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에게
5월 어느 주말 오후에 자네가 하산주 한잔하고 내가 생각이 나 전화한다고 했지.
요즘 나도 술한잔 하면 옛친구들이 보고 싶고 맨정신에는 못하는 전화도 하고 싶더라.
나이가 든거지 뭐.
그래도 말이야. 이나이에 아무리 술김이라 하지만 어디 전화하기가 쉬운가.
그래도 오래간만에 하는 전화라 용기를 내어 전화를 걸었는 데 상대가 전화를 띨하게 라도 받으면 괜히 후회만 되더라.
어쩌다 술빨이 받아 좀 달린 날 아침에 일어나 핸드폰을 보면 발신번호에 적힌 전화번호들이 있고.
통화한 시간도 꽤나 되는 것들도 있어.
어제 별로 취한 것 같지 않았는 데도 전화건 사실들이 도통 기억에 나지 않아.
기억을 되 살려보지만 별 소용이 없어.
그러면 맨붕상태가 되는 거지.
그리고 이제는 친구들과 술한잔 하는 것도 쉽지도 안해.
친구들과 며칠.몇주뒤 약속한 술자리는 비즈니스도 아니고 술맛이 나지 않아.
한잔 하고 싶을때 한잔 해야 술맛이 제대로 나는 데 말이야.
그럴만한 친구는 이제는 현실적으로 없는 것 같에.
자연히 한잔 하고 싶을 때는 집에가서 마누라와 한잔하게 되지.
마누라는 항상 그 자리에 있고 내 말벗이 되어주는 거지 뭐.
과음도 할수없어 다음날 음주로 인한 일상의 애로도 없어니 나름대로 괜챤은 음주지.
그런데 말이야.
마누라하고 마시는 술이 친구들과 마시는 술맛과 비교가 되게서.
통음하면서 끝까지 달려야 제대로 마신 술이 아니겠어
술이야기를 하다보니 자네와 술에 얽힌 사연들이 생각이 나는 구만.
대학입학시험을 끝내고 나니 비도 부슬부슬 내리고 다시는 못 만날지도 모르다는 생각에
둘이 그냥 걷기 시작해서, 중국집에 둘러 빼갈도 한잔 하면서 말이야.
그날 제법 마셨는 데도 취하는 것 같지 않더라.교복을 입고 술을 마셨는 데도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아서
우리표정에 허탈함이 묻어 있을서 일까?
우리집이 있었던 부산진역까지 걸어서니 꽤나 걸은거지.
다행히 둘다 합격하여 어느 봄날 그때 기분을 살려 다시 한번 걸어보기로 했지.
중국집에 빼갈도 마시면서 말이야.
그런데 도대체 그때의 기분이 나지 않았서 그래서 부산교대부근에서 걷기를 멈추고
버스를 타고 귀가해 버렸지.
대학다닐때 자네와 술도 많이도 마셨네.
술을 많이 마셔야 남성적이다 라고 생각하고
덩치큰 자네와 학업을 멀리하면서 까지 술로 맞짱을 떠서니
나로써는 무리를 해도 한참 한샘이지.
학교앞 진주식당과 경주식당 주인들이 나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아는 사람이 지나가면 호객행위를 하여 마셔돼서니 매상에 꽤나 기여를 한 샘이지.
그날도 진주식당에서 자네와 몇몇친구들과 한잔을 했지.
주흥이 도도해지자 자네가 학교옆 여학생기숙사를 습격하자는 거야.
누가 먼저 들어가는 지 내기를 하자는 거지.
다들 호기심에 좋다고 동의하고 의기양양하게 기숙사로 향하였지.
기숙사에 도착하니 대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다들 주춤하며 망설이자 자네가 용감하게 담을 넘어 버렸어
우리들도 따라 담을 넘었는 지 안넘었는 지는 기역이 희미한 데
하여튼 조금뒤 사이렌이 울리면서 빨간불이 번뜩번뜩하더구만.
우리 모두는 놀라 줄행낭을 쳤지.자넨 참 대단했던 거야.
지금 생각하면 객기였지만 조금 위험한 놀이였던 것 같에.
대학을 졸업하고 서로 근무처가 달라 자주 만나지는 못했던 것 같아.
여름휴가때 자네와 남포동에서 술 한잔하고 광복동에 있는 R호텔 나이트에서 갔었지
그날 나이트에는 쪽발이들이 많아서.자네가 쪽발이들하고 시비가 약간 있었지.
조금뒤 경찰들이 들이 닥치고 자네와 나는 광복동파출소에 연행이 되어서.
광복동 파출소는 대학다닐때 선배하고 자네와 술마시다가 다른 일행과 시비가 붙어
경찰들과 한판 크게 소란을 떤적이 있어 낯설지는 않앗서.
그때가 전두환이 사회악을 해소한다고 삼청운동을 하고 있을 때야.
평상시 같으면 그냥 넘어갈 사건인데도 재수없게 걸려든 거지 뭐.
파출소에서 조용히 있어서면 혹시나 훈방 될지도 모르는데
자네가 민주경찰이 이래야 되느냐는 등 하면서 경찰과 치고 받는 몸싸움을 해버린거지
자넨 참 대단했던거야.
우린 그냥 중부경찰서로 이송 되어버렸지.
그곳에서 4일간 유치되어 있다가 가족들의 도움으로 D급으로 분류되어 훈방되어 나왔지.
C급으로 분류되어 군부대 수용소에 끌려 갔다면 우리인생도 바뀌였을 것 같에
민주투사가 될수도 있었는 데 말이야.
그것도 옥살이라고 석방되는 날 어머니가 두부를 사오셨더라고,
자네와 중부경찰서 앞에서 두부를 나누어 먹었지.
그후로 자네와 통음을 한적이 없는 것 같에.
서로 근무처도 다르고 처자식 먹여 살린다고 나름대로 바빴기 때문이라 생각하네.
이젠 우리도 60이 되었네
옛날이면 뒷방신세지만 요즘은 한창나이지 않는가.
그리고 자식이니 부모니 회사니 돈이니 체면이니 등등 주변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나이도 되었고.
나이가 들면 되려 어려진다고 하지 않니.
조금만 세월이 가면 우린 다시 피끊는 20대로 가지는 않을까?
자네가 조만간에 서울에 나들이 계획이 있다고 하였는 데
그땐 오래간만에 통음을 하여보세.
그동안 우리가 만나지 못해 생긴 간극이 있다면 아마 금방 채워질 것이라 생각하네.
편지를 쓰니 자네 생각이 더욱 더 간절해 지고
그리고 한잔 생각도 나는 구만.
지금부터는 건강이 최고의 재산이라 하니 오래동안 같이 통음할수 있도록 몸관리 열심히
하시게
2013.6.25 Y가.
길영공의 끝나지 않는 글을 읽다보니 나도 괜히 쓰고 싶더라.
그래서 이글을 쓰서 며칠전에 홈페이지에 올렸는 데 그냥 날라가 버리더군
허망하더라.
다시 썼지만 처음글 보다는 글맛이 떨어지는 것 같아.
잃어버린 것이 항상 아쉬운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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