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하늘에 울려 퍼지는 소리
진연숙
파리의 도심 한복판에 광장에 서 있다.
잔디 위에 서서 아들을 바라보고 있다. 넓은 챙이 달린 짙은 밤색 모자를 쓰고 베이지색 바바리코트를 입고 있다. 코트 안에는 버버리 체크 스카프를 목에 둘둘 말아 감고 청바지에 발목까지 올라오는 검정 부츠를 신고 있다. 검은 미니 가죽 가방을 옆으로 메고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있다. 옅은 미소를 띠고 지긋한 눈길로 아들이 찍어 주는 카메라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짙푸르게 깔린 잔디가 배경을 두른 듯 나의 모습이 선명하다. 내 책상 한쪽에 있는 사진 뭉치 중에 가장 위에 있는 한 장의 사진이다. 지금 그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다.
몇 년 전 한때 유행처럼 퍼진 여행이 있었다. 엄마와 아들 모자간이 함께하는 유럽여행이다. 우리 모자도 유행에 자연스럽게 동조하게 되었다. 평소에 아들과는 딸처럼 친근하게 지내는 사이라서 아들이 파리 여행을 함께 가자고 청해왔을 때 흔쾌히 승낙했다. 파리 여행이라서 좋았지만 아들과 9박 10일 동안 함께 한다는 자체가 더 좋았고 기대가 되었다.
아들이 사는 서울 집에서 이른 새벽에 여행 가방을 끌고 조용한 골목길을 나섰다. 담이 사람 키보다도 높은 집들 사이로 모자가 끄는 바퀴 소리가 돌돌돌돌 툴툴툴툴 소리 없는 골목에 울림이 되에 꽉 채운다. 그 소리가 골목을 울리고 강남역에 울려 퍼진다. 미지로 떠나는 여행에 설렘과 긴장감이 내 마음에 실려 더 크게 내 마음까지 울린다. 길고 지루하고 힘든 하늘 위 비행기속에서의 여행길도 아들과 함께 먹고 자고 먹고 하니 그저 행복하다.
공항버스를 타고 파리 시내로 들어오니 그 유명한 파리의 에펠탑 꼭대기가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 모자는 반가움에 환호성이 저절로 나왔다. 난생처음 보는 에펠탑을 보니 아들도 카메라 셔터를 연신 누르고 나도 휴대폰에 담기에 정신이 없었다. 첫 느낌은 웅장하고 거대한 반가운 만남이었다. 에펠탑 근처에 호텔이 있어 순조롭게 찾고 카운터에서 체크인하는 아들의 뒷모습이 대견스럽고 멋지다. 그 모습도 자연스럽게 사진 한 장 또 찰칵 찍었다.
에펠탑 아래에 서서 고개를 한껏 젖히고 올려다보았다. 바로 옆 세느강 다리 옆에 미니 회전목마가 돌아가는 동화 같은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맞은편 언덕 샤요 궁에서는 에펠탑이 온전히 다 보이는 사진 명당이라 아들과 마주 보며 웃는 모습을 에펠탑을 배경으로 연출해 보았다. 우리 옆에서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신랑을 바라보는 신부가 보인다. 서로 마주 보며 연신 미소 짓고 포옹하며 웨딩 촬영을 하는 신혼부부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여행 둘째 날에 개선문에서는 커다란 데모가 있었다. 정사각형 벽돌들이 바닥에 난무하고 지하철이 폐쇄되어 셔터가 내려져 있다. 계단 군데군데에 누군가의 핏자국들이 보여 섬뜩하기도 했다. 프랑스 국민들은 먹고 살기 위해 투쟁을 하는 이곳에 우리는 이방인이고 구경꾼이었다. 관광객들은 그 와중에도 개선문이 잘 보이는 도로에 서서 위태하게 인생샷 한 컷을 찍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생사고락이 공존하는 이 순간이 씁쓸하다. 샹젤리제 거리를 걷다 보니 명품거리답다. 그 거리에 신문 가판대가 불에 타 새까맣게 재가 된 흉물스러운 곳 앞에 루비이통 매장이 있다. 개점 소리를 알리며 열려진 문으로 관광객들이 꾸역꾸역 들어가는 모습은 삶의 다양성일까?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겠구나 싶다.
뚜벅뚜벅 거리를 걷다가 예쁜 소품 가게도 기웃거리고 또 걷는다. 마카롱이 무지개처럼 색색이 진열된 맛집에 들어가 입에서 살살 녹는 마카롱도 먹어본다. 피곤이 몰려올 즈음에 구수한 커피 향기가 폴폴 풍겨 나오는 예쁜 카페 야외 테이블에 앉았다. 맑은 하늘색 테이블에서 커피를 주문했다. 마침 카페 안에서 울려 퍼지는 노래가락은 내가 좋아하는 아바의 아이두 아이두 노래이다. 손뼉을 치며 좋아하고 어깨를 흔들거리며 함께 흥얼대는 엄마를 재미있다는 듯이 아들이 웃으며 바라본다.
시간이 흘러도 급할 것이 없이 느긋하게 앉아 쉬고 싶은 만큼 파리의 길거리에서 쉴 수 있다. 정말 여행이 이 맛이다. 이 순간을 나와 아들만의 온전한 행복한 시간으로 즐기었다. 지나가는 파리지앵의 멋진 패션도 구경하며 느긋이 앉아 차를 마신다. 운동복 차림을 한 동네 주민인 듯한 중년 여인이 카페에 들어와 카운터 테이블에 선체로 맥주 한잔을 주문해 마시고는 쿨하게 인사를 하고 나간다. 그 모습이 생소하면서도 재미있다. 달달한 커피와 아바 노래로 에너지를 충전하고 다시 아들의 팔짱을 끼고 느릿느릿 길을 나섰다. 도심 뒷골목 길에 벽돌집 벽에 기대어 사진을 찍으면 모델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멋지게 사진이 찍힌다. 낯선 도시의 낯선 파란 아치형 나무 대문과 그 옆에 무심히 놓은 것 같은 자연스러움도 멋스럽다. 그 옆에서 모델처럼 포즈를 취해본다. 일류 모델이 부럽지 않다. 이 순간만은. 골목 끝에 꽃집 고무통 속에 꽂혀있는 알록달록한 이름 모를 꽃들도 자주색 햇빛가리개 조차도 멋스럽다.
파리 시내의 유명한 로얄 광장인 보주 광장에 들어섰다. 파리 주민들이 좋아하는 유명한다는 사층 건물로 커다랗게 성처럼 이어진 아파트가 고급지고 멋스럽다. 커다랗고 기다란 창문이 집집마다 칸칸이 빨간 벽돌 사이로 얼굴처럼 있고, 지붕도 파란색으로 아주 넓고 커다랗다. 그 지붕에 네모 창문들은 오히려 작게 보이고 귀엽기까지 하다. 아파트에 둘러싸인 마당에는 아늑하고 조그마한 광장이 있다. 진한 초록색 잔디가 네모반듯하게 군데군데 깔려있고 광장 입구 쪽에는 둥그런 반원형의 분수대가 있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물은 나오지 않는 빈 분수대이다. 물이 퐁퐁 흘러나올 때는 더 생동감이 있고 좋았을 것 같다. 그 옆으로는 길게 직사각형으로 땅을 파고 모래로 채워진 놀이터가 있다. 때마침 서너 살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앉아서 모래를 가지고 놀고 있었다. 그 옆 벤치에서 엄마인 듯한 여인이 사랑스럽게 아이를 내려다보고 앉아 있다. 그들도 모자 지간인 듯하다. 그들 맞은편에는 무척 커다란 나무들이 예닐곱 그루가 서있다. 그 나무들 안에 루이 13세의 기마상이 호위를 받듯이 서 있다. 저녁노을이 지면서 어스름하게 어둠이 오기 시작한다. 그때 어디선가 중년 남자들이 하나, 둘씩 루이 동상 앞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많은 사람이 모여 군중을 이루었다. 어느 순간 찬송가를 부르는 것처럼 음악 소리가 들렸다.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 건지 기도문을 외우는 건지 노래하듯이 읊조린다.
굵은 저음의 음성들이 모여 땅이 진동하듯이 울린다. 땅바닥에서부터 울리는 노랫소리가 점점 땅 위로 올라오며 회오리처럼 둥글둥글 돌고 돈다. 조그만 공원을 한 두 바퀴 돌아 하늘로 올라가며 파리 시내를 꽉 채우는 것 같은 울림이고 공명이었다. 나의 몸속으로도 그 노래가 들어와 흔들고 마음을 진동시키고 머리 위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든다. 어느 큰 음악회 콘서트보다도 아름다운 음악이고 울림이고 그들의 모습이다. 나의 마음속에서 지금, 이 순간 받아들이는 진동과 공명은 서울 하늘에서 출발할 때 기대와 설렘으로 울리던 그때의 울림과 흡사하다.
너무 생소한 노래소리와 경건함이 보주 광장의 조그만 광장을 꽉 메운다. 그 소리는 광장이 넘쳐 파리의 하늘 위로 날아 올라간다. 너무 웅장하고 낯선 풍경이다. 너무 생소하고 감동적인 광경이라서 좀 더 가까이 가서 듣고 구경하려고 어슬렁어슬렁 그들이 있는 곳 근처로 갔다.
“뭐를 하는 건가?”
궁금해서 아들에게 묻고 있는데 그들 무리에 있던 한 남자가 손에 종이를 들고 우리들 쪽으로 걸어왔다.
“어디서 오셨나요? “
”한국에서 왔어요. “
”반갑습니다. 나도 한국 인사동에서 3년을 살고 왔습니다. “
먼 타국에서 한국말을 하는 현지인을 만나니 무척 반갑고 신기했다. 웃으며 서로 인사를 하고 무슨 행사를 하느냐고 물으니 저녁 기도 종교 의식을 하는 중이라고 설명해줬다. 노래소리의 울림이 너무 좋고 멋지다고 이야기를 하니 감사하다고 인사를 꾸벅한다. 모자의 행복한 여행이 되기를 바란다며 군중 속으로 그가 되돌아갔다. 우리도 감동의 울림이 가득한 공원을 떠나왔다.
아들과 파리 여행을 끝내고 난 후에도 가끔은 음악을 들으며 찍었던 그때의 사진을 본다. 문득 문득 보주 광장에서 그들의 울림이 생각난다. 소리의 울림이 그들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경건함이 모여서 아름다운 화음이 되고 광장에 울려 퍼지던 그 경험이. 길을 걷다가 하늘을 한 번씩 쳐다볼 때면 그날의 허공에 울리는 진동과 공명이 귓가에 울린다. 어쩌면 아들과 함께한 시간들이 행복한 내면의 울림과 겹쳐지는 감동이어서, 순간순간 느껴지고 기억되는 것은 아닐까?
오늘 밤에는 꿈에서라도 다시 그곳에 가서 아들의 손을 잡고 그들의 울림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