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앤 롤링을 꿈꾸는 소녀
평범한 회사원 아빠와 전업주부인 엄마 밑에서 마냥 즐겁게 지내던 지원이에게 큰 변화가 생긴 것은 영국으로의 출국이었다. 학업 때문에 영국에 가야 하는 아빠를 따라 함께 가게 됐는데, 당시 지원이는 알파벳 하나도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영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우울한 시간을 오래 보냈다. 엄마 최명진 씨의 얘기다.
"1년이 넘도록 지원이가 영어로 말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죠. 늦게 신청한 탓에 소말리아 난민이 다니는 유치원에 다니게 됐는데, 그때 선생님의 질문에 'Yes. boy'라고 대답할 정도였어요. 그 당시에 지원이가 아는 단어는 그것뿐이었거든요."
쇼핑도, 여행도 싫어하던 지원이가 유일하게 행복을 느끼는 시간은 책을 볼 때였다. 주말이면 부모님을 졸라 동네 도서관에 가곤 했다. 비록 영어 단어의 뜻은 잘 몰랐지만 그림과 함께 있는 영어그림책을 읽는 그 시간이 지원이는 무척 좋았다. 가장 좋아하는 책은 '해리포터'. 지원이는 "고아 소년인 해리포터라는 주인공이 마법학교에 입학해 마법 세계의 영웅이 되기까지의 모험과 환상을 그린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어느새 나도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처럼 판타지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런던 근교 써리 지역의 클리브스 주니어스쿨에 입학하면서 지원이는 조금씩 달라졌다. 평소 말하는 것보다 읽는 것을 좋아했던 지원이가 점차 글의 매력에 빠져 조금씩 글을 쓰기 시작했던 것. 3학년 어느 날, 지원이는 '동물의 세계'라는 과목 시간에 동화를 보다 문득 동물이 주인공인 동화를 쓰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아기 사자 세 마리가 등장하는 이야기였는데, 이야기 도중 갑자기 행복한 결말로 급하게 끝나는 것이었어요. 꼭 동화는 꼭 해피엔딩이어야 하나 의문이 들었죠. 마지막에 사자들이 함정에 빠지는 것으로 제 나름대로 결론을 바꾸자 더 재미있었어요."
◇자신만의 언어로 이야기를 만들어보세요
본격적으로 지원이의 재능이 발휘된 것은 4학년 작문 시간이었다. 주어진 단어로 글을 완성하는 것이었는데 처음에는 완성하는 것조차 어려웠지만, 평소 꿈꾸던 동화를 쓰면서 즐거움을 느끼게 됐다.
작문 숙제 외에 지원이는 자신만의 공부법으로 영어를 익혀갔다. 먼저 자신만의 언어를 만드는 방법이다. 지원이는 책을 읽고 나면 그 내용을 바탕으로 새로운 조합을 만든다. 예를 들어 'How to train your dragon(드래곤 길들이기)'을 읽고 나서는 용의 언어를 영어로 만드는 것이다. 그의 동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로리(rorry)는 rabbit의 r과 carrot의 rr을 합쳐서 지은 이름이다.
책을 읽다가 인상깊은 구절이나 재미있는 표현이 나오면 꼭 기억해뒀다가 다음에 글을 쓸 때 활용했다. 공룡이 주인공인 아스트로사우루스(Astrosaurs)라는 책에서 공룡들의 커다란 몸을 보고 놀란 주인공의 대사를 기억한 다음, 자신의 동화에 'Eyeballs would pop out!(너무 놀라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군)'이라고 활용하는 식이다.
"한국에 있는 친구 중 영어 글짓기에 어려움을 느낀다면 꼭 '작문 숙제를 동화로 만드는 방법'을 활용해보세요. 단어 몇 개를 놓고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것이지요. 동음이의어나 의성어, 의태어도 좋아요. 저는 동화를 쓰고 싶다는 생각에 로리(장난꾸리기 열 살 토끼 소년)와 도리(공부 잘하는 모범생 토끼 소녀)를 주인공으로 이야기를 만들었어요. 계속 쓰다 보면 어느새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샘솟는다니까요."
['작문 숙제를 동화로' 배지원식 예문 살펴보기]
Actually, sleepily, likely가 주어졌을 때, 지원이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만들었다.
At last, “it’s half-term.” sighed Rorry.(“드디어 방학이다.” 로리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Actually, it’s not because it’s Thursday today and, remember, tomorrow is ‘No Rotten Carrots Award’ Day.” said Dorry sleepily. “Oh, and I haven’t got any rotten carrots, so I‘m likely to get a No Rotten Carrots Award.”(“아직은 아니지, 오늘은 목요일이고 내일이 모범상 시상식이 있는 날이거든.” 도리가 잠에 취해서 대꾸했습니다. “난 지금까지 꾸중을 듣거나 벌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으니까 아마 상을 받을 수 있을 거야.”)
※No Rotten Carrots Award: 직역으로는 ‘썩은 당근이 없어서 주는 상’이라는 뜻이지만, 지원이는 토끼인 로리가 주인공인 동화에서 ‘모범상’의 의미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