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제목을 붙이고 나니 글을 쓰기가 더 어색하고 부담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이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다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이 하나님에 대하여 궁구하고 사는 것 또한 마땅하기에 시도해 보는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이 죽은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운운하는 것은 또 다른 상처를 주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이야기하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에 있습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는데 이런 큰 대참사에 대해서 하나님의 주권이 없다고 말한다면 말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것을 하나님의 심판이라 부르는 것은 온당치 않아 보입니다. 참새 한 마리의 운명이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지만 심판과는 관계가 없듯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라 부르려면 적어도 명백히 드러나는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서의 노아홍수, 가나안의 멸족, 갈멜산의 바알과 아세라 심판, 그리고 출애굽 과정에서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한 심판 사건은 명백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선포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러한 명백한 메시지가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마지막 시대의 될 일, 즉 예수님의 재림과 관계된 것만이 명백한 것입니다.
모든 사건을 하나님의 심판과 연결시키려는 것은 잘못된 태도입니다. 큰 사건만 하나님과 관계가 있고 작은 사건은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더 잘못된 태도입니다. 참새 한 마리, 머리털을 세신 바 되신 하나님을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모든 사소한 사건 사고조차도 하나님의 심판과 연결시켜 생각한다면 우리는 큰 혼란을 겪게 될 것입니다.
가장 최근에 일어난 참사 중 대구지하철 참사가 있었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태풍 “매미”가 우리나라를 관통했을 때 많은 교회의 십자가가 쓰러지고, 교회당이 파손되었습니다. 쓰러져 가는 교회 종탑을 바로 세우기 위해 일하다가 사고를 당한 목회자도 있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심판일까요? 내친 김에 충무 동신교회가 물에 잠겼습니다. 재산적으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심판인가요?
자연재해나 사건이 일어났을 때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실로암 망대가 무너진 것을 가리켜 무엇이라 하였습니까? 그들이 우리 보다 더 죄가 있어서 그런 사건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런 사건이 일어났을 때 교훈과 경계로 삼으라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설명은 일반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기에 심판에 이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그 이하도 아니고 그 이상도 아닙니다. 많은 사람의 죽음 앞에서 우리 인생은 겸손해져야 합니다. 죄에 대하여 회개해야 합니다. 죄가 가져오는 비참함과 참담함을 알고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픔을 당한 사람들을 향해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고 외치는 것이 선지자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하면 넌센스입니다. 선지자는 뒤통수에 대놓고 그런 말 하지 않습니다. 재앙 전에 찾아가서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시니 회개하라고, 이 심판을 피하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선지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