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감자언(賣柑者言)
요즘 귤의 계절이다. 주황색의 은은한 색깔로 외피를 두르고 달콤하면서도 신맛을 내는 귤은 늦가을에 나와 겨울 한철을 휩쓰는 과일이다. 요즘 경기 부진으로 인하여 모임이 적은데 수확량이 많아 가격이 폭락해 재배 농가들이 울상이라고 하지만 원래의 인기를 바탕으로 값을 회복하리라고 믿는다.
주원장(朱元璋)을 도와 명(明)을 세우는 데 한 몫 거든 유기(劉基)라는 인물이 귤을 주제로 하여 쓴 “매감자언(賣柑者言)”이라는 시가 있다.
杭有賣果者: 항주에 어느 과일 장수는
善藏柑: 감귤 저장하는 재주가 훌륭해
涉寒暑不潰: 겨울이 지나 여름이 다가도록 변하지않고
出之燁然: 꺼내놓으면 보기에 싱싱하고 신선하여
玉質而金色: 때깔 고운 황금색이라
置于市賈十倍: 시장에 내어놓으면 열배의 높은 값이라도
人爭鬻之: 사람들이 다투어 사가는데
予貿得其一: 나도 그 하나를 구입하여
剖之: 속을 갈라보니
如有煙撲口鼻: 연기같은 것이 피여올라 코끝을 쏘는지라
視其中: 그속을 드려다보니
則乾若敗絮: 바싹마른 솜털이 엉켜있을 뿐이었다
予怪而問之曰: 내 이를 괴이여겨 묻기를
若所市於人者: 이곳 저자 사람들은
將以實籩豆: 이 과일을 제기에 담아
奉祭祀: 제사를 지낼 것이고
供賓客乎: 또 이를 손님에게 대접 하는가?
將衒外: 모양은 뻔지르하여
以惑愚瞽也: 어리석은 자들을 혼란스럽게 하리니
甚矣哉: 너무 심한 처사이며
為欺也: 사람을 속이는 사기가 아닌가?
賣者笑曰: 장사꾼이 웃으며 말하길
吾業是有年矣: 내 이것으로 생업을 삼은지 오래고
吾賴: 내 이를 의지하여
是以食吾軀: 고달픈 이 한 몸 먹여 살리는데
吾售之: 나는 이것을 팔고
人取之: 사람들은 사가지만
未聞有言: 아무도 불평을 말하는 자 없었는데
而獨不足子所乎: 어찌하여 그대는 불평하는가
世之為欺者: 세상엔 사람을 속이는 자
不寡矣: 적지 않거늘
而獨我也乎: 나혼자 그러한가는
吾子未之思也: 내 생각이 미치지 않는구려
今夫佩虎符: 지금 병권을 거머쥔 관리가 되여
坐皋比者: 호피(虎皮)를 깔고 높이 앉은 자
洸洸乎: 위세는 뻔쩍 뻔쩍 빛이나
干城之具也: 나라지키는 훌륭한 인재로 보이지마는
果能: 과연 능히
授孫吳之略耶: 손무(孫武), 오기(吳起)의 지략을 배웠는가
峨大冠: 머리에 높고 우람한 관을 쓰고
拖長紳者: 허리에 아름다운 띠를 길게느리고
昂昂乎: 지절이 고상하여
廟堂之器也: 종묘와 사직을 지키는 신하들은
果能: 과연 능히
建伊皋之業耶: 이윤과 고요의 도리를 닦고 행하는가?
盜起而不知御: 도적이 일어나도 막을줄 모르고
民困而不知救: 곤궁한 백성을 구제할줄 모르며
吏奸而不知禁: 관리들의 간교한 도적질을 금하지 못하며
法斁而不知理: 올바른 법의 이치를 알지못하니
坐糜廩粟而: 하는일 없이 봉록을 축내면서도
不知恥: 부끄러운줄 모르며
觀其坐坐高堂: 앉은 자리 바라보면 고당위에 덩그렇고
騎大馬: 큰 말 비껴타고
醉醉醴而: 향그러운 미주에 취하고
飫肥鮮者: 기름지고 맛난 음식을 먹으니
孰不: 뉘라서 감히
巍巍乎可畏: 그 위엄이 두렵지 않으랴
赫赫可象也: 혁혁한 기상이 부러울지로다
又何往而: 그러나 뉘라서 어찌
不金玉其外: 화려한 겉모습에 감춰진 썩은 속을 모르랴
敗絮其中也哉: 그 속에도 썩어 말라버린 솜털이 있는 것을
今子: 지금 그대는
是之不察: 이러한 이치를 살피지 못하고
而以察吾柑: 하찬은 밀감속의 솜털을 탓하려 드는구료.
予默然無以應: 내 아득하여 대답을 못하고
退而思其言: 물러나와 가만이 생각하니
類東方生: 동방삭이 같은 무리로
滑稽之流: 궤변으로 우스개소리를 지껄이기는 하나
豈其忿世: 어찌 더럽게 돌아가는 세상꼴에
嫉邪者耶: 분통이 터저 질타하지 않으랴
而託於柑以諷耶: 밀감을 통하여 풍자하는 말이로다.
항주에 사는 어느 과일 장수는 지금처럼 저장 창고도 없는데 감귤 저장하는 재주가 훌륭했다. 그러나 그가 저장한 감귤은 보기는 좋은데 속은 썩은 것이어서 마치 성서 속의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한 ‘회칠한 무덤’ 같았다. 이를 유기가 질타하니 그는 도리어 위정자들을 이렇게 조롱하고 있다. “화려한 겉모습에 감춰진 썩은 속이 있는 사람, 즉 그 속에 썩어 말라버린 솜털이 있는 사람, 곧 겉을 번지르르하게 두르고 속은 문드러진 솜덩이처럼 썩어 버린 사람(金玉其外 敗絮其中).”
예나 지금이나 위선자들이 많다. 위선이란 단어는 사실 속은 시커먼데 컽은 그렇지 않는 것을 말한다. 외식, 즉 위선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persona”로서 이 단어에서 ‘person’, 즉 사람과 ‘personality’, 즉 인격이라는 영어 단어가 나왔다. 이 단어는 본디 연극배우가 쓰는 탈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그것이 점차 인생이라는 연극의 배우인 인간 개인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인간의 인격이라는 것이 본디 그렇다. 겉 다르고 속 다른 것이 인격이다.
위정자들 특히 정치인들 중에 위선자들이 많다. 사실 정치가 그런 것이다. 아니어도 맞는 척 맞아도 아닌 척 하는 것이 정치다. 부정한 돈을 받았다는 혐의로 정치인들이 잇따라 검찰에 불려 간다.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간혹 쉬어 가는가 싶다가도 한때 잘나가던 정치인의 수뢰 스캔들은 버젓이 이어진다. 한국 사회의 깊은 병증, 고질(痼疾)이 돼 버린 지 오래다. 사람만 다르지, 그 악취는 매년 반복된다. “년년세세취상사, 세세년년인부동(年年歲歲臭相似, 歲歲年年人不同)”이라.
겉은 번지르르한데 속을 갈라보니 그 썩은 냄새가 진동하여 이 사회에 악취가 풍길까 싶어 선거가 있는 올 해 세밑이 우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