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요즘 젊은 세대들은 왜정 말기와 8.15해방 후에 "신식 교육"을 받은 세대들은 진짜 우리 것은 제대로
읽히지 못한 상태에서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의 정체성이 많은 혼란을 가져오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옛것을 외국인 중국이나 일본 것으로 착각을 일으키는 우(愚)를 범하는 예가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자주
쓰는 말, 아니 교육법 제 1조에 있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을 한자(漢字)의 원음대로 해석하는 이유와 "단군을 신화의 인물"이라고 하면서도 단군
사상(檀君思想)인 홍익인간(弘益人間)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단군(檀君)사상이 아닌 더 깊이 오래된 한웅 천왕 신시(神市)시대의 홍익인간사상은 한자(漢字)가 창작되기 전부터 있었던
것을 한자로 번역 됐다는 사실을 잃어버리고 생각한다면 크나큰 우(愚)를 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고대 글자 중에는
치우(蚩尤) 자오지(慈烏支) 14대 한웅 천왕이 사용했다는 전쟁시 사용하던 투전문(鬪戰文) 또는 튀전 문이 있었다는데 8.15해방 전까지 도박용
튀전에 그려져 있는 문자가 아닐까? 그리고 단군의 전자(篆字)와 한웅천왕 신시(神市)시대 신지씨(神誌氏)의 녹도문자(鹿圖文字)는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한단고기 단군 세기 편에 단군 3세 가륵(재위45년) 때 "BC; 2181년 경자 2년, 아직 풍속이 하나 같지
않았다.
지방마다 말이 서로 틀리고 형상으로 뜻을 나타내는 참글(眞書)이 있다해도 열 집사는 마을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백 리 되는 땅의 나라에서도 글을 서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에 삼랑 을보륵에게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어 이를
"가림토(加臨土)"라 하니 그 글은 다음과 같았다".(글자생략)
【2】;중국의 한자(漢字)을 창작했다는 창힐(倉署)에 대한 한단고기에 나와 있는 내용을
소개합니다.
▲;한단고기 임승국 저 삼성기전 하편참조(42p,)
창힐; 문자(文字)의 조상이라 알려진 중국사의 전설적인
인물 황제(黃帝)의 신하로서 새 발자국을 보고 글자를 지었다고 한다.
▲;"황제헌원; 동작빈의 연표에 따르면 BC; 2692~2592(100세)의 인물이요, 삼황 즉 태호복희(太昊伏犧) 염제신농
및 황제 헌원은 한사람이다.
갈홍(葛弘)의<포박자(抱朴子)>는<황제가 청구에 와서 풍산을 지나다가
자부선생(紫府先生)을 만나 삼황내문(三皇內文)을 받아 만신(萬神)을 부르고 부렸다.(昔有黃帝 東到靑丘 過風山 見紫府先生 受三皇內文
以刻召萬神-葛弘 抱朴子.)라고 했으니 그는 역시 어김없는 동이 족(東夷族)이다.
그런데 여기 웃지 못할 이야기 거리가 하나 있으니 가지마(鹿島)의 어처구니없는 주장에 현혹되어선 안되겠다.
그는
황제 헌원이 아카드왕 사루곤을 모델로 하여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중국사의 삼황오제는 아카드 왕조사의 투영에 지나지 않는다고
잠꼬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 없는 일본사가 아카드 왕조의 역사를 타고 실크로드를 달려 하늘로 비상하려는 음흉한
속셈, 즉 새로운 황국사관의 태동이며 몸부림을 경계해야 한다.
운마왕 루갈작기시(蚩尤) 등을 열거하며 서양사의 투영이 곧
사마천의 <사기>에 보이는 삼황오제의 기사라고 중국사까지 오염하며 일본사 도약의 호기를 잡으려 하였다.
일본의
NHK방송사가 실크로드의 현지 답사 찰영과 방영까지 막대한 비용을 들이며 감행한 것이 이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심한
억측일까?
이를 국내의 KBS가 받아 재방영하는데 있어서도 저들의 의도를 먼저 간파하고 주의했어야 할
일이다.
우리는 새로운 일본의 황국사관 음모를 도와주는 공범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가지마 노보루가 번역한
<한단고기>를 경계해야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가 <한단고기>를 수 백부씩 한국에 무상으로 기증하는 속셈도 무엇인지 따져
볼일이다."
▲;한단고기 임승국 저 태백일사/신시본기 참조.(191p)
진나라의<천문지(天文誌)>
"<치우기(蚩尤旗)는
꼬리별 혜성과 비슷하여 뒤가 꼬부라져서 깃발을 닮았다. 깃발이 보이는 곳 바로 밑에 병란이 있다.>고 하였으니, 이는 치우 천왕이 승천하여
별이 되신 때문이다.
또 <통지(通志)>씨족략(氏族略)엔 <치씨는 치우의 후예>라고 했고 혹은
<창일(蒼署)은 고신(高辛)과 더불어 역시 모두 치우씨의 후예이다.
대극성(大棘城)에 태어나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산동의
회북(淮北)으로 옮겨 살았다>고 하였으니 대저 치우 천왕의 영풍위열(英風偉烈)함이 먼 나라의 깊숙한 곳에 이르기까지 전파되었음을 이로써
미루어 알 수 있다."
▲; 한단고기 임승국 저 태백일사/삼한관경본기 참조.(198p)
마한세가 상;
"곰 무리와 범 무리가 서로 다투던 옛날 한웅 천황께서
아직 군림하시기 전 묘한(苗桓)은 곧 구황(九皇)의 하나였다.
옛적 이미 우리 한족(桓族)이 유목 농경하던 때에 신시(神市)의
가르침이 열렸다.
땅으로서 다스리기 위하여 적(積)을 하나로 하고, 음(陰)은 십거(十鉅)를 세우고 양(陽)은 무궤(無 )를
만들고 충(衷)은 여기에서 생했다.
봉황은 날아 모여들어 백아강(白牙岡)에 살고 선인은 법수교(法首橋)로 오고갔으니 법수는
선인의 이름이다.
사람과 문물이 어느 덧 풍숙 하였으니 때마침 이때에 자부선생(紫府先生)께서 칠회제신(七回祭神)의 책력을
만드시고 삼황내문(三皇內文)을 천폐(天陛)에 진상하니, 천황께서 이를 칭찬하였다.
삼청궁(三淸宮)을 세우시어 그곳에 거하시니,
공공(共工),헌원(軒轅),창힐(倉署), 대요(大橈)의 무리가 모두 와 여기서 배웠다,
이에 윷놀이를 만들어 이로서 한역(桓易)을
강연하니 대저 신지(神誌) 혁덕(赫德)이 적은 바로 천부의 유의(遺意)였다.
옛날에 한웅 천왕께서는 천하가 크다함을 아시고 한 사람이 능히 교화할 수 있는 바가 아니라 하시며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시고 곡식을 주관하게 하고, 생명을 주관하고 형벌을 주관하며 병마와 선악을 주관하게 하고 무릇 인간세상의 360여 사를 주관케
하시더라.
책력을 만드시어 365일 5시간 48분46초를 일년으로 하니 이것이 바로 삼신일체의 웃어른이 남긴
법이다.
고로 삼신으로써 가르침을 세워 뜻을 펴는 기치로 삼았다. 그 글에 가라사대" 일신(一神) 충(衷)에 내리고 성(性)은
광명으로 통하니 세상에 있으면서 이치에 따라 교화하여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고 했다.
<一神降衷;→ 性通光明→ 在世理化→
弘益人間>
이때부터 소도(蘇塗)가 세워지는 곳마다 신의 형상의 웅상(雄常)을 보게 되었다. 산꼭대기에는 어디나 사방에서 온
백성들이 있었는데 동그랗게 둘러 부락을 이루었으니 네 집이 한 우물을 썼으며, 20분의 1의 세를 냈다.
해마다 풍년이 드니
언덕과 산에는 곡식이 쌓이고 이를 즐겨 춤추며 태백환무(太白環舞)의 노래를 지어 이를 전했다."
▲;한단고기 임승국 저 자부(紫府)선생(200p)
"자부선생; 갈홍(葛弘)(283~343,진나라의 도사)의 <포박자(抱朴子)>란 책은 자부선생을 다음처럼
적어놓았다. 즉 "昔有黃帝 東到靑邱 過風山 見紫府先生 受三皇內文 以刻召萬神"이는 "옛날에 황제헌원이 있었다.
그가 동쪽으로
청구에 이르러 풍산을 지나 자부선생을 뵙고 삼황내문을 받아 이를 가지고 온갖 만가지 신을 불러 부렸다."는 뜻이다.
이에 의하면
중국삼황오제의 한 분인 황제헌원의 스승에 해당하는 분이 바로 자부선생이시다. 그가 고조선의 신선임은 청구 국이나 풍산의 기록으로도 자명하다.
풍산이 다름 아닌 <밝산>으로 발음되며 청구가 오늘날의 산동 반도 지방으로 비정 됨을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갈홍의 <박포자>가 말하는 자부선생의 기록과<한단고기>의 자부선생 기록과 일치함은 어느 쪽이 상대방의
기록을 표절한 때문일 것이다.
여기서 어느 쪽을 확언하지 않는 이유를 독자들은 짐작할 것으로 안다.<한단고기>의
기록이 <포박자>보다 더 구체적이요, 심지어 <칠회제신의 책력이니> 공공, 헌원, 창힐, 대요의 무리"까지 거론하고 있으니
더욱 인상적이다.
칠회제신(七回祭神)의 책력: 은(殷)나라의 정사는 매일매일 제사지내는 것을 정사의 대종으로 삼고, 매일 제사지내는
일과표가 작성되어 있었는데, 이는 갑골문자(甲骨文字)의 발굴 연구로 구체화되고 있다.(祭政一致)
여기 책력법도 그 제사제도와
유관한 것일 게다. 칠회는 오행(金木水火土)또는 오성(五星)에 음양(日月)을 보태서 오늘날 쓰는 日月火水木金土의 일주일을 말하는
것이리라."
§; 그 외에도 황제 헌원과 한문창작(漢文創作)자인 창힐(倉署)을 부자지간(父子之間)으로
설명하는 기록도 있으니 참고 바라며, 황제의 생존 년대는 BC;2692~2592(100세) 성은 희(姬)씨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중국의 황제는 애첩으로 소녀(素女)와 현녀(玄女)를 한자(漢字)를 제작한 아들 창힐에게 주었으나 황제가 다시
소녀(素女)와 현녀(玄女)를 불러다 농락(弄樂)하니 창힐은 부도덕한 아버지 황제를 떠나서 14대 한웅천황 자오지(慈烏支)
치우(蚩尤)천왕(BC;2749~2598;151세)과 적대적 관계로 수 차례 생포 되었다하니 신하 신지(神誌) 밑에서 한자(漢字)를 더 연구했다는
기록은 황제도 동이 족인데 한웅과 결별해서 싸우고 있었다고 봐야합니다.
※;참고사항;(단군=BC;2370(辛卯)년5월2일 寅時생).황제 헌원과는 거리가 있음.
그러나 소녀(素女)는
피부색이 흰 백인여인이고, 현녀(玄女)는 피부색이 검은 흑인여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흑인여인과 구분해야 하는 것은 앞에서
5색족 중에서 적부인(赤部人)과 혼돈이 생길 수 있고 아프리카 흑인과 인도 및 중동지역 약간 검은 피부와는 구별되는 사항입니다.
【3】;외람 되는 이야기라고 주장하는 분도 있을 지 모르지만 "한자(漢字)는 우리 글이다"라고
주장하시면서 책을 내신 박문기씨 표지소개문을 간략하게 다시 올려봅니다.
▼;한자(漢字)는 일본인들이 만들어낸 말이다.!
오늘날 우리는 "한자"를 한나라 때 만들어진 것으로 여기고 있지만, "한자"니 "한문"이니 하는 말은 일본인들이 이 땅을
무단통치하면서 만들어낸 말이라는 것이라고 박 선생님의 지적합니다.
조선시대에는 이를 참 글이라는 뜻에서 진서(眞書)라 일컬었고,
조선시대에 한문이라는 말이 간혹 있는 것은 한나라 선비들이 지은 문장을 가리키는 말이었지 결코 이 문자 자체를 한문이라고 부른 것이 아니라는
설명입니다.
▼;한자는 우리 글이다.!
우리의 머릿속에 이 글이 중국의 글자라는 생각이 꽉 박혀 있는 상황에서, 박 선생님은 "한자는 우리 글"이라는 대담한 주장을
펼친다.
예컨대 집 가(家)자에 돼지 시(豕)자가 들어 있는 것은 집안에서 돼지를 키웠던 우리 민족의 풍습에서 유래한 것이고,
날 숨을 뜻하는 호(呼)자와 들숨을 뜻하는 흡(吸)자를 중국 발음으로는 "후" "시" 하고 발음하기 때문에 소리가 다 밖으로 나가버리지만 우리
식으로 "호흡"하고 발음하면 소리가 나가고 들어오는 느낌이 분명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쓰고 있는 논 답(沓=畓)자가
중국에는 없다는 사실은 이 문자가 중국인들이 만든 것이 아니라 논농사를 생업으로 삼은 우리 민족이 만든 것임을 증명해준다는 것입니다.
박 선생님은 이러한 주장이 한나라보다 천 수 백년 앞선 은(殷)나라 때에 이미 이 문자의 원형인 갑골문자(甲骨文字)가 있었고 이
은(殷)나라가 우리 동이족의 왕조였음을 각종 사서가 증명해주고 있다는 사실에 의해 뒷받침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참고되는 것은 양자강의 동정호가 있는 지역에서 7천년 전 벼씨가 나왔다고 하며, 옛날 은(殷)나라 초(楚)나라
지역으로 한자발음이 현재도 우리와 같다고 합니다.
▼;한자를 단음(單音)으로 발음하는 민족은 우리뿐이다.!
원래 자기나라의 글자라면 어느 글자나 단음으로 발음 할 수 있어야 하지만, 중국과 일본에서는 거의 다 복음(複音)으로 발음하고
있으며, 오직 우리만이 어떤 글자든지 단음(單音)으로 발음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박 선생님의 주장입니다.
이어서 박 선생님은
음운학(音韻學)에 입각해서 보더라도 이 문자가 우리 글일 수밖에 없다는 논지를 펼치고 있습니다.
예컨대 사람의 입이 하나가 되는
소리를 형상(形象)한 합(合)이라는 글자를 우리 발음으로 하면 입이 닫혀 하나가 되는데, 중국 발음으로 하면 "허"가 되어 입이 열려버리며,
우리의 출입(出入) 발음은 소리의 나가고 들어옴이 분명한데 중국인들은"츄루"하고 발음하기 때문에 소리가 다 밖으로 나가버린다는 것입니다.
▼;문자에는 우리의 문화와 역사가 배어 있다.!
박 선생님의 문자 탐구는 우리 문화와 역사까지 파고든다.
예컨대 오를 등(登)자에 콩 두(豆)자가 들어 있는
이유는 옛날에 우리 조상들이 제사 상에 콩을 올렸기 때문이며, 그래서 지금까지도 제사 상에 콩나물이 빠지지 않고 올라간다는
것입니다.
또한 짧을 단(短)자는 콩 두(豆)은 화실 시(矢)로 길이를 잴 수 없을 정도로 짧다는 뜻을 표현한 글자이고 장례
장(葬)자는, 사체를 풀로 묶어 놓는 모습을 표현한 그린 것이며, 조(弔)자는 옛날에 한 효자가 활 궁(弓)자에 살(l)을 먹이고 부모의 시신을
지킨 데서 유래했다는 등등, 수많은 글자의 유래와 우리 민족의 삶을 연결 지어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습니다.
이어서 박
선생님은 고대 중국에서 임금이 정사를 살피는 곳을 조정(朝廷) 이라 일컬은 이유와 옛 조선(朝鮮)의 관계를 논리 정연하게 설명한
다음, 조공(朝貢)은 천자가 계신 조선(朝鮮)에 바치는 공물을 뜻하는 말이었으며, 사당 묘(廟)자에 조(朝)자가 들어 있는 것은 제후국의 군주가
집을 짓고 조선(朝鮮)을 향해 제사를 지낸 데서 유래했다는 설명을 덧붙입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흥미로운 문자 이야기.!
박 선생님께서 풀어내는 흥미진진한 문자 이야기는 계속 이어져 노비(奴婢)라는 두 글자를 줄여서 "놉(일꾼)"이라 하고,
씨입(氏入)을 한 글자로 줄여 "씹"이라 하고, 여언(女焉)을 줄여 "년"이라 하고, 노음(奴蔭)을 "놈"이라 하고, 조지(祖至)라 적어
놓고"좆"이라 읽는 이른바 반절법(反切法)에 대한 이야기와, 동이족을 뜻하는 이(夷)자를 지금은 흔히 "오랑캐"로 훈독하지만 옛날에는
"어질다"는 뜻으로 쓰였던 이유, 그리고 우리말의 괴한(怪漢), 치한(癡漢), 악한(惡漢)등의 말에 중국사람을 뜻하는 한(漢)자가 들어 있는
이유 등에 대한 명쾌한 해설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일제시대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 조상들은 이 문자를 참글 즉 진서(眞書)라 일컬었을 뿐,"한문"이니 "한자"이니 하는 말을
쓰지 않았다.
"진서(眞書)"라는 말도 한글 즉 언문(言文)이 일반 대중에게 널리 익혀지면서 쓰이게 되었고, 그전에는 그냥 글(契)이라
일컬었던 것이다.
"글(契)"이라는 말은 고조선 시대에 고글(高契)이라는 현인이 음운을 제정하여 읽는 방법을 세상에 알린 데서
유래되었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이 문자는 우리 문화와 우리말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중국문화나 중국말 어디에서도 이 글자가
만들어지게 된 연유를 찾아내기가 어렵다. 즉 "한자"라 이를 만한 근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사슴발자국과 새 발자국의 비판.
우리 역사는 구전(口傳)으로써 역사가 전해져 오다가 환웅 천제 때에 이르러 신지 씨(神誌 氏)가 비로소 말과 행실을 남겨둘 수
있는 글자를 만들었다. 이와 관련하여 <규원사화(揆園史話)>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하고 있습니다.
"신지 씨는 대대로 명령하는 일을 관장하여 오로지 환웅 님의 명령을 출납하는 대변자의 일을 하였다. 그러나 일찍부터
글자가 없어 환웅 님의 말씀을 적어둘 방법이 없었다.
하루는 사냥을 하러 나갔다가 문득 놀라 달아나는 한 마리의 암사슴을
발견하고 활을 당겨 쏘고자 했으나 놓치고 말았다.
이에 사방을 헤매어 찾으려고 산을 넘고 들을 지나 편편한 모래가 있는 곳에
이르렀는데 비로소 암사슴의 뛰어간 발자국을 발견하고서 그 방향을 알게 되었다. 이에 머리 숙여 깊이 생각하고 거듭 감탄하여 이르기를 "말을
남겨두는 방법은 오직 이와 같을 따름이로다!, 오직 이와 같을 따름이로다".하였다. 이날 사냥을 마치고 돌아와 되풀리 하여 깊이 생각하고
세상만물을 살핀 끝에 오랜 시일이 걸리지 아니하여 문자를 만드는 법을 깨닫게 되었으니 이것이 바로 옛 글자의 시작이다."
이와 같이 거의 때를 같이하여 서쪽 한수 유역에 사는 한족들도 문자를 만들었다는 사실 아닌 사실이 전하고 있다. 즉 지금
세상에서 흔히 말하고 있는 황제(黃帝)의 신하 창힐(倉詰)이 새의 발자국을 보고 맨 처음으로 글자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잠시 우리는 어떠한 말이 더 합리적인가를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날아다니는 새의 발자국을 보고 글자를 만들었다는 말과 뛰어 다니는
사슴의 발자국을 보고 글자를 만들었다고 하는 말이 과연 어느 쪽이 옳은가 말이다.
비록 발자국을 보고 글자를 만들었다는 말은
일치하지만 한족의 조상은 공중으로 날아다니는 새의 발자국을 보고 만들었다고 했고 우리 조상은 땅에 뛰어 다니는 사슴의 발자국을 보고
만들었다했으니 그 말의 옳고 그름이 자명하지 않은가 말이다. 한데도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사실 아닌 사실만을 믿고 있는
것이다.(이하생략)
§;그리고 참고로 현재우리는 녹도문자(鹿圖文字)와 스메르의 쐐기문자를 비교검토 연구해야할
때입니다.
【4】;그럼 한자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 중국에서 창힐(倉詰)을 문자(文字)의 조상이라 하면서
황제(黃帝)의 신하로서 "새 발자국을 보고 글자를 지었다고 한다"라고 하는 데, 당초 한자는 새 발자국처럼 생겼는지는 잘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거리가 너무 먼 글자로 생각되며 창힐이 황제 헌원은 BC ; 2692~2592년쯤이면 단군왕검보다는 빠르고 BC; 3898년 개천(開天)한 한웅
천황 거발한 과는 너무 떨어지고 14세 자오지(慈烏支)한웅인 치우(蚩尤)천왕과 전쟁한 기록은 많이 나오나 중국 측 기록과 한단고기기록이 많은
차이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치우(蚩尤) 천왕에 대한 기록은 한단고기 임승국 번역; 주해에서 몇 가지만 참고로
소개하고 저 합니다.
▲;치우천왕; 원래 치우(蚩尤)라 적는다. 이른바 동두철액(銅頭鐵額) 곧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를 가지고 모래와 쇠
가루를 먹고산다는 치우장군은 사실 그의 시대가 철기시대나 동기시대였음을 보여 주는 말이다.
저 삼황(三皇)의 하나인 중국의 황제헌원(黃帝軒轅)과 싸워서 번번이 이겼으나 황제의 지남차(指南車)의 위력 때문에 치우는
패사(敗死)한 것으로<이십오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것도 의심스러운바 있으니, 치우는 황제가 죽은 뒤
80년이나 생존하면서 지금의 티벳(서장)으로 판명된 장당경(藏唐京)에서 왕 노릇을 했다는 설도 나오고 있음이다.
치우 천왕은 <삼성기 전>하편의 신시역대기에 의하면 14세 자오지 천왕은 중국과 한국을 포함한 동방의
군신(軍神)이다.
그의 무덤에서 연기 같은 것이 휘날리면 난리가 난다는 전설이 널리 퍼져 있고, 그 연기를 치우의 깃발이라 한다고 하며,
우리 나라에도 여러 곳에 치우 사당이 모셔있다. 한마디로 우리 민족의 강력함을 상징하는 고대 제왕의 이름이다. 앞의 티벳의 장당경 설은
서경보(徐京保)스님의 설이다.
중국의 기록을 좀 더 살펴보면<이십오사>에는 <고천자지명(古天子之名)>이라 하였고 왕동령(王桐齡)이라는
중국 사학자는"삼묘족(三苗族)의 나라를 구려(九黎=고려=Korea의 원음)라 하고 구려의 임금을 치우라 한다"라고 그의
<중국민족사>에서 말했다.
▲;사마천의 <사기>에 말하기를, "제후가 모두 다 와서 복종하며 따랐기 때문에 치우(蚩尤)가 지극히 횡포하였으나
천하에 능히 이를 벌할 자 없을 때 헌원이 섭정했다. 치우의 형제가 81인이 있었는데, 모두 몸은 짐승의 모습을 하고 사람의 말을 하며,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를 가지고 모래를 먹으며 오구장(五丘杖),도극(刀戟),태노(太弩)를 만드니 그 위세가 천하에 떨쳤다, "치우는 옛 천자의
이름이다",라고 했다.
▲;장당경; 삼국유사의 장단경 기록은 다음과 같다.(원문생략)
호를 단군왕검이라 하고 제요도당의 즉위 50년 경인에 도읍을 평양성에 정하고 처음으로 조선이라 칭한다. 가시 서울을
백악산 아사달 또 다른 이름으로는 궁골산(弓忽山) 또는 금미달(今彌達)로 옮기니 어국(御國)이 1,500년이다. 주나라 무왕이 즉위한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에 봉하니 단군은 장당경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로 돌아오시어 산신이 되시니 단군의 수는 1908세를 누리셨더라
운운.
이 기록에 의하면 단군 조선은 평양도읍시대(반도의 평양이 아님). 백악산 아사달시대. 장당경 시대. 아사달 산신시대로
나눌 수 있다.
셋째의 장당경 시대는 은(殷)나라가 망하고 주(周)나라 무(武)왕이 들어서서 기자가 조선에 온 뒤라 하였으니,
대략 BC; 1,111년경이다.
그런데 얼마 전 일봉 서경보 박사는 치우 천왕께서 티벳에 있는 장당경에 도읍 하여 물경 800년
동안 왕국을 유지하였다고 하며, 티벳 지방을 여행하여 이를 확인했다고 발표한바 있다. 아무튼 장당경의 위치며 장당경 시대에 대해서는 더욱 깊은
연구가 촉구되는 바이다. 행여 장당경을 한반도의 황해도 땅이라는 망발만은 하지 말아야 될 것이다.
▲;태우의(太虞儀)한웅;<참전계경(參佺戒經)>은 고구려 재상 을파소(乙巴素)가 찬한 책이라 하는데 그 책 총론엔
<태호자(太 者)는 태우한웅지자야(太虞桓雄之子也)라는 대목이 있으니, 즉 태호복희(太 伏羲)씨는 태우의한웅의 아들이라는 뜻이므로 여기
태우의한웅은 태호복희의 아버지로 보는 것이 옳을 듯, 태호(太 )는 BC; 3,528~BC; 3,413년의 인물이요 그의 수가 115년이니
태우의한웅의 수도 115년으로 꼭 맞아떨어진다. 그러나 아버지의 수와 아들의 수가 같다고 신기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
§;앞에서 많은 예를 제시한 것은 우리는 우리의 상고사를 제대로 역사를 못 배워서 많은 착각을 하고 있으며,
단군 사상과 한웅 천왕 사상을 혼돈하고 있는 예를 많이 보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기록이 비교적 한단고기로 인하여
많이 정리는 됐지만, 한웅 천왕 거발한을 대단군(大檀君)으로 기록한 예가 있고, 초대 단군의 아버지가 18세 거불단 한웅(居弗檀桓雄) 혹은
단웅(檀雄)이라 하며 재위 48년에 82세까지 사셨다고 합니다,
그러나 단군과 단웅, 한웅 천왕을 혼돈 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1,565년의 역사가 왔다갔다하는 것입니다.
천부 경, 참전계정, 삼일신고, 한역 등과 역경의 신귀낙서(神龜洛書)를 황하 강 유역 설을 주장하기 위해 중국 한족들의
용마하도(龍馬河圖)로 변술 기록하고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그러므로 복희 선천8괘도와 문왕 후천8괘도는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특히 복희씨와 주(周)문왕은 은(殷)나라의 제후국으로서 주(紂)왕 폭정으로 하극상으로 천자의 권한을 찬탈한 무(武)왕의 아버지이며, 태호복희(太
伏羲)와는 2천 4백 여 년의 세월 차이가 있으며, 천부경(天符經) 일적 십거도(一積十鉅圖)의 원리 속에 포함 돼 있으나, 중국 한족들은
지금까지도 천부경의 원리를 모르고 있었다고 봐야합니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과거 주역을 많이 알고 계신 학자 님들도 중국한족들의 오랜 세월동안 세뇌된 생각으로 탈피를 못하고
있는 분들이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결론 적으로 홍익인간(弘益人間)사상도 한웅 천황 시대의 유산(遺産)으로서 녹도 문자나, 구전으로 내려온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
※;참고로 한자사전에 있는 내용을 기록하니 참고 바랍니다.
▲;단사(彖辭);주역의 각 괘(卦)의 뜻을 풀어 길흉을 판단하는 말,<乾 元亨利貞>에서 원형이정과 같은
것. 주(周)문 왕이 지었다함, 괘사(卦辭)는 "§;그러나 문 왕이라고 확증하기는 곤란한 대목입니다."
▲;단전(彖傳);주역의 십익(十翼)의 하나로, 단사(彖辭)뜻을 해석해 놓은 것, 공자(孔子)가 지었다하나
확실하지 않음.
§;앞에서 치우 천황 형제가 81명이라는 대목과 천부 경(天符經) 81자와도 연계되는 대목이며, 복희씨는
8괘 문이 있고, 치우 천왕은 투전문(鬪戰文)이 있고, 단군은 전(篆)자문(字文)이 있다고 했는데 역경의 단사(彖辭)와도 관계 설을 주장하는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
투전문(鬪戰文)은 5.16전까지도 도박판 기구로 쓰던 튀전에 그려져 있는 그림 문자로서 전쟁시
작전상 명령 전달 문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며, 역경에 단(彖)자는 단군이 가지고 있다는 전(篆)자에서 대죽(竹)은 주역의 점괘를 만들 때
서죽(筮竹)으로 괘를 만들고 있으니, 쓰고 있는 산대(서죽=筮竹)를 뺀 글자라는 것입니다.
왜? 주역(周易) 아니 한역(韓易)또는 역경(易經)을 말하는 것은 천부 경(天符經)일적십거도(一積十鉅圖)속에
용마하도(龍馬河圖)와 신귀낙서(神龜洛書)의 55수와 45수가 병존하고 있기 때문에 분리해서 해설하는 것은 천부 경(天符經) 81자가 정확히
나타나지 않고 독립운동가이자 역사학자인 계연수 선생님이 묘향산 단군 암굴 가는 도중에 암각서 천부 경(天符經) 81자를 1916년에 발견하여
1980년까지는 발표하지 말라는 단서로 대종교단에 전달 됐다고 하니, 우리 선조 들이 감추어 두었다는 것이며, 음양오행의 수리도 기본은 태호복희
선천8괘와 문왕 후천8괘 수리를 천부경이 함축하고 있기 때문에 거론하는 것입니다.
주역의 효사(爻辭)에서 음(陰)을 육(六)으로 양(陽) 구(九)로 표기하는 것에 대한 원리도 그 동안은 구구절절이
늘어놓았지만 타당성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었고, 이에 대한 깊이 연구는 못하고 그냥 대국(大國)인 중국의 한족(漢族)들이 말하는 대로 수 천년
동안을 이어받아 쓰기만 했다는 결론입니다.
주역을 공자가 50세 넘어서 역경을 탐독하여 수 백 번을 보고 또 보고해서 책표지를
수십 번을 고쳤다고 하며 72세 때에 완전 터득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십익(十翼)을 공자가 지었다는 설은 타당치 않다고 주장하는
분도 있습니다.
★;일공산인(一空山人) 김창수(金昌守)편저 천하천부경(天下天符經)에서 "홍익(弘益)"이란 단어 해설을
소개하고 저 하오니 참고바랍니다.
※;참고사항; 弘益人間의 한자의 사전적인 의미.
▲;弘(홍);넓을
홍,①넓다,㉮넓다,㉯널리,㉰넓히다.②크다,③활 소리.
▲;益(익);[1]더할 익,①더하다,㉮불리다,
더함.㉯보태다,㉰덧붙이다,㉱돕다,㉲많고 커지다,㉳풍부하다, 많아짐,②보탬, 증가,③보람, 효험,④이득,⑤넉넉하다,⑥넓다,⑦익 괘;64괘(卦)의
하나, 진하손상(震下巽上)위를 덜고 아래를 더하는 상,,⑧많다,⑨크다,⑩더욱,⑪차츰, 조금씩,[2]넘칠 일①넘치다,②24냥(兩).
▲;人(인);사람 인,①사람,
인간(人間),②백성(百姓),③남, 타인,④어떤 사람.
▲;間(間);[1]틈 간,,①틈,②사이,㉮중간,㉯안,
속.㉰주변.③들이다. 받아들임.④때, 무렵.⑤요즈음, 요사이.⑥잠깐.⑦줄이다. 간략하게 함.⑧몰래, 가만히.⑨나누다. 분별함,⑩방(房),방
넓이의 단위.⑪사물의 상태.[2]사이 간.①사이, 간격, 상거(相距).②틈,㉮빈틈,㉯불화(不和),㉰계제, 기회,③떨어지다. 사이를 둠,④다르다,
구별됨.⑤멀어지다, 사이가 멂.⑥바뀌다.⑦갈마들다.⑧헐뜯다. 비방(誹謗)함.⑨엿보다, 간첩(間諜).⑩관여하다, 차여함.⑪섞다. 섞임.⑫옆,
다름, 부당함,⑬막다. 막힘.⑭병이 조금 낫다.⑮많다.
【4】;홍익인간(弘益人間)
무릇 홍익의 기준 되는 바는 천지 창조가
기준이다.
이로써 대 만다라 만유가 덕을 함께 했으니 이보다 앞선 사상이며 교화가 있겠는가?.
그러니 이는 어느
특정의 성자도 아니 이요, 그렇다고 천제(天帝)도 범인(凡人)도 아닌 만물지장(萬物之長) 지주로 만유(萬有)에서 최령수(最靈數)를 칭한 온
인류의 총칭이며, 창조와 조물 품의 총칭이다.
때문에 인류란 피와 차가 없는 기이 하나 된 바 하나된 이 우주를 아름답게 가꾸며
영지 상락 지구촌으로 이루어 갈 권리 의무에 인권을 행함, 이것이 홍익된 인간으로 이화 세계 하는 것이다.
과학 의학이 전한 바
천지창조이래 한 사람이 구성한 세포는 60조라 이르고 그 하나 하나의 세포는 생명의 기본 단위로 이 세포는 2천여 효소로 구성 세포에 들어 있는
핵 속의 유전인자(DNA)는 약 10만 개가 있다 하듯이 이것이 무유동시출(無有同時出) 극미에 따른 한 생명으로 과학에는 물리적 법칙이요,
종교에선 윤회 정보라, 이것이 자그마치 600만조의 법칙과 정보를 가지고 법칙에 따라 인과의 윤회를 짓고 있으나 이 엄청남 윤회정보는 인과의
매개체며, 우주 법칙으로 나와 하나로 한 바니 나의 성체는 천부경이 밝힌 용변 부동본(不動本)이요, 불법이 전한 불생 불멸 불구 부정 부증
불감이라. 고로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이다.
무시무종(無始無終)이니 만유의 영생이 이것으로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
홍익창조(弘益創造)로 무유동시출(無有同時出)을 따라 기이 내가 하나로 한바 최정수(最精水)의 존자로 변모되면서 오늘에 이르러 되새기니 천부경의
81자 문자 속에 본래의 나 우주와 같이 넓고 바다와 같이 깊고도 오묘한 필연적 만유를 이룬 나와 너의 진리가 청정법도 공서확립 인간완성을
구가한바, 이것이 홍익창조 이화세계 표본이다.
고로 이 표본 천부삼인(天符三印)으로 세계가 평화롭게 이화될 것이나, 그 실체는
있으나 그 역사는 없고, 실체의 자손은 있는데 그 자손들의 얼이 빠져 실체의 설자리가 없으니 이것이 망국지본(亡國之本)의 원흉이다.
【5】;홍익(弘益) 얼
삼세가 오직 지금인 무유동시출(無有同時出) 하나의 우주 국토,
부동한 홍익 이화 세상이라.
그 정기, 그 진리, 그 철학, 그 사상 여기 있기에 얼씨구나 천하만민 혼인 맺으니 자비하신 고불
하나님, 부처님, 예수 님, 공자 님, 노자 님 만만 선불조 얼씨구나 축복 올리기로,
만종 만교 홍익 대가로 이삿짐
싸니,
새 천지 새 가정 만유가 춤을 춘다.
인류가 춤을 춘다.
어화라 좋을시구 이화
세상의 홍익 세계라.
홍익의 적연 부동 근본 지키니 그가 곧 사람이라 사람 세상 되고 보니,
조상님이 춤을
춘다 자성이 춤을 춘다.
신천지 새 세상 천하민이 춤을 춘다.
초초초 태고이래 부동한 하나님 부처 진아가
춤을 춘다,
어화라 좋을시구 부동한 홍익 세계라.
사람이 춤을 춘다,
천하만유
무유동시출리
앙명한 진성광 인중천지일.
【6】;홍익인간(弘益人間)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
무유동시출(無有同時出)은 우주부모(宇宙父母) 되어 빛은 우주자식(宇宙子息) 천하사 한 형제자매 괴이한 자손
실체다.
사랑하는 아들딸 손자 손녀 홍익케 할 유일 별 성계가 이 우주에서도 지구촌 별 성계 땅이었기에 지구촌 건국 이념을
홍익이념으로 그 주체가 인중천지일 인간이기에 인간 세상을 펴니 건국이념에 이르러 태고를 이은 홍익이념 천정법도(天定法道)를 하나로 과히 오늘의
근세를 이었다.
1949.12.31.법률 제86호를 제정 교육법 제 1조 교육이념을 홍익으로 채택한 것도 태고의 맥을 하나로 한
일체 민의 인격완성에 자주적 공민으로서의 자질을 규유 우주 대계를 홍익케 할 민주화백(民主和白) 국가에 헌신봉사, 인류공영 이상 실현을 목적한
것으로 인류 자존의 기풍과 민의 품성 도야를 함양 인부경(人符經)에 이른 혼면 치산 개발진흥 과학과 문화 창달에 훈후 인간완성을 지향한 홍익에
바탕 항구 여일 미래사를 기약한 교육법 제정, 이것이 홍익 이념이었다. 그렇다면 진정한 홍익의 참 가르침은 무엇인가? 홍익(弘益)이란 그
자의(字意)로 보면,
●;弘이란(弓弓乙乙로)
궁(弓)이란 우(宇)며 공간(空間)이고, 진공(眞空)이며,
양(陽)이고, 온(溫)이며, 탄력(彈力)이고, 개벽(開闢)이다.
을(乙)이란 주(宙)며 시간(時間)이고,
묘유(妙有)며, 음(陰)이요, 냉(冷)이고, 인력(引力)이며 공사(公事)다.
그래서 弓乙造化(궁을조화) 理(리)는
생명의 (사)라. 생명을 창조와 조물에 이름이 弘(홍)이다
●;益(익)이란
益(익) 天上天下(천상천하)를 (一)일 가지런히 하나로 한 하늘
아래서(血) 붉은 피를 가진 자는 죄다 인중천지일을 하나로 한 한생명, 한형제 자매들이다.
【7】;弘益(홍익)
고로 홍익(弘益)이란 자산자혈지손묘법(紫産自血之孫妙法)이다.
이 우주 상에 "붉은 피를 가진 자"는 모기 한 마리까지도 죄다 한 형제 자매다.
이것이 홍익이고 이 정신으로
출정지도(道)를 행하는 사람을 일러 홍익인간이라 한다. 이 얼마나 싱그러운 만물지장 지주 된 지고 지존한 이념이랴.
무릇 홍익이란 부모 정신 즉 부모란 이름이다.
왜냐 부모란 잘 사는 자식보다 못 사는 자식에게, 착한 자식보다 불량한 자식에게, 건강한 자식보다 불구 자식에게 더욱
마음이 쓰이는 것은 부모 심정임은 다를 것 없다. 왜 부모는 자식에 그토록 마음을 쓰는가, 바로 자신의 분신을 낳았기
때문이다.
자기 육신에서 아픈 손에 더욱 신경이 감은 아픈 고통이 자기 고통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무유동시출(無有同時出)
출(出)의 저개(這箇)○의 영(靈)함인 하나의 님, 본래의 천하사인 조상 님이 만유 부모니 부모 심정이라.
변모 따라 빚은
자신이 묘유(妙有)지 시간을 타고 자식들이 된 바, 바로, 내가 고루 복되게 잘 살아 가도록 바라는 것이다.
이러하기에 이의
본질 따라 태어난 인(人)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본질 따른 부모 심정으로 돌아가 천하 만유를 널리 고루 복되게 정제해가며 잘 살아 가야
한다.
이것이 만유에 홍익(弘益)된 부모로서 항구 여일 고르게 해야 할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을 몸에 거둔 앙명(昻明)한 자각의
홍익된 세상에서 홍익민(弘益民)이 가는 길이다.
【8】;우리의 교육법 1조의 홍익인간(弘益人間)이념의 잣대를 외국의 수입품에 맞추다보니 우리의 9천년역사
속에 흐르고있는 정신과 마음이 우리 선조 들의 피 속에 흐르는 유전자 DNA는 날로 오염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항시 생물은 돌연변이(突然變異)라는 변화를 거쳐 새로운 발전도 있고, 도태(淘汰)라는 절차를 거쳐 없어지기도 하는 것이 대자연(大自然)의 순리에
해당합니다.
우리와 한 할아버지 자손으로 혈통이 같다는 아마존강 밀림 속에 사는 원시인 인디오들은 혈액형이 "O"형 하나
뿐이라는데 우리는 많은 혈액형을 가지고 있으니 혼혈이 계속되고 있다는 설과 같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피는 혼혈이 되어도 종족보존(種族保存) 정신(精神)만은 동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종족으로 살면서 원시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는 몽고로이드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각자가 알아서 판단 할 일이지만, 혹자는 같은
몽고로이드인 몽고 군인 원나라의 침공과 청나라 병자호란(丙子胡亂)을 들 수 있으나 아시아 대륙이 몽고 군이 모두 휩쓸러버렸는데 그래도 고려왕조와
조선왕조의 국가체제는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숙고해야 하며 원인도 다시 한번 고려 돼야 합니다.
현재 우주를 정복하겠다는
과학문명 속에서도 우리지구상의 빙하지대와 열대지방이 있듯이 원시인이 같은 하늘 아래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을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홍익인간사상(弘益人間思想)"은 지구의 최종적인 인류가 공존할 수 있는 생존목표(生存目標)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전에 우리 인간들은 준비를 해야 할 사항이 있다는 것은 성통광명(性通光明),
재세이화(在世理化),홍익인간(弘益人間)으로 가는 순서인데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모든 종교나 사사로운 집념에서 깨어나서 일신강충(一神降衷)은
하나님이신 절대자의 신은 인간의 머리 속 깊은 곳, 머리 가장 윗 쪽에 있는 황궁(黃宮)의 내분비선(內分泌線)인 송과(松果)속에 있는
명궁(命宮)인 뇌하수체(腦下垂體)호르몬에 와 계신다는 것을 스스로 깨우친 다음에 순서를 따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삼신(三神)에게 부여받은 삼진(三眞)인 선청후(善淸厚)를 지니고 태어나지만 혼돈상태에서 삼망(三妄)인
악탁박(惡濁薄)과 뒤섞이게 됩니다.
삼도(三途)는 삼망(三妄)이 들어오는 세 가지 길로서 느낌(感), 호흡(息), 부딪침(觸),
즉 감식촉(感息觸)이 그 것입니다.
모든 인간들은 본래부터 가지고 태어난 선청후(善淸厚)가 있어서 스스로가 만물의 창조주와
하나인 존재로서 대우주(大宇宙)에 삼진(三眞)을 확장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태어나면서 혼돈(混沌)에 빠져
혼미(昏迷)하게 된 이후 죽을 때까지 쉴새없이 거듭되는 느낌(感),호흡(息),부딪침(觸)의 세 가지 길을 통해 악탁박(惡濁薄)인 삼망(三妄)이
들어와서 삼진(三眞)과 삼망(三妄)이 뒤섞이면서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삼망(三妄)의
악탁박(惡濁薄)을 다스리는 것은 심기신(心氣身)인 마음(心)속으로 느끼게 되고, 공기(空氣)속에서 숨(息)쉬게 되고, 촉각(觸覺)은 몸(身)을
부딪침으로 스스로 알게 되니 심기신(心氣身)의 수양이 필요할 것입니다..
※;일신강충(一神降衷)에 대한 시대적 개념을 요약하니 참고바랍니다.
▲;한인 천제(桓因天帝); 경전(經典)은 천부경(天符經); 인중천지일(人中天地一)"인간의 내부 깊은 곳에
하늘과 땅이 있으며, 그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시다."
▲;한웅천왕(桓雄天王);경전(經典)은 삼일신고(三一神誥); 자성구자(自性求子) 강재이뇌(降在爾腦)"스스로
본바탕에서 하나님의 씨앗을 구하라, 너희 뇌에 내려와 계시니라."
▲;단군왕검(檀君王儉);경전(經典)은 단군팔조교(檀君八條敎); 천범유일 불이궐문(天範惟一 弗二闕門)
이유순성일 이심내조천(爾惟純誠一 爾心乃朝天);"하늘의 법은 오로지 하나요 그 문이 둘이 아니다, 너희는 오로지 순수한 정성이 하나 같아야 너희의
중심에서 하나님을 보게되리라."
▲;발귀리선인; 경전(經典)은 원방각경(圓方角經);"일월지자 천신지충(日月之子 天神之衷);"해와 달의
정기를 받아 아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중앙에 내려와 계시다."
▲;가륵단군(3세); 경전(經典)은 중일경(中一經);천하대본 재어오심지중일야, 성기(天下之大本
在於吾心之中一也, 成己);"천하의 가장 큰 근본은 나의 마음 한가운데 위치한 하나님이다."
▲;도해단군(11세); 경전(經典)은 천지인경(天地人經); 일신강충(一神降衷);"하나님은 나의 중심에
내려와 계신다."
▲;감물단군(33세); 경전(經典)은 영세위법(永世爲法); 회광반궁(回光反躬);"우주삼라만상 중심인
빛으로 되돌아가 다시금 그 방향을 돌려 스스로의 몸에 머무르게 할 수 있다."
▲;을지문덕장군(고구려); 경전(經典)은 삼신일체경(三神一體經);자재광명 앙연부동(自在光明
昻然不動);"스스로의 중심에 하나님의 빛이 머무르고 있어 움직임이 없다."
§;상기 사항을 비교하여 봐도 시대에 따라서 표현방법이나 교화 방법의 차이는 있지만 근본 된 "일신강충(一神降衷)"은 별로
변함이 없다는 것이며, KBS방송에서 캄보디아 어린이들도 다른 사람이 자기 머리를 만지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인 신이 자기 머리
속에 내려와 계신다고 머리를 함부로 만지거나 때리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는 것은 우리의 단군의 삼신 사상과 일치 하다는 것이며, 한단고기를 보면
동남아 과거 국가명 중에 "라(羅)"자가 들어 있는 국가는 단군 통치하에 있었거나 계도를 받아온 국가로서 같은 혈통을 가지고 있다는
실증입니다.
그래서 우리 나라의 상고사가 빨리 정리되고 동질성을 찾아서 동남아 태국월남, 캄보디아 라오스 등등을 비롯하여 여러
국가와 유대를 더욱 강화해야 할 과제는 우리 젊은이들의 몫이 될 것입니다.--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