리학자였기에 단순히 실천만 강조한 사람으로 몰아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남명이 퇴계를 가리켜 너무 이론적이라고 했던 것은 그저 빈말은 아닐 것이다. 한편, 고봉의 본의도 사실 이론을 위한 것이었다기보다는 “학자의 수양을 위한 데 있었다”33)고 할 수 있다. 고봉은 氣가 방해를 하느냐 않느냐가 사단과 칠정의 구분을 가져오기에 氣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수양론의 핵심이라고 했다. 이것은 고봉이 기를 강조한 것이 실천을 무시하고 이론 쪽으로 나갔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음을 보여준다.34) 더욱이나 수양의 측면에서 기를 강조한 것은 퇴계에게서도 보인다. 퇴계도 역시 存養과 省察이라는 수양․실천의 면에서는 “理로써 氣를 제어하는 것”35)을 말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퇴계와 고봉의 차이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 퇴계는 실천가라기에는 이론에의 집착이 강하고, 고봉은 이론가라기에는 실천에 경도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퇴계와 고봉을 어떻게 나누어 볼 수 있을까? 또 기존의 해석은 사칠논변에서의 퇴계와 고봉의 차이가 추상적인 것, 이념 지향적인 것(주리)과 구체적인 것, 현실 지향적인 것 (주기)의 차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해석은 어떻게 구체적인 것을 강조한 主氣의 고봉이나 율곡의 입장이 후에 老論과 같은 체제 보수주의의 길로 나아갔고, 추상적인 것을 강조한 主理의 퇴계의 후예들이 후에 南人의 실학과 같은 사회 개혁주의의 길로 나아갔는 지를 잘 설명해주지 못한다.36)
기존의 사칠논변의 해석들은 일관성의 입장에서도 퇴계와 고봉이 몇 가지 난점을 보이고 있음을 지적한다. 퇴계는 리발, 기발이라는 자신의 표현이 여전히 성리학의 기본원리에 맞지 않는 것을 느끼고, 사단 칠정의 리발, 기발은 그들간에 所指而言者(의미), 所從來(유래) 등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라고 했다가37), 종래에는 고봉의 일원론적 견해를 어느 정도 수용하여 理發而氣隨之, 氣發而理乘之(리가 발하는데 기가 따르며, 기가 발하는데 리가 거기에 탄다)38)라는 표현까지 후퇴했다. 물론 여전히 리발, 기발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긴 하지만, 리와 기가 서로 떨어질 수 없음과 사단도 칠정과 마찬가지로 밖으로부터의 자극에 의해 촉발된다는 점을 인정했던 것인데, 문제는 이렇게 해 놓고 나서, 똑 같이 情인데, 어떻게 하나(사단)는 ‘理發而氣隨之’이고, 다른 하나(칠정)는 ‘氣發而理乘之’라고 나누어지게 되는 지를 명쾌하게 설명해내지 못했다. 즉 사단의 특이한 유래의 성격을 해명하지 못했다. 고봉도 理發, 氣發의 互言對擧는 불가하다고 하면서도 한편에서는 그런 표현을 圖를 설명하는 데서만 사용하지 않으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도 했고39), 나중의 후설과 총론에서는 아예 수양론의 측면에서는 얼마든지 사단은 리발이고 칠정은 기발이라고 호언대거하는 표현도 가능하다고 말하게 되었다.40) 그렇다면 왜 그가 처음부터 퇴계를 공격하였는지가 의아해진다. 즉 그는 퇴계의 입장이 수양론의 관점에서는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에는 왜 인정하지 않았던 것일까? 또한 고봉은 사단을 칠정 중의 發而中節(상황에 딱 들어맞는 것)한 것과 異名同實(똑 같은 실상에 이름만 다르게 붙여졌다)이라고 하여, 사단을 칠정 중의 선한 부분으로 간주하였는데41), 뒤에 가서는 사단이 선하지 않을 때가 있음을 인정하는 모순된 모습을 보인다.42) 그런데, 문제는 사단이 선하지 않을 때도 있다면, 사단과 칠정의 구분이 어떻게 가능한 가이다.43) 퇴계가 사단을 칠정과는 다른 특별한 종류의 감정이라고 하면서도 그것이 어떻게 특별해 질 수 있는지, 그 메커니즘을 잘 보여주지 못했다면, 고봉은 사단의 불선을 인정함으로써, 역시 사단과 칠정의 구분에 대해 설득력 있게 설명하지 못하게 된 것이 아닌가 비판해 볼 수 있다.44) 물론 사단과 칠정의 구분에 대한 증명의 더 큰 부담은 사단과 칠정을 뚜렷하게 구분한 퇴계에 있을 것이다.
4. 명학적 해석
앞서 말한 기존의 해석들은 비교적 뚜렷하게 사단칠정의 이론적 의의를 밝혀내었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들은 너무 서구적 철학개념과 세계관을 담고있어 그 명료성에도 불구하고, 논자들의 사유방식의 흐름과 나름의 문제의식을 적절히 해명하지 못하는 폐단이 있었다. 다시 말해 논자들에게 가능하지 않는 개념틀과 세계관을 이용하여 논자들의 사고의 흐름을 규명하는데서 나타나는 불공정성을 가지고 있다 하겠다. 특히 한 예를 들면, 기존의 해석들에게는 흔하게 보이는 심성론, 이기론, 수양론, 사회개혁론 등의 구분을 성리학에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이 과연 타당할 것인가를 물을 수 있다. 性善說이나 性卽??, 心統性情, 性發爲情과 같은 심성론과 이기론의 주장들이 과연 성리학에서 강조하는 수양이나 사회실천의 프로그램과 관계가 없는 것일까? 성리학에서는 반드시 윤리, 실천의 차원에서만 理發이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고봉도 인정하듯이 주자는 사실상 “情是性之發”(情은 바로 性이 發한 것)45)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데, 성을 리라고 이해한다면 바로 이 표현이 리발을 나타낸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실제로 고봉 자신도 여러 곳에서 사단의 순선을 나타내기 위해서 혹은 성선설을 명확히 밝히기 위해서는 리발이라는 표현도 얼마든지 가능한 표현이라고 하지 않았나? 성리학의 논의는, 아니 사단칠정론의 논의는 사실 심성론, 이기론, 수양론의 요소들이 한 치의 틈도 없이 맞물려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던가? 물론 성리학에서 심성론, 이기론, 수양론 등등의 구분이 없었다고, 우리가 그런 구분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편의에 따라, 이전의 사람들이 구분할 수 없었던 것까지 구분하여 그들의 생각을 해명해 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점은 지나치게 그 구분을 적용함으로써 우리가 갖게 되는 오해이다. 명학적 해석은 이렇게 너무나 분명한 서구의 학문 분류와 개념틀이 종종 우리의 이해를 파편적으로 만들 위험이 있음에 주목하는 것이다.
사칠논변의 명학적 해석은 기존의 해석들이 갖지 못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논변당사자들이 논변에 대해 갖는 기본적 태도와 믿음들을 우리로 하여금 주지시킨다. 그래서 그 논변이 어떤 맥락에서 이루어졌는지를 인지케 한다. 사칠논변의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작업을 名學의 선상에서 파악했다고 하는 사실은 사칠논변의 여러 곳에서 감지된다. 먼저 사칠논변은 기본적인 구도가 어떤 것이 어떤 것으로부터 도출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묻는 다기보다는 어떤 것을 어떤 것이라 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묻는다. 즉 추리나 논변의 타당성에 초점이 있다기보다는 언어적 표현의 적절성을 구하고 있다. 퇴계와 고봉은 일차적으로 사단과 칠정의 차이를 언어적 표현의 차이로 인정하고 있다.46) 그리고 두 사람은 또 “사단”과 “칠정”이라는 다른 언어적 표현이 있는 것을 그 가리키는 바(所就而言之, 所指而言)가 다르기 때문이라고도 말하고 있다.47) 이러한 점들은 사칠논변에서의 퇴계와 고봉의 차이가 “사단”과 “칠정”이라는 언어적 표현이 갖는 차이를 어디에다 둘 것인지, 얼마만큼 둘 것인지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신호들로 받아들일 수 있다. 고봉이 칠정의 發而中節48)을 사단과 同實異名이라고 했던 것49)과 “氣가 過․不及 없이 자연히 발현되는 것은 마침내 理의 本體가 그런 것”50)이라고 했던 것은 사단과 칠정간에는 근본적으로 실제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고, 단지 의미상이나, 취지 상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51) 반면에 퇴계는 사단과 칠정의 이름차이가 보다 실제적인 것에서 온다고 믿었다.52) 퇴계에 의하면 사단과 칠정은 그 발생 메커니즘부터가 완전히 다르다. 사단의 善은 결코 우연적으로 그 상황에 들어맞는 칠정의 善과는 다르다. 사단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 내면의 理가 주재력을 가지고 바깥의 자극에 대응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發而中節한 七情과 純善한 四端은 異實에 가깝다.53) 이런 측면을 염두에 두었을 때, 우리는 사칠논변을 두 개의 언어에 대응하는 실제가 하나이냐 두개이냐 문제의식에서 바라볼 수가 있다. 白馬와 馬가 같으냐 다르냐를 묻는 白馬論이나 四端과 七情이 같으냐 다르냐를 묻는 사단칠정론은 비슷한 구석이 있다.54) 白馬가 馬의 부분인 것과 같이 사단도 칠정의 부분이다. 情의 發而中節한 상태가 사단이냐 아니냐 혹은 그 둘의 관계가 異名同實(이름은 다르지만, 실제는 같음)이냐 異名異實(이름도 다르고, 실제도 다름)이냐를 따진다는 점에서도 사칠논변은 표현과 실제와의 관계를 따지는 명학적 탐구임에 틀림없다. 고봉이 퇴계에 대해 자신의 언어적 표현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비판하는 것도 이 점에서 잘 이해된다.55)
사칠논변을 명학의 탐구로 보는 관점이 어떤 설득력이 있다면, 몇 가지 명학의 기본전제들을 가지고 사칠논변에 대해 새롭게 해석해 내는 것도 가능하다:
1) 명학은 공동의 목표를 향한 지난한 협력적 탐구과정이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분석(analysis)이나 추리(inference)의 문제가 아니라, 記述(description)의 문제이다.56) 게다가 이 기술은 한 문장이나 한 단어를 가지고 의미 전체를 담으려 하지 않는다. 내가 옳으니 너는 틀렸다 식의 배타성이나 완전성을 지향하지 않는다. 실상을 한 문장에 혹은 하나의 입장 안에 다 표현하려 하기보다는 공동의 작업을 통해 조각, 조각으로 조금씩 그려보려고 한다.57) 부분 부분이 모여 전체가 의미를 드러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신의 부분을 가지고 전체를 다 통괄했다고 자만하는 데에 억지말(强說)이나 무리가 있게 된다. 이런 오류를 줄이기 위해 명학적 탐구는 자신이나 상대방이 행한 표현의 근거를 성실하게 찾아 나선다. 퇴계와 고봉간에 행해진 사칠논변도 서로를 적대적 관계에 놓고, 타인의 입장을 완전히 망가뜨리려는 의도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성인의 뜻이나 도를 밝히는 것에 일정부분 기여하는 것을 만족하는 태도에 의해 인도된다.58) 기존의 사칠논변에 대한 해석들은 사칠논변의 이런 진행과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사칠논변에는 일관되고 분명한 하나의 옳은 입장이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누가 더 일관되고 타당한 입장인지를 물었다. 명학적 해석은 이런 입장을 찾는 것이 좋은 태도가 아니라고 본다. 애초에 이긴다, 진다의 목적보다 무엇이 불충분한가, 그것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가 사칠논변의 핵심 문제였다고 보기 때문이다.59) 명학적 해석은 사칠논변에서 상대방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적출하려 하고, 또 상대가 적출해 주기를 바라는 말들이 많음에 주목한다. 물론 퇴계와 고봉은 논쟁을 하는 중에 상대방이 자신의 입장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즉, 퇴계가 보기에 고봉의 입장은 渾淪의 입장이고, 자신의 입장은 分析의 입장인데, 애초에 고봉이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고, 퇴계의 입장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논쟁이 이루어졌다고 보았다.60) 반면, 고봉은 퇴계가 편벽 되게 자신을 혼륜 쪽으로 몰고 가서, 마침내 리기를 일물로 보는 잘못을 자기가 범했다고 불공정하게 매도한다고 생각한다.61) 그래서 퇴계와 고봉은 공히 상대가 좀 더 공정하게 자신을 반성하고 타인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여줄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그 요구는 상대에게만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자신에게도 요구하는 점에서 퇴계와 고봉은 어디까지나 열린 태도를 보인다고 할 수 있다. 퇴계는 “대체로 의리의 학과 정미한 이치는 반드시 마음을 크게 하고, 안목을 높여 절대로 먼저 일설로써 주장을 삼지 말고, 마음을 비우고 기운을 화평하게 하여 서서히 그 義趣를 관찰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같은 속에 다른 것이 있음을 알고, 다른 속에 같은 것이 있음을 보아서 나누어 둘로 만들어도 일찍이 떨어지지 않고 합쳐서 하나로 만들어도 실은 서로 섞이지 않은 뒤에야 마침내 두루 갖추어져서 편벽됨이 없는 것입니다.”62)고 하였다. 고봉도 퇴계와 마찬가지로 사람의 소견은 부분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63) 또 논변의 과정은 공평하고, 협력적으로 진행되면 결국은 소기의 목적을 얻을 수 있는 탐구과정이 된다는 사실을 믿었다.64) 한마디로 퇴계와 고봉은 학자가 도의 획득을 목표로 하는 논변에 뛰어 든 이상, “편벽 되게 한 말만을 고집해서는 안 된다”65)는 의사를 표시한 것이다. 이렇게 사칠논변을 보았을 때, 기존의 주기론과 주리론의 차이, 또는 실천적 철학과 이론적 철학의 차이는 너무 나간 면이 있다. 퇴계와 고봉은 같은 경전을 신봉하였고, 이기이원론의 세계관을 공유하였으며, 또 성인이 되는 것을 최상의 목표로 삼은 실천적인 성리학자였기 때문이다.
2) 명학은 어디까지나 언어의 실천적 함축을 문제삼는다. 채드 핸센(Chad Hansen)이 중국의 언어사상은 의미론(semantics) 중심이 아니고, 화용론(pragmatics) 중심이라고 한 것이 바로 이 점을 지적한 것이다. 역시 하나의 명학적 탐구인 사칠논변도 이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그렇다면 사칠논변은 단지 성인의 뜻을 밝히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고 해야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성인의 길, 즉 실천 도덕의 길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느냐가 그 목적이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66) 사칠논변에서 퇴계가 고봉의 입장에 우려를 표하는 것도, 고봉이 퇴계의 입장에 우려를 표하는 것도 전부 상대방 언어의 실천적 함축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퇴계가 고봉이 가진 不相離 입장의 비실천성을 걱정했다면, 고봉은 퇴계의 不相雜 입장이 가져다 주는 비실천성을 걱정했다. 불상리가 왜 비실천적일 수 있나? 리와 기가 불상리함을 너무 강조한다면 리와 기, 천리와 인욕을 혼동할 수가 있기에67), 리나 성의 純粹性, 先驗性, 善性을 크게 훼손할 위험성이 있다. 사단은 무조건적으로, 절대적으로 착해야 性善의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68) 반면, 불상잡이 비실천적일 수 있는 것은 그 입장이 理는 理고 氣는 氣라고 주장함으로써, 리와 기를 서로 떨어뜨림으로써, 마침내는 인간의 윤리법칙을 그저 인위적이고 자의적인 것에 떨어뜨릴 우려가 많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理와 氣의 상호연관성이 크게 손상되어, 결국 리의 보편성이 무너짐을 걱정한 것이다. 이런 언어의 실천적 함축을 염두에 두었을 때, 퇴계의 이원론적 경향과 고봉의 일원론적 경향은 생각만큼 커다란 학문적 경향의 차이가 없다. 분석과 혼륜은 사실 성리학은 물론 유학의 기본적 태도이다. 실제 두 사람은 상대방의 입장에 어느 정도 동조하고 있으므로, 그 들의 차이를 심각하게 볼 이유는 없다. 그리고 퇴계가 언어적 표현은 어떤 때는 같음 중에서 다름을(同而異), 어떤 때는 다름 중에서 같음을(異而同) 보아야 하면서 자신의 입장은 전자를, 고봉의 입장은 후자라 한 것69)과, 고봉이 성인도 어떤 때는 대립관계로 말하고(對說), 어느 때는 포섭관계로 말한다(因說)고 주장하면서70), 퇴계의 입장이 대설을 의미한다면 그럴 수 있지만, 인설을 의미한다면 성립할 수 없다고 한 것71) 등은 퇴계와 고봉이 각각 상대의 입장을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다는 점을 말한 것이 아닐까? 한마디로 그들의 입장은 전체의 부분이고, 똑 같이 전체의 일부분을 그려내고 있는 점에서 자체로는 완전하지 않고, 또 매우 유동적이다. 이렇게 본다면 퇴계 자신이 자신과 고봉의 차이로 제시했던 同中異와 異中同이 사실 얼마나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까? 우리는 논변의 말미에 퇴계와 고봉이 놀라울 정도로 서로에게 가까워진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72)
3) 언어의 실천적 함축을 문제삼기에 누가 말했느냐에 따라, 또 누구를 대상으로 하느냐에 따라 언어의 의미가 달라진다. 퇴계와 고봉은 똑 같이 언어의 실천적 함축에 주목하지만, 약간의 차이는 있다. 퇴계가 주로 발화자의 의도나 취지에 주목한다면, 고봉은 청자의 경지까지를 고려에 둔다. 퇴계는 자신의 언어적 표현이 有德者에게는 가능한 표현이라 생각하고, 또 이들에게 가능한 표현이면, 유덕자가 아닌 일반대중에게 의혹을 생기게 하는 표현이라도 상관없다고 보는 것 같다. 즉 퇴계는 立言의 실천적 적절성을 모든 사람에게 개방하고 있지는 않다. 퇴계는 “아는 자는 같은 속에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또한 다른 속에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니, 어찌 알지 못하는 자가 잘못 인식할 것을 걱정하여 이치에 맞는 말을 폐해서야 되겠습니까?”73)고 하여 입언이 누구에게나 명명백백한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반면 고봉은 “四端是理之發, 七情是氣之發”이라는 주자의 말에 대해서는 퇴계의 동일한 말에서와는 달리 그 까닭 (曲折)이 있을 것이라 하여 우호적으로 해석함으로써,74) 발화자의 의도나 취지를 중요시하지만, 또한 대중에게 오해를 줄 만한 표현도 될 수 있으면 피해야 된다는 입장이었다. 고봉은 “무릇 입언 (立言) 할 때에는 의사를 함축시켜 덕을 아는 사람으로 하여금 염증을 내지 않게 하고 덕을 알지 못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의혹됨이 없게 해야 한다”75)고 하였다. 고봉의 경우, 추만이나 퇴계의 표현들이 깨닫는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없는 표현이지만,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문제가 될 수 있는 표현이기에 반대하였던 것이다.76)
4) 전형적인 명학의 진행형태는 갈등 → 기준의 제시 → 유사성의 추구이다.77) 즉 유비에 의한 추리를 그 근간으로 삼는다. 이 사칠논변도 이와 같은 과정으로 볼 수 있다. 퇴계는 자신과 고봉간의 일치점과 불일치점을 분류하고 나서, 일치점은 놓아두고 불일치점을 자세히 논구하였다. 고봉은 일치와 불일치점의 쓰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이미 같은 것으로 같지 않은 것을 궁구한다면 같지 않은 것도 끝내는 같은 데로 귀결할 것입니다.”78)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틀림없이 갈등 → 기준의 제시 → 유사성의 추구라는 유비적 추리를 가리킨다. 사칠논변에서 가장 큰 갈등은 물론 사단이 칠정과 같은 것이냐 다른 것이냐 이다. 퇴계는 제일 먼저 사단과 칠정의 차이를 리와 기의 차이로 몰아가려고 하였으나, 고봉은 이를 거부한다. 퇴계는 다시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의 차이를 도입하고, 이것이 고봉에게 기준으로 여전히 받아들이지 않자, 다시 말과 기수라는 유비적 차이79)를 하나의 기준으로 들이댄다. 이에 대해, 고봉은 리와 기의 차이와 사단과 칠정의 차이에는 유비관계가 없다고 한다. 또 사단과 칠정의 차이를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의 차이로 보는 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단은 본연지성과 같은 순수한 리로 간주할 수 없고, 칠정은 물론 기를 가지고 있지만, 이것은 항상 리와 함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단과 칠정은 공히 리와 기가 같이 있으므로, 이것들을 대립적으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그는 나아가 퇴계의 말과 기수 관계의 유비보다는 하늘의 달과 물 속에 있는 달 관계의 유비80)나 맑은 날의 햇빛과 구름과 안개가 있는 날의 햇빛 관계의 비유81)가 사단과 칠정의 차이를 더 잘 보여줄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늘의 달과 물 속에 있는 달은 같은 것이다. 하늘의 달과는 달리 물 속에 있는 달은 형기에 의해 제한되어 있지만 이것이 하늘의 달과 다르다고 해서는 안 된다.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말과 기수의 유비, 하늘의 달과 물 속에 있는 달의 유비는 둘 다 주자에 의해 사용된 것이므로 하나의 유비가 더 올바른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점이다. 전자나 후자나 다 각각 리와 기, 본연지성과 기질지성, 사단과 칠정간의 불상잡과 불상리의 관계를 보여주는 데 유리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명학적 해석을 통해 우리는 사칠논변에서 누구의 유비가 더 올바르냐를 묻는 다는 것이 별로 적절한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다양한 해석과 다양한 유비가 보다 화합적으로 이해되어야 사칠논변이 더 잘 이해된다고 믿는다.
5. 명학적 해석의 의의
사칠논변에 관한 기존의 해석들은 한마디로 퇴계와 고봉의 차이를 무겁게 둔다. 퇴계의 이원론적 경향과 고봉의 일원론적 경향을 서로 상이한 학문의 태도로 몰고 나간다. 이러한 해석들은 분명히 퇴계와 고봉의 立点이 어디 있는지를 찾아내고, 그들이 어디서 충돌하는 지를 분명히 밝혀냄으로써, 누가 더 일관적인지, 누가 성리학의 전통에서 타당성이 있는 주장을 하는 지를 드러내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왜 퇴계와 고봉이 그렇게 단순하게 보이는 논점의 차이를 그렇게 오래 두고, 지리하게 논했는 지의 이유를 잘 보여주지 못한다. 또한 그들은 누가 더 타당성이 있느냐에 관심을 둠으로써, 이 논변이 그들에게 어떠한 의의가 있는 작업인지를 우리가 이해치 못하게 한다. 한마디로 그들의 논변에 대한 기본적 태도를 충분히 인지하지 못함으로써, 이 논변이 어떤 맥락에서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주는데, 실패하고 있다.
나는 이 논문에서 동아시아의 논변은 동아시아의 논변학인 명학의 성격을 이해함으로써 더 잘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이것의 역, 즉 명학이 동아시아의 구체적 논변을 통해 더욱 잘 이해될 수 있다는 것도 성립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시도는 기본적으로 명학을 통해 사칠논변을 더 잘 이해하는 것이지만, 또한 사칠논변을 통해 명학을 더 잘 이해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이 이런 시도는 기존의 사칠논변에 대한 해석들이 틀렸음을 말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새로운 관점을 통해 사칠논변을 조망해보는 것이다. 이런 조망을 통해 우리에게 드러난 사칠논변은 논쟁적이지 않고, 소모적이지 않고, 상호 계발적이다. 퇴계와 고봉은 상대방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면서도 그 입장이 가지는 한계를 보았고, 그래서 논변을 통해 그것과는 다른 면이 있음을 지적해 주려고 하였다. 그들은 그저 전체를 보는데 도움을 주는 것일 뿐이다. 거기에는 커다란 세계관, 인생관, 학문적 성향의 차이가 있지 않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실천에 관심이 있고, 동시에 이론적 작업의 중요성도 강조하는 성리학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학적 해석은 기존의 해석과는 달리 共鳴에 의한 해석방법이다. 누가 더 일관적인지, 누가 더 타당한 입장을 취했는지를 묻지 않는 점에서 이것은 기존의 해석과는 달리 비판적이지 않다. 이것은 달리 말하면, 지나치게 논변 당사자의 입장을 이해하려는 태도를 취하며, 따라서 그들이 가진 입장의 한계나 약점을 노출시키는 데에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측면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명학적 해석이 사칠논변에 대한 기존의 해석들을 완전히 대체하는 새로운 해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이유이다.
參考文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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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aim of this paper is to elucidate the Four-Seven Debate between T‘oegye and Kobong from the perspective of the Study of Names (ming-xue, 名學), which is so-called Chinese logic. This interpretation of the Four-Seven Debate says that the T'oegye-Kobong debate results from mutual encouragement toward the common goal, that is, becoming a sage, not from any difference in their studies. Their differences are explained in terms not of ideology or learning, but of preference or intention. Besides, their different preferences or intentions are not contrary, but rather complementary. It, however, is also true that this interpretation is too explanatory to disclose the limitation of the Four-Seven Debate.
주제어 : 사단칠정, 명학, 이기론, 수양과 실천
▶ 출처 : 한국중국학회 - http://cnhs.sinology.or.kr/ ▶ 원문 : http://cnhs.sinology.or.kr/homepage/databoard/upload/중국학보46집.z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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