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 서문
넓어지는 회오리 속에서 돌고 돌고
매는 매잡이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산산이 해체된다. 중심이 버티지 못한다.
그저 무정부 상태가 세상에 풀려 퍼지고
피로 흐려진 조수가 풀리고 사방에서
무구함을 받드는 의식이 물에 잠겨 가라앉는다.
가장 훌륭한 이들은 모든 신념을 잃고, 가장 저열한 자들은 치열한 열정으로 충만하다.
틀림없이 뭔가 계시가 임박해 있다.
틀림없이 재림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재림! 그 단어를 내뱉자마자
‘세계정신’에서 광막한 이미지가 나와
내 시야를 괴홉힌다. 어딘가 사막의 모래 속에서
사자의 몸에 인간의 머리가 붙은 형상이,
태양처럼 무표정하고 무자비한 시선이
느릿한 허벅지를 움직이고, 그 주위로 온통
성난 사막 새들의 그림자가 비틀거린다.
어둠이 다시 툭 떨어진다. 그러나 이제 나는 안다
이십 세기에 걸친 돌 같은 잠이
흔들리는 요람에 동요해 악몽으로 변했다는 걸.
그리고 이제 어떤 거친 짐승들이, 마침내 도래한 그들의 시간을 맞아,
태어나 베들레헴을 덮치려 웅크리고 있는가?
-W. B. 예이츠
나는 부처, 예수, 링컨, 아인슈타인, 그리고 케리 그랜트에게서 용기를 배웠다.
-미스 페기 리
이 책의 제목이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인 이유는, 앞에 실은 예이츠의 시가 외과수술로 이식한 것처럼 몇 년째 내 귓속에서 웅웅 울리고 있기 때문이다. 넓어지는 회오리, 매잡이의 소리를 듣지 않는 매, 태양처럼 무표정하고 무자비한 시선. 이 시 구절들이 내 준거점이었고 오로지 이 이미지들에 대비할 떼에만 내가 듣고 보고 사유하는 것들이 패턴으로 정렬되는 느낌이었다.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는 이 책에 실린 글 제목이기도 하자. 샌프란시스코 헤이트 애시베리 지구에서 시간을 보내며 써내려간 기사는, 모든 글을 통틀어 내게 가장 절박하게 중요했고 또 인쇄된 후 유일하게 나를 실의에 빠뜨렸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원자화의 증거, 만물이 해체되는 물증을 정면으로 직접 다루었다. 샌프란시스코로 갔던 이유는 몇 달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였다. 글쓰기가 무의미한 행위고 내가 아는 세계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신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다시 일하려면 반드시 무질서와 화해해야 했다. 그래서 내게는 그 글이 중요했다. 그런데 잡지에 실린 후, 정면으로 직접 말했다 생각했는데도 글을 읽고 심지어 좋아한다는 수많은 이에게 의미를 전달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이마에 만다라를 그리고 다니는 소수의 아이들을 넘어선 보편적인 이야기임을 암시하는 데 실패했다. 디스크자키들이 우리 집에 전화를 걸어 (방송에서) 헤이트 애시베리의 ‘쓰레기’ 문제를 논의하고 싶어했고, 지인들은 내게 “이제 유행이 다 죽어서 끝장, 완전 끝장이 났는데” 기사를 “딱 시간 맞춰” 완성했다면서 축하 인사를 건넸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자기 말을 들어주는 독자가 없다는 의혹에 시달리는 시간이 있겠지만, 그때는 (아마 그 글이 내게 중요했기 때문에) 이토록 하나같이 요점을 빗나가는 피드백을 받아본 적도 처음이라는 느낌이었다.
여기 실린 모든 글은 1965년, 1966년, 1967년에 걸쳐 잡지에 기고했고, 질문을 받기 전에 미리 대답하자면 대부분 ‘내 아이디어’였다. 캐멀 밸리에 가서 조앤 바에즈의 학교를 취재해달라고, 하와이에 가라고, 존 웨인에 대해 글을 써 달라고 요청받았던 것 같다. <아메리칸 스칼러>가 ‘도덕성’에 대한 짧은 글을 써달라고 했고, ‘자존감’에 대한 글은 <보그>의 청탁이었다. 스무 편의 글 중 열세 편은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이하 ‘포스트)>에 게재되었다. 어떻게 양심을 걸고 <포스트>에 기고할 수 있느냐고 묻는(따지는) 편지를 토론토 같은 곳에서 종종 받는다.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포스트>는 글 쓰는 사람의 바람을 몹시 너그럽게 수용하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수당을 충분히 주고 원고를 바꾸지 않는다는 원책을 몹시 까다롭게 지킨다. 간혹 <포스트>에 싣는 기사에서 미묘한 어조가 사라질 때가 있긴 해도 기자로서의 양심이 훼손되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물론 이 책에 실린 글이 모두 주제 면에서 보편적 붕괴와 만물의 해체를 다루는 건 아니다. 그런 건 거창하고 주제넘은 개념이며 이 책에는 사소하고 개인적인 글도 많다. 다만 나는 카메라의 눈도 아니고 내게 흥미롭지 않은 글을 쓰는 데 취미도 없어서 내가 쓰는 글은 무조건, 간혹 불필요하리만큼, 내가 느끼는 바를 반영한다.
이 글들에 대해 무슨 얘기를 더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다른 것보다 더 쓰기 좋았던 기사가 있긴 하지만 모든 글이 쓰기 어려웠고 아마도 글의 가치에 비해 너무 오랜 시간을 쏟았을 거라는 말은 할 수 있다. 잘못된 서두가 적힌 종이들로 말 그대로 도배된 방에 앉아서 한 단어 다음에 다음 단어를 이어 쓰기가 어찌나 어려웠는지, 혹시 나도 모르게 경중의 뇌출혈을 앓았고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실제로는 실어증에 걸린 게 아닐까 상상하며 글을 썼을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사실, 살면서 <베들레헴을 향해 웅크리다>를 쓸 때만큼 아파본 적이 없다. 통증에 밤잠을 설폈고, 하루에 20시간에서 21시간 동안 통증을 둔하게 하려고 뜨거운 물에 진을 타서 마시고, 진의 숙취를 둔하게 하려고 덱세드린을 먹으며 썼다. (내가 그렇게까지 끈질기게 일한 게 대단한 프로페셔널리즘이라든가, 마감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믿어주면 좋겠지만, 그건 전적으로 사실이 아니다. 실제로 마감이 있긴 했지만 내게 괴로운 시기이기도 했고 통증을 진이 덜어주었듯이 괴로움은 일이 덜어주었다.) 또 할 말이 뭐가 있을까? 나는 다른 사람을 인터뷰하는 데 소질이 없다. 타인의 홍보 담당자와 얘기해야 하는 상황을 피한다. (그래서 대다수 배우들에 대한 글 청탁이 미리 걸러지는데. 그것만도 보너스다.) 전화를 거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아침에 어딘가의 베스트웨스턴 모텔 침대에 앉아서 검사보에게 어떻게든 연락을 해보려 애쓰던 나날을 헤아리고 싶지도 않다. 기자로서 내 유일한 이점은 체구가 너무 작고 기질적으로 눈에 잘 띄지 않고 신경이 너무 약해 말도 잘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가 내 존재를 잊고 자신의 이득에 반하는 행동을 하기 쉽다는 것뿐이다. 그것이 기억해야 할 마지막 한 가지다. ‘글 쓰는 사람들은 언제나 누군가를 팔아넘기고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