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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도덕 교과서에는 인간 존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인간 존중이란 '인간은 어떠한 상태로 태어나든 인간이기 때문에 가장 소중한 존재이며, 따라서 존엄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기자는 한 중학교의 교생교사로 지난 13일 이 내용을 학생들에게 가르쳤다. 하지만 인간 존중이라는 의미는 도덕 교과서에나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기까지는 하루가 채 걸리지 않았다.
청주시청 점거농성중이던 장애인들, 끌어내져
지난 14일 낮 3시경 충북 청주시청의 공무원들은 저상버스 확대와 활동보조시간 확보를 요구하며 시청 본관 소회의실에서 농성중이던 장애인들을 본관 밖으로 끌어냈다. 그 과정에서 몇몇 지체장애인들은 자신의 손과 발이 되어주는 전동 휠체어에서 떨어져 포대기에 둘러싸여 나오기도 했고, 어떤 이는 공무원들이 손과 발을 모두 들고 밖으로 끌어내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충북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철폐연대)는 기자회견문에서 "시 측은 장애아동을 둔 어머니를 두번이나 실신시키고, 다수의 전동휠체어를 파손시켰으며, 여성과 장애인 할 것 없이 폭력을 휘둘렀다"며 "폭력을 행사한 공무원들을 국가인권위에 정식으로 진정하고 해결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소식을 듣고 찾아간 같은 날 저녁 청주시청 본관 앞은 싸늘한 분위기였다.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은 본관 주위를 빙빙 돌며 무언의 시위를 계속하고 있었다. 철폐연대의 비장애인 회원들은 간식을 준비하고 생필품을 준비하는 등 분주해 보였다. 아울러 한 무리의 대학생들은 본관 앞에 삼삼오오 모여 장애인들과 대화하며 앞으로의 상황을 예견하고 있었다. 한편 약 30m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는 스무명 남짓한 남성 공무원들이 그들을 예의주시하며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성의 있는 협상 태도만 보여도 해산할 용의 있다
본관 오른편에 비닐로 만든 임시 천막에 다가서자 '다사리장애인자활센터' 이응호(39, 소장지체장애 1급) 소장은 오후에 있었던 이야기부터 꺼내놓았다. 그는 "소회의실에서 포대기에 싸여 밖으로 나왔다"며 여기저기 까지고 멍든 곳을 보여줬다. 또 "저상버스 확충은 국가와 도 차원에서도 협의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가로막아서는 안된다"고 강하게 불만을 나타냈다. 그가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몇몇 지체장애인들은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가와 이야기에 살을 덧붙이거나 한숨 지으며 담배를 피우기도 했다.
그들은 시위 목적이 사안 해결이 아니라 시장의 성의있는 협상 태도라는 점을 역설했다. 철폐연대측 송상호(37)씨는 "우리가 이렇게 시위를 진행하는 이유는 저상버스 확대와 활동보조시간 확보를 바로 해달라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남상우 청주시장이 지난번처럼 30분 정도 자기 이야기만 하다 나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철폐연대측과 성의있게 이야기를 나눈다면 바로 해산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많은 지역 언론들이 우리측 인터뷰도 없이 장애인들이 무리한 요구만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고 있다"며 "언론부터 공정한 기사를 내보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시위 참가 대학생들 "힘들지만 끝까지 해야할 일"
본관 왼편에는 충북대와 청주교대 소속의 학생들이 장애인들과 대화도 나누고 서로 사진도 찍으며 어두운 분위기를 반전시키려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웃음과 달리 오후에 철폐연대 소속 장애인들이 끌려나오는 것을 목격했다는 그들의 말에는 뼈가 섞여 있었다.
신보라(22·충북대 사회학과 3년)씨는 "광우병과 관련한 큰 시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면서 소외된 사람들의 절실한 요구에는 주목하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특별한 요구가 아닌 이상 꼭 그들이 원하는 대로 남 시장과의 성의있는 협상이 이뤄질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은 "반드시 이긴다는 보장은 없지만, 참아왔던 부분이 폭발한 만큼 최소한의 요구사항이 관철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철폐연대측 한 활동가는 "시장을 협상 테이블에 앉힐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냐?"는 질문에 "아마도 힘들것"이라며 "하지만 끝까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밤 10시가 되어서야 3분의 1 정도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고 임시 천막 앞에는 스무 명 남짓의 사람들만이 남았다. 몇몇은 날씨가 춥다며 소주나 막걸리를 한잔씩 마시기도 하고, 또 몇몇은 밤 새려면 배고프다며 순대를 사오기도 했다.
하지만 몇 명 남지 않은 지체장애인들은 계속해 시청 본관 앞을 맴돌고 있었고, 저만치서 역시 몇 명 남지 않은 공무원들은 농성 현장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의 고작 40m 밖에 되지 않는 거리감을 증명하듯 날씨는 다시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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