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한 말투였지만 손에 피를 묻힌 김 사장 목소리는 미묘하게 떨렸다. 얼굴 표정에도 착잡했을당시 심정이 묻어났다. "남은 직원들이 나간 사람 몫까지 더 열심히 해 줘야죠. 이제 조직은 안정을 찾은 것 같습니다"
김 사장이 불도저식으로 직원들을 몰아붙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실상은 그 반대에 가깝다. 김 사장 취임 이후 메리츠화재에 가장 달라진 것은 근무시간과 복장이다. 복장을 전면 자율화해 답답한 양복은 벗어던지게 했다. 김 사장 본인도 더운 여름엔 딱딱한 재킷을 걸치지 않는다. 보수적인 보험럽계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든 결정이다.
"유연한 사고를 하려면 복장이 자유로워야 하거든요. 조직의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불필요한 긴장을 털어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울 강남역 메르츠화재 본사에서 밤까지 불이 켜져 있는 사무실도 눈에 띄게 줄었다. 오후 6시 이후 업무를 금지해 '저녁이 있는 삶'보장에 나선 것이다. 시행 초기에 눈치를 보던 직원들은 이제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굳이 쓸데없이 자리를 지키지 않는다. 상사 눈치를 보지 않고 "먼저 퇴근하겠습니다"를 외치는게 일상화됐다. 한없이 늘어지던 회의 시간도 30분 이내로 줄이라고 했다. 사장 업무보고를 문자로 받는 일도 일상화됐다. 김 사장이 문자로 업무지시를 내린 결과가 실시간으로 문자로 다시 돌아온다. "굳이 종이를 출력해 격식을 차리고 보고받을 필요가 있나요. 오히려 현안이 생길 때마다 스피드있게 문자로 의견을 주고받는 게 효율성을 높이는 첩경입니다"
김 사장 경영철학의 요체는 하반기 전사적인 시행을 앞둔 '아메바 경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메바 경영은 교세라 창업자인 이나모리 가즈오 명예 회장이 회사가 성장하던 1960년 대 말 갑자기 덩치가 커진 회사를 관리하기 위해 창안한 경영기법이다. 단세포생물 아메바가 일정 규모 이상으로 크면 자체 분열해 여러 개체로 갈라지는 것처럼 큰 회사조직을 부문별 소집단으로 나눠 제각각 경영자 의식을 갖고 조직이 굴러가도록 만드는 게 골자가. 이를 위해 김 사장은 오는 9월 아메자 경영 현장 체엄을 위해 일본 출장 일정까지 잡아놨다.
"손보업계 5위에서 꼼짝 못하고 갇혀 있는 메르츠화재를 최고 회사로 도약시키기 위해서는 임직원을 수동적인 샐러리맨에서 능동적인 사업가로 변신기켜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를 위해서는 아메바 경영이 필수적이라고 봤죠"
김 사장이 생각하는 아메바 경영의 핵심은 회사 전체의 손익계산서를 부문별로 잘게 쪼개 직원이 실시간으로 이를 확인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임직원 개개인이 각자 성적표를 즉시 확인할 수 있어 조직의 부속품이 아닌 독립사업체를 운영하는 마음으로 업무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기존 시스템이 시험을 보고 한 달 뒤에 반 평균 성적표를 확인하는 수준이었다면 아메바 경영은 시험을 보자마자 자신의 성적표를 바로 확인할 수 있는 거라고 비유할 수 있어요. 이를 통해 성취감과 분발을 유도하자는 거죠"
김 사장은 지난달 메르츠화재 전 임직원에게 '1155일간의 투쟁'이란 책을 나눠주고 읽게 했다. 관료주의와 방만한 경영으로 파산 선고를 받은 일본항공이 아메바 경영 도입 후 어떻게 3년 만에 부활 스토리를 썼는 지 생생하게 기록된 책이다. 메리츠화재판 아메바 경영으로 손보업계 판을 뒤흔드는 묵직한 한 방을 날리겠다는 게 김 사장의 각오다. 메리츠화재가 '톱5손보사'에 만족하지 않고 이제는 더 큰 목표를 정할 때가 왔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성과보상 체계도 대대적으로 뜯어고칠 태세댜.
"교세라의 아메바 경영은 개인별로 측정된 평가는 공유하지만 이를 보상에는 바로 반영하지 않습니다. 종신고용 체계를 기반으로 평등주의가 일상화된 일본 문화가 담겨 있지요. 하지만 메리츠화재 아메바 경영은 한발 더 나아가 보상까지 차별화할 방침입니다. '사업가적 마인드'로 무장해 임직원 개개인이 자기 사업의 주체가 되라는 얘기입니다"
이를 통해 메르츠화재 조직이 뼈속까지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문화로 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폭 위임된 권한을 바탕으로 신명나게 일하고, 성과를 낸 만큼 정확히 보상을 받을 수 있다면 누구라도 열심히 일하지 않을까요. 메리츠화재의 대변신은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