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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선생 제주도 청춘여행기
제주도를 향하여~
우리들을 실은 TW803기는 그 육중한 몸을 활주로에서 이륙하여 굉장한 소리를 내며 고도를 높여 갔다. 그 무거운 쇳덩어리가 195여명의 승객과 짐을 싣고 하늘로 오르는 것이 어린아이같이 신기했다. 엔진을 통한 추진력과 날개를 통한 양력의 힘으로 난다는 것을 배웠어도 신기했다.
기대에 찬 기분이 아직 가라앉지 않았는데 비행기는 상승 기류률 타고 제 항로를 찿아 제주도로 향하였다. 옆에 앉은 靑也 海光은 기내 정숙에 협조하여 말은 없었으나 규상칭구가 초대한 이번 제주도 청춘여행에 기분이 썩~좋아 보였다.
이륙 40여분이 지나자 비행기는 벌써 하강한다는 기내 방송에 실망하며 카톡을 여니 아뿔사~ 규상칭구의 카톡이 30여분 전에 와 있었다. 정상적으로 탑승하였는지 와 대합실 진입시 연락을 하라는 등의 메시지였다. 바로 현재의 상황을 날렸다.
드디어 제주공항 대합실 5번 출구에 마중나온 규상칭구는 반가운 얼굴로 우리 일행들을 맞이해 주었고 승용차에 태웠다. 객지에서 만나니 더 반가웠다. 바로 제주 청춘여행은 시작되었다.
멋진 풍광으로 이름난 명소, 유서깊은 답사지들을 보고(視), 또 상세히 보고(觀), 살펴 보고(察)하기로 마음먹었다.
산천단(山川壇) 가는 길
오늘(6월 10일)첫 방문지는 아라일동에 있는 산천단이었다. 시가지를 벗어난 제주의 외곽 도로는 한산하였다. 푸른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니 제주도에 왔음을 실감하였다. 아!~ 푸르고 푸른 바다- 우뚝 솟은 한라산- 차창밖으로 푸른바다와 검은 해안선이 천천히 지나가고 넓은 목장에는 게으르게 풀 뜬는 말들이 보였다. 원시림같은 울창한 숲속의 도로- 차창으로 들어오는 청정한 공기는 일상의 스트레스를 싹 다 날렸다.
한라산과 산천에 제를 올리는 산천단에는 곰솔군락이 있었다. 해송. 흑송이라고도 하는 이 곰솔들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되었다고 한다. 검고 큰 고목 곰솔들이 띄멈 띄엄 점잖게 서 있으니 신성한 느낌이 들었다. 고대의 사람들이 생명의 안전과 자손 번창 그리고 자연재해를 피하고자 이곳에서 지극정성으로 한라산 산신에게 제를 올리던 곳이었다. 인간의 불안은 문명의 발전에도 여전하였고 과학이 발전한 현대에도 더 많은 방법의 신앙으로 살아가고 있다. 말없는 곰솔군은 인간이 신에게 비는 모습을 수백 년 지켜보아 왔을 것이다. 연약하고 불안한 인간- 외로운 존재.
삼나무와 거문오름
이제 규상의 그랜져는 우리 일행들을 싣고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된 거문오름으로 달렸다. 산천단 볼거리가 간단하여 짧은 시간에 마치니 다음 답사지가 기대되었다.
거문오름에는 65세 이상은 무료였다. 매표소 창구 여직원에게 주민등록증 대신 모자를 벗어 65세 이상임을 증명하였으나 소용없었다. 융통성없는 공무원이었다. 이 광경을 목격한 문모씨가 파안대소(破顔大笑)하였다. 나는 일상에 있는 일인데.. 무슨 요상한 볼거리를 본 것처럼 웃어대는 것이 미웠다. 김모 변과 함께하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오름은 오르다에서 파생된 말로 제주도에 소재한 200m이하의 작은 봉우리나 산들을 오름이라 한다고 하고 그 수가 368개가 된다고 하니 높게 보이는 모든 언덕과 봉우리가 오름이라 할 수 있겠다. 바람 돌 여자 3다(多)의 제주가 오름을 더해 4다(多)의 제주라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오르막 데크계단이 삼나무 숲속으로 길게 뻗어 있었다. 음지의 테크길 계단에는 피톤치트가 잔뜩 함유된 신선한 공기가 꽉 차 있어서 정신을 맑게 해 주었고 숨가뿜을 진정시켜 주었다. 데크길 계단 왼쪽으로는 50여년이 된 삼나무가 베여져 있었다. 한 두 그루가 아니고 상당한 면적이 벌목되어 있었다. 세계 자연유산에 등재된 명승지에 이런 모습이 있는 것이 의아스러웠다. 자생나무와 자생식물들을 복원하기 위해서 한다고 하지만 사후 처리가 안 되어 보기가 처참하였고 자치단체 해당 부서가 원망스러웠다. 인간은 자연을 마음대로 하지만 그 자연속으로 죽어 간다. 심을 때는 왜 몰랐던가- 불쌍한 삼나무-
거문오름에는 용암협곡과 수직동굴, 용암함몰구와 풍혈등이 있으며 붓순나무군락지도 있다 하나 다음 일정을 위하여 1코스만 올랐다. 뒤에서 축쳐져 오던 해광도 언덕 전망대에 와서는 생기가 돋았다. 앞선 그룹이 쉬고 있다가 꽁지가 오면 “왔다” 하고 출발하는 사람은 매너가 둔한 사람-
동쪽송당동화마을
제주시 구좌읍 비자림로에 있는 동쪽송당동화마을은 제주의 나무, 제주의 돌, 제주의 문화와 신화, 사계절 꽃이 있는 테마공원으로 가장 제주스런 공원이라 한다. 입구에는 전국에서 가장 크다는 스타벅스카페가 관공서같이 위엄있에 자리해 있었으며 그 옆으로는 봉우리같은 전망대가 솟아 있었다. 인공인지 자연인지 구별이 안갔다. 쭉 뻗은 큰길에
꼬불꼬불한 작은길이 이어져 있었고, 그 옆으로는 여러 형태의 작은 정원을 만들어 놓았으며, 또 포토존도 곳곳마다 만들어 놓았다. 시냇물이 흐르는 작은 동산, 제주돌로 낮은 담을 쌓은 꽃동산, 제주돌로 만든 조각품 동산, 제주의 옛 가옥과 생활도구등을 전시한 생활동산등 수많은 형태의 작은 동산들이 꾸며져 있었으며 인공폭포 위로 우뚝 솟은 전망대도 있었다. 젊은 연인들과 관광객들은 사진을 찍느라 포토존마다 북작거렸다. 우리도 그들에 섞여 사진을 찍어 댔다. 우리라고 못 찍을 소냐- 느낌은 아직도 살아있지- 찍고 또 찍었다.
스타벅스카페에는 젊은 연인들과 관광객들이 그 넓은 1,2층에 꽉 차 있었다. 대합실 같았다. 우리 또레는 우리뿐이었다. 우리뿐이면 어떠랴- 기는 왜 죽어- 양많은 빵과 아이스아메리카노로 그들 속에서 젊어져 보았다.
두얼굴을 가진 강정마을
강정마을은 한적한 해변마을이라 여겼지만 그렇지 않았다. 쿠르즈선이 입항할 정도의 큰 부두가 있었으며 육지에는 건물들이 빽빽하였고 부두에는 여객선과 어업선들이 꽉 차있었다. 그러나 이전 정부에서 해군기지를 만들려 할 때 중국과 북한을 대변한 좌파세력들이 반대 데모를 수없이 하여 온 나라가 시끄러웠던 마을이다. 어찌 이나라에 살면서 적대국을 대변할 수 있을까-! 더욱이 국민위에 군림하며 국가의 세금으로 권력을 누리는 자들이-
부두에서 바다로 4~5km 길게 쭉 뻗은 접안시설 둑은 해 오름과 해넘이를 다 볼 수 있는 멋진 장소였다. 몇 개의 섬이 보일 뿐 끝없는 바다이다. 바닷가 강정마을은 군사시설과 아름다운 명소가 공존하고 있었다. 전쟁의 긴장감과 평화로움이 같이 있었다.
외국어같은 버스정류장 이름
일몰시간이 많이 남아 해넘이 광경을 포기하고 숙소인 규상칭구의 집인 서귀포시 대포동 풍림빌리지로 향했다. 한적한 도로에 버스정류장이 띄엄 띄엄 지나갔다. 규상칭구가 버스정류장 이름들을 외어 보라 하였다. 3개 이상 외우면 치매에 걸릴 확률이 제로라나? 이 나이에 암기는 무슨 암기? 방금 했던 말도 생각 안 나는데~
“섯가름”“허물서”“흔착밭”“이천장물”“배턴개”“월령”“덕수리군물왓”“덕수리동동“ 등 우리말 어원과는 동 떨어진 이름들이었다. 신기하였다. 이것은 고려시대 제주도가 100년 동안 몽고군에 지배를 받아 몽고 어원일 것이라고 규상가이드가 설명 해 주었다. 치욕적인 역사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치욕적인 역사는 이뿐만이 아니다. 임진왜란을 막지 못하고 전쟁중 7년간이나 의주로 피신한 조선 14대 왕 선조. 병자호란 때 삼전도에서 청나라 태종에게 무릎을 꿇고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세번 절하고 한 번 절 할 때마다 3번씩 머리를 땅에 두드림)의 예를 올려 청나라와 군신관계를 맺고 거기다가 부녀자 50만명을 청나라에 보낸 조선 16대 왕 인조. 또 1910년 드디어 한일합방을 당한 조선 27대 왕 순종. 모두가 치욕적인 조선 임금들이다. 부끄러운 역사이고 없었어야 할 조선 왕들이다.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 불쌍한 민초들-
소주맛 구별하는 우리 장로님
여행 첫날(6월 10일)의 점심은 조천읍 교래리에 있는 성미가든에서 즐겼다. 토종닭 코스요리로 작년 전라도 여행때 돌고래가든에서 먹은 닭 코스요리와 비슷하였다. 배가 촐촐하기도 하였지만 생닭 샤브샤브 닭뽂음 닭죽등 코스대로 나온 닭요리가 맛있었다. 배가 부르니 볼 것이 보고 싶어졌다.
저녘은 규상칭구자택 동네에 있는 바다이야기 식당에서 갈치구이 정식을 먹었다.
갈치 찌개에 고등어 구이를 추가하였다. 고등어는 작고 짜웠고 갈치와 감자는 좀 덜 부드러웠다. 해광은 제주에 있는 딸을 만나러 가서 규상칭구와 선동회장 셋이서 하였다.(최박사는 밤 10시 이후에 합류) 넷에서 셋이 되니 분위기가 좀 휑~했었는데 선동회장이 한라산21 1잔을 우아하게 땡기더니 내뱉는 말 ”햐~ 소주맛 좋네~“ ”맛이 다르네~“ 하였다. 참소주와 한라산의 맛을 구별해 내는 장로님- 요런 장로님 이 세상에 또 있을까! 귀여운 우리 장로님-
조촐하지만 진정한 생일파티
여행 첫날밤은 규상칭구의 생일파티로 시작되었다. 생일 날자는 어제(6월 9일. 음력 5월 4일)였으나 어제는 대구에서 아들 딸 며느리 사위들과 행사를 치르고 오늘은 2차로 팔선생과 하게 되었다.
해광이 준비해온 케잌과 규상본인이 다과를 차려 내었다. 케익에 불을 켜고(촟불은 오래 살아라고 제과점에서 주는 대로 다 점화하였음) 네 사람이 둘러앉았다. 세사람은 생일곡을 박수치며 불렀고 나는 동영상을 찍었다. 입을 맞추지 않아도 키와 박자가 맞아져 갔다. 선동회장님의 리더로- 모두가 진정한 마음으로 규상칭구의 생일을 축하했다. 규상칭구도 진지한 마음으로 우리들의 축하를 받으며 기뻐했다. 우리 모두 생일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기에 더욱 진정으로 축하해 주었다.
생일곡 2절까지를 마치고 선동회장님이 축하곡 ”내마음의 강물“을 불렀다. 그 어느 무대에서보다 진지하고 정성을 다하여 우렁차게 불렀다.
”그날 그땐 지금은 없어도 내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
새파란 하늘 저 멀리 세월은 두둥실 떠나고
비바람 몰아친 된서리 지나간 자욱마다 마음 아파도
알알이 맻힌 고운 진주와 아롱아롱 더욱 빛나네
그날 그땐 지금은 없어도 내 맘의 강물 끝없이 흐르네“
성이시돌목장과 세미은총의 동산
오늘(6월 11일)은 성이시돌목장으로 답사 갔다. 목장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 넓은 목장은 아일랜드인 맥글린치(한국명:임피제)신부가 1954년 이 지역인 한림지역에 부임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이 목장에서 그는 당시 6.25와 4.3사건의 혼란한 사회를 겪으며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는 이곳 주민들을 위하여 가축은행과 실습목장을 개설하고 낙농사업과 경주마와 젖소를 사육하는 등의 여러 사업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수익을 복지사업에 썼다고 한다. 또한 목장내에 은총의 동산을 세우고 수녀원과 금악성당도 설립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일들로 제주도민증은 물론 제주도 문화상을 일찍이 받았고 고국인 아이랜드로부터도 대통령상을 받았으며 또한 막사이상, 적십자상등의 많은 상들을 받은 위대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끔직하게 가난했던 당시 제주 백성들에게 별같은 사람이었다. 6년 전 90세에 선종하였다 하니 감히 명복을 빌어 보았다.
(p.s 성이시돌은 12세기 스페인 마드리드 농부출신 성인이다.)
은총의 동산은 이시돌목장 안에 있었으며 맥글린치가 세웠다 한다. 예수님의 탄생부터 최후의 만찬까지 12개의 주요 사건을 조각상으로 야외 공원에 설치해 놓았다. 예수님의 생애 공원과 대성당이 있었으며 천주교 제주교구의 성지 순례 장소이다.
십자가를 어깨에 메고 로마 병정의 채찍을 맞으며 언덕을 오르는 예수님의 십자가형 집행 과정의 조각품들을 하나하나 보니 마음이 아팠다. 마지막 지점에서는 높은 십자가에 못 박혀 고개가 늘어져 있는 예수님상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세계 3대 성인인 예수 공자 석가모니중 예수님만이 처참한 죽임을 당하셨다. 아!~ 거룩하신 예수님!
명월 팽나무 군락지
북제주군 한림읍 명월리에 있는 팽나무군락은 개천 양쪽에 푸조나무와 함께 100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었다. 제주도 기념물 제19호로 지정된 팽나무는 그 수령이 50년이나 되었으며 그 둘레가 엄청 굵었다. 팽나무는 느릎나무과로 그 잎은 나비의 먹이가 되고 고목에서는 팽이버섯이 자란다고 한다. 또 팽나무의 이름은 열매를 대나무로 만든 팽총에 넣어 쏘면 ”팽~“하고 소리가 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팽나무는 오래 살고 키가 20m 지름이 3m로 크게 자라 정자나무로 많이 심어졌다 한다.
나의 고향에서도 동네 어귀에 팽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농사일을 하던 동네 어른들이 쉬거나 참을 먹을 때 둘러앉던 팽나무- 학교갔다 오는 길에 친구들과 놀던 팽나무- 지금은 팽나무도 없고 그 친구들도 없고 동네 어른들도 이 세상에 없다. 사람은 세상에 오래 머물 수 없고 세상은 새로운 사람들을 맞이하며 돈다. 아! ~ 짧은 인생- 창문으로 달이 스쳐가는 순간같은 인생~
백난아 노래비
가수 백난아는“찔레꽃”으로 유명하다. 국민들이 좋아하는 1,2순위의 대중가요다. 백난아는 몰라도“찔레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노래비 방문길에 규상가이드의 권유에 따라 찔레꽃을 차안에서 합창하였다.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언덕위에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자주 고름 입에 물고 눈물에 젖어
이별가를 불러주던 그리운 사람아
국민가요“찔레꽃”은 우리들이 태어나기 전인 1942년에 발표된 노래다. 김영일이 작사하고 김교성이 작곡한 이 노래는 야산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찔레꽃을 소재로 향수를 자극한 노래이다. 3절 가사에 북간도가 들어 있어 만주 독립군을 위해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지금까지 국민들이 좋아하는 배경은 가사가 80여년 전의 시대상이 상기되고 또 시대가 달라 그리워할 고향이 없는 사람도 자기만의 지나간 인생사와 잊지 못할 자기만의 그리움을 달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이 노래는 웬만한 가수는 다 한 번씩 불렀다. 그러나 나는 원곡 가수인 백난아(1992년 작고)가 부른 것을 제일 좋아한다. 음향이 화려하지 않아 옛 시대상이 떠 오르고 당시의 노래창법인 미성과 부드러운 가성이 요즘의 가수들이 꺾기와 흔들기 비음등의 요란한 테크닉으로 부르는 노래와는 다른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면 고향의 옛 동무들이 생각나고 동네 뒷동산에서 놀던 때가 생각난다. 가난했지만 인정이 많았던 고향의 사람들- 참외밭 원두막에 할머니 밥을 싸 들고 다녔던 하얀 찔레꽃 길도 생각난다. 아!~ 찔레꽃. 하얀 찔레꽃-
육지에서 날아간 섬 비양도(飛揚島)
왕복 12,000원을 내고 비양도행 배를 탓다. 15분 만에 비양도에 도착하였다. 배 삸보다 승선 시간이 짧았다. 가성비가 나빳다.
비양도는 큰 섬이었다. 부두엔 어업선이 많았고 연락선도 있었다. 비양도는 육지에서 바람을 타고 날라온 섬이라 한다. 비양도에는 비양산을 오르는 데크길이 잘 설치되어 있었다. 데크길에는 대나무 터널도 있었다. 비양도를 오면 반드시 대나무 데크길을 올라야 한다고 하였다. 대나무 데크길을 갔다 오면 용서의 마음이 생긴다 고 하였다. 왜 용서의 마음이 생길까? 사람마다 용서할 일이 있으리라- 대나무 속이 텅 비어 있듯이 내 마음도 비우면 모든 욕심이 없어지고 마음이 너그러워져 남을 용서할 마음이 생기는지- 상냥한 비양도 인성스토리식당 여사장에게 물어 보지 못했음이 아쉬웠다.
나는 남을 용서할 일보다 용서받을 일이 더 많을 성싶다. 웃자고 한 경솔한 말이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았는지-, 남의 말을 가로채고 내 주장만 한 적은 없었는지- 출세한 사람한테는 비굴하게 말을 하고 순한 사람에게는 거친 말을 함부로 하지나 않았는지- 공격적인말을 받은 자는 마음의 상처가 되고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다. 말의 상처는 말로 씻어 줄 수 없다. 말은 복이 되어 오기도 하고 화가 되어 오기도 한다. 한 번 벹으면 다시 되 담을 수 없는 말- 말.
협제굴과 쌍용굴이 있는 한림공원
제주시 한림읍 한림로에 있는 한림공원은 그 규모가 엄청컸다. 협제굴과 쌍용굴이 있었고 대형 열대식물온실과 넓은 야외 식물원, 민속촌도 있었다.
협제굴과 쌍용굴은 대한민국 천연기념물 제236호로 지정되었으며 원시시대인 250만년전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동굴안은 넓고 길었다. 자동차가 교행하고도 남을 넓은 공간이다. 용암이 그 넓고 긴 터널에 꽉 차 흘러 지나갔다고 하니 그 웅대하고 신비한 자연현상에 압도되었다. 땅위에 사는 사람이 땅속에 들어가니 마음은 음산하였고 몸은 오싹하였다.
협제굴에서는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온 기억이 나나 오늘 협제굴을 보니 입구와 주변이 생소하였다. 57년 전의 일이 생소한 것이 정상인가 기억력이 나쁜것일까- 아!~ 세월은 빠르고 인생은 더 빠르네~
차귀도가 보이는 수월봉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에 솟아 있는 산 수월봉(77m)은 사화산이라 한다. 서쪽이 연안조류와 해식작용으로 깎여 1.5km의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었다. 정상에 있는 수월정으로 가는 능선에서는 차귀도가 눈앞에 보였다. 이름만 들어 왔던 차귀도-차귀도는 무인도라 한다. 지질층을 보니 수십만년 수백만년의 자연현상이 경이로웠다. 화산으로 생겨난 수월봉은 사화산이라 하니 180만년 전 화산폭발과 용암분출로 형성된 제주도의 다른 산은 지금도 활화산인가- 지금까지 제주도에 화산폭발이 없었으니 활화산이라 하더라도 현 세기에는 화산폭발이 없겠지- 걱정하지 않아도 될 일을 상상해 보았다.
해안으로 길이 나 있었으나 공사중이라 걷지 못했다. 바다로 돌출되어 뽕긋 솟은 수월봉- 이름처럼 아름다웠다.
카페같은 흑돼지 전문식당 보름숲
서귀포시 1,100도로 고개에 있는 보름숲 흑돼지 전문식당은 그 규모가 엄청컸다. 넓은 주차장과 잔디가 깔린 야외 테이블, 카페같은 실내 인테리아, 넓은 홀에 놀랬다. 흑돼지요리가 어울리지 않았다. 거기다가 흑돼지를 주방에서 훈제로 반쯤 익혀와서 종업원이 직접 구워 잘라주었다. SNS에 떠들던 제주도 비계삼겹 사건과는 전혀 무관한 양심 삼겹살식당이었다. 또한 자르는 크기도 도톰하여 육즙이 풍부하였다. 적당히 익은 고소한 삽겹살 한 점에 한라산21 한 잔을 걸치니 캬 ~ !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다. 아!~ 맛있는 제주 흑돼지 삼겹살- 아!~부드러운 한라산21. 지금도 생각이 난다. 한 번 더 먹고 싶다. 이 식당을 추천한 해광에게 한 잔 더- 쨘~ 하였다.
제주도 올레길 8코스
오늘(6월 12일)은 올레길을 트레킹하려 대포항으로 갔다.제주도의 올레길 코스는 21개이고 지선을 포함하면 26개라고 규상 가이드가 설명해 주었다. 올레는 대로에서 집을 연결하는 골목이라고 한다. 지금은 마을길과 해변길 오름길을 이어 여러 코스를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자택이 있는 대포동에서 시작된 올레 8코스는 대포항을 거쳐 해안길과 바다길로 축구장을 거쳐 주상절리가 있는 곳으로 이어져 있다고 하였다. 21개 코스중 풍광이 가장 빼어난 코스라고 하였다. 우리들은 대포항을 거쳐 축구장까지 못간 지점에서 마쳤다. 다음 일정을 위해서- 아름다운 섬 제주- 올레길이 있어 더 아름다운 제주. 아! ~ 제주에 살고 싶어라~
제주 추사관
서귀포시 대정읍 추사로에 있는 추사관을 답사하였다. 대정현성에 있는 추사관은 지하에 있었다. 관람방향에 따라 추사에 관한 해설과 각종 자료들을 보기좋게 만든 각각의 전시관이 테마별로 잘 이어져 있었다.
추사 김정희선생은 1786(정조 10년)~1856(철종 7년) 조선후기의 문신, 학자이며 서예가이다. 붓글씨를 잘 써서 서예가로만 아는 사람이 많지만 금석학파를 성립하고 18세기 조선의 한류스타이다. 당시 청나라의 수도인 연경에 유학하였고 청나라 학자를 포함하여 청나라 학문연구의 일인자였다. 24세 때 당시 중국의 중진 학자인 조강, 완원, 옹방강(78세)등과 교분을 나누었으며 또한 다산 정약용, 초의선사등과도 교분을 나누었다.
당파싸움의 피해자가 되어 이곳 제주도에 유배되어 위리안치(圍籬安置)되어 살았다고 한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위선적인 정치꾼들이 나라의 발전을 막고 유능한 인재를 물리쳐 왔다. 백성위에 군림하며 나라를 도탄(塗炭)에 빠지게도 하고 나라를 위태롭게도 하고 나아가 나라를 팔아먹은 정치꾼들도 있었다. 지금도 나아지기는커녕 더하다. 수만 명이 적국의 간첩으로 활동하고 있어도 수수방관만하고, 판사가 그것도 대법원판사가 돈받고 범죄자의 혐의를 무혐의로 변질시켜주고, 심지어 일국의 태통령이 나라의 정보를 적국에게 건네주는 반역행위를 하는 지경까지 왔다. 상식밖의 일이고 세상에 없을 일이다. 어쩌다가 이 나라가 이 지경까지 왔는지 알 수가 없다. 그것을 주도한 정파는 어느 나라의 정치꾼들이고 그들을 지지하는 국민들은 어찌 그리 몽매(蒙昧)한가- 나라가 무너지지 않는 것이 참 이상한 일이다. 이제 뭐가 터져도 터질 것만 같다.
아- 그래도 이 나라에 살아야 하고 살 수밖에 없는 백성들- 불쌍한 백성들-
바다로 둘러쌓인 송악산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에 있는 송악산은 바다로 둘러 쌓여져 있었다. 송악산의 높이는 104m이나 삼면으로 끝없이 펼쳐진 바다- 넘실대는 파도- 아슬아슬한 주상절리, 해안선을 따라 바다에 잠긴 산자락- 절벽위로 이어진 3.1km의 들레길- 모두가 아름다웠다. 정상에는 분화구가 있다고 하나 가보지 못했다. 다시 한 번 더 가고 싶은 송악산이었다. 둘레길 북쪽에서는 한라산이 가깝게 보였다. 아- 저기 한라산!- 한라산이 보이자 한라산을 오르고 싶었다. 그러나 일정에는 있지 않아 갈 수 없었다. 아! ~ 한라산! 10여년 전 눈덮힌 한라산을 KS, K장로님, C친구등 여러 동기들과 함께 정상을 올랐던 기억이 났다. 아~ 한라산! 또 오르고 싶싶은 한라산- K 장로님이 어제 저녘에 배워준 전래 민요 한라산 노래만 읆었다.
“한~라산 올라 갈~ 때는 오빠 동생~하~더니~
한~라산 내려 올~ 때는 여보 당신 하~더라”
성악은 물론 구전 민요에도 박식한 다재다능한 장로님-
언덕위에 하얀 집 마노르블랑카페
서귀포시 안덕면 일주서로에 있는 마노르블랑카페는 가든 카페이다. 계절마다 계절의 꽃이 만발하고 지금은 수국이 한창이었다. 보라색 수국, 하얀 수국, 분홍수국 자주색수국 빨간수국등 수많은 종류의 수국이 수많은 색깔로 만발하였다. 수국은 꽃송이도 크고, 그루터기도 크고, 키도 컷다. 언덕위의 카페는 성(城)모양의 하얀색의 건물이었고 바다와 한라산이 바로 보였다. 수국 만발한 경사진 정원에 수많은 젊은 연인들이 북적거렸다. 그들에 섞여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나이를 잊고 그들과 함께 그들의 감정을 가져 보았다. 아~ 옛날이여~
이상한 음식- 뱅인 맥시코식당
이날 중식은 해광의 추천으로 뱅인맥시코라는 식당에서 하였다. 매뉴판을 보니 전부가 처음보는 이상한 이름들이었다. 새우볼 쾌시디아, 뱅인나초, 과카올리, 윙 페일어일, 휠시, 에이피어이어등의 맥시코음식이었다. 맛은 알 수 없었고 메뉴판의 그림을 보고 주문하였다. 소스를 얹은 야채요리, 닭고기와 옥수수가 섞인 요리등이 접시에 담겨져 나왔다. 이름은 낮설었지만 맛은 우리 입맛에 동떨어지지는 않았다. 모두 “좋다~" , "맛있네”하는 소리없이 쩝쩝거리며 먹는데 열중하였다. 우리들의 입맛에 신경 쓰는 해광- 우리가 더 신경이 쓰였다. 특이한 음식 이럴 때 맛봐야지 언제 맛보나- 두 번 다시 못 먹을 맥시코 요리- 이름이 요상하지 맛이야 나쁘지 않았지-
김규상 생일 자축 초대
오늘(6월 12일)은 규상칭구의 생일 자축파티에 우리가 초대되었다. 그저께 자택에서 생일파티를 하였지만 앞으로 자기의 생일에 팔선생들을 초대해 함께 축하하자는 규상칭구의 주장에 따라 동네에 있는 류차이 중국식당에 갔다. 주차 공간이 넓고 큰 중국식당이었다. 축하 노래는 하지 않았으나 마오타이로 잔을 가득 채우고 높이 들어 얼굴을 마주치며 잔을 테이블에 세 번 두드리며 76번째 맞는 규상친구의 생일을 축하했다. 규상친구도 그 어느 축하자리보다도 기뻐했다.
음력 5월에는 생일을 맞는 사람이 세 사람이다. 음력 5월은 파티할 일이 연달아 있어 해피한 달이다. 유산슬과 냉채로 마오타이 大 1병을 비우고 특미 짜장면으로 마무리했다. 52도 마오타이 몇 잔에 취기가 올랐다. 취기가 오르니 기분도 좋았다.아~ 언제 또 이렇게 즐거운 제주의 밤이 있겠으랴- 멋지고 아름다운 제주의 밤- 노래도 한 곡 부르고 싶어라-
“물새야 왜 우느냐~ 유수같은 세월을 원망 말아라~
인생도 한 번 가면 다시 못 오고~ 뜬세상 남을 거란 청산뿐이다
아~ 아~ 아 아~ 물새야 울지를 말아라~”
아름다운 제주의 밤- 잊을 수 없는 이 순간.
사려니 숲길과 제주돌문화공원
오늘(6월 13일)은 사려니 숲과 돌 문화공원, 사라봉을 답사하는 날이다.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에 있는 사려니숲길은 한라산 둘레길 7구간이라 한다. 사려니는 살안이 또는 솔안이라고도 하며 신령스러운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사려니도 오름이며 키큰 삼나무가 울창한 숲이었다. 깨끗한 제주의 공기에 삼나무가 뿜어낸 피톤치드가 더해지니 정신이 맑아지고 몸이 가벼워졌다. K장로님의 노래가 데크길을 따라 울려 왔고 해광과 최박사는 나무 안락의자에 누워 삼나무에 가려진 하늘을 보았다. 나는 소년 시절 어느 봄날 동네 뒷산에 누워 하늘을 본 적이 있다. 내 꿈은 무엇일까- 꿈은 무었으로 할까- 꿈은 이루어 질까- 푸른 하늘은 높고 끝이 없었다. 아~ 꿈 많던 어린 시절- 그리운 그 시절.
숲속길이 여려개가 있었으나 다음 일정을 위하여 1코스 데크길만 산책하였다.
제주시 조천읍 남조로에 소재한 제주돌문화공원은 엄청 넓어 야산같았다. 돌박물관, 돌문화전시관, 돌야외전시장등이 있었으며 인공으로 만든 하늘 연못은 그 크기가 실제의 연못같이 넓고 컷다. 야외 전시물은 소형 셔틀버스를 타고 관람을 하였고 지하에 있는 돌 박물관까지 둘러보고 박물관 건물내에 있는 카페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로 담소하며 뙤약볕 걷기를 오래하여 휴식을 하였다.
지나간 내 인생 돌같이 무겁고 신중하게 살아왔는가- 남을 돌처럼 신중하게 대해 왔는가- 깃털같이 가벼운 인간- 갈대같은 인간의 마음-
마지막 코스 사라봉(沙羅峰)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사라봉에 도착하였다. 제주시 동쪽 해안에 있는 사라봉은 높이 184m로 정상에서 바라보는 낙조가 일품이라 한다. 제주 10경의 하나라 하니 기대가 되었지만 일몰 시간은 아직 멀었었다. 서북쪽 자락길 코스도 바다를 조망하며 걸을 수 있는 멋진 트레킹코스였다. 우리들은 아름다운 낙조는 보지 못했지만 사라봉 정상까지 올랐고 북쪽 해안 자락길도 트레킹하였다.
이제 제주 청춘여행 일정이 끝이 났다. 3박 4일의 일정을 아무 사고없이 마쳤음이 다행스러웠고 기대했던 것보다 더 큰 만족감을 느꼈다.
제주시 서해안로 바닷가 설심당카페에서 팥빙수를 먹으면서 짧고도 길었던 이번 여행을 돌아보고 아쉬움을 달랬다.
은희네 해장국과 화목원 식당
마지막 날 아침은 해장국으로 때웠다. 은희네 해장국식당은 아침부터 손님들이 많았다. 간소한 해장국이 아니고 양 많은 뚝배기였다. 소피와 콩나물 파 야채 무우등이 진한 육수에 엄청 잠겨져 있었다. 옛날의 해장국은 새벽 노동일 나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씨레기국에 돼지고기 몇 점을 넣어 밥을 말아 주었었다. 막걸리도 한 잔 곁들였으며 값은 저렴하였다.
테이블에 나온 계란을 누군가가 먼저 수저통에 때려 깨니 손가락이 날 계란속으로 쏙 들어가 내용물이 흘러 내렸다. 어쩌나~ 누군가는 이마로 깨지하고 부해를 질렀다. 알 수 없는 날 계란 삶은 계란- 알 수 없는 주인장 마음- 알 수 없는 먼저 깨는 사람의 심보-
중식은 연동에 있는 화목원식당에서 하였다. 피로연도 하고 단체손님을 주로 받는 대형식당이었다. 1인당 18,000원짜리 한정식을 시켰다. 따라 나온 돌솥밥은 돌솥이 아니고 양은 그릇이었다. 돌솥밥은 돌솥에 해야 제맛을 내지- 반찬수는 많았으나 돼지 수육이 드러났고 다른 반찬은 눈여겨 볼만한 것이 없었다. 대구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가성비가 별로였다. 최박사는 식사량이 적어 본전을 뽑지 못했다.
정성을 다해 가이드 해 준 친구 KS
이번 3박 4일 제주도 청춘 여행은 규상칭구의 가이드로 이루어졌다. 규상칭구가 이곳 제주도에 아파트가 없었거나 초대를 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좋은 친구들과 함께 알뜰하게 제주도 청춘 여행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숙소를 제공하고 조식을 손수 조리해 차려 주었고 유명한 명소와 가봐야 할 답사지를 빠짐없이 발췌하여 일정에 넣어 진행해 주었다. 또한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맛집을 찿아 진미를 맛보게 해 주었다. 그리고 차량운행도 4일동안 혼자 해 냈다. 이 모든 것이 진정한 우정이 있었기 때문이고 또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번 제주도 청춘 여행에 너무 수고가 많았다. 고마운 친구- 정 많은 친구- KS. 잊지 못할 제주도 청춘 여행! 잊혀지지 않을 순간들-
<끝>
2024 6 17
백산 우 진 권 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