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의 성공을 위해 보완해야 할 점 7가지
이찬승, 교육을바꾸는사람들 대표 2021.02.18
#고교학점제#교육부#논평
지난 2월 17일 교육부가 ‘모든 학생의 성장을 돕는 포용적 고교교육 실현’을 비전으로 한 고교학점제 종합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이 기초 소양과 기본 학력을 바탕으로 진로 적성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고, 이수기준에 도달한 과목에 대해 학점을 취득·누적하여 졸업하는 제도”이다. 고교학점제는 2018학년도부터 연구·선도학교를 중심으로 학생 선택형 교육과정 운영과 지역 단위 고교학점제의 모형을 만들어 왔으며, 2020년부터 산업수요 맞춤형 고등학교(51개교, 이하 마이스터고)에 우선 도입하여 운영 중이다. 고교학점제가 2025년 고등학교 입학생부터 전면 시행되면 개별 학교마다 다양한 교육과정이 도입되고 학생은 자신의 진로와 적성에 맞추어 교실을 옮겨가며 수업을 듣게 된다. 고교 3년 동안 최소한 192학점을 이수해야 졸업할 수 있으며 과목별로 최소 성취수준 이상에 도달해야 진급할 수 있다. 학기당 최소 학점은 28학점이며 최대학점에는 제한이 없다. 그렇다고 조기졸업을 허용하지는 않는다. 고교학점제 도입으로 인한 가장 큰 변화는 개인의 과목 선택권 확대와 진급·졸업 요건의 강화라고 할 수 있다.
교육부는 고교학점제 도입의 취지가 고교체제 개편(2025년 외고·자사고 등 일반고 전환)과 더불어 우리나라 고등학교 교육의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핵심 국정과제로, 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급격한 사회 변화, 감염병 발생, 학령인구 급감 등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 학생 한 명, 한 명이 자신의 진로와 적성을 찾아 자기주도적 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상의 취지만 보면 고교학점제는 한국의 고교교육뿐만 아니라 초중고 교육까지 혁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최소한의 자격을 갖출 수 있어야 진급하고 졸업할 수 있도록 한 것은 그동안 출석일수만 채우면 진급·졸업이 가능했던 제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라 쌍수를 들어 환영할만하다. 게다가 학교마다 학생마다 배우는 내용의 차이가 큰 점을 활용해 현행 수능시험을 지금보다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기대도 가능하다. 또한 이를 잘 활용하면 그동안의 무책임 교육과 획일적 교육을 개선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도 많다. 고교학점제는 의지만 있다고 가능한 것이 아니다. 이것이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기 위해서는 몇 가지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어야 한다. 이런 인프라로 대표적인 것이 i) 학교 간 교육환경의 차이를 최소화하는 일(지난한 일임, 이로 인한 격차 심화가 예상됨. 자사고·외고 등의 존재는 교육격차와 불평등을 심화시킴), ii) 질 높은 절대평가 환경의 마련(이 역시 지난한 일임. 교사의 정성평가 전문성이 높지 않고 평가결과에 대한 신뢰도가 낮을 가능성 높음), iii)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교육과정의 개정(2022년 개정), iv) 이를 뒷받침해줄 새로운 대입제도의 마련(2024년 발표, 2028년 첫 시행. 대학은 상대평가적 요소의 강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큼), v) 교원의 증원과 다과목을 가르칠 수 있는 교원의 재연수와 양성 등이다.
경쟁적 사회 환경과 입시 환경이 변하지 않는 한 고교학점제는 입시교육의 최적화 도구로 전락할 위험도 매우 크다. 또 학습환경이 상대적으로 좋은 학교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상황을 만듦으로써 학교 간 격차와 교육불평등을 심화시킬 가능성 역시 높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고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실현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위해 몇 가지 보완될 사항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학교 간 학습환경 격차를 줄일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농산어촌의 경우 공동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온라인 수업을 개설하며 순회교사를 두고 희소 과목은 학교 밖 전문가를 시간제·기간제 교원으로 채용해 활용한다고 하지만 학교 간, 지역 간 학습환경 격차를 줄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농산어촌의 경우, 인접한 고등학교가 없는 상황에서 공동교육과정을 마련하거나 학교 밖 자원과 연계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다. 온라인 수업의 경우도 모든 과목이 온라인 수업에 적합한 것도 아닐뿐더러,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 수업이 도입되면서 교육격차의 우려가 심해지는 상황을 봐도 온라인은 한계가 많은 해법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 좀 더 파격적인 긍정적 차별(positive discrimination)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 일차적으로 열악한 학교에 교원 및 기타 자원을 더 많이 지원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둘째, 성적 부풀리기에 대한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국가 및 교육청 수준에서 성적 부풀리기를 막기 위한 등급 조정(moderation) 및 모니터링 체제를 갖춤으로써 교사별 절대평가의 신뢰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한 동일한 수행 결과를 두고 교사들 간의 평가가 크게 달라서는 곤란하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으로는 채점에 복수 교사의 투입, 교사별 절대평가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정기적 워크숍 개최 등이 필요할 것이다.
셋째, 절대평가 성취기준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교육환경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농산어촌 학교의 경우 성취평가(절대평가) 기준을 우수 자사고, 외고 등과 동일하게 할 경우 전교에 A 레벨의 성적을 받는 학생이 한 명도 없을 수도 있다. 각 학교의 교육환경 수준을 고려해 A(BCDE) 성적의 기준을 달리하는 것도 검토해야 한다. 이는 성적부풀리기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며 교육적 관점에서 보면 지극히 타당한 것일 수 있다. 이를 통해 현재 상대평가 제도에서 농산어촌의 1등급과 우수 자사고, 외고의 1등급을 동일하게 취급한 것과 비슷한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공정한 대입전형은 학생의 성적이 어떤 환경에서 만들어진 것인지까지 살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필요할 것이며 대입제도와도 연계해 해결해야 할 문제라 생각된다.
넷째, 초등 저학년부터 질 높은 기초학력 책임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초등학교, 중학교 과정에서는 출석일수 기준으로 진급과 진학을 시켜 놓고 고교 수준에서 갑자기 최소 이수기준(40%)을 적용할 경우, 고교에서 이를 해결하기란 어렵다. 반드시 초중 수준에서도 책임교육을 함께 해나가야 한다. 이를 위한 구체적 계획이 수립되기를 바란다. 이는 기초학력보장제법의 도입과 함께 풀어야 한다.
다섯째, 학습부진이 발생한 후에 보정하려는(wait to fail) 지금의 제도에서 벗어나 학습부진이 발생하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는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런 취지에 맞는 대표적인 방안이 개입반응접근법(Responsive to Intervention: RTI)과 뇌친화적교수학습법(Brain-Based Teaching & Learning)이다. 개입반응접근법(RTI)은 학습과 행동에 어려움을 보이는 학생을 조기에 확인하고 지원하기 위한 다층적 접근으로, 학습이 부진한 학생들에게는 개입의 강도를 점진적으로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한편 뇌친화적교수학습법은 “뇌는 어떻게 학습하는가?”와 “뇌가 학습하는 원리의 이해를 바탕으로 교수·학습을 어떻게 최적화할 수 있는가?”에 대한 것이다.
여섯째, 성취평가(A,B,C,D,E,I)(I = Incomplete 미이수)에서 ‘이수’ 최저 성취도 E(40%이상~60%미만)를 가령 10년 후에는 세계 주요국의 기준인 D(60% 이상~70%미만)로 높여야 한다. 낙제 즉 재이수 기준을 세계의 주요국들이 보통 60%로 삼는 것에 비하면 현재 우리가 40% 미만으로 재이수 기준을 잡은 것은 너무 낮다. 다만 지금까지 출석일수 기준으로 진급·졸업을 시행하다가 갑자기 이 기준을 높일 경우 야기될 부담과 문제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시작에 대해서는 이해한다. 하지만 이를 영구적으로 40% 미만으로 두려고 한다면 무책임 교육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일곱째, 대학에 진학하지 않을 학생들에 대한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고교학점제에 대한 교육부의 구상은 대학에 진학할 학생들 위주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직업세계로 나갈 학생들의 요구도 파악해서 이를 충실히 반영해주기 바란다.
이상의 7가지 점에서 개선을 촉구하며 고교학점제 도입이 성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