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12시 이후에는 진도 지역에 비가 갤 것이라는 예보를 믿고 오전 9시 우리 일행 8명(김영부 김재일 김종국 나종만 양수랑 윤상윤 정재남 최문수 등)은 광주를 출발하였다. 출발과 동시에 비가 조금씩 뿌렸다. 나주를 지나고 있는데 소나기가 쏟아졌다. 그러나 그 이후로 우리는 하루 종일 거의 비를 맞지 않았다.
목포대교를 지나 목적지인 진도 팽목항 주차장에 도착한 것은 11시 반이 조금 넘었다. 현지 경찰의 안내로 주차장에서 걸어서 1km쯤 들어갔더니 세월호 구조를 지원하는 봉사자들이 기거하는 하얀 텐트촌이 있었다. 자원 봉사자들은 의료지원, 종교지원, 방송지원 등을 하고 있었고, 우리 생활에 필요한 모든 분야에 걸쳐 20~30개의 텐트 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유족들의 요구로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유족들은 여기에서 보이지 않았다. 유족들은 여기서 많이 떨어진 진도읍의 진도고등학교 체육관에 기숙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침몰 현장도 여기(팽목항)에서 30여 km 떨어진 바다이기 때문에 어떤 구조 활동을 하고 있는 지 전혀 확인할 수 없었다. 거기 까지 가려면 1시간 반 이상을 배를 타고 가야 한다고 하였다.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지는 가운데 일본 NHK에서 파견된 방송단과 여자 리포터가 현장 취재 방송을 하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12시쯤 월전에게 경기 지역에 살고 있는 막내 자부로부터 헬기 사고 소식이 날아왔다. 나중에 자세한 내용을 방송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들도 어제 여기에서 구조 활동을 마치고 강원도로 복귀하다가 광주 광산구 장덕동에서 사고를 당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왠지 그들의 유족들에게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방파제에 붙여진 위로의 글들을 살펴보면서 삼정은 눈물을 애써 참았다고 토로하였다. 나는 일부러 내용은 읽지 않고 사진만 찍었다. 내가 만일 그 내용들을 자세히 읽으면 그냥 눈물을 쏟아내기 때문이었다. 우리 일행은 방파제를 걸으며 세월호 희생자들의 극락왕생(명복)을 빌었다. 그리고 그 유족들에게도 슬픔과 고통에서 하루 속히 벗어나기를 빌며 바다 멀리 하늘 멀리 간절한 소망을 바람에 띄워 보냈다. 그리고 세월호 특별법도 유족들이 원하는 바로 성사되기를 빌면서 방파제를 걸어 나왔다.
구조 지원 활동 지역을 벗어나 이웃에 붙어 있는, 우리나라 꽃게의 최대 집산지인 서망항 어판장으로 갔더니 꽃게 철이 아니라면서 냉동 꽃게가 조금 있다고 하여 삼정과 인광이 2~3kg씩을 샀다.
작년에 점심을 먹었던 꽃게탕 전문점인 ‘용성식당’으로 갔다. 철이 아니라 꽃게탕은 먹을 수 없었고 대신 장어탕을 시켜 먹었다. 탕국 맛이 내 고향 득량 ‘청해횟집’의 장어탕 맛 보다는 조금 못하였지만 그래도 다른 식당에 비해서는 월등한 맛이라 할 수 있었다.
이제 배도 부르고 알콜 기운도 몸에 배어 홀가분한 마음으로 임회면을 벗어나 의신면을 거쳐 고군면 회동리에 있는 ‘뽕할머니 석상’이 있는 곳으로 갔다. 봄철에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면 수많은 관광객들이 세계 각지에서 몰려오는 곳이다. 뽕할머니의 전설을 곱씹으며 우리가 잠시 쉬고 있는 동안 山海는 옷을 벗고 맨몸으로 바다로 뛰어 들었다. 아주 잠시 바다에 몸을 담그고 철버덕거리며 바닷물을 몸에 끼얹고 번개같이 해수욕을 한 것이다.
벌써 오후 4시 반이었다. 그 길로 2시간을 잽싸게 달려 6시 반에 광주에 도착하였다. 요즘 들어 가장 늦게 집으로 돌아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