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0월 13일 토요일 ICS 영남 지역 모임(풍성한생명교회)
십자가의 도
찬양
나 무엇과도 주님을 바꾸지 않으리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저는 찬양과 말씀이 조화된 예배, 찬양과 기도가 조화된 기도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은혜와 진리가 있는 말씀을 선포할 때에 아멘과 겸손으로 화답하는 성도들이 있는 교회를 꿈꾸고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긍휼의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위하여 서로를 기도하는 공동체를 꿈꾸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8-25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부르심
늦게 부르심 받은 우리 ICS 원우님들은 일찍 부르심을 받은 젊은 신학생들과 비교하면 내 세울 것이 별로 없습니다. 얼굴에 주름살이 많은 것을 내 세울 수도 없고요, 세상의 경력을 내 세울 수도 없습니다. 화가 났을 때에 얼굴의 표정이 바뀌지 않고 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제외하면 젊은 목회자들과 경쟁을 해서 이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기도온은 미디안 진영에 굴러온 보리떡이었지만 이 보잘 것 없는 보리떡이 민족을 구원하였습니다. 기드온이 의지하였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밖에는 없었습니다. 군사력도 무기도 지혜자도 아무도 없었지만 하나님의 말씀만 의지해서 엄청난 승리를 이룬 것입니다.
바울은 원조 사도가 아니었습니다. 원조 12 사도가 아니어도 야고보나 바나바는 인정을 받고 힘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그런 형편이 되지를 못했습니다. 또 바울은 전임 사역자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같이 텐트를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교회에 생활비를 요구하지 않았지만 오리지날 유대인 사도들에게 정통성의 시비를 많이 받았습니다.
우리는 인터넷으로 공부를 합니다. 아직 졸업생도 없습니다. 우리를 인정하는 교단도 별로 없습니다. 우리가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없습니다.
전임 사역자 목회자들로부터 조롱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냥 장로 권사로 있지 뭣하러 목사가 되려고 하느냐? 이런 소리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냥 장로 권사로 있으면서 밥이나 사고 그렇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아모스는 농부의 아들이면서 농부이면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농부의 글이라고 우리가 아모스를 무시합니까? 어부의 글이라고 베드로 전 후서를 무시합니까? 그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왜 부르셨을까요?
오직 십자가
십자가의 도를 전하라고 부르셨습니다.
십자가의 도는 유대인들에게도 미련한 것이고 헬라인들에게도 미련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네가 메시야이면 그 십자가에게 내려오라.” 이렇게 말하고 예수님이 기적적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왕으로 세움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헬라인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철학적으로 인간적으로 합리적으로 이해하려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도 헬라인도 십자가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해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 십자가가 구원을 받는 우리이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지혜자의 지혜도 폐하십니다. 총명한 자들의 총명도 폐합니다. 십자가의 미련한 것으로 하나님은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예수님을 가장 쉽게 이해하는 방법은 우리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9:23-24)
우리는 누구보다 경쟁력이 약하고 누구보다 인정을 받지 못할 수도 있으나, 우리가 십자가를 붙들고 나아간다면 우리는 누구보다 강하고 누구보다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십자가가 우리의 능력입니다. 십자가를 붙들 때에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고 성령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받습니다. “이는 힘으로도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도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 4:6)
십자가에 우리의 믿음의 고백이 있습니다. 십자가에 우리의 희망이 있습니다. 십자가에 우리의 능력이 있습니다. 기쁨으로 십자가를 지기를 원하는 우리 ICS 영남 원우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무엇이 십자가입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믿음이 어린 새 신자들의 경우에는 십일조와 주일 성수가 십자가일 수 있습니다.
이미 십일조와 주일 성수가 십자가가 아닌 경우는 이보다 한 단계 위인 것이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는 고통이 따릅니다. 자신을 죽이는 것과 같은 고통이 따릅니다.
장로님들의 경우에는 설교를 견디는 십자가가 필요합니다. 무슨 말씀을 하여도 설교를 견디는 십자가를 잘 지어야 좋은 장로가 될 수 있습니다.
피곤한 사람들에게는 새벽기도가 십자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 힘을 주십니다.(사 40:29)
참된 기도의 능력은 새벽기도에서 나옵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잠 8:17) 여기서 ‘간절히’라는 말이 ‘새벽에, 아침 일찍이 일어나서 일한다.’ 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새벽에 찾으면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는 말입니다.
이 외에도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가 무지 무지하게 많을 수도 있지만 나머지는 생략하겠습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질 수 있냐고 물어 보시면 우리는 어떻게 대답해야겠습니까?
주님은 오늘도 우리에게 십자가를 질 수 있냐고 물어 보십니다.
오직 십자가에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 붙들고 평생을 고통 속에서도 기쁨을 느끼면서 목회를 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단찬송
이제 내가 살아도
주의 길을 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