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25일 오전10시, 나를 증산역까지 태워다줄 청량리發 강릉行 무궁화호 열차.
그런대 기관차가 신형8200호대 전기기관차다. 차번호를 자세히 보니 8208호. 그렇다면 8200호대 기관차가 8대 이상 늘었다는 것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8200호대 기관차는 단 두대뿐인 걸로 알고 있었는데.....
증산까지 가면서 8200호대 기관차를 세번이나 만났는데 모두들 여객열차를 끌고 있었다. 이 기관차들은 여객열차 전용인가보다.
▲오후1시50분에 증산역에 도착하여 오후2시에 출발하는 구절리행 무궁화호로 바꾸어 탔다.
통일호 꼬마열차였던 차가 무궁화호 객차2칸을 증결하여 무궁화호 변신했네.
나중에 알고보니 승객 수요를 감안해 오후2시편만 무궁화호 객차를 증결한단다.
정선선은 증산에서 구절리까지 45.9Km를 달리는 전형적인 산골 철도노선으로 증산역에서 하루 세번 완행열차가 뜬다.
06:45, 14:00, 18:00. 1995년 가을 내가 처음 구절리를 찾았을 땐 하루 다섯번 떴는데.....그만큼 수요가 감수한다는 뜻이겠지.
1967년부터 운행을 시작해온 정선선은 주변의 탄광들이 폐광됨에 따라 이용 승객수도 급격히 줄어
철도청은 지난 1997년에 이 노선을 폐지할 계획이였으나 지역주민들의 반발로 적자를 감수하면서 현재까지 운행되고 있다.
구절리까지 약 1시간, 주변 경관이 빼어나게 아름다워 1시간의 여행이 짧게 느껴진다.
▲오후 3시5분에 구절리역에 도착하여 구절리역 앞 마을을 둘러보았다.
나는 구절리에 딱 두 번 갔다,
1995년 가을 어느 날, 아내였던 여자와 싸우고 회사를 무단 결근해 가며 여행을 떠났는데
무작정 가다보니 강원도 정선땅 구절리였고 더 이상은 길이 없었다.
한 때 석탄산업이 활성화되었던 시절 영화로웠던 마을이 늦가을 마른 옥수수 대궁처럼
사위어가고 있었다. 어쩌면 버려진 연탄재처럼.
사람도 자연도 값어치가 없으면 버림을 받는 것이구나 하는 느낌에 비감한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때 나는 나만이라도 강원도를 사랑하기로 생각했다. 그래서 줄곧 강원도 여행만 고집했고.
그 뒤, 1998년 6월 중순경에 또 한 번 구절리를 찾았다.
60년대부터 지난 92년까지 8개의 석탄광업소에서 근무하는 5천여명의 근로자들이 이곳에서 모여 살았단다.
92년 산업합리화조치로 탄광이 모두 폐쇄된 후 이곳은 이렇게 한낮에도 적막감이 감돈다.
석탄. 그것이 한 때는 우리들의 주요한 연료 공급원이었고 연탄 한 장에 방 덥히고
밥 끓여 먹으며 살았던 시절이 엊그제 아니였던가.
우리들의 연료를 공급해 주었던 곳이 고마운 강원도 땅이 아니였던가.
석탄산업의 퇴조로 강원도마저 퇴조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이제는 강원도도 "강원도의 힘"을 보여줄 때가 되지 않겠는가.
폐가도 더러 보이고 새로지은 민박집도 몇채 보였다. 노추산 등반객들이 어쩌다 들릴까.
처음 왔을 때나 지금이나 적막하기는 여전하여 그만 빨리 떠나고 싶어 30분후에 증산으로 되돌아가는 열차를 타고
증산을 경유해서 태백으로 나왔다.
선평. 정선. 나전. 여량
그 어디쯤 닿고 싶다.
지금은 사라진 완행열차를 타고
산골 역 어딘가에 내리고 싶다.
낡아서 삐거덕거리는 나무의자에 앉아
해지는 풍경을 한 마흔 번쯤 보고 싶다.
살아가다 문득
모든 것이 다 시들하고 황량해질 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훌쩍
떠나고 싶다
.
누군가를 간절히 그리워한다거나
절실히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이다
스스로를 태우는 짓이라는 것을
철길 지워지는 구절리쯤서
아프게 깨닫고 싶다.
구절리 / 김재진 詩
▲카페식으로 개조한 꼬마열차 객실.
나올때 아우라지에서 내릴까 생각했으나 차안에서 보니 아우라지강가에 굴삭기 여러대가 무슨 공사를 하는 중인지
먼지를 펄펄 휘날리고 있기에 내릴 생각을 포기하고 말았다. 강물도 많이 줄었고.....
아! 미치겠다. 사람들의 편안함을 위한 단 하나의 목적으로 무차별 파괴되는 자연환경들. 옛것이 그래도 좋은데.
여행이라는 명목으로 내 육신을 좀 혹사시켰더니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잠이 우수수 쏟아진다.
태백에서 하룻밤 편안한 잠.
▲다음 날, 5월26일 오전9시30분경, 심포리에서 바라다본 통리협곡.
그 날은 아침부터 몹씨 흐렸다. 그런 탓인지 사진마저 흐리다.
그러나 사진과는 달리 막상 그곳에 가서 통리협곡을 바라보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 웅장함에 압도되어.
그래서 누군가는 통리협곡을 한국의 "그랜드캐년"이라고 했다.
▲발 아래로 보이는 몇 채의 심포리 집들.
건너편 통리협곡 아래로 전신주들이 보이는 곳은 영동선 철도.
기차가 지나는 것을 기다려 기차가 지나는 풍경 한 컷을 찍어볼려고 했지만 야속하게 기차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오전10시10분경. 통리삼거리.
심포리에서 통리까지 걸어서 나왔다. 다음 목적지인 통리협곡과 미인폭포를 찾아가 보기 위함이다.
이 도로가 427번 지방도로인데 신리에서 416번 지방도로와 만나게 된다. 그러다가 호산에서 7번국도와 접속한다.
동활계곡을 끼고 달리는 416번 지방도로. 한마디로 환상적인 드라이브코스이다. 추천하고 싶은 길.
그러나 헤어핀 구간이 많고 험준한 산길이여서 운전에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
나는 이 길을 버스를 타고 두번 달려보았다. 태백에서 호산을 경유해 포항쪽으로 내려가는 길.
▲통리협곡안에 있는 미인폭포
통리삼거리에서 호산쪽으로 25분내지 30분 걸어올라가면 좌측에 미인폭포와 혜성사라는 조그만 암자를 알리는 표지판이 있는데
그 길따라 내려가면 혜성사와 미인폭포를 만날 수 있다.
내려가는 길이 험하니 매사 조심조심 내려가야 한다. 발 잘못 딛으면 협곡으로 굴러 떨어질 수 있으니까.
미인폭포를 가장 가까히 볼 수 있는 곳까지 내려갔다. 더 이상은 길이 없다.
아니 미인폭포가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거부하는 듯 싶다.
오십천의 발원지인 백병산(1259m)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통리협곡의 암벽을 타고 흘러내리면서 30여m의 높이 이 폭포를 이루었다.
암벽의 검붉은 빛깔과 폭포의 하얀 물줄기가 대조를 이루며 장엄한 경관을 보여준다.
미인폭포로 내려가는 길은 험준하지만 숲이 참 울창하다. 그러나 내가 갔던 날은 폭포의 수량이 풍부하지 못해
물줄기가 좀 빈약해서 아쉬운 생각도 들었다.
▲오전11시경. 통리협곡에서 바라본 심포리.
내려다 보는 풍경이 너무 좋아서 이 곳에서 약30분정도 휴식을 취했다.
3시 방향에 숲에 가린 심포리역이 슬쩍 보인다.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해발 700m의 이 지점에서 안개나 구름이 낀 날에 심포리 쪽을 내려다보면 안개에 휘감긴 경치가
가히 환상적이라는데 내가 간 날은 어정쩡하게 흐린 날이라 그런지 그런 풍경도 만날 수가 없었다.
▲그리움처럼 기차가 들어온다.
내가 그 곳에서 30분 정도를 머무른 까닭은 기차가 지나가는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에서 였다.
심포리역 쪽으로 장대화물열차 들어온다. 여객열차가 아니여서 아쉬웠지만....
줌인을 사용.
이제 다음 목적지인 고한 '정암사'를 가기 위해 통리역앞으로 걸어 나왔다.
11시40분경 통리역에 도착. 고한 가는 기차 시각을 확인해 보니 12시45분 차가 있었다.
한시간이나 기다리자니 답답하여 태백버스터미날로 가서 시외버스를 타기로 생각했다.
통리역 앞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태백터미날에 도착한 시각이 오전11시55분.
매표구에서 고한행 버스를 알아봤더니 방금 출발했고 다음차는 1시30분에 있단다. 암담했다.
발차대기중인 12시10분발 안산행 버스는 영월까지 무정차 운행한단다.
그 차도 어차피 고한 쪽으로 나갈 것임에 틀림없을 터. 어찌어찌 겨우겨우 사정사정하여 그 버스를 얻어탈 수 있었다.
다행이었다. 이번 여행은 매사가 순조로울 듯한 생각이 들었다.
대중교통편으로 여행을 하다보면 시간이 맞지않아 어느 곳에서 오랜 시간을 지체함으로 여행스케줄이 번번히 빗나간 기억이 있었음으로.
12시25분에 고한터미날에 도착하여 만항행 버스(이 버스만 정암사를 들린다)시각을 알아볼려는데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정암사까지만 운행하는 임시버스가 여러 대 있었다.가장 가까운 시각이 오후1시5분.
그래서 약간의 시간도 있었으므로 읍내나 한바퀴 돌아다녀볼까?
▲공휴일이면 북적거려야 할 거리가 오히려 이상하리만큼 한적한 고한의 거리.
동네 뒷골목 같지만 고한에서는 상업지역이다.
듣는 바로는 강원랜드때문에 고한 사북지역이 제2의 전성기가 도래할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천만에!
그곳에 모든 편의시설이 서울 못지않게 잘 갖추어져 있기때문에 읍내는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어제 기차를 타고 오다보니 사북,고한에 웬 모텔들은 그렇게 많이 지워져 있는지. 향락산업만 육성시킬 것인지.
고한 사북지방에는 이제 대도시에서도 좀체 찾아볼 수 없는 '전당포'간판들이 쉽게 눈에 띈다.
▲5월26일 오후1시20분,일주문에서 바라다본 정암사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적요하기만 했던 산사가 승용차반 사람반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불자들이 많이 찾아주는 것은 좋은 일이겠으나 승용차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건 단지 승용차가 없는 나만의 생각일 것이다. 목욕탕에 갈 때도, 수퍼마켓에 라면 하나 사러갈 때도 꼭 필요한 것이니까.
▲수마노탑 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정암사 뒷쪽.
앞쪽으로 걸어오다보니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절밥을 먹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나도 공복감을 느껴 절밥을 얻어먹고 싶었지만 불자도 아니면서 절밥을 얻어먹는다고 부처님께 혼날까봐 침만 삼키고 말았다.
사실 나는,"저도 밥 한그릇 먹을 수 있나요?"라고 말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내것이 없으면 영락없이 굶어죽고말 팔자.
▲산중턱에 우뚝 서있는 수마노탑.
보기에는 올라가기가 쉬워 보이지만 조금은 힘든 길이였다.
미인폭포가는 가파른 길이었지만 수마노탑가는 길도 무척 가파른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돌계단 길이다.
산을 잘 다녀보지 못했던 나는 금방 숨이 차오를 수 밖에.... 쉬엄쉬엄 올라갔다.
▲보물 제410호. 수마노탑
수마노탑은 전형적인 전탑(벽돌탑)형식인데 그 재료가 전돌이 아니고 마노석으로 된 것이 특색이다.
자장율사가 신보(身寶:석가의 정골사리)를 얻어 돌아올 때(중국:당나라) 배를 타고 서해바다를 건넜는데
이때 서해용왕의 안내로 용궁에 가 법회를 열었다.
법회를 마치자 오묘한 불계의 진리에 감동한 용왕이 금탑,은탑,수마노탑등 3개의 탑을 선물로 주었는데
자장율사는 이 절에다 이를 세웠다.
자장율사가 말년에 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는데 그 어머니가 금탑,은탑을 보고 욕심을 내 후세의 중생들의 탐심을 우려해
불심의 경지에 달하지 않는 중생들은 육안으로 볼 수 없도록 백두대간 어딘가 숨겨버렸다고 한다.
이때 함께 세웠다는 수마노탑은 사찰 뒤의 천의봉天衣峰을 따라 149개의 자연석 돌계단을 지그재그로 가파르게 올라가면
적멸보궁이 있는 뒤쪽 산중턱에 서 있다.
탑은 전체 높이가 약9미터에 이르는 칠층모전석탑으로 길이 30~40cm 두께가5~7cm의 회색 마노석으로 정교하게 쌓여있어
언뜻 보면 벽돌을 쌓아올린 듯 하다.
각 지붕의 모서리에는 풍경들이 가지런히 매달려 있고 지금의 탑은 1653년에 중건된 것을 1972년에 완전 해체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자료:옮김>
내가 이렇듯 세번씩이나 정암사를 찾은 이유는
수마노탑 각 지붕들에 매달려 있는 풍경들의 청량한 소리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도 바람 한 점 없어 풍경도 숨죽이고 소원 성취 탑돌이를 하는 어느 모녀의 정성만을 그윽하게 내려보고 있었다.
가을 날에 들리면 고요한 산사에 울려 퍼지는 청량한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매우 소슬한 느낌을 줄 것이다.
▲수마노탑에서 내려다 본 정암사淨岩寺 경내.
태백산 줄기인 금대봉과 함백산 사이에 우리나라에서 제법 긴 터널인 길이 4,505m인 정암터널이
해발 1천미터의 산자락속을 두더지처럼 뚫고 지나가고 있다.
그 정암터널이 지나는 함백산아래 신라의 큰 스님이였던 자장율사가 선덕여왕 14년(서기645년)에 창건한 정암사가 자리하고 있다.
고한역에서 십여리도 안되는 곳에 있지만 맹수들이 우글거리던 1359년 전 첩첩산중에 어떻게 이런 대가람을 지었는지.
그것은 어쩌면 오늘날 지옥의 막장에서 삶을 일구어 내려다 죽어간 슬픈 영혼들,
혹은 아직도 그곳을 떠나지 못한 채 아직도 지난至難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갈 곳이라곤 막장뿐인 인생들의 유일한 그들의 도량처, 그들을 위한 작은 안식처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그 오랜 옛날에 먼훗날을 예견하고 맹수들의 위협도 불심 하나로 극복하고 이 절을 세우지 않았을까.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정암사의 존재는 탄광지대의 위안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정암사를 탄광촌의 작은 위안, 정암사라고 부르고 싶다.
▲적멸보궁 앞의 연등.
정암사 적멸보궁은 오대산 상원사,양산 통도사,영월 법흥사,설악산 봉정암과 더불어 석가의 정골사리를 모시고 있는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중 하나이다.
정암사 적멸보궁 역시 자장율사가 석가보니불의 사리를 수마노탑에 봉안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 건립한 사찰로
수마노탑에 사리가 봉안되어 있기 때문에 불상을 모시지 않고 있다.
▲강원도의 슬픈 풍경.
정암사에서 나와 고한행 버스를 기다리다가 그냥 걸어서 가기로 하고 걷다가 만난 풍경.
멀리서 사진을 찍고난 후 보았을 땐 폐가려니 생각했는데 가까히 가서 보니 아직 사람이 살고있는,분명한 주택이였다.
집에서 나온 사람도 확인했다. 아마도 막장에서 석탄 캐는 일밖에 몰라서 아직까지 고한에 눌러앉아 있을 수 밖에 없는
전직 광부가 진폐증을 훈장으로 달고 피폐한 인생말기를 쓸쓸히 맞고 있을 듯한.... 초라한 그의 안식처가 못내 눈물 겨웠다.
그 집과 불과 몇 십미터 떨어져 있는 폐광된 광산의 을씨년스런 풍경 또한.
강원랜드가 고한,사북주민을 위해 지금 어떤 혜택을 부여하고 있는가?
고한,사북을 여행하면 언제나 슬픔뿐. 그래도 나는 다시 이곳에 와서 자장면 한 그릇이라도 사먹고 떠나고 싶다.
다시 만날 때까지 고한아! 사북아! 잘 있으라.
5월26일 오후4시. 고한을 떠나다.
■지난5월25일부터 26일까지 강원도 구절리,심포리,통리협곡.고한 정암사를 돌아다닌 승이리의 여행기였습니다.
정은이만 보랬더니 나무님, 송화님께서 먼저 훔쳐보셨군요. 지루한 여행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은이가요...처녀시절 정선군에서 직장생활을 했답니다. 그래서...// 운영자님께서 이 글을 보시면 '찬샘'방으로 옮겨 주세요. 찬샘방에는 시만 올리는 곳인줄 알았는데 여행기도 가능하다는 것을 늦게 확인하였습니다.
승일님, 이렇게 하루가 져물어 가네요..잠깐 또 들어 와 봅니다..정은님 보라 하셨지만...두 번째나 봅니다..*^^..붐비는 곳 보다 이런 곳이 훨씬 더 여행 같습니다..이런 글을 읽으면 새처럼 자유롭고 싶습니다..*^^..이 글 자정지나 찬샘으로 옮길 겁니다...*^^..*^^..나무님,송화님도 좋은 시간 되시기를,...
ㅎㅎ 정은이 죽을까봐 피해 갔더니만....ㅎㅎ 정선군 고한우체국서 죽을 힘을 다해 버티며 근무하던 생각이 나네요....통리 당고개..만항 정암사..사북..구절리..여량..나전..다 그리운 곳들입니다. 예전에는 "황지" 라는 지명이 있었는디. 지금은 태백이라나 뭐라나...ㅎㅎ
첫댓글 승일님의 강원도 여행기...그 정성에 탄복하겠네요...구절리, 심포리 등 다 한 번 정도 들어본 익은 장소 입니다..다음에 방문하게 되면 승일님 덕에 낯 설게 느껴지지 않을 것 같네요.....잘 보고 갑니다..
여전히 강원도를 사랑하시는 님...이제는 정말 어느날인가는 스쳐 지나감의 길목만이 아닌, 들러보고 싶은곳 이 되어버렸습니다....^^*^^*카페식으로 개조한 꼬마열차 객실...이 인상깊네요...좀은 낯설기도 하구요^^*^^* 늘 건강 하시기를....
정은이만 보랬더니 나무님, 송화님께서 먼저 훔쳐보셨군요. 지루한 여행기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은이가요...처녀시절 정선군에서 직장생활을 했답니다. 그래서...// 운영자님께서 이 글을 보시면 '찬샘'방으로 옮겨 주세요. 찬샘방에는 시만 올리는 곳인줄 알았는데 여행기도 가능하다는 것을 늦게 확인하였습니다.
승일님, 이렇게 하루가 져물어 가네요..잠깐 또 들어 와 봅니다..정은님 보라 하셨지만...두 번째나 봅니다..*^^..붐비는 곳 보다 이런 곳이 훨씬 더 여행 같습니다..이런 글을 읽으면 새처럼 자유롭고 싶습니다..*^^..이 글 자정지나 찬샘으로 옮길 겁니다...*^^..*^^..나무님,송화님도 좋은 시간 되시기를,...
뎀님..승일님..^^,,자정이 지났네요..제가,,찬샘으로 옮깁니다,,ㅎㅎ..뎀님,,송화님,,나무님,,승일님..^^..통리,,삼거리,,통리역,,심포리.호산,,가곡..미인폭포..그러네요,,추억이 새록새록 솟는 곳이네요..송화님은,,고향이시라 더 하실거구요,,,^^,,승일님,,사진 잘보앗습니다..^^
ㅎㅎ 정은이 죽을까봐 피해 갔더니만....ㅎㅎ 정선군 고한우체국서 죽을 힘을 다해 버티며 근무하던 생각이 나네요....통리 당고개..만항 정암사..사북..구절리..여량..나전..다 그리운 곳들입니다. 예전에는 "황지" 라는 지명이 있었는디. 지금은 태백이라나 뭐라나...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