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13 조선일보
앨프리드 마셜_수요·공급 곡선 그려 가격의 원리 밝혔어요
가격 결정하는 요인 두고 '생산 비용 VS 소비자 만족감' 논쟁 /마셜이 '수요·공급법칙'으로 해결 /상품 소비 늘수록 만족 주는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도 제시 / 현대 경제학 기초 원리 마련
아파트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낡아지는데 어떤 아파트는 왜 갈수록 가격이 더 오를까요? 똑같은 펜션을 빌리는데 평일보다 주말 요금이 더 비싼 이유는요? '가격은 공급과 수요에 따라 정해진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는 오늘날에는 쉽게 답할 수 있는 질문이지만, 공급과 수요의 관계를 정확히 알지 못했던 옛 경제학자들은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오랫동안 고민했습니다. 각자가 다른 주장을 내놓고 논쟁을 벌이기도 했지요.
◇상품의 가격은 어떻게 결정될까
그중 가장 널리 받아들여진 주장은 "상품의 가치는 상품을 만드는 데 들어가는 생산 비용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가령 아파트의 가치는 아파트를 지으려고 사들인 땅, 아파트를 짓는 건설 근로자에게 주는 임금, 건설 자재비 등 아파트를 짓는 데 들어간 모든 비용을 합친 것이라는 말이죠. 과거에는 상품을 생산하는 비용에서 근로자에게 주는 임금(노동 비용)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노동가치설'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노동가치설은 생산 비용은 변하지 않았는데 상품의 가격이 오르는 현상을 제대로 설명할 수 없어요. 가령 사과나 배가 유독 추석이나 설날에 값이 오르는 현상은 생산 비용의 차이로 설명하지 못하죠. 이런 현상을 보면 오히려 "소비자가 물건에서 얻는 만족도, 즉 효용(效用)이 가격에 영향을 준다"는 주장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립니다. 평소에 사과나 배를 사면 그저 맛있게 먹을 따름이지만, 추석이나 설날에는 차례상에 올려 조상에게 대접한 다음 맛있게 먹을 수 있으니 사과나 배를 샀을 때 느끼는 만족도가 높아져요. 그러니 명절이면 사과나 배의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 영국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은 수요-공급 곡선을 처음으로 제시해 현대 경제학의 기초 원리를 마련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생산 비용과 소비자의 만족도(효용)를 두고 벌어진 논쟁은 영국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Alfred Marshall·1842∼1924)이 등장하면서 깔끔하게 정리됐습니다. 마셜은 '상품 가격이 오르면 그 상품의 판매량은 줄어든다'고 생각했어요. 빵 가격이 오르면 이 가격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 생겨나거나, 사람들이 빵보다 더 저렴한 식품을 사 먹기 때문이죠. 이것이 바로 수요의 법칙이에요.
마셜은 가격이 상품 공급자에게 미치는 영향도 따져보았어요. 만약 빵 가격이 너무 낮으면 빵을 만들어 팔아도 빵을 만드는 데 들어간 비용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빵을 만들어 파는 사람이 줄어들겠지요. 반대로 빵의 가격이 높아지면 빵을 만들어 팔수록 이윤을 남길 수 있으니 빵을 많이 만들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공급의 법칙이에요.
두 법칙에 따라 수요 곡선과 공급 곡선을 그리면 상품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이에 마셜은 "생산 비용과 효용을 두고 논쟁하는 건 의미가 없다"면서 "물건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상호 작용으로 결정된다"고 말했지요.
"수요와 공급 두 단어만 가르치면 앵무새도 훌륭한 경제학자로 키울 수 있다"는 농담을 들어본 적 있나요? 마셜이 제시한 수요와 공급의 원리가 경제학에서 가장 기본적인 원리라는 뜻입니다. 마셜이 경제학의 발전에 얼마나 대단한 역할을 했는지 짐작이 되죠?
◇빵을 먹으면 먹을수록 만족도는 떨어진다
'한계효용(限界效用·marginal utility)'이라는 중요한 경제학 개념도 마셜이 제시했어요. 한계효용은 쉽게 말해 '소비자가 물건을 하나 더 소비할 때 추가로 얻는 만족감'입니다. 배가 너무 고픈데 마침 어머니께서 라면을 끓여주셨어요. 한 그릇을 먹으면 라면이 아주 맛있습니다. 그런데 두 그릇, 세 그릇 라면을 먹으면 먹을수록 처음처럼 라면이 맛있지는 않지요. 다른 상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상품을 구입했을 때 얻는 만족감과 같은 상품을 하나 더 샀을 때 느끼는 만족감은 달라요. 이렇게 상품 소비량이 늘어날수록 한계효용은 점점 더 줄어드는데, 이를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은 경제학의 핵심적인 이론으로 자리 잡았어요. 나아가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폭넓게 활용되고 있지요. 피자 가게를 가보면 종종 조각 피자를 파는 곳이 있어요. 그런데 가격을 따져보면 피자 한 판(8조각)을 샀을 때보다 조각 피자 8개를 살 때 돈이 훨씬 더 많이 들어요. 같은 피자인데 조각 피자는 왜 더 비싸게 파는 걸까요?
보통 피자 한 판을 시키면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피자 한 판을 혼자서 먹다 보면 한계효용이 점점 떨어져요. 1~2조각을 먹고 나면 배가 너무 불러 피자를 더 먹지 못하기도 하지요. 반면 조각 피자를 먹으면 한계효용도 높고 피자를 남길 일도 없습니다.
이렇게 한계효용을 따져보면 여러 사람이 피자를 먹을 때는 한 판을 사는 게 낫고, 한 사람이 피자를 먹을 때는 조각으로 먹는 게 더 경제적이고 합리적입니다. 피자 가게 입장에서는 홀로 피자를 먹고 싶지만 한 판을 사기 부담스러운 사람에게 조각 피자를 비싸게 팔아 더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있지요. 이렇게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은 합리적인 소비와 기업 판매 전략 등에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어요.
마셜은 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마음'을 늘 강조했어요. 같은 빵 한 조각도 부자에게는 한계효용이 크지 않을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에게는 그 한계효용이 아주 클 수 있겠죠? 딱딱하고 어려워 보이는 경제학도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마음으로 배우다 보면 사람을 돕는 효율적인 방법을 알 수 있게 된답니다.
한진수 경인교대 교수(사회교육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