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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익스테리어 스크랩 [인테리어] 헤이리에 있는 책이 있는 집
다락방 추천 0 조회 81 08.02.22 10:48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삶터의 결정

타인의 삶에 그리 관심이 많은 편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지하에서 3층 꼭대기까지 책을 꽂아놓고 사는 사람은 누굴까 궁

금해졌다. 대학교수가 살 것이란 추측도 해보고, 유명한 소설가가 집주인일 거란 상상도 했다. 결국 물어물어 전화를 돌

려 한 번 찾아뵐 것을 청했고, 이슬비가 내리던 토요일에 달콤한 휴식을 반납한 채 헤이리로 향했다.

 

‘책이 있는 집’은 3대가 함께 거주하는 공간이다. 컴퓨터 컨설턴트인 박종일 씨가 84세의 노모, 중학교 교사인 아내, 그리

고 대학생 자녀 둘과 함께 사는 평범한 구성. 괴팍한 문인의 작업실이 아닐까 했던 예상은 여지없이 깨졌다. 이들이 헤이

리로 이사를 온 것은 올해 초. 헤이리라는 실험적인 마을 만들기에 이끌려서 계획 초기부터 회원으로 가입한 상태였지

만, 가족들의 직장 문제 등으로 합류가 조금 늦어졌다. 집을 지어준 사람은 여성 건축가 서혜림. 연말 헤이리 모임에서

마침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김정재 씨(김정재조각공방)였는데, 그가 자신의 집을 그녀에게 맡겼다고 해서 덩달아 결정.

아는 건축가 한 명 없었기 때문에 그냥 즉흥적으로 고른 건축가였지만, 완성된 집은 90% 이상 만족스럽다. “방을 몇 개

를 두라는 식의 구체적인 요구는 전혀 하지 않았어요. 건축가와 땅의 모양, 사회적 환경 등에 대한 토론을 거쳐 5개의 콘

셉트만 제안했을 뿐이지요. 저의 요구를 설계자가 상당히 잘 이해했고, 시공자는 주변 맥락에 맞춰 잘 구현해냈다고 생

각합니다. 서로의 호흡이 잘 맞았어요.”

 

집주인 박종일 씨가 건축가 서혜림에게 요구한 것은 다음의 다섯 가지.

 

1 단순할 것,

2 누구나 들어오고 싶을 만큼 안이 보이도록 열려 있을 것,

3 온 집 안에 (화장실까지) 빛이 들어올 것, 4 모든 책이 배치되도록 충분한 공간을 만들 것,

5 가족 개개의 독립된 공간은 보장되면서 어느 한곳에서는 반드시 가족이 마주칠 수 있도록 평면을 구성할 것.

 

 

 

자연 속 게으르면서 부지런한 삶

 

헤이리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다. 그중 하나가 길의 양쪽에는 모두 집이 있어야 한다는 것. 집은 나만의 성이 아니라 남

들과 교류하는 통로여야 하기 때문에, 담장을 만들어서도 안 되고 정원은 반드시 집 뒤쪽으로만 배치해야 한다. 그러나

‘책이 있는 집’은 길의 맞은편이 유일하게 산을 보는 위치에 자리 잡고 있다. 자연을 그대로 담고, 자신의 삶을 그대로 보

여주기 위해 집의 상당 부분을 유리로 감싸기로 결정. 드러내 보여서 잃는 것보다 창 밖의 자연을 들여서 얻는 것이 더

클 듯했다. 그러나 숲이 울창한 동산 앞에 집을 지어 자연을 독차지했다는 미안함에 집 주변에는 충분한 녹지를 가꾸려

한다. 멀리서 바라보면 산의 일부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옥상 위에도 흙을 깔고 식물을 심을 계획. 사실 옥상에 수로를

만들고, 식물이 뿌리를 내리고, 흙에 물을 주어도 건축물에 영향이 없도록 하려면 주택 건축비에 육박할 만큼 엄청난 비

용이 들지만 그래도 헤이리 주민에게 자연을 돌려주는 것이 의무라 생각한다.

 

집의 형태는 마름모꼴 대지를 그대로 살렸다. 때문에 방도, 거실도, 주방도 전부 마름모꼴로 90° 각이 맞는 공간이 없다.

산, 지형을 해치지 않고 그대로 살리려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결과. 화장실은 처음의 요구대로 산을 볼 수 있는 큰 창을 두

었고, 책이 가득 꽂힌 2층 계단실은 천창을 만들어 하늘을 바라볼 수 있게 했다. “낮에는 직사광선이 고스란히 내리쬐어

서 뜨겁지만 보름날 밤에는 넘쳐나는 달빛으로 환상적이에요. 천창용 블라인드를 해야겠죠?” 자신은 게으르니 살면서 부

족한 부분은 하나씩 고쳐서 메워나가겠다고 한다. 노모는 작은 텃밭에 열심히 먹을거리를 가꾸고, 집주인은 틈틈이 살기

좋게 고쳐나가고…. ‘책이 있는 집’에서는 도심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부지런한 여유를 부려보고 싶어진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구조

 

독립적이되, 가족간의 접점이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지하에 위치한 아들방과 2층에 위치한 나머지 가족의 방은 일부

러 거실을 빙 돌아 들어가도록 했다. 조금 귀찮고 번거롭긴 하지만 요즘처럼 각자 바쁘게 사는 세상에 얼굴 한 번 마주치

는 것이 얼마나 귀한 시간인지! 당연히 거실은 TV가 메인이 되지 않도록 벽 가득 책을 꽂았고, TV를 바라보며 푹신한 소

파를 놓는 일을 피했다. 대신 주방과 식당을 거실과의 경계가 모호한 원룸 형태로 만들어 가족들이 자연스럽게 식탁에

모여 앉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위층에 있는 가족들이 아래층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식당의 천장을 2층까지 오픈. 이 집

의 또 다른 특징은 가구가 거의 없는 것이다. 사는 데 꼭 필요하다 싶은 식탁, 침대, 책상 정도만 두고 나머지 수납은 모

두 붙박이장으로 처리했다. 헤이리에 이사 오기 전에는 줄곧 아파트에서만 살았는데, 덩치 큰 가구들에 항상 사람이 치

이는 느낌이 들어 부담스러웠기 때문. 그러고 보니 이 집에는 가구로 볼 수 있는 책장도 없다. 1만여 권의 책을 꽂아놓은

곳은 지하층에서 3층까지 연결된 철제 구조물. 강철 책장은 실제로 집을 지지하는 구조이자, 책을 두는 장소, 가족을 지

지하는 버팀목의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그리고 나무 선반을 끼워 넣고 빼냄에 따라 공간을 열거나 닫을 수 있어 조형성

과 실용성을 겸비하도록 했다.

 

 

 

 

 

 

 

책이 ‘많은’ 집

 

사실 통유리창 앞에 짜여진 철제 책장은 결정적인 단점이 있다. 빛이 지나치게 잘 들어와서 책이 노화하는 것. 책이 상할

까 덮어놓은 신문지와 천을 들춰보니 장지연 선생의 『시일야방성대곡』부터 양주동 선생의 『신라향가연구』, 서민들

이 즐겨 읽던 얇은 십전(10전) 소설, 중국 홍위병이 뿌린 전단지들 등 귀한 책들이 가득하다. 30여 년 전 대학 다닐 때부

터 모아온 책들이고, 당시에도 20~30년 전에 발간된 책을 모으기 시작했다 하니 지금 가지고 있는 책은 60여 년 전에 발

행된 것부터 다양. 그런데 왜 이리 많은 책을 모아온 것일까? “정치학과 69학번입니다. 당시에는 대학 4학년 때 ‘정치학

연습’을 이수해야 했는데, 지금의 졸업 논문과 유사한 과목이에요. 열심히 하면서 재미도 많이 느꼈고, 제법 괜찮은 논문

이 나와 교수님이 학문을 계속할 것을 권유했지요. 그러나 먹고사는 일이 급급하던 시절, 7남매의 장남이 공부를 계속한

다는 것은 무리가 아닐까요? 대신 힘 자라는 데까지 책을 가까이 두자 결심했습니다.” 그는 수입의 1/3을 책 사는 데 썼다고 했다. 3백만원을 번다면 1백만원어치 책을 사도 2백만원이 남아 생활비로 충분하지만, 결혼 초기 박종일 씨의 월급은

단돈 12만원. 그러나 매달 3만~4만원어치씩 책을 사도 전혀 불만을 가지지 않은 아내 덕분에 그의 책 모으기는 계속될

수있었다.


이처럼 애지중지 모아온 책이지만, 이사 오기 전까지만 해도 애물단지였다. 규격화된 아파트에서는 거실 벽에 붙박이장

을 짜 넣어도 꽂을 수 있는 건 일부. 언제나 방 하나에는 창고처럼 책을 쌓아두어야만 했다. 그런데 20년 동안 끌고 다닌

책을 이제는 숨을 쉴 수 있도록 배치하고 싶었다. 자신과 가족을 위한 집을 지으면서 책을 중심에 둔 것은 이런 이유. ‘책이 있는 집’이라는 이름은 그리 많은 생각이나 의도 없이 자연스럽게 짓게 되었다. 유일한 장식품이자 가장 귀한 재산이고, 소중한 가족이기 때문에…. 박종일 씨의 목표는 죽기 전에 지금까지 모아온 책들을 다 읽는 것이다. 자식이 원한다면 물려주고 아니면 사회에 환원할 생각.

 

 

 

 

실험적인 헤이리 라이프

 

책이 있는 마을, 그리고 자연환경을 훼손하지 않는 마을을 만들겠다는

이야기가 솔깃해서 헤이리에 합류했지만, 아직까지는 1/3 정도밖에 입

주를 하지 않은 탓에 생각만큼 살기 편하지는 않다. 주변의 마을과 헤

이리를 이어주는 것은 하루 12회의 마을버스가 전부. 생필품을 사기

위해 일산이나 파주까지 차를 타고 나가야 하고, 어쩌다 술자리라도

한번 가지려면 일산에서 헤이리까지 대리운전 6만원이라는 거금을 지

불해야 하기 때문에 번번이 포기하기 일쑤다. 혹자는 가파르게 상승하

는 강남의 아파트 값을 들먹이며 후회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래도

자연과 문화를 곁에 두고 이만큼 누리며 살 수 있는 곳이 드물기에,

오히려 기꺼이 즐기리라 마음먹었다.

인터뷰 도중 옆집(헤이리 1호 주민인 취림원)에서 직접 기른 야채를

나눠주겠다며 찾아왔다. 40여 세대가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지만, 대도

시보다 풍요로운 삶이 넘치는 곳. 매월 마지막 일요일에는 주민 회의

를 하는데, 간단한 바비큐 파티를 하면서 각자 잘하는 걸 보여준다고

했다. 무용을 하는 사람은 춤을 보여주기도 하고, 윤도현이나 강산에

와 같은 가수는 노래를 부르고…. 헤이리는 문화를 공유하면서 사는

마을이다. 주민뿐만 아니라 외부 사람들도 많이 찾아오기 때문에 ‘무엇

을 보여줄까’와 ‘프라이버시를 어떻게 지키며 살까’의 어려운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박종일 씨는 헤이리 주민의 한 사람으로 ‘책이 있는

집’을 짓고 실험에 동참 중. 보다 많은 책을 읽고 자연을 가까이하며 

사는 삶은 보통 사람들도 도전해볼 만한 가치 있는 실험이 될 법하다.

 

 
 

 

 

  출처-레몬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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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02.22 20:01

    첫댓글 오호...저도...서재를 중심으로 집을 짓고 싶었는데... 멋진 집이네요.. 햇볕에 노출 된 책이 좀 불쌍하긴 하지만...^^

  • 08.02.23 00:39

    계단에 있는 책장을 보고 참 멋지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좋은 아이디어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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