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失踪)
(창3:9,눅19:1-10)교독26,318.335
2013.7.21.9.30 시온성군인교회
2013.7.24.13 태안보건의료원
태안자살예방 협회장
http://cafe.daum.net/sangokli
소재나 생사를 알 수 없게 사라진 것을 실종이라 한다..그런데 태안반도에서 인접해 있는 바다에서 인명실종사건이 종종 일어난다..지난 18일 오후 5시34분께 안면 읍 백사장해수욕장의 사설 해병대 캠프에 참여했던 진모군(17) 등 충남 공주사대부고 2학년 학생 5명이 실종됐다가 끝내 익사체로 모두 발견했다..이 학생들은 모두 주최측 인명경시가 초래한 사건이다.
현재까지 실종에 가장 큰 사건은 개구리 소년실종 사건이다..1991년 3월 26일 대구의 성서초등학교 학생 다섯 명의 어린이들은 와룡 산에 개구리를 잡으려고 갔다가 22년 동안 돌아오지 않은 사건이다..그간 50만 명의 군인부터 경찰까지 동반했지만 흔적을 찾지 못했다...
대부분 실종은 관리소홀과 방심에서 온다..위험한 바다에서 바닷물의 물 쌀과 소용돌이 모르면 사고가 난다..그리고 바다는 바닷물이 드나드는 갯골이라는 골짝이가 있다..물살이 빨라 아주 위험한 곳이다..물살이 아주 빨려 들면 헤어 나오기 힘든 곳이다..금번 인양된 학생들도 모두 깊이 팬 갯골에서 발견됐었다.
인간은 창세기 3장에 <하나님>을 떠나는 인류 최대의 실종사건이 발생한다. 그러시면서 <하나님>은 타락한 인간, 잃어버린 영혼을 향한 실종자 찾는 프로젝트를 시작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사역이다. (창3:9)“-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그리고 가장 원초적인 구상은 여자의 후손을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창3:15)..그리고 마침내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주>님께서 친히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19:10) 실종된 자를 찾아 구원하려는 것이 <예수>께서 오신 목적이시다.
<예수>님은 인류 최고의 실종사건의 해결 자 이신 것이다. 세리장 <삭개오>는 실종자로 살았다. 직업도 있고 사는데도 분명하고 돈 많은 부자였지만 동족에게 미움 받고 매국노, 죄인 취급받아 그는 외톨이였고 왕 따 당하고 소외당하여 실종된 삶을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만나보고 싶었다.
그러나 작은 키에, 사람은 많아 할 수가 없어 앞으로 달려가 뽕나무에 올라앉아 <예수>께서 지나가시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 밑까지 오신 <예수>님이 멈춰 서셔서는 나무 위를 쳐다보시며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5절)라고 하셨다. <삭개오>의 뜻은 '깨끗한 사람', '의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삭개오>의 부모는 <삭개오>를 낳고 깨끗한 사람 의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런 이름을 지어주었을 것이다..<삭개오>자신도 "나는 삭개오" "나는 깨끗한 사람", "나는 의로운 사람이다"라고 살아온 줄 안다..그런데 그는 이름값을 못했다..의롭거나 깨끗한 삶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옳지 못한 삶에 대하여 괴로워했을 것이다..
사람은 특별한 존재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고 다스리는 특별한 사명을 받았다. <사람>이라는 뜻도 위를 바라보는 존재라는 의미가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만물을 다스리기보다는 오히려 지배당하는 부분도 많다. 위를 바라보는 존재가 아니라 땅만 바라보는 존재가 되었다. 사람값을 못하던 사람이다..
사람은 작은 체구에는 30조 그리고 큰 체구는 100조의 세포로, 평균으로 약 60조 정도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다. 이 60조개의 세포는 단 1초의 멈춤도 없이 끊임없이 변화를 하면서 다양한 기능을 발휘하게 된다..그런데 약 60조 중에서 약 50만개가 1초간에 파괴되고 동시에 50만개가 재생된다. 그와 같은 반복으로 생명이 유지되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파괴되는 세포수가 재생되는 세포수보다 많아진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몸속에 조직을 움직일까요....”그러면서 사람들은 생명에 대하여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않는다..버려야 일들은 버리고 지켜할 것을 지켜 가야 한다..그래서 현대인들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을 감정을 상실이다. 물론 아픔 고통 슬픔 등은 누구나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복합적인 감정 상실을 전혀 모르고 지나가 버린다..이런 상실감은 허망함이나 절망감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심한 우울증으로 진입하기도 한다. (시51:10)“-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그렇지 않으면 깊은 상실감이 자리를 잡게 되면서 집안 식구와 주변 사람들에게 까지 영향을 준다..
<예수>님은 이런 복합적인 감정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눅7:31-32)"-또 가라사대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꼬. 무엇과
같은 고 비유컨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가로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애곡을 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현대인의 절망감과 허무감은 소통의 부재로 가정을 비롯하여 정치 사회 경제 교육 문화 종교 등 사회 전 분야에서 소통의 부재로 모두에게 상실감을 주고 있다...
이런 소통의 단절은 절망감 허무감으로 이어진다..복음은 상실 되여 있는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과 소통하는 사명감이다..<하나님>과 인간은 소통이 불가능했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열어 놓으셨다..<예수>님의 소외된 사람들을 찾아 가셨다..우리가 세상 속에 있는 존재하는 이유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사람을 아는 것이다.
사람은 창조된 인간인데 타락한 죄인이 되였다...(롬3:10)"-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복되게 창조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창조한 사람을 보시고 심히 좋아하셨다. 비록 죄를 범한 백성이라도 그 생명은 복된 것이다. 아무리 하찮게 여겨지는 생명이라도 사람의 생명은 복된 생명이다..
(딛3:5)“-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에, 독생자까지 희생시켜서 그 생명을 값 주고 사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더 없이 복된 상태로 만들어 부패와 오염이 전혀 없는 복된 환경을 만들어 주셨다.
그런데 사람들이 복된 환경을 무질서와 혼란으로 바뀌어 놓았다. 땅은 박토로 변했다. 엉겅퀴와 가시가 생겨나게 만들고 수고의 땀을 흘려도 먹기가 힘들 정도의 악한 환경이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들은 내 생명과 다른 사람의 생명을 소홀히 하거나 헤치는 것은 크나큰 죄악이다. 그리고 사람의 생명뿐만 아니라, 삶도 역시 복된 것이다.
아무리 고달픈 삶이라고 하더라도 삶이란 복된 것이다. 삶에 고통은 죄로 인하여 생겨난 결과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항상 감사함으로 활기찬 삶을 살아야 한다. "아이고,""죽겠다."."못살겠다.".이런 입버릇은 불신을 가져오고 종래는 그렇게 되고 만다..사람은 절대로 생명을 책임질 수 없다...태안 안면도 사설 해병대 캠프에서 몇 가지 교훈이 있다..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해도 수영 못 하는 교관은 도움이 되지 못하였고..수영도 못하는 교관이 학생들을 깊은 바다에 몰아넣었다..이 시점에 교장을 식당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이런 지도자가 되지 말자는 것이다..(마15:14)"-그냥 두어라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시146:3)“-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