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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 그리고 삼다도
- 2006년 10월 31일 화요일 오후 2시 30분 김해공항 2층 대합실.
부산교통공사 직원들이 하나 둘 모입니다. 퇴직을 앞 둔 직원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마련한 뜻 깊은 여행을 떠나기 위해서입니다. 그 속에는 작은 운이 따른 젊은 직원 몇몇도 섞였습니다. 부인을 대동한 20쌍과 인솔자 두 분 모두 42명입니다. 거의 다 모였을 즈음 부사장님께서 환한 웃음을 지으시며 나타 나셨습니다.
원을 그리 듯 빙 둘러 모입니다. 여행하는 동안에는 모든 것을 잊고 오로지 즐겁게 지내다 오라 하십니다. 정말 맘에 쏙 드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두툼한 봉투를 인솔팀장님에게 건네주십니다. 순간 눈들이 반짝하며 한 곳으로 모입니다. 대충 절반 정도가 아닐까 그렇게 통박을 때려 봅니다. 찰라 간에 봉투속의 배추포기를 맞추어 버린 것입니다. 이파리 하나의 오차도 없었음을 탐라국 관광버스 안에서 팀장님의 입을 통해 확인 하게 됩니다. 교과서 18페이지 위에서 셋째 줄에 나와 있는 대로입니다. 역시 국정 교과서의 신뢰성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 하다는 걸 다시 알았습니다.
1시간여를 기다린 끝에 드디어 허리춤에 찼던 보따리를 풀고 사람과 보따리는 따로따로 검색대를 통과합니다. 생전 첨 해보는 일이라 뻣뻣하기가 풀 먹인 삼베 같습니다. 혼자 괜시리 아슬아슬 하더니 영화, TV에서나 보던 장면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보따리를 검색하던 공항직원이 잠깐 보잡니다. 나에게 직접 보따리 옆주머니를 열어 보랍니다. 자기도 손마다 손가락이 다섯 개씩 다 있는데도 말입니다. 말과 태도는 정중한데 느낌은 영 아니올시다 입니다. 주머니칼이 나왔습니다. 여행이나 산행을 할 때 요긴하게 쓰이는 물건입니다. 습관적으로 챙겨 왔나봅니다.
그것 보란 듯이 공항직원의 눈꼬리가 살짝 치켜 져 올라갑니다. 액체폭탄 때문에 음료수도 지닐 수 없을 만큼 보안이 강화되었음을 뉴스매체를 통해 익히 알고 있던 터라 당황해서 눈만 동그랗게 뜨고 우짜지를 연발하는데 공항직원은 이 어리석고 띨띨한 촌 것이 어찌하나 보자는 태도로 수하물로 부치고 오라는 말만 앵무새 같이 되풀이 합니다.
제기랄 비행기 한번 타기 진짜 어렵네... 그때 구세주가 나타납니다. 비행기를 많이 타 본 듯한 청년입니다. 딱한 듯이 지켜보더니 저기 가서 봉투에 넣어 부쳐 달라고 하면 된다고 일러 줍니다. 돌아보니 작은 봉투에 물건을 넣어 따로 부쳐주는 데가 있습니다. 그런데 검색대의 직원은 안내는커녕 아직도 눈꼬리를 풀지 않고 살기(?)만 폴폴 풍기고 있습니다. 여자라서 그런지 그 느낌이 얼음 같습니다. 에고 추버라. 그나저나 안내도 안 해주고 고객을 춥게 하는 이런 직원은 어떻게 하면 좋을꼬. 우선 친절교육을 최소 한달은 보내놓고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좋은 날에 기분이 살짝 나쁠라 캅니다. 하지만 금방 마음을 풀어봅니다.
꼬리날개를 곧추 세우고 커다란 날개를 가진 날틀 속으로 마침내 들어갑니다. 그런데 좌석배치가 이상합니다. 스무 쌍의 부부들이 죄다 따로 국밥입니다. 퍼뜩 스쳐가는 생각에 짝 없는 인솔팀장님의 심술인가 했는데 알고 보니 가이드의 작은 실수랍니다. 기내가 정돈 되고 객실안내 여직원이 숙달 된 조교가 되어 비상시를 대비한 탈출방법을 몸으로 보여주고도 한참을 뜸을 들이다가 날틀은 서서히 움직입니다.
활주로입니다. 속도가 붙자 마치 털털대는 시골길의 소달구지 같습니다. 한 순간 제트엔진의 굉음이 들리고 몸이 등받이로 밀리는가 싶더니 몸이 온통바닥으로 쏠립니다. 갑자기 달구지의 느낌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중력을 거스르는 순간의 도약이 달팽이관의 림프액을 출렁이게 했나 봅니다. 위도 아래도 아닌 곳에서 몸뚱아리의 거북한 놀림이 멀미를 일으킵니다. 고도를 높이는 동체의 솟구침만이 전율하듯이 온몸으로 전해져 옵니다. 마침내 우리는 탐라 그 바다 위의 땅으로 날아갑니다.
-탐라 제 1일째.
비너스관광이라니 이름 좋고, 깍둑머리와 시커먼 색안경에 터미네이트 쪼인트를 까고도 남을 몸짱 왕바리 운전사는 폼생폼사라서 더욱 좋고, 생글생글 눈가에 웃음이 철철 넘치는데 입담은 각설이 찜 쪄 먹을 만큼 걸쭉한 넹바리 현지가이드는 노는 장단이 척척 맞아서 갱상도 말로 왔답니다.
버스에 오르니 다섯 시가 다 되어갑니다. 일정은 용두암, 용연다리, 한라수목원인데 짧은 해에 다 보기는 애시 당초 무리입니다. 넹바리의 괴상망측한 방언이 무르익을 즈음 용두암에 이릅니다.
탐라관광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곳 용두암. 2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때 그 자리이건만 감흥은 옛 같지 않습니다. 파도와 바람에 갈기 휘날리는 용의 모습처럼 참 잘 어울리더니 이젠 높다란 시멘트 구조물과 왁자한 인간들의 발걸음에 짓눌려서 원시의 숨결은 멎은 지 오래고 시커멓고 보잘 것 없는 화산석으로 초라하게 남았을 뿐입니다. 탐욕스런 인간들의 탓이기에 그 아픔은 더욱 절절 합니다.
용두암 너머로 해가 집니다. 어둠은 언제나 소리 없이 찾아옵니다. 바다 건너 타향의 땅에서 맞이하는 조용한 일몰입니다. 어둠이 내리는 것이 두려운 듯 우리는 서둘러 버스에 오릅니다. 비로소 배꼽시계가 요동을 칩니다. 일정에 나와 있는 <석식 : 제주갈치> 라는 글자만 크게 확대되어 눈에 들어옵니다.
맛 좋기로 이름 난 제주 갈치조림은 배가 고픈 탓도 있지만 맛이 과연 그러합니다. 하얀 병에 담긴 제주의 소주는 무척 이국적입니다. 그 낯선 술을 반주 삼아 먹는 제주의 갈치조림은 특별합니다. 각자 자기소개가 끝나고 건배를 제의하는 팀장님의 외침만큼이나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숙소로 이동합니다. 사흘 동안 묵을 집은 그랜드호텔입니다. 방열쇠를 받습니다. 냉장고 속의 찬물만 공짜라던 가이드의 숙박주의사항(?)이 찰거머리같이 머릿속에 붙어서 떨어지지를 않습니다. 일회용 칫솔 치약은 물론이고 일회용 샴푸도 비치하지 않는다는 가이드의 말은 정확하지 않은 정보였지만 아무리 사소한 것도 쓰는 만큼 지불하는 관광특구 제주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엘리베이트는 공짜요? 라고 비아냥거리던 어느 분의 말이 문득 떠올라 쓴 웃음이 납니다. 어쩌면 첫날부터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어야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모기향을 피워놓고 잡니다. 일급호텔에 왠 모기향? 하지만 사실입니다. 변기의 물을 내리고 나면 끝없이 좔좔좔 샙니다. 물통속을 봤더니 부기가 제대로 작동을 못 합니다. 세면대의 물막이를 당기는 막대의 꼭지는 없어진지가 오래 된 것 같습니다. 복도에는 환기가 되지 않아 퀴퀴한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껍데기만 일급호텔인가 봅니다. 그래도 탐라의 첫날밤은 달콤하기만 합니다.
- 탐라 제 2일째.
아침 8시에 일찌감치 버스에 오릅니다. 앞좌석에 앉은 팀장님의 머리칼에 통 질서가 없습니다. 지난 밤 홀로 외로움에 몸부림(?) 치셨나 봅니다. 통제반장(?)도 덩달아 밤새 많이 삭았습니다. 두 사람은 돌아 갈 때까지 홀로아리랑의 부작용이 꽤 심할 것 같아 걱정입니다. 어쨌거나 오늘도 일정표에는 볼 자리가 여섯 군데나 됩니다.
“ 봄바람에 보리 털은 살랑살랑 가을바람에 조 대가리도 끄떡끄떡 ” 탐라의 유명한 민속주 조껍데기술 얘기 끝에 짓궂은 가이드가 분위기 띄우기용으로 내 놓은 탐라관광버전의 요상한 노랫말입니다. 여기에 가락을 붙여 살랑살랑, 끄떡끄떡 하면서 신나게 넘어가는 겁니다.
보리 털은 살랑살랑 다음에는 추임새가 “ 좋고좋고 ” 입니다. 그런데 별안간 희한한 추임새가 끼어듭니다. “ 다서! 여서! ” 이게 뭔 소리여? 어리둥절할 틈도 없이 버스는 폭소의 도가니가 되어 버립니다. 이 한마디를 시작으로 추임새의 주인공은 이후 내내 분위기메이커가 됩니다. 그리고 오리궁뎅이춤도 곁들여서 돌아오는 날 까지 일행들을 행복하게 해 줍니다. 궁금해서 물어봤습니다. 왜 다섯 여섯이냐고. 그랬더니 도리어 묻습니다. “ 셋 넷은 다 아는 거 아이가? 그라고 다섯여섯이 아이고 다서여서다이! ” 그렇네요 다섯여섯 아니 다서여서...
소인국 테마파크에는 경복궁, 남대문, 자금성, 만리장성, 런던 탑, 에펠탑, 백악관 등 유명한 건축물은 다 있습니다. 물론 미니어처들입니다. 해피타운에서는 중국기예단의 멋진 묘기를 봅니다. 활처럼, 연체동물처럼 휘어지고 상상 그 이상의 동작들을 연출하는 그들은 인체의 신비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쇠 그물로 만든 커다란 공속에서 무려 일곱 대나 되는 오토바이가 아찔한 교차회전을 합니다. 목숨을 건 묘기에 탄성이 절로 터집니다.
여기는 버섯농장입니다. 밀려드는 수입농산물 때문에 귤은 경쟁력을 잃어 버렸답니다. 그래서 특용작물반을 만들어 활로를 찾으려는 것이 상황버섯농장이라고 합니다. 낮고 굵은 목소리의 농장안내인이 마치 연극배우 같은 대사와 몸짓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간간이 경상도 사투리도 인용 하면서 잘 계산되고 계획 된 그의 의도와 행동은 잘 빚은 한편의 모노드라마 같습니다.
자리를 옮겨 상품화 된 상황버섯가루를 구경합니다. 매력적인 목소리의 그 남자는 이 곳 시음장의 여직원에게 우리를 인계하고 미련 없이 사라집니다. 역할분담이 아주 분명합니다. 총기가 똑똑 흐르는 여자판매원의 달변을 들으면서 앞의 그 남자는 예고편 이었구나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 버섯가루를 먹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은 생각이 들도록 만듭니다. 그 말솜씨가 가히 세치 혀의 절정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도 호락호락 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구구절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꿋꿋하게 버팁니다. 그렇지만 시음용으로 내 놓은 버섯 차는 남김없이 마십니다. 귤도 더 달라고 해서 맛있게 까먹습니다. 공짜니까 맛있으니까 그리고 몸에 좋다니까. 쪽팔림은 순간이고 이익은 영원하다 이것은 대한민국 아줌마들의 기본정신입니다. 그 쇠가죽 같이 두꺼운 정신이 자랑스럽습니다. 판매 건수는 두 셋 정도입니다. 가격도 부담스럽지만 가이드와 연결 되어있는 그들의 떳떳하지 못한 이면 거래가 싫은 겁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을 저들도 모르지는 않을 텐데 밑져야 본전이란 식의 이런 판매행위가 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둘째 날의 볼거리 중에서 기대하는 곳입니다. 바로 동양최대사찰이라 소개 하는 약천사입니다. 절 마당으로 들어서는데 삼층으로 된 대웅전의 위용이 대단합니다. 바닥에서 천정까지 하나의 공간으로 통하고 각 층마다 회랑으로 연결 되어 있어서 1층에 정좌한 본존불의 모습을 여러 각도와 높이에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본존의 크기와 화려함은 보는 이를 압도 하고도 남습니다. 광배를 비롯하여 본존의 전신에 금박을 입혔습니다. 온통 황금 빛 으로 빛나는 불상은 분명 특이하고 경이롭게 여겨집니다. 그러나 놀람과 탄성 뒤에 다가오는 위압감은 차라리 공허 합니다. 억조창생을 깨우친 석가의 모습은 분명 이런 모습이 아닐 진대는 더욱 그러합니다. 정녕 그 모습은 화려한 금불상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었습니다.
- 탐라 제 3일 째.
성산포, 우도, 해저잠수함... 가슴에 작은 흥분이 일어납니다. 일정표를 받았을 때 제일 기대했던 날이 오늘입니다. 그림으로만 봐 왔던 성산포의 일출봉과 바람 부는 우도는 이번 여행의 백미입니다. 거기다가 덤으로 잠수함 타고 바다 밑을 구경한다니 기대가 어찌 아니 크겠습니까.
맨 먼저 잠수함을 타러 갑니다. 배를 타고 우도 앞에 띄워 놓은 잠수함 까지 갑니다. 정확히 말하면 잠수정입니다. 어쨌거나 잠수정계류장에서 우도를 배경으로 공짜라며 찍어주는 기념사진을 빠짐없이 쌍쌍으로 찍고 들 뜬 기분으로 잠수정 안으로 들어갑니다. 관찰하기 좋게 양 옆으로 둥글고 큰 유리창이 촘촘히 나 있습니다.
십여 미터를 잠수하자 갑자기 멸치 떼가 은빛으로 반짝이며 지나갑니다. 그 뒤를 이어 자리 돔이 보이고 정말 물 속의 풍경은 환상적입니다. 다이버가 물고기를 떼로 몰고 옵니다. 잠수정 안에서는 희망하는 사람에게 이 광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준다고 합니다. 물론 이것은 공짜가 아닌데도 여기저기서 아우성입니다. 20미터까지 내려가서 산호초가 있는 바닥에 멈춥니다.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산호의 모습에 온통 정신을 빼앗깁니다. 일말의 두려움은 사라지고 모두 어린아이들 같이 좋아라고 야단입니다. 그렇게 물속에서의 30여분은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해치를 열고 밖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누가 앞을 가로 막습니다. 쌍쌍이 기분 좋게 사진을 찍어 주던 사람입니다. 그는 사진을 조그만 액자 속에 넣어 놓고 5000원을 내고 찾아가라고 합니다. 분명 원하는 사람만 그렇게 포장을 한다고 해 놓고 막무가내로 떠다 맡깁니다. 참 기가차고 어처구니없는 기만적인 상술입니다.
배를 타고 선착장으로 돌아와서 해물탕으로 점심을 먹습니다. 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또 배를 타고 우도로 들어갑니다. 이번 배는 차도 실을 만큼 제법 큽니다. 배는 한참 만에 우도에 우리를 내려놓습니다. 선착장 바로 앞에 우도 일주버스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두 대의 버스에 나누어 탑니다. 헤드 셋을 하고 안내 방송을 하는 기사는 얼핏 보기에도 20대 초반정도로 앳되어 보입니다. 달리는 버스에서 그는 주저리 주저리 우도의 이 곳 저 곳을 친절하게 설명 합니다. 저 혈기 방창한 나이에 이 좁은 섬에서 저렇듯 열심히 하는 것을 보며 참 대견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런데 그는 억양이 코미디언 서영춘씨를 빼다 박은 듯이 닮아서 들을 때 마다 슬며시 웃음이 납니다.
버스는 우도의 등대 밑에서 멈춥니다. 등대는 작은 동산만한 언덕 꼭대기에 있습니다. 잰 걸음으로 등대를 향해 오르기 시작합니다. 한 발 한 발 오를 수록 우도의 전체적인 윤곽이 드러납니다. 이름처럼 소가 누워 있는 모습이라 했는데 과연 그러한지는 안타깝게도 이 높이 에서는 가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등대를 한 바퀴 돌아 내려오는 언덕에는 드센 바닷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해풍에는 끈끈한 소금기가 묻어납니다.
버스는 산호백사장이 있는 산호사해수욕장(서진백사)으로 달립니다. 직접 밟아 본 백사장은 놀랍게도 정말로 산호가 부서져서 만들어 진 것이었습니다. 버스가 출발하기 전에 기사는 이렇게 말 합니다 “ 신 밑창까지 탁탁 털고 오십시요 산호 알갱이는 한개 라도 묻혀 나가다가 적발 되면 밀반출 혐의로 콩밥을 먹거나 살림이 거덜 날 만큼의 벌금을 각오해야 합니다 ” 너무 진지해서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잠깐 헷갈렸습니다.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기사는 또 우스개를 늘어놓습니다. 우도의 유일한 PC방인데 개업하고 딱 일주일 만에 말아 먹었답니다. 길옆에 xxPC방이라 적힌 간판이 뒹굴고 있는 것을 보면서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또 한번 헷갈립니다.
우도에는 고속도로가 두 군데나 있다고 합니다. 이름 하여 남부 고속도로, 세계에서 유일하게 과속 방지 턱이 설치된 고속도로라며 자랑이 대단합니다. 그리고 서부고속도로는 아우토반이라고 소개하면서 아직 60km 이상 달려 본 적이 없다고 할 때는 이것이 우도의 유머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싱싱한 생선과 같은 유머가 있는 이런 젋은이의 모습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육지도 아닌 코딱지만한 섬 우도에서 그는 그렇게 펄떡이며 살아 있었던 겁니다.
지금 생각하니 돌아오는 뱃머리에서 멀리 실루엣으로 보이던 것이 성산일출봉이었던 것 같습니다. 첫날부터 계획 된 일정을 빼 먹고 바꾸고 뒤죽박죽 입맛대로 뒤집었다 엎었다 하는 가이드의 불성실한 안내로 결국 기대했던 성산의 일출봉은 허무하게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유감스럽게도 넹바리 현지가이드는 첫인상과 달리 시간이 지날수록 이미지가 나빠집니다. 오늘 저녁은 고등어조림이라 하네요. 어디선가 또 배꼽시계가 요란하게 웁니다. 아마 배꼽 뒤에는 뱃속거지가 숨어 있는 게 틀림없나 봅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공지사항이 발표됩니다. 오늘 밤에 노래방에 모두 모이라고 합니다. 숙소지하에는 한꺼번에 수십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스탠드바식의 자리가 있습니다. 오늘 밤에는 주체할 수 없는, 신명으로 넘치는 이들의 대단한 활약들을 구경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척 기대 되는 밤입니다.
- 탐라 제 4일 째.
지난밤 노래방의 열기는 뜨거웠습니다. 老선배님들의 흘러간 옛 노래를 시작으로 새댁들의 무서운(?) 율동까지 옛것과 새로운 것의 어울림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혼신을 다하는 열창에는 님만의 절절한 사연이 묻어납니다. 단 한번의 몸짓에도 소싯적의 녹 쓸지 않은 솜씨가 엿 보입니다. 총각 같은 아닌 총각이 숨 넘어 가는 박자로 열기에 기름을 붓습니다. 오냐 이 순간을 기다렸도다. 언제나 청춘인겨. 언니 옵빠들이 쉰내야 물렀거라 썩 나서서 디스코 메들리에 디스크를 무릅쓰고 냅다 흔들어 댑니다. 그렇게 밤은 언제나청춘들과 아직은청춘들이 한 바탕 몸짓으로 흐드러지게 놀았더랬습니다.
승마장입니다. 유명한 탐라조랑말은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경주용이나 승마용말은 더욱 아니고 어쨌든 타는 말입니다. 카우보이모자와 붉은 조끼가 정리도 되지 않은 채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습니다. 그냥 아무거나 대충 쓰고 걸치고 나가랍니다. 여기도 소문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느긋하게 즐길 분위기가 아닙니다. 타는 사람도 태우는 사람도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기계적으로 태우고 타고 안 떨어지려고 악을 쓸 뿐입니다.
안장을 고쳐 매어주는 마부의 손이 안쓰러울 정도로 거칩니다. 온통 굳은 살 뿐입니다. 말도 지친표정이 역력합니다. 괜히 말 타기가 부담스러워 집니다. 그렇지만 말을 타면 어떤 기분일까라는 호기심과 욕구는 이내 이런 생각을 떨쳐버립니다. 여기서도 트랙으로 들어가기 전에 당연히 말 탄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한 바퀴 돌고 오면 현상해서 틀에 넣어 얼마나 요구 할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사진 찍기가 겁납니다.
맨 앞의 말고삐를 잡은 마부가 4마리를 일렬로 세우고 나아갑니다. 우리는 타고 그는 걷는 셈입니다. 엉덩이가 얼른 자리를 잡지 못합니다. 안장에 걸쳐 보지만 자꾸만 이쪽저쪽으로 미끄러집니다. 아직 자세가 안 나옵니다. 앗 그런데 마부가 뛰기 시작합니다. 덩달아 말도 뜁니다. 그리고 미처 준비가 안 된 엉덩이도 정신없이 통통 탕탕 튀기 시작합니다. 어머나니나 까딱하다가는 말엉덩이에 매달려 끌려 갈 지도 모르겠습니다. 마부가 외칩니다. 엉덩이 때리세요. 누구? 내엉덩이? 말엉덩이? 아 엉덩이 치라니깐요! 에라 모르겠다. 아무 궁뎅이나 쳐 보자. 따그닥 털털 따그닥 털털...
탐라의 옛 생활모습을 아직도 볼 수 있는 곳이 성읍민속마을입니다. 이 곳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직장에 근무 하듯이 아침출근 저녁퇴근입니다. 안내를 맡은 사람은 결혼한 여자 즉 넹바리입니다. 짓궂은 질문에도 재치있고 시원시원하게 대답합니다.
탐라의 토종흑돼지 한 마리가 돌 울타리 안에서 혼자 심심하던 차에 우리들과 맞닥뜨립니다. 호기심을 보이기는 돼지나 우리나 피차가 일반인 것 같습니다. 어디보자는 듯이 울타리에 발을 척 걸치고 그 큰 콧구멍을 연신 벌름거리며 탐색에 열중합니다.
돼지를 도새기라 부르는 것이 낯설면서도 재미있습니다. 또 탐라의 독특한 문화중에서도 가장 흥미로운 것이 바로 화장실입니다. 벽도 지붕도 없고 바람구멍이 숭숭 둟린 돌 울타리가 가리개의 전부입니다. 자세를 잡고 앉으면 머리하나가 쑥 올라 올 정도로 낮습니다. 그런데 화장실이 이렇게 생겨 먹은 데는 다 이유가 있답니다. 탐라는 사방이 바다이기 때문에 시도 때도 없이 왜구나 떨거지해적들의 노략질이 심했나 봅니다. 그래서 자나 깨나 불조심 하듯이 자나 깨나 노략질 조심이었겠지요. 때문에 볼일을 볼 때도 울타리 위로 머리를 내 놓고 휘휘 둘러보며 사방을 경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생존의 처절함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되고도 남습니다.
화장실 바닥에는 돼지가 삽니다. 이름 하여 똥돼지입니다. 구석에 쪼그리고 있다가 인기척이 나면 잽싸게 정 위치하고 대기합니다. 드디어 위에서 밀어내면 받아먹습니다. 돼지는 배를 채우고 사람은 퍼야하는 수고로움이 없으니 돼지 좋고 사람 좋고 입니다.
화장실에는 기다란 작대기가 있습니다. 밑에 있는 똥돼지의 습격(?)을 막기 위한 도구입니다. 빨리 안 내 놓거나 감질나게 삐질 거린다거나 하면 약 오른 돼지가 점프 안한다고 어떻게 장담합니까? 비바리, 넹바리, 왕바리 할 것 없이 모두 조심해야 할 일이지만 왕바리는 조심 또 조심해야 합니다. 돼지와의 사정거리가 쬐끔 더 가까운 탓도 있지만 생김새가 돼지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아차 하는 날에는 제삿밥 받아먹을 생각은 안하는 게 좋습니다. 명심 또 명심입니다. 설을 푸는 넹바리가 파편을 날리기 시작합니다. 밑천이 거의 바닥에 이르렀나 봅니다.
버스에 오릅니다. 5시 30분 비행기랍니다. 한 시간 남짓 남았습니다. 3일 하고도 반나절을 우리는 탐라의 이곳 저 곳을 정신없이 돌아 다녔습니다. 재미있고 신기하고 때로는 낯설어서 더욱 기억에 남습니다. 바람과 돌과 여자의 섬 삼다도, 때로는 탐라로 불려지지만 삼다라는 이름이 더욱 가깝게 다가옵니다. 며칠 사이 모두가 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형님 같고 아우 같은 끈끈한 정이 눈에 보이는 듯 합니다. 돌아가면 정든 직장을 떠나야 할 이도 몇 분 있습니다. 정년을 무사히 마치는 그 분들의 앞날에 늘 웃음과 건강과 행복이 가득하길 빌어 봅니다.
버스는 해안도로를 따라 공항을 향해 달립니다. 물끄러미 창 밖을 봅니다. 이런저런 기억들을 떠 올려 봅니다. “ 조호바아라모혼무욱나아 ” 갑자기 웃음이 터질 것 같습니다. 사연은 이렇습니다. 오제기라는 떡이 있습니다. 한입 크기로 빚었는데 쑥을 넣고 팥을 통째로 버무린, 탐라에만 있는 떡입니다. 가이드가 오늘 줄게 내일 줄게 하면서 입만 열면 자랑하던 떡 오제기 그 오제기를 오늘 마지막 날 드디어 맛을 본 겁니다.
허기지면 말 타는데 지장 있다며 이동 중에 몇 개씩 나눠 줬습니다. 여기저기 더 달라는 데가 있어 주고 돌아 서는데 염불조의 괴상한 소리가 들립니다. “ 조호바아라모혼무욱나아 ” 이어서 “ 똑똑똑 ” 목탁치는 소리도 들립니다. 바로 우리의 분위기메이커가 한 염불 하신 겁니다. 볼따구를 손바닥으로 두드려 목탁소리 까지 내면서 말입니다. 당연히 모두 뒤집어 졌지요. 그 참 줘도 못 묵는 사람도 있는데...
KE1018편의 기내입니다. 고도 6700m 속도 713km/h를 알리는 자막이 보입니다. 하지만 이 엄청난 높이와 속도가 현실감이 없습니다. 창 밖에는 구름의 바다입니다. 문득 문득 일과 동료들이 생각나는 걸 보니 정말로 여행이 끝나 가는 가 봅니다. 이번에는 부부끼리 앉았지만 거의 말이 없습니다. 피곤함과 축제의 끝에 찾아오는 허전함 때문이겠지요.
이제 구름 위의 하늘에도 어둠이 가득 합니다. 땅 위에는 불빛이 활짝 핀 꽃송이 같습니다. 인공의 빛이 저리 고울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땅과 하늘에서 빛은 불과 별이 되어있습니다. 그 빛들의 영원함을 생각하노라면 까닭 없이 가슴이 저려 옵니다.
기체가 크게 선회합니다. 활주로의 유도등이 보입니다. 기체는 서서히 땅을 향해 내려갑니다. 눈을 감아 봅니다. 비바리, 넹바리, 왕바리, 우도, 도새기, 노래방, 모기향, 갈치조림, 마부, 말, 잠수함, 바다, 멸치 떼, 아우토반, 해풍, 한라산 그리고 탐라.... 그들을 언제까지나 기억 하고 싶습니다. 드디어 온몸으로 소달구지의 느낌이 전해져 옵니다. 누군가가 안전벨트를 풉니다.
- 모두 폭싹 속았수다예. -
첫댓글 좋은 여행기 감사합니다
글 읽는 내가 직접 제주도 위로여행 다녀온 기분이네요. 능선에는 재줏꾼이 많은데 다들 넘 빼는 바람에 근자에는 심심했었는데, 잼나고 사실감나는 좋은 글 오랬만에 접하게 해줘서 고맙습니다. 혹 허튼날에님 퇴직하시는건 아니죠
어허이 와이카요 마르고 닳도록 해 물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