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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828 산정무한 원문보기 글쓴이: 임병기
가천면 용사리 산 91 석탑 마을 도로변에 서있는 비석이다. 석탑마을은 성주의 대표적 여름 휴양 계곡의 하나인 포천 계곡 거의 끝지점 만귀정 마을 직전 다리 건너기전 우측 마을이다. 몇번을 오르내리고도 찾지 못해 주민분을 만난 후 찾았다.
자연석에 다듬어 글을 새겼다. 가경 3년 무오(1798)에 이계명이 선조의 묘관리를 부탁하면서 마을에 논 4두락(?)과 돈 8량을 기탁한 내용을 기록한 위답비다. 도로 건설로 본래위치에서 이곳으로 이건하였다.
성주군 문화유적분포지도에는 이 비석도 1941년 박해동의 묘를 부탁하면서 논2두락을 마을에 기탁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고 되어 있다. 촬영 방향을 잘못 잡았는지 사진에는 친구 3명의 이름만 보인다.
요즘 처럼 벌초 대행을 마을에 부탁한 내용인지 음력 10월 묘사(전라도에서는 시제) 제수 마련을 위한 기탁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예전에는 많은 문중에서 멀리 떨어진 선조의 묘관리 및 묘사 제수 준비를 조건으로 논, 밭을 현지민에게 무상으로 경작케 하였었다. 우리집안에도 오래전부터 10대 조부모 산소 관리를 위답을 제공하고 묘를 부탁했지만 금년부터는 묘관리를 조건으로 경작을 받아들이지 않아 우리가 준비해야 한다.
경작을 거부하는 것도 충분하게 이해된다. 즉 어렵던 시절에는 비록 천수답이지만 많은 식구 건사를 위해서는 적은 소출도 감내었다. 이제 자식들은 성장하여 출가하였고 경작인은 농사 짓는 일이 힘에 겨운 나이가 되었으니 어쩔 수 없는 세태의 변화이다. 이런 사소한 문제 외에도 문중 명으로 등기된 위전, 위답 때문에 송사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문중이 풍지박산되는 경우도 종종 신문지상에 보도 되고 있으니...
훗날 우리 후손들은 이런 비석비문을 이해할 수 있을런지.
가야산은 지켜 보겠지?
2013.09.29 |
첫댓글 그래서 우리도 멧돼지와 숨바꼭질 하면서 고령에 직접 벌초하러간다~예전에는 현지인들이 해주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