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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행자의 서원』 「참회분」
~~~참회하였으므로 죄업이 소멸되고, 모든 죄업이 소멸되었사오매 저의 생명에는 끝없는 부처님의 자비공덕이 넘쳐남을 믿사옵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은 지성으로 참회하고는 다시는 죄를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흘러간 구름을 좇지 않겠사오며 지나간 어둠을 마음속에 붙들어 놓지 않겠습니다. 항상 밝은 마음, 항상 맑은 마음, 항상 활기찬 마음으로 일체 공덕을 실천하겠습니다.~~~
금주의 법어--얻은 것도 없고 설법한 것도 없음
금주의 법사--경원사 주지 효림스님
여름이 지나갔는데 여전히 무덥습니다. 서울은 제가 사는 세종시보다는 덜 덥네요. 거기는 폭염주의보가 내렸습니다. 그런데다가 비도 많이 오고 태풍이 한 번 지나갔는데 또 태풍이 올라온다고 오늘 저녁이나 내일에는 비가 많이 내린다고 합니다. 옛날 제 은사이신 소천스님이 돌아가실 때가 되어서 병석에 누워 계시는데 어떤 스님이 병문안 와서 말하길 '스님은 훌륭한 큰스님인데 돌아가시면 사리가 몇 과나 나오시겠습니까?' 물으니 웃으시면서 '범소유상이 개시허망인 걸 모르느냐'고 답변하셨습니다.
「여리실견분」에 나오는 사구게인데 이 사구게 하나만 외워도 금강경 도리를 깨달을 뿐 아니라 불교의 핵심 진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건 내 말이 아니라 경전에서 거듭해 그렇게 얘기를 합니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무릇 있는 바의 모든 형상은 다 허망한 것이다. 만약 모든 상이 상이 아닌 줄 보면 바로 부처님을 본다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법문을 들으면서도 여전히 형상에 걸리고 속고 있습니다. 법당을 크게 지어놓으면 절이 아주 훌륭하고 부처님 영험이 있는 절이라고 신도들이 많이 모인다고 합니다. 스님도 꾀죄죄하게 누더기 옷 입고 열심히 도닦는 스님보다 소문에 돈이 많다 하고 승용차도 고급이고 근사한 모습으로 다니면 안목 있는 사람이 볼 때는 탐욕이 많아서 슬쩍 많이 챙겼다고 보는데 다수의 사람은 큰스님으로 훌륭한 스님이라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 돈 제일 많은 이 아무개, 정 아무개, 김 아무개 이런 사람들이 한국의 재벌인데 물론 돈 많은 것에 비례해서 그 사람의 인품도 훌륭한 사람도 있지만 인격이 안 좋은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그 사람이 여전히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고 존경 받는 것은 돈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거기에 속아서 돈 많고 권력 세고 비싼 다이아 반지와 명품 백을 끼고 다니면 그 사람이 그 반지와 명품 백에 비례하는 인격이 있는 줄로 착각하고 부러워하고 마음속에서 존경심이 일어납니다. 물론 우리 불광법회 참석하신 불자님들은 그런 허상에 속지 않는 줄로 압니다만 그런 것이 인간 사회의 인지상정이란 것을 전제로 말씀드립니다. (관세음의 노래)
수 년 전에 경상도 통도사에서 일본에 있는 고려 불화를 모시고 와서 전시를 한 일이 있습니다. 그때 보신 분도 있을 겁니다. 그 불화 크기가 어마어마하고 고려불화를 대표하는 걸작이라 당시 언론이 평가하기를 인류문화사 중 회화(그림)에서 최고의 걸작이라고 했습니다. 옛날에 프랑스 루불 박물관에 갔더니 사람이 가장 많은 큰 홀이 하나 있는데 맞은 편 벽면에 그림이 하나만 걸려있는 것이 '모나리자'로 레오나르도가 그린 겁니다. 그림은 크지도 않고 한 여인의 초상화였습니다. 서양 사람이 생각하기에 그림으로 그려진 작품 중에서 모나리자가 최고라 했는데 그보다 더 위대한 회화로 관음상을 그린 고려불화가 최고라 평가했습니다. 그 불화만 그런 것이 아니라 고려불화는 아주 우수하여서 그림에 별 조예가 없는 사람이 봐도 우수하다는 걸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고려불화가 우리나라에는 조금밖에 없고 있는 것도 수준이 떨어지는 거라고 합니다. 우수한 불화는 일본에 다 있는데 백여 점이 있고 유럽이나 미국에도 몇 점 있다고 합니다.
부처님이 아무리 범소유상이 개시허망이라고 얘기해도 우리는 다 상에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저 사람이 얼마나 인품이 아름다운가에 끌리는 게 아니고 잘 생긴 얼굴에 속아서 결혼하여 신세 버린 사람이 많습니다. 내가 큰 도인인 줄 알고 많은 사람이 와서 딸 결혼시키려면 뭘 봐야 하는지 물어보는데 인품을 안 보고 상만 보는 거기에만 속지 않으면 된다고 말합니다. 내 앞에서는 그리 한다고 해놓고 가서는 상에 속아서 결혼합니다. 「여리실견분」에 이어 「정신희유분」에서는 32상 80종호로 부처님을 보지 말라고 하니 그러면 누가 불교를 믿겠는가 하니 그래도 전생에 선근을 닦은 사람은 불교를 믿을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7분 「무득무설분」을 하겠습니다. 얻을 것도 없고 설할 것도 없다고 대체로 번역하는데 저는 의미를 색다르게 해서 얻은 것도 없고 설법한 것도 없다고 현재형으로 문장을 바꿨습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익히 잘 아시는 것처럼 '무상정등정각'으로 번역하는데 무상, 위가 없고 정등, 바르고 평등하여 정각, 바른 깨달음입니다. 정등의 평등하다는 사상을 이야기하는 종교는 불교밖에 없습니다.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 위대한 종교라고 스스로 주장하는 종교인들이 갖고 있는 것 중에 가장 부족한 것은 평등을 얘기하지 않은 겁니다. 인간은 결코 평등하지 않다고 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자와 여자가 평등하다고 보지 않는데 오랜 역사를 거쳐서 지금도 마찬가지로 여자 성직자를 보편적으로 두고 있지 않습니다. 천주교에 여자 신부는 없고 수녀와 수사는 성직자가 아니라 유일한 성직자는 신부밖에 없습니다.
대승불교에 와서 스님들은 신도들과 같은 보살이라 경전에서도 보살이 자주 나옵니다. 보살은 누구나 수행할 수 있고 누구나 불법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스님은 독신으로 살아서 도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 재가자도 아무 차별없이 도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에서 처음에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 때 남자만 만들어서 낮잠 잘 때 갈비뼈를 하나 슬쩍 뽑아서 만든 게 여자라 성직자로 안 만들고 불교는 부처님 당시에 이미 여성 성직자가 있어서 대승불교 때에 여성 스님이 생긴 게 아닙니다. 마하파자파티와 야수다라가 와서 출가를 허용해달라고 해서 허용했습니다. 불교는 사람만 평등하다는 게 아니라 모든 생명 있는 것은 평등하다고 봅니다.
구한 말 '최수운'이란 분이 만든 동학에서는 인내천, 사람이 하늘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것을 다룬 '개벽'이란 영화를 '임권택' 감독이 만들었는데 제가 좋아하는 영화입니다. 그 영화에 보면 최수운 선생의 법통을 이은 '해월'이란 제자가 바닷가를 걸어갈 때 옆에서 딸이 '저 조개도 한울님입니까' 하고 물으니 '그래, 모든 생명 있는 것은 다 한울님이다' 하니 '그럼 우리는 한울님을 먹는 거네' 하고 '그래, 한울님은 한울님을 먹고 살지' 하는 대사가 나오는데 이 얼마나 위대합니까? 동학하는 분들께 제가 얘기하는 것 중 하나가 인내천이란 사상이 어디에서 나왔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심즉불'이라고 마음에서 나온 거라 생각합니다.
조선시대 허응당 보우라는 스님이 계셨는데 문정왕후에게 발탁이 되어 불교를 중흥시키려고 무진한 애를 쓰다 제주도에 귀양 가서 매 맞아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불교로 보면 순교자입니다. 그 엄혹한 조선시대의 유학사회에서 이 스님이 주장한 것이 '인즉불'로 사람이 부처입니다. 우리가 마음이 부처라고 하면 상당히 관념적인 것이고 사람이 부처라고 하면 현실적입니다. 남의 집 종사는 사람도 부처이고 임금도 부처라 너도 나도, 남자도 여자도 모두 부처라 계급을 부정하는 말입니다. 허응당 보우 스님의 어록을 보면 감동적인 말씀이 많고 시도 좋은 시가 많습니다.
무유정법, 법이란 정해진 게 없다는 뜻입니다. 외워두면 좋습니다. 부처님이 우리한테 일러준 경전 가운데 천고에 훌륭한 법문입니다. 무유정법이란 말 한마디만 외우고 마음에 담아두어도 깨달음을 얻습니다. 제가 자주 비유를 드는 게 있습니다. 출가하기 전에 종갓집 15대 종손으로 조선 명종 때 지은 고택이 지금도 있고 대문 기둥 주춧돌이 거북으로 되어 있는 건 이 집만 유일합니다. 그 집안에 양반집 가문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평생 수절하고 사는 누님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결혼할 때 신부집에서 결혼식하고 3일 밤 잔 뒤 신부를 데리고 신랑집으로 가는데 신랑이 1년 후에 데려가기로 하고 그냥 갔습니다. 그러다 해방이 되어 일본에 있던 신랑은 일본에서 조총련에 속하다 보니 나오질 못하고 일본에서 장가 가서 아들딸 낳고 잘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목숨 보다 더 귀중하다고 생각했던 그 가치관이 때로는 아주 허망하고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 되기도 합니다. 개시허망입니다. 여러분이 갖고 있는 생각 가운데 목숨보다 더 귀중한 윤리와 도덕 진리를 최고의 가치라 생각하지만 때로는 아무 쓰잘데기 없어 허망한 것이 많습니다.
옛날에는 지구가 두부처럼 네모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제사 지낼 때 위패에 유교에서는 지방이라고 쓰는데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는 말에서 나왔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지구가 둥글어서 허공 중에 떠있다고 하면 안 믿고 무거운 것이 어떻게 허공에 떠있을 수 있느냐고 생각할 겁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가 진리라고 믿었던 것이 때로는 개시허망이 됩니다. 내가 행자 때 공양주를 하는데 관음재일 같은 날은 신도가 많아서 2천 명 이상의 밥을 가마솥에다 나무로 불 때서 하려면 번번히 밥을 못해서 태우거나 설게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공양주를 하면서 밥솥에 물을 많이 잡아서 뚜껑을 안 덮고 불을 때다가 밥이 잦아들 때 쯤 뚜껑을 덮으니 밥이 잘 되어서 행자 때 밥 잘하는 달인이 되었습니다. 밥하는 것도 방법이 고정되어 있는 게 아니라 새로운 방법을 터득할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도를 깨달아야 하는데 밥 하는 걸 깨달았네요.
무위법은 무유정법과 같은 뜻입니다. 무위법으로서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는 정말 위대한 말씀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말하길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은 하지 말자고 하는데 별 차이는 없는 말입니다. 여자와 남자는 분명하게 다르지만 그 다름을 갖고 평등하지 않다고 하면 안 됩니다. 차별이 있다고 해서 고유한 평등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공자에게 어떤 사람이 찾아와서 선생님의 가르침을 한 마디로 얘기하면 무엇인가 하고 물어보니 직(直), 곧음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사람이 와서 물을 때는 서(恕), 용서라고 합니다. 사람이 와서 물을 때 마다 다르게 답한다고 해서 틀린 건 아닙니다. 불교에서도 적적대의, 핵심 가르침이 무어냐고 물으면 다르게 대답한다고 틀린 건 아닙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하지만 자식을 키워보면 때로는 관심을 많이 줘야 잘 되는 자식이 있고 때로는 관심을 덜 줘도 되는 자식이 있는데 자식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똑같이 해야된다고 하면 안 되는 것처럼 고정된 법이 없이 차별을 둔다는 뜻입니다. (마음 둘 곳 노래)
우리가 『금강경』을 공부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상기해야할 대목은 제2분의 「선현기청분」에서 수보리가 부처님께 '우리의 마음을 어디에 두며 어떻게 항복 받습니까?' 하는 질문에 부처님의 답변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으면 보살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 답변을 해석하는 게 지금의 부분입니다. 「여리실견분」에서는 부처님도 상이 있는 것을 허용하지 않아서 32상 80종호로 부처를 보면 안 된다고 했고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건 처음 듣는 수승한 법문인데 누가 여기에 믿음을 내겠습니까 하는 「정신희유분」을 지나 지금 그를 해설하는 「무득부설분」에 왔습니다.
다른 차원에서 비유를 들어 말씀드리면 중국 문화유산 중에서 그들이 가장 최고로 자랑하는 것이 만리장성과 자금성입니다. 제가 파리의 베르사유 궁전도 보고 로마의 콜로세움이라는 무너진 운동장도 보고 돌기둥을 세운 신전도 봤습니다. 중국이 수많은 인민의 피를 흘리게 해서 만리장성을 쌓은 건데 내가 다니며 본 인간의 건축물 가운데 만리장성은 두고라도 자금성보다 위대한 건 없었습니다. 본 지가 상당히 오래 되었는데 당시로선 큰 돈인 중국 돈 60원 내고 몇 번씩 봤습니다. 오늘날 그 자금성이 중국인의 자긍심이고 인민의 고혈로 황제가 살겠다고 그렇게 큰 궁궐을 지었을 때 다 욕했겠지만 세월이 흐르니까 중국을 상징하는 최고의 문화재가 되어서 누구나 보고 감동을 하게 됩니다.
상이 다 개시허망한 것이지만 고려시대 때 그 폭이 3m나 되는 큰 비단을 짜려고 특수한 베틀을 만들어 베를 짜서 불화를 그린 것이 우리가 격외도리로 보면 쓸 데 없는 짓이라고 한 방망이 때릴 만하지만 그 그림이 오늘날에 와서 얼마나 우리 마음에 감동을 주는지 모릅니다. 그림을 통해서 관세음보살의 형상이 없는 자비사상이지만 관세음보살의 거룩한 덕화가 우리한테 피부로 와서 닿습니다. 나는 거기 가서 볼 때 고개가 저절로 숙여져서 그 얼굴이 어찌나 거룩하고 아름답게 보이는지 감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개시허망이지만 불사를 잘 해서 법당 잘 만들고 부처님을 거룩하게 조성하면 많은 사람이 그에 감동을 받습니다. (거리의 성자 노래)
우리가 뗏목이 없으면 강을 건널 수 없습니다. 우리가 법당을 장엄하고 불상을 거룩하게 모시고 이렇게 모여서 경전을 공부하는 것이 개시허망이지만 이 허망한 상을 통해서만이 강을 건널 수 있습니다. 이런 걸 보면 경전이 얼마나 위대합니까? 내 설법은 뗏목과 같은 것이라 이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너가라. 강을 건너고 나서는 뗏목을 버리고 갈 길을 가라고 합니다. 뗏목은 목적이 아닙니다. 불상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 아니고 해인사 팔만대장경 조성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 아닙니다. 팔만대장경을 조성해서 그 경전을 읽어서 그 경전의 내용을 깨우쳐야 뗏목을 타고 강을 건너가는 겁니다. 내가 여기 불광법회에 와서 보니 큰스님의 덕화로 불광사 법당이 거룩하게 만들어졌는데 저에게 여러분한테 설법하는 기회를 주니 여러분이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지 모르겠습니다. 이런 법당을 통해서 우리가 강을 건너려고 하는 거 아닙니까? 반야바라밀을 하려는 겁니다. 반야바라밀은 이 언덕에서 저 언덕으로 건너는 겁니다. 건너는 데 목적이 있으므로 우리는 모두 금강경을 통하여 저 언덕으로 건너가도록 더욱 분발합시다. (광덕스님 노래)
우리는 횃불이다. 스스로 타오르며 역사를 밝힌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 국토 성취한다
우리는 불광법등입니다. 전법으로 최상의 보은을 삼겠습니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보현행원으로 보리 이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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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는
본 법회일지를 작성하는 일이
섬세한 관음불화를 그리기 위해
저 고려 여인들이 큰 베틀을 차려놓고 귀중한 대형비단을
한땀한땀 엮어가는
고되지만 성스러운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비단 위 대형의 고려불화가
훗날의 모든 이들에게 감동을 주듯이
이 법회일지의 고된 작업이
필경 머지않은 장래의
불광정상화가 이루어졌을 때
소중한 불광역사의 기록물이 될 것이라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본 일지의 작성은
직접 법문을 글로 옮겨 작성하는
마음님과 바라밀님의 노고를 넘어
화보촬영에 애쓰시는 여럿의
도반님들,
나아가 거룩한 법회를 열어가는
많은 불광형제분들,
또한 정상화에의 기원을 함께하는
모든 분들의 성원 속에
이루어지는 소중한 불사에 다름아니라 생각합니다.
이 법회일지를 통하여
법문 중에 놓친 부분을
다시금 읽어 복습할 수 있고
사정으로 법회에 동참치 못한 경우
다양한 화보를 통한 설명과
문자화된 법문을 통해서 생생한 법회의 상황과 법문을 접할 수 있게 되니 참으로
감사해야될 일이라 여깁니다.
오늘도 법회 동참치 못한 상태에서
이 법회일지를 통하여
생생한 법회소식을 접하고
법문을 유튜브로도 듣고
이처럼 문자로도 새기니
참으로 좋고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바라밀 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힘든 이 기록의 순간들이 헛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대종사 품계를 받으시는 스님이 출현한 불광 문중에서
법회를 이어 가고자 하는 이 불광 형제들의 발원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요?
송암 스님의 표현대로 불광 형제들이 마구니'라서?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