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 완전한 열반 즉 죽음에 이르자 모든 비구들은 비통하여 땅에 넘어져 뒹굴고 슬픔을 못이겨 한숨을 쉬면서 부르짖었다.
“여래의 멸도(滅度)는 어찌 이리 빠르신가. 세존의 멸도는 어찌 그리 빠르신가. 대법의 없어짐이 어찌 그리 속(速)하신가. 군생(群生)은 기리 망하고 세간의 눈은 없어졌도다.”
비유하자면 큰 나무의 뿌리가 뽑히니 가지가 부러지는 것과 같고, 두 도막 난 뱀이 데굴데굴 구르는 것과도 같아 어쩔 줄 몰랐다.
좮증일아함경좯과 <십송율>에 전하는 부처님 입멸 당시 제자들의 황망한 모습이다. 물론 이 때도 천안 제일의 아나율 존자는 “그쳐라. 슬퍼 말라. 제천이 위에서 괴이쩍다고 책망하리라.” 하며 나무랐다는 이야기가 나오나 나머지 비구들 모두가 부처님을 잃은 엄청난 슬픔에 밤이 다하고 새벽이 다하도록 슬퍼하였다고 한다.
부처님 당시의 제자들뿐 아니라 오늘의 우리들도 부모형제의 상을 당하면 슬픔이 지나쳐 황망한 중에 가시는 분을 제대로 보내드리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래서 이번 호부터는 왕생의례를 살펴보기로 한다.
임종(臨終)
그때 세존께서 향탑(香塔)의 좌우에 있는 모든 비구에게 강당으로 모이도록 분부하고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마땅히 알라. 나는 최정각(最正覺)을 이루었으니 이른바 4념처, 4의단, 4신족, 5근, 5력, 7각지, 8정도 등이다. 그대들은 마땅히 알라. 이러한 법 가운데서 화동(和同)하고 경순(敬順)하여 서로 다투지 말라. 같은 스승에게서 받았으니 물과 젖처럼 되어 내 법 가운데서 부지런히 수학하라. 서로 함께 등명이 되고 서로 함께 즐겨하라.
비구여 알라. 나는 이 법에서 자신이 스스로 깨달아 세상에 편 것이 있으니 이른바 12부경이다. 그대들은 마땅히 잘 수지하여 칭양(稱揚)하고 분별하여 일에 따라 수행하라.
무슨 까닭인가 하면 여래는 오래지 않아 이후 석달이면 마땅히 반열반(般涅槃) 하겠기 때문이다.”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슬퍼하였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말씀하셨다.
“그대들은 근심하고 슬퍼하지 말라. 천지나 사람이나 물건이나 어느 한 가지가 나서 마치지 않는 것이 있는가. 유위법(有爲法)으로 하여금 변역하지 않게 하고자 한대도 그럴 이치가 없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이 후에 춘다의 공양을 받으시고, 120세인 수받다의 출가를 허락하신다. 또, 부처님의 장례법을 묻는 아난다에게 “너는 잠자코 너의 할 일이나 생각하라. 모든 청신사(淸信士)들이 스스로 즐겨 할 것이다.”하셨다.
아난이 거듭 여쭤보니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장례법을 따르라 하며 “향탕(香湯)으로 그 몸을 씻고 신겁패(神劫貝)로써 몸을 싸고, 오백장백첩(五百張白疊)으로 차례로 감아서 금관 안에 넣고 마유(麻油)를 부은 뒤에 금관을 들어 큰 철곽(鐵槨)속에 넣고 그것을 다시 전단향 곽 속에 넣어 여러 가지의 좋은 향으로 두텁게 그 위를 싸서 화장한다. 그리고 사리는 주워 네거리 길 위에 탑묘를 세워 오고 가는 사람으로 하여금 법왕탑을 보고 그 올바른 교화를 회상하여 이익이 많게 하는 것이다.” 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불경을 살펴보면 부처님 임종시부터 차례 차례로 해나간 일들을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일반 중생들은 슬픔을 가누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일을 그르치게 된다.
부처님처럼 분명하지는 않지만 대개의 경우 임종은 예측할 수 있으므로 노환 또는 병환으로 위독한 분이 계실 때에는 급히 연락할 수 있도록 항상 거처를 알려 놔서 속히 연락받을 수 있도록 한다. 병세가 위급한 상태에 이르면 가족들은 침착한 태도로 주위를 정돈하고 운명을 기다린다.
이 때에 본인의 신구의(身口意) 3업(業)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므로 금강경이나 아미타경 등의 독송을 권하거나 테이프를 틀어 분위기에 젖을 수 있게 하면 좋다. 또한 아난이 부처님께 여쭤본 것처럼 궁금한 것이 있으면 환자(어르신)가 대답하기 쉽도록 간략하게 묻고, 내용의 요지를 적거나 녹음하여 두는 것이 좋다. 그리고 측근은 급속히 직계 비속 및 특별한 관계에 있는 친지들에게 알려 마지막 운명을 지켜보도록 하는 것이 오복 중의 하나인 고종명(考終命)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임종시 남기고 싶은 말은 교훈이나 재산 분배에 관한 유언일 것이다. 유언은 자필로 쓰는 것이 원칙이지만 시간적인 여유나 기력이 없을 때는 여러 사람이 지켜 보는 가운데 제삼자가 대신 써도 좋다. 그러나 유언의 내용을 가지고 임종 후에 다투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어서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지 않도록 위독할 때보다 평소에 본인 스스로가 미리 증서를 만들어 두어야 하며 그럼으로써 세상에 대한 미련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
임종은 숨이 넘어가는 상태를 말하며 운명이라고도 하고 불교식으로는 입멸(入滅), 열반(涅槃), 시적(示寂), 입적(入寂) 등으로 불린다. 가장(家長)의 경우 제사를 지낼 수 있는 방 즉 정침(正寢)으로 옮기고, 다른 이는 저마다 사용하던 방으로 옮긴다.
이 때 집안을 정결히 하고 머리를 동쪽으로 가게 하여 눕힌 다음 새 옷으로 갈아 입히고 환자의 팔과 다리를 주물러준다. 모두 독경을 하거나 독경 테잎을 틀어 놓고 기다린다.
남자는 남자들이 지키는 데서, 여자는 여자들이 지키는 가운데 운명하는 것이 좋다.
(다음 호에는 운명 후의 절차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운명 확인(속광 : 屬曠)
요즘은 주로 병원에서 운명을 맞이하지만 집에서 할 경우 죽음을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의학적인 죽음의 정의는 뇌의 작용이 정지한 뇌사(腦死)와 심장의 박동까지 멎은 심장사(心臟死)가 있으나 여기에서는 심장사 개념에 해당하는 숨 끊어짐을 말한다. 이때 미리 준비해 놓은 햇솜 또는 약국에서 구한 탈지면을 입술 위에 놓아 내쉬는 숨에 의해 움직임이 없으면 운명한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를 속광이라 불렀다.
수시(收屍: 사체 가지런히 하기)
운명을 하게 되면 경황이 없어서 무엇부터 해야 좋을지 몰라 허둥대는데,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사체를 가지런하게 해 드리는 일이다. 이를 수시라 한다. 숨이 끊어지면 눈을 손바닥으로 부드럽게 쓸어내려 감겨 드리고 미리 준비한 햇솜 또는 탈지면으로 입과 코, 귀를 막는다. 이는 돌아가신 분이 지병이 있거나 사망시의 충격으로 피가 흘러나올 경우 보는 이의 마음도 상하고 위생에도 좋지 않기 때문에 예방하는 것이다.
이어서 머리를 약간 높고 반듯하게 괸 후 사체가 굳기 전에 손발을 고루 주물러서 펴고, 백지로 사체의 얼굴을 덮으며 백지나 베로 양쪽 어깨를 단단히 동여맨다. 그 다음 양손을 곧게 펴서 배 위에 올려 놓는다. 대개 남자는 왼손, 여자는 오른손을 위에 놓는데 반드시 지켜야 할 필요는 없다. 양쪽 다리도 곧게 펴고 양발을 바르게 모아서 백지나 베로 동여매 덮어 놓고 촛불과 향을 피운다.
이 절차를 마치고 민간에서는 곡을 하는데, 불자집안에서는 아미타경·금강경 등을 독송하거나 장엄염불을 하는 것이 좋다. 수시를 하는 이유는 팔다리를 편 채로 운명을 하게 되면 그대로 굳어져서 수의를 입히고 입관을 하기에 불편하므로 굳기 전에 준비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무서운 생각이 들어 어찌할 수 없는 부녀자만 있는 경우는 손을 펴서 배 위에 놓고 양발만이라도 가지런히 묶어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입관시에 억지로 주물러서 볼썽 사나운 일이 생기기도 한다.
이어서 죽은 사람의 웃옷을 벗겨 가지고 지붕으로 올라가 고인의 혼을 부르는 초혼(招魂) 의식을 했는데, 요즘에는 여러 가지 여건상 대개 생략한다. 김소월의 시에 나오는 초혼은 바로 이때 다시 오도록 부르면서 우는 이의 심정을 읊은 것이다. 초혼 후에 밥 세 그릇과 짚신 세 켤레를 채반 위에 받쳐서 마당 또는 대문 옆에 물 한 그릇과 동전을 합해서 놓기도 하는데, 이는 사자(使者)의 밥과 노자라는 의미이다.
부고(訃告)
수시와 초혼을 하고 난 뒤에 자손들은 머리를 풀고 곡을 하며 옷을 갈아 입는다. 남자는 심의(深衣:덕 높은 선비의 웃옷)를 입고 섶을 여미지 않으며, 여자는 흰옷으로 갈아 입고 신을 신지 않는다. 이렇게 자손들이 상제(喪制) 모습을 갖추고 초상이 난 것을 밖에 알리면서 장례를 지낼 업무를 나눈다.
상주(喪主)는 상사의 중심이 되는 이로 죽은 사람의 맏아들이 되는 것이 원칙이나 경우에 따라 맏아들이 없으면 둘째 아들이 아닌 맏손자를 상주로 한다. 그러나, 일의 편리를 위해 너무 어린 손자를 종손이라 해서 상주로 하기보다는 둘째 아들 또는 집안의 어른이 맡는 것이 현실적이다.
주부(主婦)는 부인으로서의 상주를 말하고, 호상(護喪)은 상주를 도와 대소사와 범절을 주관하게 되므로 이런 일을 잘 아는 친척, 친지 가운데서 선임하며, 문서 책임자인 사서와 재물책임자인 사화를 두어 관리하면 일의 순서가 있어서 좋다.
빈 노트를 두 권 준비해 하나는 돈·물건의 출납을, 다른 한 권에는 조문객의 부의를 기록한다. 호상은 사화를 데리고 염습시 시신 밑에 까는 칠성판(七星板:북두칠성 모양의 구멍을 뚫은 판으로 생명의 주관자인 칠성님께 받은 명이 다했으므로 다시 칠성님께 돌아간다는 의미)을 준비하고(요즘은 장의사가 함), 상주와 의논한 뒤 사서와 함께 초상이 났음을 알리는 부고(訃告)를 작성해서 편지나 신문을 통해 알리는데, 그 서식은 다음과 같다.
밑줄 부분은 청신사 법명 성명 거사님 또는 청신녀 법명 성명 보살님으로 표기할 수도 있다. 부고를 슬 때 격식을 중시해서 어려운 한문구를 쓰는 경우가 있는데 요즘은 쉬운 한글을 사용하기도 한다.
※ 다음 호에는 염습 및 성복과 조상(弔喪) 및 문상(聞喪)에 관해 알아보고자 함.
염습(殮襲)
영가가 평생 동안 몸(身)과 말(言)과 뜻(意)으로 지은 업(業)을 깨끗이 해야 극락에 태어날 수 있다. 그래서 좋은 곳으로 가기 위한 준비를 해주는 것이 몸을 씻기고 좋은 옷을 입히는 것일 게다.
몸을 씻기는 것을 습(襲)이라 해서 향탕수(香湯水) 즉, 향나무 삶은 물이나 쑥 삶은 물로 시신을 씻어 주었고, 옷을 입히는 것을 염(殮)이라 해서 저승으로의 외출(外出)에 필요한 옷을 입혔다. 습은 돌아가신 당일에, 염은 염과 소렴(小殮), 대렴(大殮)으로 나누어 염은 당일 습후에, 소렴은 이튿날, 대렴은 3일 후에 하였다.
이는 죽음의 판단이 쉽지 않은 옛날에 소생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날을 구분해 실시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에는 의사의 사망진단을 받으면 형편에 따라 당일 또는 이튿날, 습과 염을 같이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요즘은 습과 염, 소렴, 대렴을 나누지 않고 바로 염습이라고 하는 것이다. 원래는 습염이라고 해야 차례와 의미에 맞으나 부르기 쉽게 세간에서 쓰는 대로 염습이라 한다.
병원이나 장의사에서 대행할 때에는 유족들은 참여만 하면 되므로 별도로 신경쓸 일이 없다. 습전(襲奠)이라는 처음 지내는 제사도 요즘은 지내지 않으므로 염습 후의 성복제 제사 준비만 해 놓으면 된다. 가정에서 전통적으로 진행할 때는 다음과 같은 물품을 준비해야 한다.
① 습 준비물
향탕수, 수건, 빗, 주머니(손, 발톱, 머리카락 넣는 것), 물그릇 2개, 햇솜.
② 염 준비물
수의(복건, 망건, 먹모, 악수, 충이, 속옷, 겉옷, 천금, 지금, 속포), 반함(버드나무 숟가락 1개, 쌀 한 홉, 구멍 없는 구슬 또는 동전 3개)
염습을 할 때 스님이 시다림을 와서 독경을 하게 되는데 그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수계(授戒)
영가가 생전에 수계를 하지 않았을 경우에 부처님을 대신해서 불법승 3보에 귀의하는 3귀의계와 5계를 설하여 지난날의 업장을 참회하고 왕생극락할 수 있도록 한다. 영가전에 많이 독송하는 무상계(無常戒)도 또한 계율로서 중생의 삶과 죽음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분명히 알게 해줌으로써 부처님의 자리를 보게〔山河大地現眞光〕하기 위하여 설하는 일종의 이론계(理論戒)이다.
2. 목욕(沐浴)
이하의 의식은 주로 스님의 경우에 맞게 편집되어 있으나 재가 불자에게 적용해도 좋다. 다만, 천도·제사의 효능이 7/1만 영가에게 가고, 나머지 7/6이 유족에게 온다는 지장경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유족들도 알아듣게 하는 것이 좋으므로 한글을 애용했으면 한다. 참 법신은 둥근 보름달과도 같고 일천 해(日)가 빛을 뿜는 것 같아 허망하고 거짓된 속진(俗塵)을 이제 씻어 버리고 금강석처럼 무너지지 않는 몸을 얻으니 안과 밖도 없고 생사거래가 참되고 한결같다고 알려주고 불보살님의 명호 10념을 행한다.
3. 세수(洗手)
업을 지어온 손을 깨끗하게 씻으니 시방세계의 부처님 법이 손바닥 안에 소상하리라는 게 송을 읊어 새로운 시작을 제시하는 의식이다. 이어 무상계를 읊는다.
4. 세족(洗足)
중생계를 헤매는 발이 아니라 불도수행의 만행(萬行)이 원만해지도록 깨끗이 한 발로써 비로자나불의 정수리를 지나 최상의 열반에 도달하도록 하는 의식이다. 이어서 세상 두두물물이 우리의 나툼임을 설파한 법성게(法性偈)를 읊는다.
5. 착군(着裙)
심의식(心意識)의 집착을 막는 의미의 속옷입는 의식을 행하고, 집착을 없애는 반야공(般若空)의 수행경전인 반야심경을 읊는다.
6. 착의(着衣)
고통을 참고 견디며 사는 사바세계의 최고 수행인 인욕행을 의미하는 겉옷 입는 의식을 행하고 해탈주를 읊는다.
7. 착관(着冠)
불보살님의 흔들림 없는 정신 상태인 삼매(三昧)중의 수능엄삼매를 영가가 얻도록 도와주는 게송을 읊고 능엄주(楞嚴呪)를 읊는다.
8. 정와(正臥: 스님인 경우는 정좌)
부처님께서도 정와 후 입멸하셨으므로 눕고 앉은 차이는 없으며, 다만 너와 나의 구별이 없는 아공(我空)의 단계를 넘어, 법과 법 아님의 차별이 없는 법공(法空)의 도리를 마음에 새겨주는 것이 이 의식의 핵심이다. 이어서 원각(圓覺) 도량에 단정히 앉아 연화대(蓮華臺)향하라는 안좌게를 읊는다.
9. 입관(入棺)
딱딱한 나무(돌관에 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 수량과 관념과 형식의 구애가 없는 즐거움의 세계인 무량수·무량광 부처님 나라(極樂世界)에 왕생하는 것임을 일깨워 주는 게송과 함께 성복제까지 나무아미타불 정근을 한다. 이 때 의식을 알면 나눠서 해도 좋지만 일반 재가 불자는 의식에 어둡고 비불자도 많이 있으므로 나무아미타불 염불의 공능을 설명해주고 끝까지 ‘나무아미타불’만 염송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다음에는 성복과 발인을 알아봄)
성복제(염습후 첫 제사)
입관을 마치고 상제가 정식으로 상복차림을 하는 절차를 일러 성복(成服)이라 한다. 예전에는 깃광목과 삼베로 만든 옷을 입었으나 요즘은 남자가 검은 색 양복에 흰 와이셔츠와 검정 넥타이를 착용하고, 여자는 검은 색 또는 흰 치마 저고리를 입는 경우가 많다. 이 때 속옷도 같은 색으로 하여 흰 치마 사이로 짙은 속옷 또는 바지가 보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
검은 색이나 삼베로 만든 리본과 완장으로 표시하고 여자라도 검은 색의 양복, 흰 색이나 검은 색의 치마 저고리 차림이 좋다. 성복이 끝나야 조상(弔喪)을 받는데 요즘에는 바쁜 현대인의 일정을 감안해서 발상 후부터 입관 전에도 검은 양복 차림으로 조상을 받기도 한다.
성복제는 입관 후 상복을 입고 지내는 첫 제사로서 제사 범절은 집안마다 차이가 있으나 메·탕·면·포·혜·편·적·김치·편청·간장 등을 제수로 갖추되 많은 제물보다는 정갈하고 정성스럽게 차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거불(擧佛, 부처(보살)님을 청함)
나무 극락도사 아미타불
나무 관음세지 양대보살
나무 접인망령 대성인로왕보살마하살
(영가를 인도하는 인로왕보살님께 귀의합니다.)
창혼(唱魂, 혼을 부름)
저희들이 지극 정성으로 청하오니 오늘 열반의 세계로 떠나시는 선엄부(선자모=어머님)쫛쫛쫛영가께서는 이 자리에 내려오소서.
조주 스님께서 내리셨던 차를 올리오니 드시고 삼계가 꿈인 줄을 아신다면 편안한 마음으로 법왕성에 가시리.
보공양진언(寶供養進言)
옴 아아나 삼바바 바아라 훔(3)
반야심경(般若心經)
장엄염불(莊嚴念佛)
(※아미타 부처님의 나라인 극락세계에 가기 위해서는 생전에 온마음으로 1일이나 7일간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그 사람이 죽는 즉시 아미타 부처님이 극락세계로 맞이한다 했으며, 그럴 기회가 없었으면 죽은 후에 남들이라도 온마음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열번(십념)만이라도 부르면 영가가 극락세계 태어날 수 있다고 한 가르침에 따라 장엄염불을 다같이 하면 더할나위 없이 좋으나 다음 귀절이라도 다같이 하기 바란다.)
원아진생무별념 아미타불독상수
심심상계옥호광 염염불리금색상
아집염주법계관 허공위승무불관
평등사나무하처 관구서방아미타
나무서방대교주 무량수여래불
나무아미타불
(십념 후 아래의 장엄염불 뒤 나무아미타불 후렴을 붙여서 염불하거나, 나무아미타불만 108번을 계속한다.)
아미타불재하방 착득심두절막망
염도염궁무념취 육문상방자금광
사대각리예몽종 육진심식본래공
욕식불조회광처 일락서산월출동
극락당전만월용 옥호금색조허공
약인일념칭명호 경각원성무량공
보화비진요망연 법신청정광무변
천강유수천강월 만리무운만리천
원공법계제중생 동입미타대원해
진미래제도중생 자타일시성불도
원이차공덕 보급어일체
아등여중생 당생극락국
동견무량수 개공성불도
(성복제 후 조상을 받으며 돌아가신 지 삼일째 되는 날 발인한다. 발인은 영결식과 발인으로 나누며 다음호에 알아보기로 한다.)
발인과 영결
돌아가신 지 3일째 (또는 5일째) 되는 날 영구를 상여(喪輿)로 옮겨서 장지(葬地)로 떠나기 전에 지내는 제사를 발인제(發靷祭), 떠나는 의식을 영결식(永訣式)이라고 하는데 예전엔 이를 묶어서 견전(遣奠)이라고 했다.
견전은 보내드리는 제사라는 뜻을 나타내는데 비해 요즘 우리가 쓰고 있는 발인은 ‘가슴걸이〔靷〕를 옮기는〔發〕 제사’라는 뜻이다. 영구를 묶은 띠를 짐승의 가슴걸이에 비유해서 사용하는 것이어서 느낌이 썩 좋지 않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예전처럼 견진으로 부르거나 봉송제(奉送祭)라고 부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나 여기서는 발인으로 호칭한다.
견전을 지내기 전에 영구를 옮기는 것을 천구(遷柩)라 해서 축문(祝文)도 읽고 곡(哭)도 했으나 요즘은 발인 또는 영결식만 진행한다.
발인은 영구를 상여에 옮겨 모신 다음에 행하므로 운구(運柩)하기 전에 상가의 대문 밖 적당한 곳에 상여를 미리 설치한다. 그리고 상여를 메고 갈 인원도 점검하고, 공포(攻布)·만장(輓章) 등을 챙긴다. 상여를 잘 쓰지 않는 요즘은 영안실 또는 장례법당에서 상을 치르므로 영안실 문 앞에 영구차를 대기해 놓고 발인제를 지내는 것이 보통이다. 영결식을 모실 때는 넓은 마당 또는 고인이 활동하던 곳의 강당이나 마당에서 영결식이 끝난 후 발인제를 모셔야 하지만 진행의 편리를 위해 먼저 발인제를 지내고 영결식 후 영구차가 장지로 떠나는 것도 좋다.
영결식(永訣式)
- 개회
- 삼귀의례
- 입정
- 청혼
오늘 열반의 세계로 떠나시는 쫛쫛쫛 영가시여! 삼라만상이 흩어져도 변함없으며 생사에도 걸림이 없어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천지만물보다 먼저 존재하였고, 천지만물보다 오래 존재하는 한 물건의 정체를 바로 아시고 평화로운 열반의 세계로 향하도록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일러 드리고자 하오니 이 법단에 오시옵소서.
- 착어
오늘 열반의 세계로 떠나시는 쫛쫛쫛 영가시여! 평생 동안 지은 죄도 임종시에 일념으로 염불하거나 자손들이 한 마음으로 염불하면 극락세계에 태어나는 선업으로 변하나니 동참하신 대중들은 영가의 왕생극락을 위해 아미타불 명호를 다같이 부릅시다.
- 반야심경
- 법문
- 약력 소개 및 생전 육성(법어) 청취
- 영결사
- 헌화
- 추도의 노래(미타의 품에 안겨)
- 발원문(영가의 왕생극락을 비는 내용)
- 사홍서원
발인제(發靷祭)
- 거불
나무 극락도사 아미타불 (절)
나무 관음세지 양대보살(절)
나무 접인망령 대성인로왕보살마하살 (절)
- 창혼(唱魂)
오늘 열반의 세계로 떠나시는 쫛쫛쫛 영가시여! 사바세계 남섬부주 동양 대한민국 쫛쫛쫛에 거주하는 쫛쫛쫛 등이 엎드려 청하오니 이 법단에 오소서.
- 반혼착어(返魂着語)
신령스런 성품깨침 미묘하여 헤아리기 어려운데 가을못에 비친 계수나무 그림자 차가워라.
요령, 목탁소리 깨달음의 길 열어 주리니 잠시 저승 떠나 이 향단에 오소서.
- 가지공양(加持供養)
묘한 향, 묘한 차, 향긋한 쌀로써 시방의 국토마다 널리 보내 모든 부처님과 영가와 고혼들께 공양이 되고 밝은 빛으로 중생을 깨우쳐 다함없는 다라니로 위없는 미묘법문 지니게 하소서.
법의 위신력 뛰어나고 대자비는 걸림없으니 이 공양 시방에 두루하여 법계의 모든 중생에게 베풀어지리. 이 공덕이 일체 영가들에게 미처 공양후 괴로움을 벗어나 극락세계에 몸 바꿔 태어나소서.
- 보공양진언(普供養眞言)
옴 아아나 삼바바 바아라 훔(3)
- 헌향(獻香)
- 제문(祭文)
오늘 열반의 세계로 떠나시는 쫛쫛쫛 영가시여! 영가의 육신은 비록 갔으나 본래 몸은 항상 머물고 한 마음은 만고에 태평하며 세월을 뛰어 넘나이다.
다음에 들리는 ‘나무아미타불’염불 소리 듣고 광명이 열리고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 곧바로 극락세계 9품연대 중 제일 윗자리에 태어나소서.
- 아미타불 정근(精勤, 잔 올리고 절함)
나무 서방정토 극락세계 나무아미타불(10념 도는 108념) 아미타불 본심미묘진언 좥다냐타 음 아리다라 사바하 (3)좦
- 기감(起龕, 영구를 옮김)
오늘 열반의 세계 떠나시는 쫛쫛쫛 영가시여!묘한 깨침이 훤히 드러나고 선정의 기쁨으로 법을 삼으니 동서남북 걸림없어 가는 곳마다 쾌활합니다. 영가의 영원한 안식처 열반은 푸른 버들 있는 곳마다 쉴 만하고 모든 길이 장안(극락)으로 통하는 그곳에 있나이다.
- 정로진언(淨路眞言)
옴 소싯지 나자리다라 나자리다라 모라다예 자라자라 만다만다 하나하나 품 바탁(3)
- 보례(普禮, 관을 들고 절함)
오늘 열반의 세계로 떠나시는 쫛쫛쫛 영가시여! 사바를 떠나 정토에 나서 아미타불 뵈면 그 곳이 극락이라. 성현들처럼 허공을 걸어 정방(토)에 태어나 중생의 몸을 받지 말고 극락으로 향하소서.
시방에 항상 계신 부처님께 절합니다.
시방에 항상 계신 부처님께 절합니다.
시방에 항상 계신 부처님께 절합니다.
나무 영산 회상 불보살(3)
나무 대성 인로왕보살마하살(3)
※ 이어서 법성게 또는 나무아미타불 정근을 하면서 장지로 향함.
장지에서의 예법(1)
SK 그룹의 고 최종현 회장이 화장을 유언으로 남겨 현재까지 잔잔한 감동의 메아리를 울리고 있다. 불교계에서는 부처님 당시부터 오랜 전통이 된 화장(火葬)법이 묘지의 국토 잠식에 대한 우려 때문에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화장에 대한 선호도 조사를 했더니 천주교, 기독교에 이어 불교인의 화장 선호도가 가장 낮게 나왔다고 한다. 지금까지 법당에서만 불교인이고 나와서는 비불교인으로 돌아가던 신앙 행태가 그대로 표출된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고 스님을 비롯해 모든 불자들이 반성해야겠다.
지구의 역사가 약 50억 년이라고 한다. 어떻게 해서 지구가 처음 생겼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기독교 바이블에서는 여호와가 만들었다고 하고, 자연 과학에서는 수소와 헬륨가스의 혼합 덩어리인 태양의 일부가 폭발하면서 떨어져 나와 폭발 당시 흡입된 수증기와 우주의 먼지 알갱이들이 현재와 같이 표면만 식고 속은 끓는 물(용암) 그대로 있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홀연(忽然)히 즉 문득 생겨났다고 주장한다.
어느 주장이 옳은지는 깨달음을 통해 입증, 체험되리라 본다. 분명한 것은 세 주장 모두 처음엔 지구상에 아무런 생물체도 없었다는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럼 그 후에 생겨난 사람 호랑이, 참새, 고래, 새우 등 육·해·공의 동물과 참나무, 민들레 같은 셀 수 없을만큼 많은 동식물은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인류만 해도 약 50억이라니 1인당 평균 50kg의 몸무게만 가졌다고 해도 2천 5백억 킬로그램이라는 어마어마한 무게가 태초보다 늘어났을터이다. 그 수없이 많은 동·식물의 무게까지 더하면 우리 지구가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닐까. 좀 엉뚱한 상상이라 생각될지 모르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자연과학자들의 주장에 의하면 지구는 생겨난 이래 지금까지 태양의 주변을 같은 길을 따라 정확하게 돌고 있을만큼 지구 자체의 무게는 변함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수없이 많은 동·식물의 무게는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어디로 간 것이 아니라 지구에서 나서 지구로 돌아간 것이다. 미시적 관점에서 보면 태어났다 죽은 것이지만 거시적 관심에서 보면 존재의 형태가 좀 변했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즉, 지구를 구성하고 있는 산소, 수소, 질소 등 105종 원소가 유기적으로 결합해서 정신과 함께 있을 때를 살았다 하고 그 물질들이 제자리로 돌아간 것을 죽었다고 할 뿐이다. 그래서 지·수·화·풍 4대가 꿈속에서 처럼 흩어지듯 우리를 인식시키는 눈·귀·코 등의 감각기관도 본래는 빈 것이라는 불교의 가르침이 설득력을 갖는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거시적 관점에서 본 생과 사는 자리 이동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자리 이동은 매장 등을 통해 가속화되는 것이며 불교에서 권장하는 화장은 더욱 빨리 제 자리를 찾게 하는 좋은 방법이다. 불자라면 국토의 크기와 관계 없이도 화장법을 따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은 매장하는 이들이 많기에 매장하는 산소 자리에서의 의식예법을 알아보기로 한다.
하관(下棺)
예전엔 장지까지 상여를 메고 가며, 그 뒤를 상주가 울며 따랐는데 요즘은 영구차로 가고 곡(哭)도 하지 않는다. 따라서 영구차에서 봉분을 마련한 곳까지 모시고 가서 내릴 때 다른 물건이 떨어지거나 관이 비뚤어지지 않는 지를 살펴야 한다.
먼저 가는 나무 두 개를 회벽 위에 놓고 긴 나무 두 개는 광구(壙口)에 놓은 다음, 영구 위에 있는 명정과 구의(柩衣)를 벗기고 무명천으로 관 밑을 떠서 양쪽 머리에서 관을 들고 긴 나무를 치운 뒤 관을 서서히 광중(壙中)으로 내려 보낸다. 관을 마른 천으로 깨끗하게 씻고 나서 구의와 명정을 정돈하여 관 복판을 덮는다. 이렇게 해서 하관의 절차가 끝나고 이어서 회(灰)를 넣고 안쪽에서부터 고루 외금정(外金井)까지 다지고 나머지는 흙으로 채워 맨 손으로 다진다. 다음에 흙으로 둥그렇게 쌓는 것을 성분(成墳)이라 한다.
화장법을 강조하기는 하되 현재까지 한국인의 심성을 이끌어온 봉분(封墳)을 통한 전통계승의 마음을 살피기 위해서 3~4대의 가족을 한 곳에 안치하되 전체의 모습은 현행의 봉분처럼 하자는 의견도 있다. 즉 화장과 매장의 좋은 점을 보완해 살리자는 취지이다. 화장의 좋은 점은 여러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데 우리 중생들은 눈·귀·코·혀·몸·뜻 등의 감각기관이 느끼지 않으면 믿지 못하므로 봉분을 만들어서 중도적으로 절충을 하는 것이다.
이제 의식의 개략을 살펴보고 자세한 의식 전부는 다음 호에 보고자 한다. 관을 내리는 의식에 있어서 법·보·화 삼신불, 과거·현재·미래의 일체제불 등 불보(佛寶)와 모든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法寶)과, 문수·보현·관음·지장의 4대 보살 등 일체 보살님(僧寶)을 청하는 10념(十念)에 이어 신묘장구를 외우고, 봉분이 조성되는 산의 신령께 고하는 산신제를 간단하게 모신다. 산좌송(散座頌)까지의 하관의식과 거불, 착어, 보소청진언, 수위 안좌진언, 변식진언, 시감로수진언, 일자수륜관진언, 유해진언, 시귀식진언, 시무차법식진언, 보공양진언, 가지(加持)로 이어지는 평토제(平土祭)를 모신 뒤 하산전에 산소에서 반혼재(返魂齋)를 지내거나 절로 모셔서 반혼재를 지낸다. 반혼재는 상용영반(常用靈飯)이라는 늘상 지내는 제사 의식으로 모시는데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살피기로 한다.
(다음 호에는 하관, 평토제, 산신제, 반혼재의 실제 의식을 알아 본다.)
장지에서의 예법(2)
우리 몸은 딱딱한 흙의 성분〔地〕, 흐르고 씻어 주는 물의 성분〔水), 따뜻한 불의 성분〔火〕, 움직이는 바람〔風〕의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전통적인 불교의 설명이다. 이는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사상과도 맥이 통하며, 오늘날 현대 자연과학의 원소들이 유기적 결합을 하고 있다는 주장과도 통한다.
결합하고 있을 때를 ‘살았다’하고, 흩어지는 것을 ‘죽음’이라고 한다. 죽으면 어차피 본래의 모습인 요소(원소)로 돌아갈 것인데 이를 빠르게 진행하는 것이 화장(火葬)이다. 불로 영가의 몸을 태우는 것을 다비(茶毗)라는 시어를 쓰는 불교의 장례법이야말로 우주의 자연법이(自然法爾)를 잘 아는 행위이다. 몸을 구성했던 요소들이 제자리로 돌아감을 영가와 후인들이 봄으로써, 있음(有)과 없음(無)을 뛰어넘은 ‘참된 빔〔眞空〕’ 속에 ‘묘한 있음〔妙有〕’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다비의식은 불보살님의 명호를 부르는 십념, 불을 드는 거화(擧火), 불을 붙이는 하화(下火), 십념, 보내드리는 봉송진언(奉送眞言), 뼈를 거두는 습골(拾骨), 본래의 자리에 돌아가도록 하는 환귀본토진언(還歸本土眞言), 자리를 본래대로 흩어주는 산좌송(散座頌)의 순서로 이어진다.
습골은 뼈를 세우는 기골(起骨), 뼈를 거두는 습골(拾骨), 뼈를 부수는 쇄골(碎骨), 뼈를 뿌리는 산골(散骨)의 순서로 진행된다. 이는 다비장에서 하는 의식이므로 재가불자에게는 별 도움이 못된다. 재가불자들은 화장장(공식 명칭은 장제장)에서 의식을 진행하게 되는데, 먼저 사망확인서를 가지고 장제장사무소에 접수를 하고, 당일날 아침 9시 정도에 도착하는 것이 화장의 빠른진행과 3일간 고생을 한 유족들을 위해서도 방편이 됨을 참고로 하자.
영구차에서 조심스럽게 운구를 해서 대기실로 가면 각 종교별 의식을 행하는 장소(법당)가 마련되어 있다. 시간이 있거나, 마지막 가시기 전에 공양이라도 한 번 더 올리고 싶으면 모르되 반드시 그 의식을 진행할 필요는 없다.
이어서 화구(火口) 배정을 받고, 유족들이 화구 앞에 모이면 의식을 시작한다. 화구 앞의 작은 공간에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향을 올린 다음, 앞에서 이야기한 순서대로 스님(법사)의 인도대로 의식을 진행하면 된다.
음식을 차리느라 부산 떨 필요는 없다. 장소도 비좁고 하니 음식 공양보다는 지성껏 극락왕생 발원을 올리는 편이 낫다. 정신이 있어서 스님을 따라 염불을 같이 하면 좋지만 대개는 경황이 없으므로 십념(十念)공부 나무아미타불의 가르침을 따라 ‘나무아미타불’을 끝날 때까지 큰 소리로 외우면 족하다.
이 불은 삼독(三毒)의 불이 아니라 / 부처님 삼매의 불이니 / 환히 빛나 삼세(三世)를 비치고 / 활활 타서 시방(十方)을 꿰뚫네 / 삼매 불빛 얻어 쓰면 / 부처님과 같아지고 / 삼매 잃고 나면 / 생사에 휩쓸리네 / 영가여 / 돌이켜 다시 비춰 / 남이 없는 참된 법 깨치고 / 타오르는 번뇌 떠나 열반의 즐거움을 얻으소서.
쪾하화(下火)
세 연(三緣)이 어울려 / 잠시 존재했다가 / 4대가 흩어지면 / 홀연 다시 공함을 얻도다 / 몇 해나 허깨비의 바다를 헤맸는고 / 오늘 아침 이 몸을 벗어 던지고 / 가볍기가 타오르는 쑥대로다 / 나무말 거꾸로 타고 한 번 힘쓰니 / 크게 붉은 불꽃 속에 찬바람이 붑니다.
쪾십념(十念)
위의 십념과 내용은 같으며 다음 게송이 더 있다.
위에서 불보살님의 명호를 부름은 / 왕생을 도와주는 것이네 / 바라건대 지혜살핌 분명하고 / 참 바람에 고운 빛 흩어 / 깨달음의 동산 속에 칠각지(七覺支)의 꽃이 활짝 피며 / 법의 성품 바다 속에서 / 몸과 마음의 때를 모두 씻고 / 극락 가는 구름 길 이끌어 / 모든 성인께 귀의 하소서
쪾봉송진언(奉送眞言)
옴 바아라 사다 목차목(3)
※ 화구에 불이 붙어 육체를 다 태우고 뼈만 남게 되기까지 약 두 시간이 걸린다. 그 동안 아미타경, 금강경, 장엄염불 등을 독송한다.
쪾기골(起骨)
한 점 신령하고 밝은 지혜는 / 끝내 걸림이 없으리 / 한 번 던져 이 몸 뒤집어 내니 / 많고 적음이 자유롭도다 / 모습 없고 / 공도 없고 공 아님도 없으면 즉시 여래(부처님)의 진실한 모습입니다.
쪾습골(拾骨)
가져도 버려도 얻을 수 없으니 / 이 때 닥쳐서 어찌 알리요 / (쯧쯧!) 눈을 크게 떠 불 속을 보면 / 한 품의 황금 뼈가 분명합니다.
쪾쇄골(碎骨)
깨달음을 얻고 나면 / 산과 내 / 땅을 비로소 알아 / 세속 분별에도 안 빠지니 / 푸른 산과 물에 어찌 걸리리 / 이 흰 뼈가 무너졌습니까, 아닙니까 / 무너짐은 허공과 같고 / 문대로 있음은 푸른 지혜 훤히 드러나 / 있음과 없음 모두 없으니 / 이 소식을 아십니까 / 이곳을 떠나지 않고 항상 맑으니 / 아무리 애써 찾아도 찾지 못합니다.
쪾산골(散骨)
들판에 재를 날려 보내니 / 뼈 마디가 어디 있겠나이까 / 갑자기 큰 소리를 치니 / 비로소 중요한(깨달음의) 관문에 이르렀도다 / (쯧쯧!) 한 점 신령한 빛 안팎 없으나 / 오대산이 흰 구름에 막혀 있나이다.
쪾환귀본토진언(還歸本土眞言)
옴 바자나 사다모(3)
쪾산좌송(散座頌)
법신(法身)이 온 세계 가득해 / 금 빛 놓아 세상 하늘 비추네 / 사물따라 모습나툼은 못 속의 달같아 / 본 바탕은 보배 연 꽃자리에 앉았도다.
※ 이어서 다니는 사찰에 모시고 가서 반혼재를 올린다.
다음호에는 매장할 때의 예법을 알아본다.
<불자가례 2000. 4 원고>
성묘(省墓)법회
우리 나라 사람들은 유난히도 조상을 숭배하는 정신이 드높다. 그것은 불교와 유교의 효(孝)정신이 천 수백년을 내려오면서 민족정신의 원형질로 자리잡은 까닭이다. 조상을 숭배하는 정신의 좋은 점이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지만 그 근원적 사상을 살피자면 어느 철학자, 사상가, 종교인 보다도 석가모니 부처님의 통찰력이 가장 뛰어났다고 단언하고 싶다. 그것은 조상님을 잘 모시고 안 모시고에 따라 국가의 장래가 결정될 수 있다고 하신 아함경에서 파악할 수 있다. 장아함 유행경(遊行經)에서 밧지국을 쳐들어 가면 이길 수 있느냐는 물음에 직접 답하지 않고 아난다(阿難陀)에게 말씀하신다.
"밧지국 사람들이 자주 모임을 갖고 바른 일을 의논하여 몸소 지킨다는 말을 들은 일이 있느냐. 밧지국의 임금과 신하가 화목하고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공경한다고 들은 일이 있느냐. 밧지국 사람들이 법을 받들어 삼가해야 할 것을 알고 예의를 어기지 않는다고 들은 일이 있느냐. 밧지국 사람들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어른을 공경하여 순종한다고 들은 일이 있느냐. 그들이 조상을 공경하여 제사를 지낸다고 들은 일이 있느냐. 그 나라의 부녀자들이 정숙하고 진실하며 웃고 농담할 때라도 그 말이 음란하지 않다고 들은 일이 있느냐. 그 나라 사람들이 수행자를 공경하고 계행의 청정한 이를 존경하여 보호하고 공양하기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고 들은 일이 있느냐." 이렇게 한 나라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곱가지를 물으신 후 아난다가 '그렇다'고 대답하자 부처님께서는 결론을 내려주신다.
"그렇다면 어른과 젊은이들은 서로 화목하여 갈수록 더 흥성할 것이다. 그래서 그 나라는 언제나 안온하여 누구의 침략도 받지 않을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이가 이 일곱가지 법을 실행한다면 그 어떠한 적도 그 나라를 위태롭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실로 한 국가가 잘 유지되고 발전되기 위해서 실천해야 할 법을 근본적으로 제시해 주시는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이 말씀이 바로 유명한 칠불쇠법(七不衰法)이다. 이 일곱가지 쇠함이 없는 법 가운데 두가지가 효도(孝道)에 관한 이야기인데 그 중 앞의 것은 살아있는 부모에 대한 효이고, 뒤의 것이 돌아가신 조상에 대한 효이다. 돌아가신 조상에 대해 효도를 다하면 나라가 위태롭지 않고 흥성해진다고 말씀하신 부처님께서 스스로는 어떻게 하셨을까. 부모형제와 처자를 버리고 출가하여 부처님이 되고 난 후 아버지를 뺀 나머지 가족을 모두 머리 깎아 스님이 되게 하고 제자를 삼은 부처님은 과연 돌아가신 조상을 어떻게 대했을까?
부처님은 부모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뼈 무더기를 향해 부모처럼 생각하며 절하시는 모습을 불설대부모은중경(佛說大父母恩重經)을 통해 설하신 바 있다. 또, 불설정반왕열반경(佛說淨飯王涅槃經)에서는 장래에 사람들이 포악해져서 부모가 길러준 은혜에 보답하지 않고 불효할 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모범을 보이고자 스스로 아버지인 정반왕의 관을 메고 화장터로 가셨다. 그리고 가장 좋은 전단향의 나무를 모아 화장을 하고 유골을 모아 황금함에 담아 탑묘(塔墓)에 안치하셨다. 요즘의 일부 출가자들이 부모의 돌아가심도 모르는 것을 세속에 초연한 출가사문의 갈 길이라고 보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금구성언(金口聖言)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조상님을 섬기는 것은 우리가 꼭 실천해야 하는 것인데 근래의 우리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또 재가 불자들이 조상님의 산소에 찾아가도 어떻게 할 지를 몰라 답답해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식(寒食)을 맞이해 조상님의 묘를 찾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성묘법회의 보기를 만들어 제시하고자 한다. 물론, 한식뿐만 아니라 추석과 설의 성묘, 또는 초가을의 벌초 때에도 같은 형식으로 하면 된다.
ㆍ삼귀의
일반 불자들이 알고 있다면 이 부분에서 전통 불교의 거불(擧佛)의식을 모실 수 있다. 거불은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 대세지보살님을 모 시는 미타거불(彌陀擧佛)로 한다.
ㆍ찬불가
이 때 찬불가는 '미타의 품에 안겨' 등 조상(弔喪) 의식곡이나 조상님이 평소에 즐겨하시던 찬불가, 또는 찾아 뵙는 후손들이 조상님 추모의 정을 느낄 수 있는 어떤 찬불가도 좋다. 일본의 스님과 친했던 어느 종단의 원 장스님은 그 스님의 장례식 때 생전에 가르쳐 줬던 우리 민요 '도라지'의 절반을 부르고 나머지는 돌아가신 스님이 부르라고 요청해 장내를 숙연하 게 했다는 일화도 있다.
ㆍ경전독송
아미타경, 법성게, 반야심경, 부모은중경, 법구경 등 같이 읽을 수 있는 내용을 준비해서 전 가족이 합송하거나 단락을 나눠서 전 가족이 일부라 도 꼭 읽을 수 있도록 한다.
ㆍ헌다(獻茶)
대개 술을 올리지만 여건이 허락한다면 직접 달인 차(茶)를 올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한식 절기가 불의 사용을 절대로 금하는 기간이므로 잘 달인 차를 그릇(보온병)에 담아가서 올리면 좋을 것이다.
ㆍ큰 절(2배)
다같이 잔 올리고 다같이 절해도 좋고, 각자 단 올리고 각자 절해도 좋 다.
ㆍ추모 말씀
조상님께서 생전에 후손들에게 강조하셨던 말씀이나, 같이 갔던 장소, 함 께 했던 일 등을 잘 아는 분이 대표로 이야기하거나 각자가 직접 느꼈던 조상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눔으로써 추모의 정을 깊게 한다.
ㆍ추모 발원
발원문을 작성해서 같이 또는 따로 독송하거나 마음속으로 묵념을 해도 좋다.
ㆍ추모 정근
나무아미타불을 108념 정도 합송하면서 왕생극락을 발원한다.
ㆍ사홍서원
ㆍ산회
法 顯
차례(茶禮)찾아 차례차례
1. 불교에는 차례가 없다?
기가 막혔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최소한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았다. 1990년 9월쯤의 일로 기억된다. 당시 모 일간 신문에 추석(秋夕) 특집기사가 실렸는데 각 종교별 차례의식(茶禮儀式)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흥미를 가지고 읽어 내려가던 내 눈이 점점 일그러졌다. 제사의식은 유교가 발달했으리라 생각하는 이가 많았음인지 유교의 차례의식을 제일 먼저 소개하였고, 다음엔 기독교의 그것을 설명하였는데 계속 더 읽어보아도 불교의 차례는 아예 언급조차도 하지 않은 것이다.
아니, 한국역사의 삼분의 일이 불교 그 자체의 역사인데, 그리고 국교가 되어 민중의 역사를 이끈 햇수가 천년이 넘는데 차례의식이 소개되지 않는 것은 중대한 문제가 신문사 아니면 그 기자에게 있다고 판단되었다. 그래서 실례를 무릅쓰고 기사를 쓴 기자에게 어떻게 된 것이냐고 따져 물었더니 자료가 있으면 가져와 보라는 거였다. 자신 있게 그러마고 했는데 자료를 찾다보니 정말로(?) 없었다.
불교에는 차례의식이 없었던 것이다. 이거야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천육백년이 길다고, 의미 있다고 모두들 이야기했지만 없는 것이 비단 차례에만 그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답답해왔다. 그래서, 내가 꼭 찾아양 하고 찾아도 없다면 만들겠다는 의지를 갖고 연구를 시작했다.
2. 차례의 효시 - 충담스님의 헌다
제일 먼저 국어사전을 펼쳤더니 '음력으로 다달이 초하루, 보름, 또는 그 밖에 명절이나 조상 생일 등에 지내는 간단한 낮제사' 라는 말을 찾을 수 있었다. 다음으로 이어령의〈문장백과대사전〉을 뒤졌더니 삼국유사 표훈대덕조(三國遺事表訓大德條) 에 충담(忠談) 스님이 미륵부처님께 차를 올렸다는 기록을 소개하고 있었다. 경덕왕이 즉위한 지 24년(765년)되던 해 삼짓날 귀정문에 올랐다가 나랏일 걱정에 훌륭한 스님의 고견을 듣고자 거듭 청해 모신 스님이 충담스님이었다. 충담스님은 다 떨어진 누더기를 입고 차 끓이는 도구와 차를 가지고 있었다. 차를 끓이며 그는 매년 삼짓날과 중굿날에 남산 삼화령의 미륵세존님께 차를 끓여 올리는데 지금도 그곳에서 오는 길이라 했다. 차를 마신 뒤 '찬기파랑가'라는 향가(鄕歌)의 저자인 그에게 요청해서 "임금은 아비요/ 신하는 어미라/ 백성을 어린아이라 여기니/ ∼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하면/ 나라는 태평하리." 라는 내용의 '안민가(安民歌)'를 지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뒤 다른 자료에도 충담스님의 이야기를 소개하고는 있지만 모두들 '다도(茶道)' 또는 재주 예자를 써서 '다예(茶藝)의 효시'라고만 했지, 예도 예자를 쓴 '차례(茶禮)'에 주목하는 이가 없었다. 하지만 부처님께 차와 향을 올리고 절하는 것을 예불(禮佛)이라 하는 것처럼 충담스님의 그것도 차례라고 불러야 하리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차례의 효시는 충담스님의 미륵부처님께 올린 차례이고, 우리가 지금까지 명절에 지낸 차례도 결국 그 뿌리가 불교에 닿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찾아보니 큰스님들의 탄신일에 지내는 제사를 다례(茶禮)라고 부르고 있었으며, 유교의 제사에도 차를 쓰는 것이 바른 예법이라는 것도 보였다. 특히 4월8일 스님중의 큰스님이신 석가모닌 부처님 오신날 차를 올린다는 기록이 선원(禪院)의 청규를 담은 백장(百丈禪師: 720-814) 청규(淸規)권2 불 강탄조(佛降誕條)에 향화 등촉과 다과 진수를 올리고 공양한다는 내용으로 나온다. 유교 예법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주자(朱子: 1130-1200)가 차와 관련이 있는 고장에서 생활했고 뒷날 명나라의 구준(丘濬)이 편집한 주자가례(朱子家禮)에도 차를 쓰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한, 우리 나라 유가의 다례는 주자보다 2백여년 앞선 최승로(926-989)의 상례 때 뇌원차와 대차를 왕이 내린 것에서 훨씬 빨리 성립되었음을 찾아볼 수 있었고, 신식(申湜: 1551-1623)의〈가례언해(家禮諺解)〉에 정월, 동지 삭망(초하루와 보름)에 차례 지내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보았다.
이제는 불교에 차례가 있다는 것을 뛰어 넘어 오히려 모든 차례 의식의 뿌리가 불교에 닿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숨을 고르게 되었고 뿌듯한 자신감이 생겼다. 그런 한편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례라는 이름 속에 들어 있는 차는 어디로 가고 술만 쓰고, 차례의 종가인 불교에서는 차례라는 말이 잘 쓰이지 앟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 고민되었다.
3. 차례에 술 또는 물을 쓰게 된 연유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우리의 차례는 충담스님의 헌다 이지만 그 이전에도 가락국 김수로왕의 17대손 갱세급간이 가락국 종묘에 차례 지낸 이야기가 나오고, 문무왕의 아들인 보질도(寶叱徒)와 효명(孝明)이 오대산에서 날마다 산골짜기의 물로 차를 달여 1만의 문수보살에 공양한 이야기도 있다. 또 중국에서는 송 문제(文帝) 3년(426) 유경숙의〈이원(異苑)〉에 차례 지낸 내용이 나온다. 한편, 국교가 불교인 고려에서는 연등회와 팔관회, 사신 영접, 왕자(녀)와 태후 등의 서임과 공주의 결혼식, 원자 탄생, 중형벌자 판결을 위한 문답의식에도 차례를 지냈을 정도로 차가 성행했다.
유교를 숭상한 조선시대에는 차례를 지내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국조오례의〉등의 기록에 의하면 종묘제례와 중국, 일본의 사신에 대한 다례 등 빈례(賓禮)에 차를 사용한 것이 나오므로 차례는 계속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면 언제 차의 사용이 줄게 되었을까?
이를 알아낸 동기를 잠깐 밝히고자 한다. 90년도의 신문사건 이후에 불교의 차례의식이라는 제목으로 차례의 유례, 의미, 차례의 보편화 그 문화적 근거, 불교인 가정의 차례를 내용으로 한 자료를 언론매체에 홍보하기 시작했는데 해가 갈수록 관심도가 낮아지는 것이 아닌가? 해서 뭔가 계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서 그림(사진)을 제공하기 위해 제1회 불교차례의식 시연회라는 행사를 기획했다. 보도자료를 만들어 띄웠더니 반응이 좋았다. 그 중에서도 불교방송국 '무명을 밝히고' 라는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들어와 출연하게 되었는데 살짝 겁이 나기 시작했다. 정통 차인도 아니요, 전문 연구가도 아니며, 불교의식에 능한 태고종 소속이면서도 염불에는 재능이 모자란 탓에 빈 곳이 너무 많은 것이다. 아니 빈 곳이 많은 게 아니라 찬 곳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했더니 헌다의식에는 꼭 뚜껑 있는 찻잔을 썼다고 한 마디 하더니 나가 버렸다. 얼른 쫓아가서 물었더니 차인으로 유명한 용운스님의 제자인데 자세한 것은 스님께 여쭈라며 전화기를 건네줬다. 스님은 바쁘신 중에서도 차에 관한 백과사전(?)을 풀어놓으셨다. 그야말로 차 감로법문을 듣는 기분이었다. 그 날 방송 시간에 10분가량 늦어서 다른 순서 먼저 진행하고서야 내 이야기를 살 수 있게 되었다. 그 방송을 들은 이들은 법현이가 유식한 것으로 알았겠지만 사실은 선조사 스님들과 용운스님, 그리고 태고종 총무원장을 역임하신 승려사학자 운제스님, 의식에 밝으신 운곡스님 등의 등불 밑에서 법현이라는 반딧불 하나가 일렁이고 있었음을 이제라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어쨌든 용운스님과의 전화통화에서 알게 된 중요한 사실 중의 하나가 바로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의 전쟁으로 국가경제가 피폐해지고 특히 임란 때 차 도자기 굽는 도공들을 다 끌어갔기 때문에 백성들의 생활을 걱정해서 영조(英祖)임금이 왕명으로 '귀하고 비싼 차 대신 술이나 뜨거운 물 즉 숭늉'을 대신 쓸 것을 지시한 후부터 차례에 술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막연하게 유고가 들어온 고려말부터 술이 제사상에 오르면서 조선시대에 완전히 주인 자리를 차지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잘못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즉, 차례에 차가 빠지고 대신 술이 쓰이게 된 것은 사회, 경제적 이유에서 영조 때부터라는 것이다. 또한, 불교의 제반의식을 편집해 놓은 석문의범(釋門儀範)의 모본이라 할 수 있는 백파(白坡: 1767-1852)스님의 작법귀감(作法龜鑑)에 천도의식 전에 영가를 부르는 의식인 대령 진행방법을 담은 대령정의(對靈正儀)편 가운데 다게(茶偈)에 "내 이제 청정수를 감로차로 삼아서 증명(證明)님께 올리오니 원컨데 가엾게 여겨 받아주소서 (我今淸淨水 變爲甘露茶 奉獻證明前 願垂哀納受)" 하는 내용이 실리게 된다. 차를 쓰지 말라 한 왕명을 지키되 부처님께 최고의 공양물인 향기로운 차를 맑은 물로 대신 하려는 스님의 심정이 '감로차로 삼아서' 에 잘 나타나 있다. 이는 소례를 대례로 알고 받아 달라고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와도 맥이 통하는 것이다. 여기서 증명은 죽은 이의 영혼을 아미타부처님께 인도하는 대성인로왕보살(大聖引路王菩薩)을 말하는 말로 주로 지장보살이 그 역할을 담당하지만 관세음보살 등 다른 보살도 그 역할이 가능하다. 이 다게는 오늘날 아침예불에 전승되고 있으나 근래에 한국불교의 전통을 이어 받지는 못했지만 주류로서 다수를 접하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에서 아침 저녁 예불을 오분향례로 단순화하면서 사라져 가고 있다. 그리고 늘상 부처님께 올리는 횟수 많은 예불에는 청정수를 올리고 나머지는 차를 썼음이 다른 모든 의식문제에 차를 올리는 내용을 보아 알 수 있다. 작법귀감의 다게 바로 다음에 나오는 국혼청에도 법주가 차를 올리고 삼배드리는 예식이 나와 있을 정도이다.
이렇게 차례가 성행했으나 경제적 이유와 함께 의식의 엄숙함이 복잡함으로 인식된 점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조상의 제사를 절에서 지낼 때도 스님이 어려운 내용을 대신 읽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에 기존의 제례문(상용영반, 관음시식, 화엄시식, 종사영반 등)을 가지고 추석과 설 명절 차례도 지냈기 때문에 불교에는 차례의식이 없는 듯이 여겨진 것이다. 또 가정의 차례에는 이름에 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 대신 술을 쓰는 것이 당연시되고 보편화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써 일반인의 뇌리 속에 차 없는 차례가 자리잡게 된 것이다. 국화 없는 국화빵이요, 붕어 없는 붕어빵 같은 모양이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성균관에 있는 어느 어르신은 차례의 의미는 간단한 낮제사이기 때문에 버금 차(次)을 써야 하고, 차(茶)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비상식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4. 앞으로의 차례
우리 선조들은 차를 대단히 귀하게 여겨서 며느리가 들어왔을 때 사람됨을 알아보는 데에도 차를 썼다. 며느리의 솜씨로 직접 달인 차를 조상의 사당에 올리고 말이 없는 조상대신에 그 차를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나눠 마시는 것을 고묘(古廟) 또는 묘견례(廟見禮)에서의 회음(會飮)이라 했다.
따라서, 5천년 역사와 문화민족임을 자랑해온 우리가 차례에서 차를 빼서는 안 된다. 반드시 차를 써야 한다. 단, 모든 것이 민주적인 현대사회에서 가족 구성원 중 어느 개인의 의견대로만 해서는 안되므로 회의를 통해 의견을 일치해서 차를 꼭 쓰도록 했으면 한다. 요즘은 누구나 차를 가지고 있는 시대이며, 제사에 쓰는 술 종류가 요즘 사람들의 입맛을 따라가지 못하는 데서 차의 사용은 이제 설득력을 얻기가 쉬울 것 같다. 불교, 비 불교인을 떠나서 전 국민이 차를 써야 할 것으로 본다.
그리고, 불자라면 불교의식으로 차례를 지냈으면 하는 바램에서 차례의식을 편성해서 보급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사찰에서 시행하고 있는 모든 불공, 시식 등의 의례문을 살펴보면 불경의 핵심사상과 선조사스님의 경책말씀 그리고 진언 등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내용을 알기만 하면 기가 막히게 좋고 그야말로 깨달음의 소식을 접할 수 있을 텐데도 현재는 진행하는 스님도, 따라 가는 신도도 다같이 내용을 모르고 있어서 답답한 현실이다. 그래서, 제사 때 쓰는 시식(施食)을 기본으로 하되 우선은 스님이 없어도 불자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참여할 수 있도록 한글로 하고, 그 길이를 최소한으로 줄였으며, 공양진언은 보통 불, 보살님 등에게 공양 올릴 때 쓰는 것이나 상용영반에도 그 보기가 나오고 조상님의 영가가 업식(業識)을 밝혀서 불보살님과 같은 깨달음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라고 감히 보공양진언을 썼다. 참고 삼아 필자가 이번에 새로 구성한 불교차례의식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금일 고조, 증조 할아버님과 할머님 영가시여 저희들이 모시는 추석(설) 차례에 강림하시어 감응하여 주시옵소서 (찻 잔을 올리고 재자들 모두 큰 절 2배)
4) 공양: 공양을 올리는 의식
저희 자손들이 계, 정, 혜, 해탈, 해탈지견의 5분향을 공양하오니 자성의 대지혜 를 발하고 반야의 밝은 등을 켜서 3계의 어둠을 밝히사이다.
(절을 올리고) 조주스님의 맑은 차를 드리오니 목마름이 아주 없어지이다.
(과일을 올리고) 선계의 진품과일을 올리오니 맛보아 조소서
(공양을 올리고) 진수를 올리오니 허기가 영훤히 없어지이다.
오늘 조상님 영가께 올린 모든 진수는 하늘에서 내려온 것도 땅에서 솟은 것도 아니요 저희들이 작은 정성을 모아 올린것이오니 흠향하여 주시옵소서.
5) 보공양진언: 조상님과 다른 영가께 모두 공양되오록 하는 진언
옴 아아나 삼바바 바아라 훔 (3)
6) 보회향진언: 마무리하는 진언
옴 사마라 사마라 미마나 사라마하 자가라바 훔 (3)
7) 발원: 원을 세우고 조상님에 대한 추모의 생각을 키움
오늘 저희들이 올린 동양을 받으시고 부처님의 진리를 깨달으시어 아미타부처님 의 국토인 극락세계에 태어나시고 저희 후손들이 건강한 몸과 건전한 정신으로 올바른 삶을 영위하여 깨달음을 얻는 길로 이끌어 주시기를 발원하옵니다.
나무아미타불(10념) (큰절 2배후 헌식하고 그릇의 뚜껑을 닫고 위패를 사른다.)
불교를 믿지 않는 분들도 지금 가정에서 지내는 방식으로 차례를 지내되 술 대신 차를 쓰거나, 술을 쓰더라도 먼저 차를 달여 올린 다음에 술을 쓰는 것이 전통 예법임을 알았으면 한다.
모든 가정에서 차례에 차를 쓰고 차를 많이 마셔 여유 있는 삶을 살기를 기원하며, 시와 술과 거문고를 너무나도 좋아하여 삼혹호(三酷好) 라 불렸던 백운거사 이규보(李奎報: 1168-1241) 의 '엄스님을 참방함(訪嚴師)' 이라는 시를 소개하고 이 글을 마친다.
"내 지금 산사(山寺)를 찾아 온 것은
술을 마시고자 함이 아니오
올 때마다 술자리 베푸시니
얼굴이 두꺼운들 어찌 부끄럽지 않으리오.
스님의 인품 높음은
오직 향기로운 차를 마시기 때문이오.
용정(龍井)의 차 잎 따다가
혜산(惠山)의 물로 달인 차가 제맛이지요.
차 한 잔에 이야기 한 마디
점점 심오한 경지에 들어가네
이 즐거움 참으로 청담하니
굳이 술에 취할 일 아니라오." ..
왜 49재를 지내는가?
49재를 왜 지내는 지를 알려면 죽은 뒤의 우리가 갈 길을 대략이나마
알아야 한다. 죽은 뒤의 일을 제대로 알려면 부처님과 같은 깨달음이
있어야겠지만 표준적인 길을 아는데는 인류가 발견해 낸 과학과 사상의
힘도 유효하다. 그래서 우리 불자들이 49재를 지내는 의미를 분명하게 알 도록 하기 위해서 조금은 딱딱할 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역사는 약 50억 년이라고 한다.
50억 년 전 지구는 어떤 과정을 거쳐 우주 공간에 태어났을까? 유일신을 믿는 기독교나 천주교에서는 바이블의 기록에 따라 여호와 하나님(god)
이 만들었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보통 사람의 인식과 증거 능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으므로 초기 불교 경전에는 잘 보이지 않으나 후대의 논서(論書)에는 자연법이(自然法爾)의 법칙을 따라 홀연히 생겨난다고 말한다.
현대의 종교가 되어버린 자연과학에서는 수소(水素)와 헬륨의 혼합기체 덩어리인 태양의 내부 구조적 모순에 의한 폭발시 떨어져 나온 기체 덩어리가 우주 공간의 수증기 등 부유물(浮遊物)을 빨아들여 식으면서 굳은 것이라고 한다.
어느 설을 따르든지 처음엔 사람 등 생물이 없었다는 것을 다 긍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50억년이 지난 지금 지구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가.
우선 1999년 2월말 현재, 전 세계 인구는 60억을 헤아리고 있으며, 수 없이 많은 식물과 동물 그리고 건물과 구조물 등이 생겨났음이 그 변화의
모습이다. 사람의 평균 몸무게를 50kg이라고 가정했을 때 처음보다
50x60억=3,000억 kg이 늘어났다는 이야기이며,다른 식물과 동물, 건물 등의 무게를 생각하면 헤이리기 힘든 천문학적인 양의 무게가 늘어났음을 짐작하게 된다. 그러면, 그 많은 것들이 존재하게 된 지금 지구의 무게와
맨 처음 지구의 무게 사이엔 어떤 변화가 있을까?늘었을까?줄었을까?늘어났다면 과연 얼마나 늘었을까?
결론부터 이야기 한다면 지구의 무게에는 변화가 없다. 처음이나 지금이나 무게가 같다는 이야기이다. 지구의 무게를 재는 방법은 자연과학자들에게 맡기기로 하고 쉽게 무게 변화가 없었음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지구가 태양의 주변을 도는길 즉 공전궤도(公轉軌道)와 얼마만에 제자리에 오는가를 나타내는 공전주기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이다.엄청난 양의 무게 변화가 있었다면 공전의 궤도와 주기에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고 따라서 옛날과 지금의 궤도와 주기는 많이 다를 것이며 거기에 따른 우주 공간 내의 다른 별들과의 충돌도 가능할 것 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관측한 바에 의하면 지구의 공전궤도 및 주기의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지구의 무게 또한 변화가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지구 안에 천문학적인 숫자의 존재들이 천문학적인 무게를 가지고 새롭게 존재하고 있는데도 지구의 무게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지구 안에서 나왔다는 것을 의미한다.지구에서 나서 죽는다는 것이다.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과 식물들의 몸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분석해보면 소소,헬륨,리튬,베릴륨 등의 수많은 원소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해 있음을 자연과학의 발전을 통해 알 수 있다. 이들 원소는 지구를 구성하는 원소들에 다름 아니다.그렇다면 우리는 지구 안에서 나서 지구 속으로 사라지는 존재들의 변화 모습을 다음과 같이 가정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산소와 수소 등의 원소가 수소 결합한 아미노산 등의 결정체가 식물의 뿌리를 통해 흡수되거나 광합성 작용을 통해 잎으로 흡수되어 식물을 구성했을 때, 이 식물을 채식동물이 뜯어먹고, 채식동물을 사람이 잡아 먹고, 사람이 죽으면 화장을 하게 될 경우 더빨리 분해되지만 매장을 할 경우 미생물에 의해 원소로 다시 분해되는 과정을 밟게 될 것이다.
이렇게 원소로 출발해 다시 원소가 되는 과정을 흔히 생태계의 순환(循環)라고 부르며, 순환을 불교에서 윤회(輪廻)고 하는데 순환이든 윤회든 돌고 돈다는 의미 외에 다른 것은 아니다. 원소가 미생물이 되고, 미생물이 식물이 되며, 식물이 채식동물로, 채식동물이 육식 돌물로, 육식동물이 사람으로, 사람이 미생물로, 미생물이 원소로 되는 이 싸이클에서 앞의 과정은 전생이요, 뒤의 과정은 후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과학적으로 증명이 가능한 윤회과정에서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사람의 존재형태는 태어나는 순간 생유(生有),살아있는 존재인 본유(本有),죽음의 순간인 사유(死有),죽은 뒤 다시 태어나기 전까지의 존재인 중유(中有=中陰身)의 네가지로 나눈다.
이 중에서 중유의 상태를 중음신 이라고 하며, 흔히 귀신이라고 불리는 존재가 바로 중유이다. 이 중유의 상태에서 보통 7일 단위로 새로운 삶의
형태로 태어나게 되는데 늦어도 49일째 되는 날에는 모두 다 새 몸을 받게 되므로 49재를 지내 불보살님의 위신력을 빌어서, 이왕 태어날 존재이면, 괴로움이 적고 즐거움이 많은 존재의 세상에 태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즐거움이 극에 달하고 괴로움이 없는 이상향인 극락세게에 태어나도록 하기 위해 49재를 지내는 것이다. 단 49재는 49일 동안 지내는 제사이며, 여러 가지 여건상 49일 재에만 지내는 제사가 아닌 것이다.
49재를 지내는 마음가짐과 준비물
"세상에 있으면서 1 백 년이나 악을 행한 사람이라도 임종시에 염불을 하면 죽은 후에 천상에 태어난다고 했는데 나는 이 말을 믿지 않습니다."
인도를 침략한 미란다 왕은 당시의 유명한 수행자 나가세나 스님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 의문은 불자인 우리들도 한번쯤 품어 봤음직한 것이다.
임종시에 본인 스스로 염불을 하는 경우는 그래도 납득할 수 있다.
그런데 임종 후에 남이 해주는 염불도 그만한 공덕이 있는 것인가?
더구나 염불의 내용도 모르는 채, 뜻도 모르는 채 막연히 입으로만 옮어 준다고 무슨 도움이 되는 것 일까? 나가세나 스님은 이렇게 대답하고있다.
"왕이시여! 조약돌 한 개도 물 위에 올려 놓으면 가라앉습니다. 그러나 1 백 개의 돌이라도 배 위에 올려 놓으면 가라앉지 않고 물 위에 뜹니다. 염불의 수행은 바로 1 백 개의 돌을 뜨게 하는 배와 같습니다."
염불의 공덕으로 극락왕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마치 '한 개조차 가라앉는 돌을 1 백 개라도 뜨게 하는 배' 와 같은 공덕이 있는 것이 염불이어서 죽은 후 천도도 가능한 것임을 웅변하고 있다.이 이야기는 미린다왕문경에 실려있다.
죽은 후 사십구재를 지내는 것도 바로 이런 공덕때문이다. 그러면 사십구재를 보다 의미있고 정성스럽게 지내려면 어떤 마음을 갖고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사십구재에 임하는 마음가짐
첫째, 윤회를 믿는 마음 가짐을 가져야 한다. 어리석은 범부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면 반드시 되살이 즉, 윤회하게 됨을 지난 호에서 이미 설명했다. 그 결과 윤회는 과학이요 진리라는 것을 깨달았으니 이제 믿어야 할 차례다. 그리고 윤회를 믿는 것은, 깨달음을 얻지 못한 중생이 가는 세계를 안다는 의미이지 윤회를 벗어나려는 노력을 게을리한다는 뜻은 아니라는 것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윤회의 수레바퀴를 반드시
뛰어 넘되 한 번에 안되면 두 번 또는 세 번에라도 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영가에게 법문과 가지(可持) 주력(呪力)을 들려주는 것이다.
둘째, 지극 정성으로 해야 한다. 어떤 일인들 정성을 쏟지 않아도 될 일이 있으랴만은 존재의 의미를 바꾸는 천도(薦度)야말로 가장 지극히 정성을 들여야 하는 일이다. 영가의 유족이 사십구재까지 정성을 들여서 해야할 일을 우선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늘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한다.
2) 지장경, 아미타경,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금강경 등의 경전을 독송하고, 차안에서도 독송 테잎을 들으며 장엄염불이라도 열심히 듣고 독송한다.
3) 현대인들이 잘 가는 노래방, 나이트클럽, 도박장 등의 출입을 금하고, 포커나 고스톱같은 도박을 삼간다. 직장 회식 등 부득이한 경우에도 분위기만 만들어주고 빠지도록 한다.
4) 영가의 극락왕생과 자신의 수행 의지에 대한 내용의 발원문을 적어서 하루에 한 번씩 읽고 사십구재에 부처님전에 올렸다가 회향(봉송)의식 때 태운다.
셋째, 본인이 직접 해야 한다. 우리불자들은 어느 틈엔가 생활과 유리된 신행(信行)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법당에서도 상단의 불보살님께는 오체투지례를 올리면서도 영단의 조상님께는 유교식으로 절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자신을 대신해서 스님이 좋은 곳에 보내주느 것이 아니라 본인이 좋은 곳에 가는 것을 스님이 이끌어주고 도와주는 것이라는 것을 잊고 있다. 자신의 기도나 수행을 스님이 대신 해줄 수는 없다. 오늘날 불자들의 의식은 힌두교, 브라흐만, 기독교 성직자들이 그들의 신에게 영생을 구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지장재나 각종 재일 법회 및 49재 등 천도재에 스님은 열심히 땀을 흘리며 염불하지만 신도들은 겨우 자기 이름과 주소가 나와야 절이나 하고 불전이나 놓는 신행을 하고 있는 데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스님께 의식집을 구해서 직접 의식에 동참하여야 한다.
지장경에도 천도의 효능이 망자에게 1/7이요, 생자에게 6/7이라고 하였다. 이 뜻은 바로 재를 지내는 불자들이 재의 의미와 의식 내용을 알고 직접 참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였으니, 이를 명심 또 명심 해야 한국불교가 좋아질 것이다.
넷째, 스님은 평등(平等)염불을 넘어 공(空)염불의 참뜻을 알고 실천해야 한다. 평등염불과 공염불은 중국 운서 주굉 스님의 문집 <죽창수필>에 나오는 말이다. 평등염불은 시주 금액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정성을 들이는 것을 말하고, 공염불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공짜로도 해주는 무주상의 참염불이 라는 의미이다.(공염불을 성과 없는 일이라는 뜻으로 잘 못 사용하는 예가 있으니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공염불과 관련한 일화는 다음과 같다.
어느 과부의 꿈에 죽은 남편이 나타나 애조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내 평생 닦은 바가 없어서 아직도 극락세계에 태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천도재( 度齋)를 지내주구려. 돈이 없을 터인즉 동평묘(東平廟)를 찾아가면 성의를 다할 것이오.』
시키는 대로 시주 돈을 조금 마련해서 찾아갔더니 동평묘의 주인은 아낙의 시주돈은 거들뗘 보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평소 해오던 기도를 잠시 접어두고 정성껏 천도재를 지내주었다. 그날 밤 꿈에 다시 나타난 남편이 『덕분에 음계(陰界)를 벗어났다』며 고마워했다.
이 이야기는 중국 명나라때 스님인 운서 주굉(雲棲 株宏)이 지은 죽창수필(竹窓隨筆)에 실려있다. 주굉은 선승(禪僧)이면서도 염불과 방생을 적극 권장한 분으로 호는 연지(蓮池)다. 이야기 끝에 덧붙이기를 『(염불하는 ) 마음이 (돈에 관계없이) 평등함에도 공덕이 이와 같거늘 하물며 그 마음이 공(空)함에랴!』라고 하였다.
여기서 평등한 마음으로 하는 염불은 평등염불(平等念佛)이다. 시주 돈의 많고 적음을 가리지 말고 평등하게 하라는 말이다 공 한 마음으로 하는 염불은 이른바 공염불(空念佛)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공짜로 해주는 염불인 것이다. 따라서 가장 바람직한 염불이 바로 공염불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해봤자 소용없는 일을 일컬어 공염불이라 쓰고 있는데 이는 대단히 잘못된 일이다.
사십구재에 준비해야 할 것들
이제 사십구재를 지내는 불자들이 준비해야 할 것 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는 왕생발원문을 작성하는 일이다. 둘째는 재에 동참할 인원을 점검,통보하고 , 셋째는 비용을 상의해서 전달하는 일이다. 넷째는 비누, 수건, 치약, 칫솔, 영가 옷과 고무신 등을 준비해서 스님께 드리는 일이다. 다섯째는 지금까지 입은 상복을 정갈하게 입는 것이다. 여섯째는 가능하면 법요집이나 경전 등 염불시 필요한 것을 마련하는 일이다.
일곱째는 국화 등 꽃을 준비하는 일이다.
인원을 점검하여 알리는 것은 법당을 선택하고 음식 등을 준비하는데 참고하기 위해서다. 사십구재 비용을 가지고 다투는 예가 있는데 이는 매우 잘못 된 것이다. 정성을 들이는데 정해진 값이 있을 수 없다. 부처님 당시부터의 경제 관념에 따라 1/3은 차리는데,1/3은 사찰경제에, 1/3은 스님들 보시에 쓰인다고 생각해서 스스로가 최대한의 성의를 가지고 준비한 비용을 드리고 그 범위 안에서 음식, 장엄, 법보시, 스님 초청 등을 조율할 수 있도록하는 것이 좋다.
사십구재를 제대로 갖춰서 하려면 시련, 대령, 관욕, 신중작법, 불공, 퇴공, 시식, 봉송의 여덟 단계로 진행해야 하며, 증명 법사의 법문과 병법 스님의 화청 법문이 추가된다. 이때 영가의 삼업(三業)을 깨끗이 하고, 극락세계로 가는 해탈복을 입혀 드리는 의식인 관욕에 쓰일 수건, 비누, 치약,칫솔, 고무신, 영가 옷 등을 준비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차근히 준비해서 사십구재 시작 30분 전 쯤에 절에 도착해서 다기물을 올리고 촛불을 켠다. 향을 꽂고 꽃 공양을 올리고 각 단에 삼배로 참배한 후 스님의 지시를 따르면 된다.
49재의 진행순서와 의미(1)
재자들이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고 도량에 들어오면 해탈문밖에
연(輦;불,보살,옹호신중,영가를 모시는 가마)을 설비해 두고,도량에는 울긋불긋한 장엄물들이 매달려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이는 의식을 보다 장엄하게 하고 불자들로 하여금 환희심을 불러 일으키며, 그 장엄 자체가 영가 및 재자들을 깨달음으로 인도하여 재를 지내는 장소가 바로 깨달음을 얻으신 부처님이 사시는 불국정토 즉 극락세계가
되도록 하기 위한 불교특유의 장엄(莊嚴)이다.
장엄물의 종류에는 삼신번(三身幡),보고번(普告幡),오방번(五方幡),시왕번(十王幡),항마번(降魔幡),시주번(施主幡),등롱(燈籠),산화락(=사나래기라고도 함=散華落),진언집(眞言集),상축(上祝=祝願),인로왕번(引路王幡),일산(日傘)등이 있다. 보통 사찰의 사십구재에서는 이와 같은 장엄물을 다 사용하지는 않으므로 다 보지 못한 이가 많다. 대개는 오방번과 시왕번, 인로왕번과 등롱 또는 금은전(金銀錢)을 쓰는 것이 보통이다.
삼신번은 법신, 보신, 화신의 세 여래를 모신 것이고, 오방번은 중방화장세계의 비로자나불,동방 만월세계의 약사여래불, 서방극락세계 아미타불,남방환희세계 보생여래불, 북방무우세계 부동존여래불을 모신 것이며, 보고번은 삼보와 사부중을 모신 것이며, 시왕번은 명부세계 진광(1),초강(2), 송제(3),오관(4),염라(5),변성(6),태산(7),평등(8),도시(9),오도전륜(10) 대왕 등 10대 왕을 모신 것이다.
항마번은 마귀를 항복시키는 진언을, 시주번은 금번 재(법회)를 보는 이의 인적 사항, 산화락은 부처님께서 세상에 오시거나 법문을 하실 때 하늘에서 꽃비가 오듯 청중들이 꽃을 뿌려 떨어지는 모습을 그린 것이며, 등롱은 등불을 걸어 두는 기구요, 상축은 축원의 내용, 인로왕번은 인로왕보살을 모시는 것을 말한다. 인로왕보살은 길을 인도하는 보살로 어느 보살님이나 다 될 수 있으나 대개는 지장보살을 일컫는 말이다.
사십구재는 영산재(靈山齋)의식과 대동소이하게 진행되며 시련(侍輦),대령(對靈),관욕(灌浴),신중작법(神衆作法),권공(勸供=佛供),퇴공(退供),시식(施食),봉송(奉送)의 순서로 진행된다.
시련은 부처님과 보살님 그리고 도량을 웅호하는 신중(천룡 8부)과 영가를 맞아들이는 의식이다. 대중이 연 을 들고 해탈문 밖의 시련터로 나아가 옹호게, 헌좌게, 다게, 행보게, 산화락, 나무대성인로왕보살, 기경작법, 영취게, 보례삼보의 순서로 진행하는데, 연의 앞뒤에 태평소 등 삼현육각과 깃발, 요령,목탁, 태징을 든 스님과 재에 동참한 대중이 도량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장엄하기 그지 없다. 도량으로 들어와 도량 안 일정한 곳에 연을 모셔놓고 삼보께 예를 올리므로써 시련작법은 끝이 난다.
옹호게는 시방의 성현, 범천 등 제천과 가람신 등 8부신중 등이 오시기를 청하여 바라춤을 추고,헌좌게는 먼 법계에서 이 자리에 오신 성현들께 잠시 쉬라고 자리를 드리는 의식이며, 이어서 감로차를 올리는 다게를 하고, 본격적으로 재가 시작되는 도량으로 걸음을 옮기라는 의미에서 행보게를 하는데'걷고 걸어서 가는 길에 망념만 버리면 그곳 이 정토이니 몸. 말. 뜻의 3업을 다 바쳐 삼보께 귀의하니 성현, 범부 구별없이 법왕궁에 모이라'는 의미가 참 재미있다.
이어서 나무대성 인로왕보살을 짓소리 하며 경을 펼치는 의식인 기경작법을 작법무(作法舞)를 통해 펼치며, 상단을 향해 영축게를 다같이 읊는다.
영축(취)게는 '영축산에서 꽃을 듦은 상근기를 보인 것이니, 눈 먼 거북이 뜬 나무를 만난 것 같도다. 가섭이 빙그레 웃지 않았다면 끝없이 맑은 가풍을 누구에게 전했으랴' 하는 내용의 선게(禪偈)다.
우리 불교의 천도의식은 법화, 화엄, 반야, 밀교, 정토, 선 등의 제 사상이 어우러져 종합불교, 총화불교의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다. 다라서, 불교의 재는 유교의 제사처럼 단순히 음식을 드리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고 영가의 근기에 맞게 시작을 하면서도 영가를 최상근기로 끌어올려 결국 성불케하므로써 천도한다는 웅대한 뜻을 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시련 절차가 끝나면 영가에게 간단한 음식을 대접 한다는 의미의 대령이 이어진다. 아미타불과 관음, 세지 양대 보살 그리고 인로왕보살님을 청하는 거불과 영단을 향해 법주 스님이 읽는 대령소, 부처님의 비밀주문의 힘에 의해 지옥문이 열리기를 원하는 지옥게, 영가에게 삶과 죽음이 본래 없음을 깨달아 법신을 증득하고 허기를 영원히 없애라고 법을 설해주는 착어, 진령게, 보소청진언, 영가를 세 번 청하는 고혼청, 항연청에 이어 인생의 무상한 도리를 읊는 가영을 한다. 영가에게 향, 등, 차 공양을 올리며 그것을 보느냐고 물은 뒤 ' 구름은 푸른 하늘에 물은 병 속에 있다' 는 게송을 읊고 영가에게 부처님을 예경하라고 하면서 대령이 끝난다. 대령을 하는 동안 동참재자는 처음 거불은 상단을 향하고, 나머지는 영단을 향해 각자 절을 하고 나서 합장하고 앉아서 경문을 같이 읽거나 고인의 왕생극락을 발원하면 된다.
이어서 관욕이 행해지는데 극락세계에 태어나는 것은 잔치와도 같아서 영가가 부처님의 법력에 의해 탐진치 삼독으로 더러워진 몸. 말. 뜻. 3업을 깨끗이 하고 해탈복으로 갈아 입히는 의식이다. 병풍을 들러치고 그 앞에 증사 스님이 결계로 법을 설하며, 작법귀감에 의하면 '높이는 3척, 넓이는 4척, 천류(天類),제왕(帝王),장상(將相),남신(男神),후비(後妃),여신(女神)의 구(軀)를 쓰고, 양치질 물 여섯 그릇, 위패, 거울, 촛불, 버드나무 이쑤시개, 칫솔, 치약, 수건, 종이옷, 향탕수 등을 준비' 한다고 자세히 되어 있지만 근래에는 남신구와 여신구만 쓰고 준비도 간단히한다.
법주 스님의 독창으로 인예향욕(引禮香浴)을 하고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다같이 하며, 입실게(入室偈),가지조욕(加持操浴),목욕게, 목욕진언,작양지진언(이닦음),수구진언(입헹굼),세수면진언, 가지화의(부처님의 진언으로 몸에 꼭 맞게 길지도 짧지도 끼이지도 헐렁하지도 않은 해탈복),화의재진언(지의 태움=병풍 뒤에서 연기 오름),수의진언, 착의진언 정의진언은 옷을 받아 입고 정돈하는 의미이며, 이어서 삼보께 예를 올리고 화엄의 원리를 설파한 법성게(法性偈)를 외우며 법당을 돌고 난 뒤 위패를 영단에 모시는 의식을 하고 관욕은 끝이 난다.
이어서 신중작법을 행하는데 법화경에서 이야기하는 천룡8부와 화엄의 1백4위 화엄성중(또는 39위)을 청해서 오늘의 사십구재 의식 도량을 옹호해 달라는 의식이다.
이어서 상단 권공을 하는데 불보살님과 옹호신중 그리고 오늘의 천도영가와 함께 일체 유주무주의 고혼까지 모셔왔으므로 동참재자가 정성으로 마련한 공양(육법공양;향,등,다,미,화,과)을 올리며 불보살님의 가호지 묘력으로 영가가 극락세계에 왕생하기를 발원하고 유족들이 무병장수하기를 기원한다. 이때 축원문을 작성해 축원기도를 하지만 알기 쉬운 한글법문인 회심곡(廻心曲)을 화청법문(和請法門)이라는 이름으로 들려주기도 한다.
이어서 중단에 퇴공을 한 후 영가에게 법식을 베푸는 의식인 시식 과 봉송이 계속된다
49재의 진행순서와 의미(2)
시식(施食)
시식은 '음식을 베푼다' 는 뜻으로 원래는 아귀(餓鬼)에게 음식을 베푸는 것을 말한다.
아귀처럼 진리의 배고픔에 고통 당하는 영가에게 진리를 공양해서 배고픔을 완전히 없애고
진리로 배부른 이, 즉 부처님이 되도록 하는 것이 시식의 궁극적 목표이다.
시식의 종류는 관음(觀音)시식, 화엄(華嚴)시식, 상용영반(常用靈飯), 종사(宗師) 영반, 구병(救病)시식, 전(奠)시식의 여섯 가지가 있다.
관음시식은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력으로 영가에게 밥을 베풀어 정토에 왕생케 하는 것이다.
화엄시식은 화엄경의 주불이신 비로자나불의 위신력에 의해 왕생케 하는 의식이며, 시식문 중에서 가장 짧다. 보통 기도 기간 중에 단체로 하는 시식 때 쓴다.
상용영반은 간단하게 지내는 시식이며, 종사영반은 이름 그대로 종사, 즉 한 종단을 움직일 수 있는 법력 높으신 큰스님의 제사에 쓰고,
구병시식은 몸에 병이 났을 때 정신이 깃든 귀신(시식문에는 책주귀신으로 나옴)에게 법을 베풀어 환자로부터 격리시킴으로써 병을 낫게 하는 시식이다.
전시식은 하단시식으로 일체유주 무주 고혼에게 음식을 베푸는 것으로 독립된 시식은 아니다. 따라서 49재에서는 관음시식을 따르는 것이 보통이다.
공덕회향, 봉송소, 봉송게, 행보게, 법성게, 전송, 원왕생게, 소전진언, 봉송진언, 상품상생진언, 귀의삼보, 보회향진언, 가영, 나무불보살의 순서로 진행된다.
거불과 착어, 진령게, 신묘장구대다라니는 이미설명한 바 있고,
화엄경 4구게는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님을 알려면 법계의 성품을 살펴야 하는데, 그 모든 것이 마음에서 온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내용이다. 삼보와 관세음보살님께 귀의하고 화엄경에 귀의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 부분과 앞의 화염경4구게는 화엄시식에 들어가야 어울릴 것으로 보인다. 거불 때 같이 3배를 올리고 나머지는 합장하고 있거나 의식문을 같이 읽으며 뜻을 헤아리고 있으면 된다.
증명청은 인로왕보살을 증명으로 청하는 것이며, 헌좌진언은 앉을 자리를 드리는 의식이고 다게는 차를 올리는 의식이다.
고혼청은 오늘의 주인공 영가와 함께 모든 영가를 청하는 의식이며, 후손의 주소 성명과 영가의 이름을 세 번 부르는데 이때 순서대로 영단 앞에 나아가 잔을 받아서 향에 세 번 쏘여서 올리고 절을 두 번 한다.
영가의 이름을 본관후인, 본관유인이라고부르는 이가 있는데 이는 잘못이다. 본관 성 공이름 영가, 본관 성 씨이름영가라고 부르는 것이 정례이다.
여기까지가 영가를 극락세계로 모시는 잔치의식상 앞에 모시는 의식이고 이어서 자리를 드리는 수위안좌, 안좌게, 수위안좌진언이 이어진다. 편안히 앉아서 드시라는 것이다.
120살까지 살면서 납자들을 깨달음으로 인도했던 조주(趙州) 스님의 고사에서 유래된 차를 올리며 고통스로운 윤회를 쉬시라고 기원한다. 이 때 잔을 또 올린다.
유교의 제사에서 첫 잔은 초헌(初獻), 둘째 잔은 아헌(亞獻), 셋째 잔은 종헌(終獻)이라고 하는데 아헌을 올리는 셈이다.
첫 잔은 물 한 모금 마시고 숨을 돌리며, 둘재 잔은 본 음식을 들고 셋째 잔은 숭늉을 마시거나 후식으로 차를 마시는 풍토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이어서 진언과 함께 다보, 묘색신, 광박신, 이포외, 감로왕여래께 귀의함으로써,
1) 탐냄을 없애고 법의 재물을 갖추며
2) 나쁜 모습을 없애고 상호가 원만해지며
3) 육도 윤회의 범부 몸을 벗고 허공과 같은 진리의 몸을 깨치며,
4) 두려움을 떠나 열반의 기쁨을 얻으며
5) 목이 열려서 감로맛을 얻어지기를 기원한다.
이는 불설구발염구아귀다라니경(佛說救拔焰口餓鬼陀羅尼經)의 이야기를 원용한 것으로 보인다.
어느 때 아난이 대중들과 떨어져서 혼자 수행하고 있을 때였다. 한밤중에 염구아귀(입이 시뻘겋게 불타는 아귀)가 나타나3일 후 네가 죽어 아귀보를 받을 것이라 저주를 하였다.
아귀보를 받지 않으려면 백천 나유타 항하사수의 아귀와 백천 바라문에게 마갈타국의 도량형으로 각 한가마씩의 음식을 보시해야 된다고 하였다.
깜짝 놀라 아귀를 바라보니 몸과 얼굴은 보기가 민망하고 입에서는 불꽃이 나오고 목구멍에는 바늘이 꽃혀 있으며 머리는헝클어지고 손발톱은 길게 자라 목불인견이었다.
아난이 두려운 마음에 부처님께 달려가 방법을 물으니 변식진언(變食眞言)을 하는데 그 이름이 '무량위덕자재광명승묘력' 이니 이 진언을 외우면 한 그릇의 밥으로도 수없이 많은 아귀를 배고픔에서 구할 수 있으며, 4여래(이 경에서는 감로왕여래를 뺀 4여래를 들고 있음)에게 귀의하여 앞에서 말한 네 가지의 가피를 입을 수 있다고 설한 내용이 나온다.
바로 위의 공양찬에서 '내가 드린 법의 음식이 아난이 차린 음식과 어찌 다르리' 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여래의 10가지 이름과 금강경, 법화경, 열반경의 4구게를 읊은 뒤 장엄염불을 하게 된다. 목숨이 다 할 때가지 아미타불을 부르겠다며
10념 또는 시간에 맞게 108배 등을 행하며, 고성염불 10종 공덕, 아미타불 48원, 석가여래 8상성도, 다생부모 10종 대은 등과 함께 각 경의 게송과 발원문, 선사의 오도송 등을 한 줄 한 줄 읊을 때마다 나무아미타불을 후렴으로 제창한다.
동참 재자들은 이 때만이라도 나무아미타불을 정성껏 부르되 게송의 끝에 불러도 좋고 스님의 게송시간에도 계속 아미타불을 불러도 좋다.
봉송(奉送)
이제 법당 안에서의 의식을 마치고 극락세계로 보내드리기 전에 삼보에 절하고 인로왕보살님의 지휘를 받아
극락세게로 향하는데 극락을 가는 길이 진리의 몸을 체득하는데 있다는 뜻에서 화엄경의 사상을 재해석해 시로 적은 의상대사의 법성게를 읊으며 밖으로 나가게 된다.
이때 극락으로 가시는 영가께 '다른 날(훗날)에 법의 도량을 세우면 근본 서원을 저버리지 말고 돌아오시라'는 말로
생의 형태와 오고감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는 부처님이 되시라는 간절한 희구를 하는 봉송게의 의미나 삼보께 절을 할 대는 신구의 삼업을 다해 정성으로 한다(三業投誠)는 말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봉송소를 읊을 때 스님과 재자 모두가 상단을 향하며 이때 상주는 영정 및 위패를 모시고 서서 공손히 무릎만 살짝 구부리는 절을 함으로써 영가도 같이 절하게 하되 영정이나 위패가 떨어지지 않도록 유의한다.
행보게가 끝나면 스님 뒤에 상주와 재자들이 차례로 서서 법성게를 읊으며 법당 안에서 해인도(海印圖)를 그리며 돌아 밖으로 나와 이미 설치되어 있는 소대(燒臺;불태우는 곳) 앞에 와서 영정과 위패를 모셔 놓고 마지막 잔을 올리고 절을 하며 소대의식을 봉행하게 된다.
지금까지 의식을 통해 헛된 인연을 끊었으면 천당불찰에 맘껏 노니시고 혹 못 끊었으면 스님의 마지막 말씀을 들으라고 하며
'4대가 꿈 속처럼 떠나며6근의 느낌이라는 것이 본래 헛된 것이니 불조의 회광처(佛祖回光處;부처님과 조사스님이 빛을 돌린곳 즉 깨달은 것)를 알고자 하면 서산에 해지고 동녘에 달 뜬다.' 는 게송을 들려주며,
원왕생게에 이어서 소전진언을 할 때 위패와 유품, 법당에 설치했던 장엄물 등을 다 태운다.
불 태우는 까닭은 하늘의 입이라고 불리는 불(인도의 불의 신 아그니를 의미함)로 보냄으로써,1) 원래 온 곳으로 다시 돌려보낸다 2) 험난한 사바세게에서 고통 없는 하늘(극락) 세계로 보낸다는 의미를 담는 것이다. 모든 공덕을 영가의 몫으로 회향하고 법당을 향해 반 배한 뒤 스님과 재자들이 마주하고 반 배를 하면 49재의 대단원이 끝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