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기의 [속세의 능멸에 대하여]에 대하여 좀더 자세히 알고 계시지는
않는지요..? 가능하면 원문을 보고싶네요...베르나르 기에 대해서도....
어딜가도 일부분의 구절밖에 알수 없네요..."(서은숙)
이 말씀에 눌러뒀던 호기심이 일어 소졸하게 답신을 하려던 게 며칠이 지나가 버렸네요. 조사하느라 시간을 지체했다면 그나마 낫겠지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일상만 헤집다가 빈한한 모양새로 돌아왔네요.
『속세의 능멸에 대하여』가 침습한 것은 아마 『장미의 이름』을 통해서겠죠. 그 후로 어느 다른 곳에서 다시 만난 것도 같지만 지금은 기억이 흐려지고 말았네요. 아시다시피 이윤기의 역본에는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stat rosa pristina nomine, nomina nuda tenemus.>"가 본문에 적시되고, "베르나르의 <속세의 능멸에 대하여>에 나오는 일절."이라는 각주가 부기됩니다(열린책들, 하권, 2000/2003 신판 14쇄, 911면).
여기서 저 간단치 않은 라틴어 경구가 바로 "장미의 이름"이 의미하는 바를 담고 있다는 지적에서부터 해석이 분분하게 나왔는데 이유인즉슨, 그 인용위치가 책의 말미라 의미심장하게 보일 만한 데다, 또 "장미" 라는 책의 표제에 사용된 것과 같은 단어가 들어간 구절이라는 데서 그러하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이런 측면에서는 저 구절은 "장미의 이름"이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관한 수많은 독자의 의문과 연동되어 적잖은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있습니다.
다른 면에서 "장미의 이름"이라는 텍스트를 떠나, 물론 책에서 인용된 맥락을 간과하지는 못한 채, 일반적 관심으로서 먼저, 저자 즉 "베르나르"는 누구인지에 대해서부터 의뭉스런 생각이 꼬리를 잇습니다. 책에 나오는 이단심문관 "베르나르 기"는 아닌 듯 하지만, 그를 찾아가는 길에는 12세기 아벨라르와 논쟁으로 알려진 성 베르나르 샤르트르(Bernard of Chartres)를 위시해 보다 많은 베르나르를 맞닥뜨리게 됩니다. 특히나 웹에서는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그 좁은 길을 번번이 막아서는군요.
다음으로, 『속세의 능멸에 대하여』라는 책 자체에 대한 관심입니다. 원제는 무엇이며 출판년도와 출간된 곳, 그리고 번역본을 비롯해 현재에 이르는 이 책의 계보를 더듬어 서지정보를 얻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물론 현재 이 책이 소장되어 있는 곳과 열람가능한 지 여부, 한편으로 개인이 구득할 수 있는 방법 등을 모색해볼 수 있겠죠.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19세기 이전의 책이라면 우리 나라에서 찾아보기란 쉽지 않으리라 봅니다. 당연히 역본도 없으려니와 워드화된 파일도 없겠죠. 만에 하나 개인소장가가 가지고 있는 경우를 전혀 배제할 수는 없지만, 이는 이 책의 희귀정도와 출간사정에 많은 부분 의탁할 것 같습니다. 실존하는 그래서 현재에 전하는 책이라면, 에코는 볼로냐대학도서관이나 어느 이태리 도서관에서, 혹은 파리나 런던의 어느 도서관에서 직접 열람했을 지 모르겠네요. 출간년대를 가리지 않고 좋은 책을 많이 가지고 있을 에코의 서재에 버젓이 꽂혀 있을 수도 물론 있겠죠.
마지막으로는 책 내용에 대한 탐색입니다. 저 구절 외에 어떤 내용이 담겨져 있는가. 전체적으로 어떤 맥락에서 쓰여진 것인가. "이런 난장판에는, 이런 난장판에는 주님이 계시지 않아"Non in commotione, non in commotione Dominus, "이 바빌론의 영화는 어디로 갔는가"Est ubi gloria nunc Babyloniae 등의 구절도 이 책에 있다는 정보도 있는데, 모르겠네요(여기서 막연히 라틴어로 쓰여진 신학에 관한 책 같다는 생각은 누구나 들 겁니다).
이상과 같은 관심을 갖고 이제 조금씩 알아보기로 합니다. 웹에서 정보를 구할 수도 있겠고, 에코의 다른 책들에서도, 또 신학관련 글을 통해서도 뭔가를 찾아낼 수 있겠죠. 무엇보다 "장미의 이름"의 이종의 역본들(불어나 영어, 독어나 일어판)에 역자가 단초를 남겨줬을 지도 모르고. 적어도 정확한 저자명과 서명은 원어로 확인가능하겠고. 면구스럽게도 결국 아무 것도 알 수 없다는 말을 이리 길게 했네요. 이제라도 같이 한번 찾아보죠. 무슨 내용이든 아시는 분은 답글로 우리의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시길. 저도 버전업을 시켜보도록 하겠습니다.
첫댓글 모두들 답변 감사합니다...그래서 혼자보단 여럿이 나은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