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7월 25일
큰 자는 섬기는 자입니다.
마 23 : 11 - 12
(마 23: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마 23: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지난주는 본문 마 23:8-10절이었습니다.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우리의 영원한 랍비는 하나님 한 분이시고, 아버지는 영원하신 하늘 아버지이시고,
지도자는 한 분이시니 곧 그리스도라 하였습니다. 이어서 오늘 본문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마 23:11)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여기서 '크다'라는 단어가 3187 (메이존)인데 이 단어는 3173 (메가스)에서 온 단어입니다.
여기에 너희 중에 큰 자라고 하는 것은
첫 번째는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룬 사람입니다.
그래서 큰 자가 되기 위해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리스도와 연합을 해야 되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땅에 속한 자고 혈과 육에 속한 자이기 때문에
자기가 아무리 커봤자 땅에 속한 자 밖에는 될 수 없다는 겁니다.
태산이 아무리 높아 봤자 하늘 아래에 있는 것처럼,
때문에 그 크심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하늘에 속한 그분과 연합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겁니다.
그래서 하늘에 속한 자가 되는 겁니다.
두 번째 해야 될 것은 거기에 맞는 사람으로 자기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겁니다.
자기의 신분을 만들어 가야된다는 겁니다.
하늘에 속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명분뿐만 아니라 실재 자기의 권세를 만들기 위해서는
하늘에 속한 존재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된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 큰 자가 하는 삶의 모든 형태는 섬김으로 나타난다는 겁니다.
세상에 큰 자는 항상 상좌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자기 몫을 누리기에 바쁘다는 겁니다.
그래서 절대 낮아지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은 결코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섬김을 받는 겁니다.
그래서 사무엘상 8:10-17절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자기들도 다른 나라들처럼 왕을 세워달라고 할 때에
“만약에 너희에게 왕이 생기게 되면 이러 이러한 문제들이 생기게 될 것이다.”
세상에 큰 자를 만들고 세상에 큰 자리를 만들게 되면 사람들에게 불이익이 나온다는 겁니다. (삼상 8:10-17)
(삼상 8:10) 사무엘이 왕을 요구하는 백성에게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말하여
(삼상 8:11) 이르되 너희를 다스릴 왕의 제도는 이러하니라 그가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의 병거와 말을 어거하게 하리니 그들이 그 병거 앞에서 달릴 것이며
(삼상 8:12) 그가 또 너희의 아들들을 천부장과 오십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 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무기와 병거의 장비도 만들게 할 것이며
(삼상 8:13) 그가 또 너희의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로 삼을 것이며
(삼상 8:14) 그가 또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감람원에서 제일 좋은 것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하들에게 줄 것이며
(삼상 8:15) 그가 또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자기의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삼상 8:16) 그가 또 너희의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삼상 8:17) 너희의 양 떼의 십분의 일을 거두어 가리니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
왕의 제도는 좋지만 그 제도를 만들게 되면
그 왕이 너희 자녀들을 데려다가 병거를 끌게 하고 마부를 만들 거라고 하는 겁니다.
그리고 전쟁이 나면 그 말 앞에서 달리는 자가 되게 할 것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너희의 아들들로 천 부장 오십 부장을 삼을 것이며 자기 밭을 갈게 하고 자기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자기 병사와 자기 제구를 삼을 것이며, 왕이 너희의 아들들을 데려다가 자기 일을 시킨다는 겁니다.
그러므로 아들은 노예가 되는 겁니다. 또한 너희 딸들을 취하여
향유를 만드는 자와 요리하는 자와 떡 굽는 자를 삼을 것이며,
그래서 높은 지휘, 높은 제도를 만들어 놓으면 너희 자녀들이 1차적으로 종노릇을 하게 되어질 것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너희들이 가지고 있는 좋은 것들을 취하여서 누구에게 주냐면,
자기 신하에게, 자기 마음에 드는 자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며 너희 십일조를 취하여 자기 관리와 신하에게 줄 것이며
또 그가 너희 노비와 가장 아름다운 소년들과 나귀들을 취하여 자기 일을 시킬 것이며
너희 양떼의 십분의 일을 취하리니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
그래서 세상에서 높은 자리가 있게 되면 반드시 낮은 자리 위치에서 종살이하고 그들을 섬기는 자들이 나온다는 겁니다.
이런 것들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시한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겁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당장 오직 왕을 세워서
다른 나라들처럼 전쟁이 나면 대신 나가서 싸울 수 있고
문제가 생기면 우리 문제를 들어 줄 수 있는 그런 왕을 세워달라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고,
사무엘은 높은 자리가 있게 되면 반드시 이러한 문제들이 일어난다고 제시하고 있는 겁니다.
세상은 명분에 따라서 나누나 성경에서 큰 자는 섬기는 자들이고
이 ‘섬김’은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와 작은 자를 나누는 기준입니다.
우리 생활 속에서 가장 큰 자는 부모님입니다.
낳아주시고 길러주셨기에 섬길 수 있는 겁니다.
크기 때문에 자녀를 섬길 수 있는 겁니다.
섬긴다는 1249 (디아코노스)라는 단어를 보면 '시중드는 사람, 목사, 집사, 종' 등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롬 15:8) 내가 말하노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디아코노스)가 되셨으니 이는 조상들에게 주신 약속들을 견고케 하시고
그리스도의 모양은 (디아코노스)입니다. 주님 자신이 섬기는 자라고 하는 겁니다.
이 섬긴다는 (디아코노스)가 로마서 15장에서는
(롬 15:1)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강한 자들이 약한 자들의 약점을 담당해 주고 자기를 기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롬 15: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항상 이웃을 기쁘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한단 말입니다.
그러나 이웃 사람이 원한다고 다 해주는 게 아닙니다.
그 사람을 기쁘게 해 주지만 전제 조건은 그게 선인가 볼 수 있어야 되고
이게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덕을 이루는 일인가를 알 수 있어야 된다는 겁니다.
(롬 15:3)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 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리고 항상 비방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일을 해주고도 좋은 소리를 못 듣습니다.
왜? 자기를 기쁘게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대표가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기쁘게 하지 않고 그분 스스로가 비방을 받으셨다는 겁니다.
(마 23: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그래서 자신을 스스로 높이면 안 됩니다.
우리가 스스로 높아지지 않고 겸손하면 겸손할수록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누군가에 의해서 반드시 높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스스로 높이는 사람은 반드시 다른 사람에 의해서 낮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게 성경의 원리입니다.
그래서 '높이다'라는 5312 (휩소오)는 5228 (휘페르)에서 나왔는데 이 단어는 전치사로써 '초월하다'입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는 것처럼 우주선이 대기권을 벗어나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나 대기권을 벗어나게 되면 지상으로부터 초월되어졌기 때문에
그 다음부터는 에너지라든지 연료가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 상태를 넘어 가기까지 에너지나 연료가 가장 많이 들어간다는 겁니다.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상대적인 높임이 아니라 초월자의 경지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할 때에 높아진 자는 초월한 자라는 겁니다.
세상의 상대적인 높임은 낮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권세는 10년을 가지 못하는 겁니다.
어른이라고 해서 자녀들을 함부로 막 다루다 보면 어느 사이에
나는 힘이 떨어져 버리고 아이들은 힘 있는 아주 강성한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겁니다.
여당이라고 그 힘이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사계절도 역시 돌아가고 있습니다.
봄이 여름이 되고, 여름이 가을이 되고, 가을이 겨울이 되고,
계절이라는 것은 순환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그냥 있지 않는다는 겁니다.
반드시 돌아가고 있다는 겁니다.
그러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높아진 사람은
반드시 상대적으로 낮은 자리로 돌아오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게 세상의 순환 원리입니다.
그 순환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면 세상 자체가 썩어 버리고 문제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들을 이 순환의 원리 속에 맡겨 두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순환의 원리에 들어가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 초월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자기의 낮춤을 통해 높아진 자’는
이미 모든 과정 속에서 자기를 초월해 버린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가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높이는 사람들은 절대로 말을 듣지 않는다는 겁니다.
(마 11: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 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 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 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
내가 많은 권능을 행했고 회개의 말씀을 줬고 권고의 말씀을 주었거니와
그리고 많은 권능을 베풀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돌이키지 아니 하였다는 겁니다.
그 자신의 뜻과 고집이 결국 높아지려고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겁니다.
(약 4:10)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여러분 스스로를 낮추라고 하는 겁니다.
당시에 가장 극악무도한 사람들은 십자가 형틀에 죽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자신을 십자가에까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래서 가장 낮은 음부까지 내려 가셨기 때 문에
하나님께서 그 오른손을 들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당신의 우편에까지 높이신 겁니다.
주 앞에서 자신을 낮추려면 머리를 숙이고 다니면 됩니까?
바리새인들 가운데 겸손하게 보이기 위해서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항상 숙이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을 낮추는 것이라고 생각한 겁니다.
(약 4: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쫓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좋아 난 것이 아니냐
(약 4:2)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 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약 4:3)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여기서 싸우는 정욕 문제, 욕심의 문제,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는 문제가 나오는데,
결국 세상의 정욕을 피해 우리를 낮추라는 겁니다.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해서 비굴하게 자기를 낮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가 정욕으로부터 멀어진 그런 삶을 살아야 된다고 하는 겁니다.
(약 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그리고 마귀를 대적하는 겁니다.
마귀는 이 세상 정욕을 통해서 우리를 높이려고 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약 4:8)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이 우리 스스로를 낮추는 겁니다.
왜? 하나님은 상대적으로 높으신 하나님이니까 그분 앞에서 우리는 낮아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 앞에서 죄인 된 우리의 손을 깨끗케 하는 것이고
두 마음을 품은 우리의 두 마음을 하나의 마음으로 성결케 만들어 버리는 겁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바꾸어 버리는 겁니다.
지금의 슬픔과 지금의 기쁨을 완전히 바꾸어 버리는 겁니다.
지금의 즐거움인 정욕의 욕심을 따라서 모든 삶의 기쁨과 즐거움이었던 것을 영적인 애통으로 바꾸는 겁니다.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타페이노오)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 에 죽으심이라
지금 하나님이 우리를 끌어 올리는 방법으로서 선택하신 그 십자가의 의미를 이야기하시는 겁니다.
‘예수님이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 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주님께서는 당신을 십자가에 죽으시는 데까지 낮아 지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우리를 높이실 때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우리를 그냥 높이면 되지 않습니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구약의 방법입니다.
여러분 주변에 신접한 박수나 무당들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신이 내려와 그 신과 하나가 돼 버린 겁니다.
그래서 그 신이 내려 와서 말하는 동안에는 자기의 인격은 모두 멈추고 신의 인격에 의해서 움직여지는 겁니다.
말, 행동 모든 게 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신이 떠나 버리게 되면 자기 개인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단 말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신 것도 단순히 구약적인 방법으로 보면 똑같은 방법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자원하는 과정이 없으면
하나님의 인격과 연합 할 수 없고 지속적인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받아 드릴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그걸 아셨기 때문에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똑같은 삶을 사시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당신의 몸을 사망에게 넘겨주시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보여 주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제는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실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는 제가 여러분들에게 당부하고 부탁하는 것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빌려 쓰려는 생각을 이제는 버리라고 하는 겁니다.
‘기도하지 말라’가 아니라 여러분들이 하는 기도의 방법을 중단을 해 보라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하던 기도의 방법은 하나님의 능력을 내가 말로 빌려 쓰려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 제가 형편이 좀 어려우니까 제가 지금 능력이 없지 않습니까?
제가 해야 할 일은 많은데, 그러니까 능력 있고 힘 있는 하나님이 좀 도와주세요.” 라고 하는 겁니다.
그게 지금까지 우리의 기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일이 해결되고 나면 결국 우리의 능력은 그대로고 하나님의 능력을 빌려서 해결했기 때문에
다음에 우리는 똑같은 문제를 똑같은 방법으로 해결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이제는 그런 방법들을 중단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내 능력으로 만드는 훈련을 하자는 겁니다.
과거에 기도라고 했던 것들을 멈추고 “내가 하자”는 겁니다.
내가 실제로 하는데 내 힘과 내 의지로 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안에서 역사하도록 해서 하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던 것을 내가 하는 겁니다.
그러면 내 힘이 세어지고 내 능력이 강해지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반드시 연합과 일치입니다.
맹목적이던 신앙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차원으로 끌어 올리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낮추라고 하는 겁니다.
여기서 낮추라는 건 비굴 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사람들 앞에서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숙이고 겸손한 척하고 그런 비굴함이 아니란 말입니다.
낮춘다는 말은 정확하게 말하면 하나님 말씀 안에서 분명하게 산다는 겁니다.
그래서
삶의 자세는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세로, 큰 자의 자세로 살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