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도전(鄭道傳)의 죽창명(竹窓銘)
정도전(鄭道傳)은 조선 개국의 핵심 주역으로서 고려 말기의 사회모순을 해결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하여 새로운 왕조를 개창(開創)했다. 각종 제도의 개혁과 정비를 통해 조선왕조 500년의 기틀을 다져놓았다.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종지(宗之), 호는 삼봉(三峰)이다.(1342-1398)
삼봉(三峰)선생은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 제(齊)나라의 관중(管仲)과 같은 분으로, 학문과 포부가 일세를 풍미(風靡)했다. 선생이 아니었다면 누구도 새로운 나라의 국기(國基)를 만들어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선생은 단양(丹陽)출생으로 도담삼봉(島潭三峰)을 사랑해서 스스로 삼봉(三峰)이라 호를 짓고, 틈만 나면 그 곳에서 소일하였다고 전한다.
죽창명병서(竹窓銘幷序-죽창명, 서문도 함께)-정도전(鄭道傳)
삼봉 은자가 언창의 부친 이 선생을 보고 묻기를, “선생이 아호를 죽창이라고 한다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대개 대나무는 그 속이 비고 그 마디가 곧으며, 그 빛이 차가운 겨울을 지나도 변하지 않기 때문에, 군자들이 그것을 숭상하여 자기의 지조를 가다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경>에서도 ’군자의 본질이 아름다운 것이나, 학문이 스스로 닦여져 진전됨은 그 의탁한 바가 깊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옛 사람이 대나무에서 취한 것이 하나가 아닌데 선생이 편하게 여기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하니
(三峯隱者見彥暢父李先生問曰 子號竹窓 然乎 夫竹 其心虛 其節直 其色經 歲寒而不改 是以君子尙之 以勵其操 至於詩 以興君子生質之美 學問自修之進 則其所托者深矣 古人之取於竹 非一 敢問所安)
선생이 말하기를, “아닙니다. 그러한 고상한 지론은 없습니다. 다만 대나무가 봄에는 새들에게 알맞아 그 울음소리가 드높고, 여름에는 바람 부는 데 알맞아 그 기운이 맑고 상쾌하며, 가을이나 겨울에는 눈과 달에 알맞아 그 모양이 쇄락합니다. 그리하여 아침 이슬, 저녁연기, 낮 그림자, 밤 소리에 이르기까지 무릇 이목에 접하는 것치고는 한 점도 진속(塵俗)의 누(累)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일찍 일어나서 세수하고, 죽창에 앉아 탁자를 정돈하고 향을 피운 다음 글을 읽기도 하며 거문고를 타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온갖 생각을 떨쳐 버리고 묵묵히 꿇어앉아서 죽창에 자신이 기대고 있는 것조차 잊기도 합니다.” 하였다. (先生曰未也 無甚高論 且竹 春宜鳥 其聲高亮 夏宜風 其氣淸爽 秋冬宜雪月 其容灑落 至於朝露夕煙晝影夜響 凡所以接乎耳目者 無一點塵俗之累 予於是早起 盥瀹坐竹窓淨几焚香 或讀書或彈琴 有時撥置萬慮 默然危坐 不如吾身之寄於竹窓也)
아! 알겠구나. 선생의 즐거움은 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마음에 얻은 것을 대에다가 의탁했을 뿐이다. 청하여 이것으로 명(銘)을 짓는다. (噫 先生之樂不在竹 但得之心而寓之於竹耳 請以是銘之)
有闢其窓(유벽기창) : 활짝 열린 그 창문
有鬱者竹(유울자죽) : 무성한 것 대나무다
君子攸宇(군자유우) : 군자의 사시는 집
其貞如玉(기정여옥) : 그 정조 옥과 같다
左圖右書(좌도우서) : 좌우에 책 싸놓고
閱此朝夕(열차조석) : 아침저녁 펼쳐 보네
不物於物(부물어물) : 사물에 끌림이 아니라
維樂其樂(유락기락) : 오직 그 즐거움을 즐기네.
예로부터 대나무는 군자의 덕을 상징했다. 대나무는 네 가지 덕목이 있다 하였는데, 굳은 뿌리와, 곧은 줄기와, 단단한 마디와, 텅 빈 속이 그 것이다. 삼봉선생은 이선생이 창밖에 대나무를 심어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묻고 대답한 뒤에, 이 문답의 대의를 살려서 죽창명(竹窓銘)을 지었다.
“언제나 창문을 활짝 열어놓으니 그 곳엔 대나무가 무성하기 때문이다. 군지께서 사시는 집, 대나무마디처럼 정조가 맑기도 하시다. 항상 좌우에 책을 쌓아놓고 아침저녁 쉬지 않고 읽으시네. 외물(外物)의 작용에 끌림이 아니라 마음속에서 울어나는 즐거움을 누리실 뿐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