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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리>
토끼 보고 무서라고, "아이고, 나 저 물 무서 못 가겄다! 물 속에 들어가서 용왕 된대도 나 못 가겄다!" 도로 깡짱깡짱 올라가더니 따뜻한 양지 바른 곳에 앉어 그 잘생긴 낯을 반찬 대갱이 굽듯 뙤작뙤작허고 앉았것다. 별주부 기가 막혀, "예끼, 이 잡년의 자식, 벼슬허로 가자는데, 용당기 뒷줄 썩이듯 너무 잣샌 것 아니꼬와 못 보겄다! 올 테면 오고 말 테면 말어라, 이 녀석아! 네 몸 위해 가지, 날 위해 가느냐? 그러나 남아하처불상봉(男兒何處不相逢)이니 후일에 만나더래도 알은 체나 하고 지내자. 네 상오[相好]를 보면 인중(人中) 밑이 쩔은(짧은) 것이 단명객(短命客)이 분명하고, 안중(眼中)에 화망살이라, 내일 묘시말 진시초에 재너머 김포수, '무(戊)'자 '현(玄)'자 '금(金)'자 때, 온동 사슬 잘 가는 총으로 네놈의 북두자리 양 미간 골치 대목에다 들이대고 그저 꿍그르르르 쾅!" 토끼 듣고 깜짝 놀래, "아이고, 여보소, 쾅 소리는 빼 버리시오. 우리 삼대가 다 총으로 망했소. 수궁에 가면 총 없소?", "아, 수화(水火)가 상충(相衝)인데 무슨 총이 있단 말이요? 총이라 허는 것은 불이 일어나야 나가는듸, 아 물 속에서 무슨 총이 있단 말이요?", "대체 그렇겠소잉. 그럼 별주부, 좋은 수가 있소. 별주부가 먼저 물에를 들어가 시험을 해 봐 가지고 목물만 지면 따라갈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못 가겠소.", "아, 글랑 그러시요." 별주부가 물에 풍덩 들어서서 이리저리 둥덩둥덩 떠다니니, 토끼 보더니, "아, 그 물이 그거 보기보단 아주 실없구려. 나도 한번 들어가 볼 밖으. 여보, 별주부." 버드나무 가지를 앞니로 꽉 물고, "내 뒷발 들어가오.", "어서 들어오시오." 뒷발을 실기미(슬그머니) 물에다 담겄것다. 별주부라 하는 것은 물이서는 편전(片箭)살보다 더 빠른 짐생이라, 수루루루 달려들어 토끼 뒷발을 앞니로 꽉 물고 툭 채노니, 뚝 떨어져서 물 속으로 울룩울룩 들어가며, 토끼 기가 막혀, "아이고, 갑갑하여 나 못 살겄다! 별주부야, 날 좀 놔라!", "네 이놈아, 아구지(입) 벌리지 마라. 간물(짠물) 들어가면 간 녹는다, 이놈아. 인제 헐 수 없으니, 내 등에 업히어서 곳곳이 이르께 구경이나 착실히 해라. 헐 수 없다." 소상팔경(瀟湘八景)을 들어가는듸,
<진양>
이편을 가르키며 강남 지방이요, 저편은 고소성(姑蘇城)이라. 구름 밖에 솟은 것은 동정호 칠백리요, 하늘에 닿은 것은 시비의 한라산이라. 악양루(岳陽樓) 만정허고 파륜[巴陵], 군산(君山) 돌아드니 경개가 처처(處處) 그윽허구나. 소상야우(瀟湘夜雨) 달 밖은듸 창오모운(蒼梧暮雲), 황릉애원(黃陵哀怨), 무산낙조(巫山落照), 한산모종(寒山暮鐘), 평사낙안(平沙落雁), 원포귀범(遠浦歸帆) 팔경을 다 본 후에 양구로 돌아드니, 금계(金鷄) 소리가 쨍그렁 청 들리거늘, 토끼가 눈 들어 사면을 살펴보니 백옥 현판으 황금 대자로 새겼으되, '남해 영덕전 수정문'이라 뚜렷이 새겼거날,
<아니리>
토끼 보고 좋아라고, "과연 들어와 보니 좋기는 좋다. 네 귀에서 풍경이 웽기렁젱기렁 허고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이라. 이런 좋은 경치에 풍월이나 한 수 읊어 볼까? 산중유객(山中遊客)이 도수궁(到水宮)허니 사해풍광(四海風光)이 입안중(入眼中)이라." 토끼 좋아라고, "여보, 별주부, 어서 들어가서 하관 말석이라도 참여나 시켜 주시오. 내 정승 하면 주부는 꼭 판서 시키지요.", "아, 글랑 그러시요만, 진세(塵世)나 수국(水國)이나 풍속이 달라 혹 '토끼 잡어들여라' 허는 청령(廳令)이 나더래도 부디 놀래지는 마시요잉. 세상 같으면 훈련대장 입시 들라는 분부니 가만히 여기 앉었시요. 내 안에 들어가서 남여(籃輿) 내보내리다.", "글랑 그러시요마는 법인즉 아주 거 패려(悖戾)하오. 내 훈련대장 되면 그 법은 꼭 뜯어고칠라요.", "그는 처분대로 하시요." 별주부가 들어가니 용왕이 방자사경[方在死境]이로구나. "진세에 나갔던 별주부 현신이요." 병든 용왕이 이만 허고 보시더니, "어, 수로 육로 이만 리를 무사히 다녀왔으며, 토끼를 어찌하였느냐?", "예이, 토끼를 산 채로 생검[生擒]하여 궐문 밖에 대령하였습니다.", "어허, 기특코 고마운 말이로구나. 그러면 토끼 잡어들여라.", "예이." 청령이 으근으근 나니 토끼 이 잡것 물색(物色) 모르고 좋아라고, "옳다, 인제 훈련대장 입시 들라나부다." 병부를 여다 찰까, 저다 찰까, 생방정을 떨고 있을 적에,
<잦은몰이>
좌우 나졸 분부 듣고 수달, 해구, 좌우 모지리, 둥글 일시 내달라 토끼를 에워쌀제, 진황 만리장성 싸듯, 산양(山陽) 싸움에 마초(馬超) 싸듯, 첩첩이 둘러싸고 토끼 들입대 잡는 모냥, 영문(營門) 출사(出使) 도적 잡듯 토끼 두 귀를 꽉 잡고, "이놈, 네가 토끼냐?" 토끼 기가 맥혀 벌렁벌렁 떨며, "나, 토끼 아니요." "그러면 네가 무엇이냐?" "개요." "개 같으면 더욱 좋다. 삼복달음에 너를 잡어 약개정도 좋거니와, 네 간을 내어 오계탕(烏鷄湯) 달여 먹고, 네 껍질 벗겨 내야 잘량 모와서 깔고 자면 어혈(瘀血), 내종(內腫), 혈담(血痰)에는 만병회춘 명약이라, 이 강아지를 말어가자(몰아가자)." "아이고, 내가 개도 아니란 말이요." "그러면 네가 무엇이냐?" "송아지요." "소 같으면 더욱 좋다. 도탄(塗炭)에 너를 잡아 두피(頭皮), 족 살찐 다리, 양, 회간, 처녑, 콩팥, 후박(厚薄)없이 노놔 먹고, 네 껍질은 벗겨 내야 북도 매고, 신도 짓고, 네 뿔 베여 활도 묶고, 네 속에 든 우황 값 중한 약이 되고, 똥오줌은 거름 허니 버릴 것 없나니라. 이 송아지를 말어 가자." "아이고, 내가 소도 아니란 말이요." "그러면 이제사 무엇이냐?" "가만 있으시요. 생각해 갖고 갈쳐 줄 테니 좀 노시요. 나 망아지 새끼요." "말 같으면 더욱 좋다. 선간목(先看目) 후간족(後看足), 요단항장(腰短項長) 천리마로다. 연인(燕人)도 오백금으로 네 뼈를 사갔으니, 너를 산 채로 말아다 대왕 전 바쳤으면 천금상을 아니 주랴. 들어라." 우우, 토끼를 결박하여, 빨그란 주장(朱杖)대로 쿡 찔러 들어메니, 토끼 하릴없이 대랑 대랑 대랑 달려가며, "어따, 이놈 별주부야." "워야." "나 탄 거 이름이 무엇인고?" "오, 그거 수국 남여라고 하는 것이다." "수국 남여는 본래 이러느냐?" "오냐, 그러느니라." "어따, 이 제기를 붙을 놈의 남여, 두번만 타거드면 옹두리뼈도 안 남겄구나!" 대랑 대랑 대랑 대랑 대랑 대랑 달려 갈 제, 영덕전 너른 마당에 동댕이쳐, "예이, 토끼 잡아들였소."
<아니리>
토끼를 그 영덕전 너른 마당에다가 서너너덧 바퀴를 동댕이쳐서 내궁글려 노니, 토끼란 놈이 눈을 깜작깜작, 좌우를 살펴보니 천택지신(川澤之臣)과 무수한 어병지졸(魚兵之卒)이 겹겹이 둘러쌌거늘, 진퇴유곡(進退維谷)이요, 용궁지하에 필사당퇴(必死當兎ㅣ)라, 토끼란 놈이 하릴없이 꼭 죽었지. 눈을 깜작깜작 뜨고 있을 적에, 용왕이 이만 허고 보더니마는, "어, 그놈 뱃속에 간 많이 들었겄다. 토끼 배 따고 어서 간 내어 소금 찍어 올려라." 분부를 했거든 썩 토끼 배 따고 간 내어 먹었으면 아무 폐단이 없었을 텐듸, 일이 그릇 되느라고, 타국 김생이라 귀히 여겨서 말을 한번 시켜 보것다. "토끼 너 듣거라. 내 우연히 득병하여 명의한틔 문의헌즉, 네 간이 으뜸이라기로, 어진 신하를 세상에까지 보내서 너를 잡아왔으니, 죽노라 한을 말어라. 너 죽은 후에라도 목비(木碑)라도 해 세울 것이고, 네 육신은 안장하여, 정조, 한식, 단오, 추석 제사를 착실히 지내 줄 것이니 조끔도 죽는 거 한을 말고, 헐 말이 있걸랑은 말이나 허고 그냥 죽어라." 토끼란 놈 그제야 인자 죽을 듸 들어온 줄 알았구나. "어뿔까(아뿔싸), 이거 큰일났구나." 눈을 깜작깜작하더니, 한 꾀를 얼른 생각하여 배를 훨씬 내밀며, "자, 내 배 따 보시오." 용왕이 의심이 나지. "저놈이 배를 아니 때일라고 방색(防塞)을 할 터인듸, 배를 의심없이 내민 것이 필유곡절(必有曲折)이라. 무슨 연유인고 말이나 허고 죽어라.", "말할 것도 없고, 소퇴의 배만 촥 따보시오.", "어따, 이놈아, 말을 해라.", "말하여도 곧이 듣지 안 헐 테니 어서 따 보란 말이요.", "어따, 이놈아, 어서 말을 허여라."
<중몰이>
"말을 허라니 허오리다, 말을 허라니 허오리다. 태산(泰山)이 붕퇴(崩頹)허고, 오성(五星)이 음음(陰陰)헌듸, 시일갈상(時日曷喪) 노래 소리 억조창생(億兆蒼生) 원망 중에, 탐학한 상 주임군 성현의 뱃속에가 칠 궁기가 있다 허고 비간(比干)의 배를 갈라 일곱 궁기(구멍)가 있더니까? 소퇴도 배를 갈라 간이 들었으면 좋거니와, 만일 간이 없고 보면 불쌍헌 퇴명만 끊사옵제, 눌다려 달라 허며 어찌 다시 구하리까? 당장으 배를 따 보옵소서." 용왕이 화를 내여, "이놈, 네 말이 간사헌 말이로다. 의서으 이르기를, 비수병즉구불능식(脾受病則口不能食)허고 담수병즉혈불능언[膽受病則舌不能言]허고 신수병즉이불능청(腎受病則耳不能聽)허고 간수병즉목불능시(肝受病則目不能視)라, 간이 없고야 눈을 들어서 만물을 보느냐?" 토끼가 당돌히 여짜오되, "소퇴의 간인즉 월륜(月輪) 정기로 삼겼삽기로, 보름이면 간을 내고 그믐이면 간을 들이내다. 세상의 병객들이 소퇴곧 얼른하면 간을 달라고들 보채기로, 간을 내여 파촛잎에다 꼭꼭 짜서 칡노(칡덩굴)로 칭칭 동여, 영주(瀛洲) 석상(石上) 계수나무 늘어진 상상(上上)개비으 끝끝어리으다 달아매 놓고, 도화 유수 옥계변으 탁족(濯足)하러 내려왔다가 우연히 주부를 만나 수궁 흥미가 좋다고 허기로 완경차(玩景次)로 왔나니다." 용왕이 꾸짖어 왈, "이놈, 네 말이 당찮은 말이로다. 사람이나 짐생이나 일신지내장은 다를 바가 없는듸, 출입지 못하는 간을 어찌 내고 들이고 임의로 출입헌단 말이냐?" 토끼가 히히히히 웃으면서, "대왕이 지기일(知其一)이요 미지기이(未知其二)로소이다. 복희씨(伏羲氏)난 어이하여 사신인수(蛇身人首)가 되얐으며, 신농씨(神農氏) 어짠 일로 인신우수(人身牛首)가 되었으며, 대왕은 어이하여 꼬리가 저리 지드란허고(길고), 소퇴난 무삼 일로 꼬리가 요리 묘똑하옵고, 대왕의 몸뚱이는 비늘이 번쩍번쩍허고, 소퇴의 몸뚱이난 털이 요리 송살송살. 가마구로 일러도 오전 까마구 쓸개 있고, 오후 까마구 쓸개 없사오니, 인생 만물 비금주수(飛禽走獸)가 한가지라고 뻑뻑 우기니 답답지 아니허오리까?" 용왕이 어이없어, "그러하면 네 간을 내고 들이고 허는 표가 있느냐?" "있습지요." "어디 보자." "자, 보시오." 빨그런 궁기가 서이 늘어 있거늘, "저 궁기가 모두 다 어쩐 내력이냐?" "예, 소퇴가 아뢰리다. 한 궁기로는 대변을 보고, 또 한 궁기로는 소변을 보고, 남은 궁기로는 간 내고 들이고 임의로 출입허나이다." "그러하면 어느 궁기로 넣고 어느 궁기로 내느냐?" "입으로 넣고 밑궁기로 내되, 만물시생(萬物始生)이 동방삼팔목(東方三八木), 남방이칠화(南方二七火), 서방사구금(西方四九金), 북방일륙수(北方一六水), 중앙오십토(中央五十土), 천지음양 사시(四時) 정기, 아침 안개, 저녁 이슬, 오색 광채를 응(凝)하여 입으로 넣고 밑궁기로 내오니 만병회춘으 으뜸약이라고 허나니다." 용왕이 어이없어, "그러하면 네 간 먹고 효험 본 이 뉘 있는고?" "있기를 이를 말씀이요? 위수 어부 강태공은 고기 낚으러 나왔다가, 우리 선조 간 씻을 적에 낚싯대 내버리고, 찼던 표자(瓢子)를 선뜻 끌러서 그 물 조끔 떠마시고, 궁팔십(窮八十) 단팔십[達八十]에 일백육십세를 살으시고, 우리 부친 현고(顯考)께서 요산요수(樂山樂水)를 하올 적에, 물에 빠져 죽게 될 적에, 동방삭(東方朔)이가 건져 주어 그 은혜를 갚노라고 간 쪼끔 주었더니 삼천 갑자(甲子)를 살았으니, 대왕의 성덕으로 영주 석상 달아놓은 간 보채 들여다 자셨으면 백발이 환흥[還黑], 낙치부생(落齒復生), 환골탈태(換骨奪胎), 연년익수(延年益壽), 만병회춘을 허오리다."
<아니리>
어떻게 이놈이 말을 잘해 놨던지 용왕이 벌렁 넘어갔던가 보더라. 제신들을 돌아보며, "이 일을 어찌 할꼬?" 제신들이 주왈(奏曰), "대체 간 유무는 알 수가 없습내다.", "어, 그러하면 토끼 해박(解縛)하라." 토끼를 해박하여 전상에 올려 앉히고, 용왕이 토끼를 도루는듸 이치에 꼭 닿게 도루것다. "토공 듣게, 내가 인제곧 잠시 허던 일은, 토공이 전장을 당하여 시석(矢石) 중에 가 들면 사생(死生)을 불피(不避)헐까 아니헐까 그 담기(膽氣) 보난 일이니, 부대 노여 생각지 말게잉." 토끼란 놈, 속으로 용왕 배 딸 마음이 있드되 겉으로는, "그럴 일이요, 고마운 말씀이요." 토끼를 위하여 술상을 들였는듸, 기린포(麒麟脯)로 안주 놓고, 앵무잔 유리병에 천일주 한잔을 졸졸 부어, 용왕이 주인지도래[主人之道理] 하노라고 먼저 몇 잔 먹고 토끼에게 술을 권해 논 것이, 토끼 이 잡것이 물색 모르고, 세상 술과 같은지 알고, 맛보느라고 이삽십잔, 먹어 보느라고 오륙십잔, 한 칠팔십잔을 먹어 논 것이 술이 까빡 취했던가 보더라. 용왕 자(字)를 제가 제 손수 하나 지어 가지고, "여보소, 용게미." 용왕 역시 술이 다뿍 취하여 토끼 자를 맞지어 부르것다. "아, 토게미, 무엇하랴나?", "아, 내가 전일 동의보감을 많이 보았으되 토끼 간 약 된다는 말은, 뱃속에 달린 간을 들이고 내고 한단 말은, 아차차차차차차, 춘치자명(春雉自鳴)이로고. 기왕 여까지 왔으니 수궁 풍류나 좀 듣고 갔으면 한이 없겠소.", "그란해도(그러지 않아도) 토공 위로헐라고 지금 수궁 풍류를 막 등대(等待)했습네." 뜻밖에 수궁 풍류가 낭자허는듸,
<엇몰이>
왕자 진(晋)의 봉피리, 곽처사 죽장고, 석연자 거문고, 장양(張良)의 옥퉁소, 혜강( 康)의 해금이며, 격타고(擊 鼓) 취용적(吹龍笛), 능파사(凌波詞), 보허사(步虛詞), 우의곡(羽衣曲), 채련곡(采蓮曲)을 곁들여서 노래허니 낭자헌 풍악 소리 수궁이 진동헌다. 토끼도 신명을 내여,
<아니리>
앞발을 묫 '산(山)'자 뽄으로 번쩍 치켜들고 놀아 보는듸, 팔 명창 선생님 중의 경기도 여주 사시던 염계달(廉季達) 씨 추천목으로 한번 노던가 보더라.
<중중몰이>
"앞내 버들은 초록장(草綠帳) 두리고, 뒷내 버들은 유록장(柳綠帳) 두리쳐, 한 가지는 찌여지고(찢어지고), 한 가지는 늘어져, 바람 부는 대로 물결 치는 대로 흔들흔들 흔들흔들 춤을 출 제, 어머니는 동우(동이)를 이고, 아버지는 노구를 지고, 노고지리 지리 노고지리." 앞발을 번쩍 치켜들더니 촐랑 촐랑 촐랑 노는구나.
<아니리>
대장 범치(망둥이)란 놈이 토끼 뒤에 졸졸 따라다니다가 토끼 뱃속에서 올랑촐랑허는 소리를 딱 듣더니마는, 이놈이 여들없이, "어따, 토끼 뱃속에 간 들었다아." 해 논 것이, 토끼란 놈 깜짝 놀래 팍 주저앉아 술이 팍 깨어 버렸지. "에께, 이놈 보게. 야 이놈아, 빈 속에 술잔이나 들어가 노니 똥뗑이 쳐 농치는 소리가 올랑촐랑허는듸 그게 간 노는 소리냐, 이놈아?" 토끼가 말은 그렇게 했지마는 속으로는 질리던가 보더라. "군자는 가거이방(可去異邦)이요 견지이작[見知離 ]이라 하얐으니, 속인 김에 빼는 것이 제일 수다." 용왕전에 들어가서 여짜오되, "소퇴가 이리 놀기는 좋사오나, 대왕의 병세가 위중하오니, 먼점 나갔던 별주부를 안동하여(동반하여) 주시면 간을 속히 들여오겄습니다.", "어허, 기특코 고마운 말이로구나." 별주부를 불러들여, "네 토공을 모시고 세상에를 나가, 간을 주걸랑 그건 그저 빨리 가져 들어오너라." 분부를 해놓으니,
<중중몰이>
별주부가 울며 여짜오되, 별주부가 울며 여짜오되, "토끼란 놈 본시 간사하오. 뱃속에 달린 간 아니 내고 보내면 초목 금수라도 비소(誹笑)할 터이오. 맹획(孟獲)의 칠종칠금(七縱七擒)하던 제갈양(諸葛亮)의 재주 아닐질댄, 한번 놓아서 보낸 토끼를 어찌 다시 구하리까? 당장으 배를 따 보아 간이 들었으면 좋거니와, 만일 간이 없고 보면 소신의 구족을 망하여 주옵고, 소신을 능지처참(陵遲處斬)허드래도 여한(餘恨)이 없사오니 당장에 배를 따 보옵소서." 토끼란 놈 듣고 기가 맥혀, "이놈아 별주부야, 얘 이놈 별주부야. 너 날과 무슨 혐오 있나. 하(夏) 걸(桀)이 학정(虐政)으로 용방[龍逢]을 살해하고 미구(未久)에 망국이 되었기로, 너도 이놈, 내 배를 갈라 간이 들었으면 좋거니와, 만일 간이 없고 보면, 불쌍한 내것 목숨 너의 나라 원귀되야, 너의 용왕 백년 살듸(살 것을) 하로도 못살 터이고, 너희 수국 만조 백관을 한날 한시에 모도 다 몰살시키리라. 아나, 엿다, 배 갈라라. 아나, 엿다, 배 갈라라. 아아 아나, 엿다, 배 갈러라, 아나, 엿다, 배 갈러라. 똥 밖에는 든 것 없다. 내 배를 갈라 네 보아라."
<아니리>
어떻게 이놈이 말을 잘 해 놨던지 용왕이 돌려서(속아서) 제신을 가만히 보더니마는, "네 이놈들, 다시 토공을 해치는 자가 있으면 어망(漁網)살 앞으로 이놈들 정배(定配)를 보내리라!" 분부를 해놓으니 별주부 기가 맥혀, "놈, 용케 잘 살아간다. 네 이놈, 살아가기는 살아간다마는 양심은 있을 것이야잉. 헐 수 없다. 내 등에 업히어라." 사은숙배(謝恩肅拜) 하직헌 후에 수정문 밖 썩 나서서 다시 세상에를 나오는듸,
<진양>
가자 가자, 어서 가자. 이수를 지내여 백로주를 어서 가자. 삼산을 바라보니 청천외으가 멀어 있고, 일락장사추색원(日落長沙秋色遠)허니 부지하처조상군(不知何處弔湘君)고. 한 곳을 바라보니 한 군자 서 있으되, 푸른 옷 입고 검은 관을 쓰고 문왈, "토공이 하이직차[何以至此]오?" 토끼 듣고 대답허되, "회족청산(回足靑山)허니 관불과제관(觀不過諸觀)이요, 탁족무림(濁足無臨)허니 태불과봉황(殆不過鳳凰)이요, 소무지식(素無知識)허고 유매평생(流魅平生)이라." 그 군자를 하직허고 또 한 곳을 당도허니, 오호 창파(滄波) 연월(煙月) 속의 돛대 치는 저 사공은 월(越) 범여(范 ) 아니련가. 하묘장강공자류[檻外長江空自流]는 등왕각( 王閣)이 여그로구나.
<중중몰이>
아서라, 다 바려. 백마주 바삐 지내여 적벽강을 당도. 소자첨(蘇子瞻) 범주유(泛舟遊) 동해 상달 떠온다. 두우(斗牛)간으 배회하여 백로횡강(白露橫江)을 함께 가. 소지노화월일선(笑指蘆花月溢船) 추강 어부가 무인배. 기경선자(騎鯨仙子) 간 연후 공추월지단단(空秋月之團團). 자래 등에다 저 달을 실고 우리 고향을 어서 가. 환산농명월(還山弄明月) 원해근산(遠海近山) 좋을시고. 토끼란 놈이 좋아라 깡짱 뛰어 내려서더니, 이리 궁글고 저리 궁글 이리저리 넘놀 제, "얼씨구나 살았네."
<아니리>
이놈이 해변가를 썩 당도하여 산천으로 쭉 기어 올라가니, 별주부 기가 막혀, "아, 여보시오, 토공. 아 죽겄다 살겄다 업어다 놓으니까 그렇게 모르는 체하고 가신단 말이요? 간이나 좀 갖고 오시오." 가던 토끼가 실쩍 돌아다보더니 욕을 냅더 퍼붓는듸 꼭 이렇게 퍼붓던가 보더라.
<중몰이>
"제기를 붙고 발기를 갈 녀석. 뱃속에 달린 간을 어찌 내고 들인단 말이냐? 미련하더라, 미련하더라, 너의 용왕이 미련터라. 너그 용왕 실없기 날 같고, 내 미련키 너그 용왕 같거드면 영락없이 죽을 것을, 내 밑궁기 서이 아니드면 내 목숨이 어이 살아가랴? 병든 용왕을 살리랴 허고 성한 토끼 내가 죽을소냐. 내 돌아간다, 내가 돌아간다. 백운청산으로 내 돌아간다.
<아니리>
네 이놈. 네 소탕머리(소갈머리)를 이놈 생각하면, 네 복판을 저 내민 돌팍(돌멩이) 위에다 올려 놓고, 우루루루루 쫓아가서 콱 밟어 가지고 옹그짐 뿌시러진(부스러지는) 소리가 나게 해서 보낼 일이로되, 네가 나를 업고 수국 만리 먼먼 길에까지 들어갔다 나온 공을 생각해서 살려는 보내지마는, 네 이놈, 차후에는 그런 보초없는 버릇은 놔라잉. 하마트면 내가 너 때문에 수국에 가서 오살(誤殺)할 뻔 당했다, 이녀르 자슥아. 그러나 내가 수국에 가서 잠깐 근경(近景)을 보니, 네가 용왕한테 충성이 지극허던구나. 내가 약을 한 가지 일러 줄 터이니 갖고 이대로 해라잉. 너그 수국에 암자래 많더구나, 요놈. 하루 일천오백 마리씩 석달 열흘만 댈여 멕이고, 복쟁이 가루를 천석(千石)을 만들어서 오대대[梧子大]를 크게 지어라. 지어 가지고, 용왕 입에다 전지를 딱 들이대고, 안 먹을라고 해도 어쨌든지 다 멕여라. 그러면 죽든지 살든지 판단(결판)이 나 버릴 것이다. 네 이놈, 속 채리고 어서 들어가. 나도 갈 데로 가니까 어서 가란 말이야." 별 주부 곰곰 생각을 해 보니 저놈한틔 속절없이 돌렸구나. 하릴없어 수궁으로 들어가 버리고. 그때에 토끼란 놈은 살어왔단대서 금잔디 밭에 가 대그르르르 궁글며 귀를 털고 생방정을 떨고 한번 놀아 보는듸,
<중중몰이>
"관대장자(寬大長者) 한(漢)고조(高祖) 국량(局量) 많기가 날만허며, 운주결승(運籌決勝) 장자방(張子房)이 의사(意思) 많기가 날만, 신출귀몰(神出鬼沒) 제갈양(諸葛亮) 조화 많기 날만, 무릉도원(武陵桃源) 신선(神仙)이라도 한가허기가 날만? 예 듣던 청산 두견, 자주 운다 저 새소리. 타향 수국에 갔던 벗님이 고국 산천을 돌아오니 어찌 이리도 반갑냐." 예 먹던 머루 다래를 오도독 오도독 깨물면서, 요리로 깡짱 저리로 깡짱, 깡짱 깡짱 뛰고 논다.
<아니리>
산짐생 잡을라고 그물 쳐 논데 가서 이놈이 요리 뛰고 조리 뛰다가 탁 뒷발이 걸렸던가 보더라. "아이고, 나 또 죽네. 아이고, 내가 차라리 수국에서 죽었더라면 목비(木碑)라도 세워 주고, 정조, 한식, 단오, 추석, 제사나 착실히 받아먹을 것을, 이제는 속절없이 내가 죽는구나." 대롱대롱 허고 있을 적에, 뜻밖에 어디서 쉬파리떼가 앵 하고 날아오지. "아이고, 쉬 낭청(郎廳) 사촌들 어디 갔다 오시오?", "오, 너 옳게 걸렸구나. 너 이놈 뻣뻣이 그냥 죽어라.", "내가 이렇게 걸려서 살아날 길이 없소. 허니 내 몸에다 쉬나 좀 다뿍 쓸어 주시오. 그러면 나 꼭 살아날 꾀가 하나 있소마는.", "어라, 이놈, 네가 아무리 꾀가 많다고는 허지마는 사람의 손 하나를 이놈 당헐소냐?", "아이고, 대체 사람의 손이라는 게 어떻게 생긴 것이요?", "사람의 손 내력을 일러 줄 터이니 들어 봐라잉.
<잦은몰이>
사람의 내력을 들어라. 사람의 손 내력을 들어라. 사람의 손이라 허는 게 엎어 노면 하날이요 됫세놓으면 땅인듸, 요리저리 금이 있기는 일월 다니는 길이요, 엄지 장가락이 두 마디기는 천지인(天地人) 삼재요, 젓가락이 장가락만 못하기는 정월, 이월, 삼월, 장가락이 그 중의 길기는 사월, 오월, 유월이요, 무명지가락이 장가락만 못하기는 칠월, 팔월, 구월이요, 소지(小指)가 저룹고(짧고) 저룹기는 시월, 동지, 섣달인듸, 자오묘유(子午卯酉)가 여그 있고, 건감간진손이곤태(乾坎艮震巽離坤兌), 선천팔괘(先天八卦)가 여그 있고, 불도(佛道)로 두고 일러도 감중연(坎中連) 간상연(艮上連) 여그 있고, 육도기문(六道記文)이, 대장경(大藏經), 천지가 모도 일장(一掌) 중이니, 네 아무리 꾀를 낸들 사람의 손 하나 못당허리라. 두 말 말고 네 죽어라.
<아니리>
너는 글쎄 죽는 것이 순께(쉬우니까) 그저 죽어라." 토끼 듣고, "여보시오, 죽고 살기는 내 꾀가 가 매였으니, 있는 쉬니 애끼지 말고 좀 제발 씰어 주시오.", "글랑 그리해라." 수백 마리가 달려들어서 토끼털 속에다 빈틈 하나 없이 쉬를 다뿍 씰어 놨던가 보더라. 토끼란 놈 무죄간에 쉬 한짐 다뿍 짊어지고, 죽은 듯기(듯이) 눈만 깜작 깜작 뜨고 있을 적에, 그때에 저 아래서 목동 초군들이 지게 갈퀴를 짊어지고, 웨나리를 부르며 심심산곡으로 나무를 하러 올라오는듸,
<중몰이>
"어이가리 너, 어이가리 너, 어이가리 넘자 너화로구나. 하나님이 사람을 낼 제 별로 후박(厚薄)이 없건마는, 우리놈의 팔자는 무슨 놈의 팔자간듸, 날 곧 새며는 지게 갈퀴를 짊어지고 심산궁곡(深山窮谷)이 웬일이냐. 여보아라, 친고(親故)들아, 너는 저 골을 베고 나는 이 골을 베어, 부러진 잡목 떨어진 낙엽을 긁고 베고 엄똥그려(몽똥그려) 힘껏대로 허여다가, 위부모보처자(爲父母保妻子)를 극진 공대허야 보세. 어이가리 넘자 너화로구나, 어이가리 너 너화로구나."
<아니리>
한참 이리 올라갈 제, 한 놈이 보더니 토끼가 걸렸거든. "아따, 저 토끼 걸렸다아. 맛 좋은 놈 걸렸다. 우리 고기도 먹고 잡던(싶던) 판에 저놈 만났으니 폭신 궈 먹고 올라가자." 한 놈이 지게를 벗어 놓고 깡충깡충 뛰어 들어가서 토기를 쑥 빼 들고 보니 쉬를 다뿍 씰어 놨거든. "이거요, 요새 날이 따땃하니, 걸린 지가 오래 됐네여. 쉬를 다뿍 씰어 놨으니 먹겄나여?" 한놈이 그 젙에 있다가, "야, 이 녀석아, 그럼 냄새나 맡아 봐서 썩었걸랑 내버려라. 아무리 우리가 고기는 먹고 잡지마는 썩은 고기 먹었다가 뱃병 나버리면 여러 놈 죽는다, 이 녀석아." 이놈이 냄새를 맡는듸, 토끼 대가리다 대고 냄새를 맡았으면 아무 폐단이 없이 궈 먹고 올라갈 일인듸, 일이 그릇 되느라고 하필 토끼 궁둥이에다가 코를 딱 대고 냄새를 맡았던가 보더라. 토끼 음흉헌 놈이 삼년 몽그려(모아) 놨던 도토리 방구를 스르르르 딱 뀌어 놓으니, 쉬이. "어따, 이 구렁이 썩는 내가 난다. 이 못 먹겄다. 이거 내버려 버리자." 휙 집어던져 논 것이, 토끼란 놈 죽을 배도 만무하고, 저 건너 가서 깡짱 뛰며 허는 말이, "야, 이놈들아, 내가 썩어야? 너의 눈구녕이 썩었다, 이 육시(戮屍)헐 놈들아. 아, 멀쩡한 토끼를 썩었다고 그려여. 기왕 이리 된 것이니 나 노는 귀경이나 좀 해라." 이 사람들이 어이없어서 우두커니 서서 보니, 거기서 이놈이 또 한번 노는듸 이런 가관이 없던가 보더라.
<중중몰이>
"얼씨고나 좋을시고, 지화자 좋다. 얼씨고 절씨고 자화자 좋구나, 얼씨구나 좋을시고. 사지(死地) 수궁 먼먼 길 살아나니 장관, 복희씨(伏羲氏) 맺힌 그물에 접접이 쌓였다가 살어 나니 장관, 사람의 손이 무섭다 헌들 나의 잔꾀를 당할소냐, 얼씨고나 좋을시고. 영산홍(映山紅)도 봄바람, 넘노나니 황봉(黃蜂) 백접(白蝶), 붉을 단(丹) 푸를 청(靑)은 산영강수(山影江水)를 그림하고, 나는 나비 우는 새는 춘광(春光) 춘흥(春興)을 자랑헌다." 그 산 광야 너른 곳에 금잔디 좌르르르 깔린 듸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촐랑촐랑 노는구나.
<아니리>
아, 이렇게 놀 적에, 어디서 위이 소리가 나더니마는, 저 공중에서 달구둥지리만헌 독수리가 내려와 토끼 대가리를 탁 찼것다. 토끼란 놈 슬쩍 돌아다보니 독수리거든. "아이고, 장군님, 어디서 이렇게 오시요?", "오, 나 공중에서 망견(望見)허구 있다가 시장허길래 너 잡어먹으러 온다.", "아이고 장군님, 그러면 맛진 꽁지서부터 자실랴오?", "아니, 맛진 대가리서부터서 발톱까지 하나도 안 남기고 다 먹어야 배 차게 생겼어, 이놈아." 토끼란 놈 곰곰 생각허더니 꾀 하나를 얼른 생각하여, "아이고, 장군님, 그러면 이왕 저를 자실라거든 내 설움타령이나 한번 들어 보고 자시시오.", "그래라마는 너무 많이 울면 살 내릴라. 이놈, 쪼끔만 울어라잉." 토끼란 놈이 설움타령을 한번 내서 청승을 떠는듸,
<중몰이>
"아이고, 아이고, 내 일이야.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내 신세야. 사지(死地) 수국(水國) 먼먼 길에 겨우 얻어내 온 보물을 무주공당(無主空堂)에다 더져 두고 임자가 없으니 어찌헐거나,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내 일이야."
<아니리>
독수리란 놈 가만히 듣더니, "네 이놈, 금방 죽는 놈이 무엇이 서러워서 그렇게 운단 말이냐?", "장군님 들어 보시시오. 내가 이번에 수국을 갔습더이다.", "그래서.", "수국 용왕이 나를 타국 김생이라고 귀히 여겨 의사 줌치를 하나 줍디다.", "그래서. 의사 줌치라는 것이 무엇이냐, 이놈아.", "글쎄 들어 보시요. 의사 줌치를 쫙 펴노면 구녁이 여럿이 뚫어졌어요. 한 궁기를 톡 튕기면서 병아리 새끼, 도야지 새끼, 강아지 새끼 나오너라 하면 일천오백 마리가 그저 꾸역꾸역 다 나오고, 또 한 궁기를 톡 튕기면서, 썩은 개 창사, 되야지 창사, 병아리 창사 나오너라 해놓으면 몇날 며칠이고 그저 꾸역꾸역 다 나오니, 그러한 보물을 무주공당에다 더져 두고 금방 탁족(濯足)하러 내려왔다가 장군님을 만나서 죽게 생겼으니 그 아니 서럽단 말이요?" 독수리란 놈 가만히 생각허더니, 그것이 다 제 밥이거든. "네 이놈, 토끼야. 내가 너를 살려줄 테니, 그 의사 줌치 그놈 날 도라.", "장군님 제 목숨만 살려 줄테면 드리고말고 해요?", "그러면 어디다 두었느냐?", "저 석산 돌틈에다 두었으니 나를 들고 그리 갑시다.", "그러자." 독수리란 놈이 토끼를 좋은 술병 들듯 발로 꽉 찍어갖고는 훨훨 날아가, "어디냐?", "여기 여, 돌틈에 들었소.", "그럼 내가 발로 찍어 내 올란다.", "아이고, 장군님. 세안에 먹을라고 저 짚이 두어서 장군님 발 안 달 것이요. 그러니 내 뒷발만 꽉 잡고, 놔 돌란 대로만 놔 주면 내가 앞발로 가서 찍어내 오리다.", "글랑 그리하여라." 독수리란 놈이 토끼 뒷발을 딱 잡았것다. "조금만 노시요.", "자,", "조금만 노시요.", "자.", "조금만 더 노시요.", "자.", "발에 알친알친하요. 조금만 더 노시요.", "어라, 이놈, 너머 과타." 그럭저럭 잡은 것이 토끼 뒷발톱을 딱 잡었는듸, "조금만 노시요.", "자.", "조금만 노시요.", "자.", "조금만 노시오, 노시오, 노시오." 탁 차고 들어가 버려서 저 굴 막둥 창시에 가 앉아 갖고, 한가한 체하고 시조(時調) 초장(初章)을 썩 내것다. "반나마 늙었으니 다시 젊지 못허리라." 독수리란 놈 기가 맥혀, "네 이놈, 토끼야. 아, 너 이놈아, 의사 줌치 안 가져나오고 뭣하고 있는고?" 토끼란 놈이 거기서 인자 보를 우르는듸, "너 이놈, 독술아. 내가 너한테 죽을 것을 말여, 너를 홀겨 가지고 이 굴문 앞에까지 온 것이 그것이 의사 줌치라는 것이다, 이 때려죽일 놈아." 독수리란 놈 기가 맥혀, "너 이놈, 내 발 심 알제잉. 발만 딜여 놓고 회저어 놓으면 어느 발톱에 걸려 나오든지 나올 것인께, 이놈.", "오냐, 이놈아, 발만 들여놓기만 들여 놔라. 다른 것도 못 잡아먹게 차돌로 탁탁 좃아서 없애 버릴 것이다." 독수리란 놈 기가 맥혀, "너 이놈, 네가 이놈 그럼 생전 그 굴 속에서 늙어 죽을 것이냐?", "오냐, 이놈아. 인자는 먹을 건 많이 장만해 놨것다, 뭐 나갈 듸도 별로 없고, 인자 손자나 봐 주고 자봉(自奉)허다가 인자 늙을란다." 독수리란 놈이 곰곰 생각을 해 보니 저놈 놀랜 품이 며칠 동안은 안 나오게 생겼거든.
<엇중몰이>
독수리 그제야 돌린 줄 알고 훨훨 날아가고, 그때에 별주부는 수궁으로 들어가서 대왕 병 즉차허고, 그때에 토끼는 그 산중에서 암혈이 늙다가 월궁으 올라가서 도야하고 지냈다니, 그 뒤야 뉘가 알리, 더질더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