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락
먹는 것에 열매와 뿌리, 채소가 있고 고기와 생선, 과일에다 물을 음식으로 사용한다. 열매에는 나락과 밀, 보리, 조, 기장, 메밀, 수수, 옥수수, 콩, 녹두, 팥 등 여러 개다. 평생 살면서 이것들을 구하기 위해 허리 휘도록 일하면서 지냈다. 늘 굶주려 허기지면서 고달픈 삶을 이어가야만 했다.
찾으면 참 많은 것 같다. 고구마와 감자, 땅콩의 뿌리에다 무와 당근, 우엉도 있다. 소와 말, 돼지, 양, 개, 토끼, 닭, 오리고기에 바다와 강의 온갖 생선이 기다린다. 거기에 호박과 박, 오이, 토마토에다 사과, 배, 복숭아, 포도, 대추, 밤 등 지천이다. 어디든 흔해 빠져 살피면 먹는 게 온통 널리고 깔렸다.
그런데 늘 배고팠던 기억이다. 가까운 조선 시대에 잘 사는 양반은 소수이고 그 밑에서 눈치 보며 하인처럼 살아가는 하층민이 대다수이다. 그들이 부리는 집사와 마름 아래에서 소작을 부치며 농사의 반 이상을 그들 곳간에 바치고 근근이 살아가는 백성이다. 형수 주걱에 뺨을 얻어맞고 이쪽도 때려달라며 밥풀 뜯어 먹는 배고픈 흥부를 보라. 호부호형 못하는 주인의 처첩 자식으로 태어난 홍길동은 어떤가.
일제 치하 수탈로 헐벗은 모습은 말할 수 없다. 해방 후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면서 그 가난 얘기는 ‘그때를 아십니까’ 방송에도 나타났다. 아버지 이불 짐 등에 앉아 피난 가다가 배고파서 뽀얀 눈을 움켜쥐고 퍼먹었다. 사는 게 시원찮아 곰삭은 떫은 감을 주워 먹고, 보릿고개 봄날 개울이나 길가 찔레나 어린 시금치를 뜯어 먹었다.
초등학교 하굣길에 고개를 넘다가 밭둑 호박을 깨 먹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입에서 비린내가 난다. 밥그릇을 받으면 보리밥이다. 한술 뜨면 굵다란 감자가 덜컹 기다린다. 쌀밥은 눈 닦고 봐도 없다. 명절과 제삿날에 이밥을 먹을 수 있다. 온통 거친 잡곡밥이고 그것도 달려 배고픔을 면키 어려웠다.
학교 숙제는 무슨, 집에 오면 땔나무를 하러 땅에 질질 끌리는 지게를 지고 큰골이나 조무실 골짝으로 나무하러 간다. 산판 뒤 잔 나뭇가지를 베어 나른다. 오슬오슬 한번 떨면 그칠 줄 모른다. 몸 녹일 따스한 곳이 어딨나. 나일론 옷 나오기 전, 둘둘 말리는 삼베옷이나 얇은 무명옷에 타이어를 녹여 만든 듯 맨발에 검은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여동생이 맨날 ‘뽀얀 밥 조.’ 하는 입쌀밥 얘기가 귀에 쟁쟁하다. 그땐 덩치 큰 논에 모를 심어도 물 대는 일이 어렵고 병충해에 소출이 적다. 비료가 없어 나뭇잎을 베 깔아줬다. 해마다 걸핏하면 후재(候災)가 나 농사를 망치기 일쑤다. 요즘은 해마다 풍년이지만 그땐 드문 일이다. 익은 만주 벼를 벨 때면 얇은 강철 낫을 숫돌에 새파랗게 갈아 한꺼번에 두세 포기씩 사각사각 잘라 묶음 단을 만들어 말렸다가 턴다.
차져 기름기가 좔좔 흐른다. 햅쌀밥이 어쩜 그리 맛있을까. 눈부신 밥을 씹을 수 없다. 살살 녹아 막 넘어간다. 멀대처럼 키 크고 알이 적은데다 비바람에 잘 넘어진다. 수원과 밀양, 유신 등으로 개량되어 낱알 많고 키 작은 것이 나오는데 맛은 전만 못하다. 쌀 따라갈 곡식이 없다. ‘잘살아보세. 잘살아보세.’ 새마을 노래를 부르며 900평씩 직사각 반듯한 논을 만들어 나갔다.
귀한 벼의 낟알이 날악에서 나락으로 바뀌었으리라. 한자는 지옥(奈落)이지만 우리말은 그 넘실대고 물결치는 연두색 벌판, 낙원의 벼 이삭 알곡이다. 제비가 날아온다는 강남에선 3모작을 한다. 벼를 베고 불 지른 뒤 갈아엎어 물 대고 씨 뿌린다. 백일이 지나면 다시 베니 쌀이 넘쳐난다. 우린 못자릴 만들어 씨 뿌려 싹틔운다. 엎드려 종일 눈알이 뱅뱅 돌도록 끝이 붉은 피를 골라냈다.
이른 벼보다 햇볕 많이 맞은 만생종이 맛나다. 인디카와 자바니카는 인도와 파키스탄 아세안 등지에서 나오는 쌀이다. 모두 이 벼를 키워 먹는다. 찰기가 없고 퍼석한 것을 즐겨 먹는다. 자포니카인 차진 나락은 일본과 우리나라, 중국 일부에서 생산된다. 암말과 수탕나귀에서 나온 노새가 새끼를 못 낳는다,
인디카와 자포니카 사이의 교배종 통일벼가 소출은 많아도 푸석해 맛이 없을 뿐 아니라. 도열병과 냉해에 약해 오래 가지 못했다. 찐득한 쌀을 계속 연구하면서 운광과 고풍, 삼광호품으로 만들어졌다. 길쭉하고 굵은 인디카보다 잔잔한 것으로 거듭나왔다. ‘아끼바리’나 ‘고시히까리’와 비슷하다.
재선충이 줄기에 들어가 영양을 빨아먹고 소나무를 발갛게 말려 죽이듯, 나락도 줄기에 벌레가 들어가 가로막아 곧추선 채 하얗게 마른다. 어찌해 볼 수 있나. 뻔히 보고도 손쓸 수 없다. 약이 없어 농사꾼의 마음을 타들어 가게 하던 것도 이젠 옛 얘기다. 기계로 심고 베며 바로 털어 자루에 담는다.
끙끙 일하자면 큰 사발 그릇 위까지 올려 쌓아 먹었다. 먹을 게 많은 지금은 작은 그릇 전까지 찰랑찰랑 담다가 그것도 많아 쏙 안으로 들어가 작게들 먹는다. 쌀이 남아돈다. 논마다 밭마다 가을걷이 뒤 밀보리를 심었는데 요즘은 시답잖다. 몸서리 나는 잡곡밥은 왜 먹나 했는데 이젠 건강을 위해서 조금씩 넣어 든다.
100알 넘게 오롱조롱 맺힌 탐스러운 나락 이삭을 달력 위에 걸어놓고 일어설 때마다 본다. 참새는 까먹을 수 있어도 다른 짐승은 깔끄러워 가까이 못 한다. 겨 안에 있으면 오래 둬도 좋다. 맷돌이나 연자방아로 돌려 벗기면 비닐 같은 질긴 껍질로 싸여있다. 5, 6분도 현미이다. 계속 찧고 빻아 박박 깎은 10분도 이상을 좋아한다.
먼지나 티끌이 없게 곱게 껍질을 벗겨 낱알로 만든다. 무겁고 허술한 섬이나 가마니에 담다가 마타리 포대에 쌌다. 다시 밀폐된 비닐봉지에 들기 좋도록 알맞은 크기로 장만한다. 조리나 이남박으로 일어 돌 골라내는 것도 없다. 얼마나 깨끗하게 다듬었는지 ‘와자작’ 씹히는 잡스러운 것일랑 하나도 들어있질 않다.
잡곡도 허구한 날 대가족에 넉넉지 않아 산기슭을 다니며 곰치와 참나물을 뜯어먹어야 했다. 그리 살던 시절이 바로 엊그젠데, 그런 때가 있기라도 했나. 언제 이리 잘살게 됐는가. 요순(堯舜)시절이 아무리 좋아 좋아도 이보다 좋을 수가 있을까이다. 배불리 먹고 땅을 두드리며 노래하는(鼓腹擊壤) 게 바로 나락이 익어가는 오늘날이 아닌가.
첫댓글 그 때를 아십니까
너무 좋은 글 수고 하셨습니다
50대 이하의 젊은 친구들 어찌 알겠어요
이 걸 모르니 나라 꼴이 이 지경인 것 같아요
좌가 반도 넘는다는 말이 정말 입니다
우리 카페 그냥 두기 아까워요
감사하고 수고 하셨습니다
감 사과가 화상병에 걸려 검게 멍든다면서요.
많이 열리던 게 엉성해서 어째요.
해걸이라 생각하고 내년을 기다리세요.
세상이 아무리 좋아졌다 해도 과거없는 현제는 존재할수없지만, 그 힘들었었던 이야길 접하면 젊은사람들은 싫어합니다.
저도 가끔씩 지나는말로 이야길 해주면 아들은 1프로도 공감해서 듣질않습니다. 현제만 적응해서 살아내기 바빠서 그렇지 않나..
요즘은 먹거리가 너무 흔합니다. 먹고싶은것이 있으면 삶이 한결 즐거울것도 같은데 말입니다.
지나간 시절을 한번쯤 되짚어 주셔서 감사합니다.저도 글쓰신 시대 근처에는 살아온것 같아서 백퍼는 아니래도 여러부분에서 공감이 됩니다.
성도님 자주 찾아주시니 고맙습니다.
어디 없이 카페가 활량한데
덕분에 여긴 훈기가 돕니다.
내내 건강하시고 즐거움이 넘치기를 빕니다.
보릿고개..... 저도 시골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공감합니다.
보리밥의 까끌거리는 맛이 입에 맴도네요. 요즘은 일부러 먹지요.
선생님의 글이 너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