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또 다른 저자의 -니콜라 테슬라 전기 기본테마 | 2004-10-03 여기에 여러분들이 풀어볼 과제가 있다.
백과사전에서 다음의 질문들을 찾아보기 바란다: (답은 괄호안에 적었다.)
1) 라디오를 발명한 사람은? (마르코니)
2) X-Ray를 발명한 사람은? (뢴트겐)
3) 진공관 앰프를 발명한 사람은? (드 포레스트)
사실 당신이 이것들을 확인하는 동안 형광등, 네온사인, 스피드메타, 자동차 점화시스템 그리고 레이다의 기초, 전자현미경, 전자렌지를 누가 발명했었는지 체크해보라. 아마 당신은 세기가 바뀌는 시점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했던 과학자인 니콜라 테슬라라는 이름에 대해 거의 언급이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사실 오늘날 소수의 사람들은 그에 대해 전혀 들어보질 못했다. 에디슨이 그것을 확실하게 만들었다.
결국 테슬라는 250마일 떨어져 있는 1만대의 비행기를 파괴시킬 수 있는 '죽음의 광선'(death ray)을 이야기하고 지구를 둘로 쪼갤 수 있다고 주장하며 1800년 후반에 목소리와 이미지를 공기를 통해 전송할 수 있다고 믿었고 에디슨에게 DC시스템을 가지고 잘 발전시켜보라고 이야기했던 별난사람으로 여겨졌다.
다시 말해서 테슬라를 들어본 사람들은 그를 별나고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변하고 있다.
문제는 테슬라가 아마도 그가 가능하다고 주장했던 이 모든 일들을 할 수 있었다라는 것이다. 사실, 테슬라는 위에 언급된 항목의 모든 것들을 발명했지만 어떠한 인정도 받지 못했다. 주변을 둘러보면 오늘날 우리의 삶을 매우 현대적이게 하는 대부분의 물건에 대해서는 어찌되었든 테슬라가 원인을 제공한 것일 것이다.
의심할 바 없이 니콜라 테슬라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래로 가장 위대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 이 천재는 누구인가?
어린 니키 테슬라는 1856년 크로아티아(Croatia)의 스미즈란(Smijlan)에서 태어났다. 그는 놀랄만한 기억력을 가졌으며 6개 국어를 말할 수 있었다. 그는 그라츠(Gratz)에 위치한 폴리테크닉 공대(Polytechnic Institute)에서 수학, 물리학, 기계공학을 공부하며 4년을 보냈다.
그러나 테슬라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전기에 대한 그의 놀라운 이해력이었다. 그때는 전기라는 것이 매우 초보적인 단계였던 것을 기억하자. 전구도 발명되지 않았던 때였다.
1884년 테슬라가 미국으로 처음 건너갔을 때, 토마스 에디슨을 위해 일했다. 에디슨은 전구에 대한 특허를 받은 후 전기를 보내는 장치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에디슨은 그의 DC전기시스템에 대해 여러종류의 문제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테슬라에게 그 시스템에서 문제점을 해결한다면 많은 보너스를 주기로 약속했다. 테슬라는 에디슨이 십만불(요즘 시세로 백만불)이상을 절감할 수 있도록 일을 마쳤지만 에디슨은 그의 결과에 합당한 지불을 거부했다.
테슬라는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에디슨은 그의 여생을 테슬라의 재능을 짓누르는데 바쳤다. 바로 이점이 테슬라가 오늘날 알려지지 않게 되었던 주된 이유가 된다.
테슬라는 전기 전달을 위해 더 좋은 시스템을 고안했다 - 우리가 오늘날 집에서 사용하는 AC(교류)시스템이 그것이다. AC는 DC시스템에 비해 커다란 이점을 제공했다. 테슬라는 자신이 새롭게 개발한 트랜스포머들을 사용함으로서 AC 전압을 승압시킬 수 있었고, 얇은 와이어를 통해 먼거리까지 전송할 수 있었다. 매우 굵은 케이블을 통해 전송되는 동안 평방마일마다 큰 발전소가 요구되는 DC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전송시스템은 그것으로 작동되는 장치가 없다면 미완성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오늘날 일반 가정집의 모든 가전제품들에 쓰이고 있는 모터들을 발명했다. 이것은 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1800년대 후반의 과학자들은 교류 전류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는 모터를 발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확신하여 AC의 사용은 시간낭비라고 여기고 있었다. 결국 만일 초당 60회 전류의 방향이 바뀐다면 모터는 앞뒤로 잠겨버리고 아무런 동작도 얻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테슬라는 이 문제를 쉽게 풀었으며 모든 이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는 이미 산업계에서 형광등이 발명되기 40여 년 전에 그의 실험실에서 형광등을 사용했다. 테슬라는 세계최초의 나이아가라 폭포에 위치한 수력발전소를 설계했고 그는 또한 자동차의 스피드메터에 관한 특허를 최초로 얻었다.
5000마력의 AC발전기 10대가 설치된 나이아가라 폭포 발전소 내부
AC시스템이라는 단어는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결국 죠지 웨스팅하우스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된다.
테슬라는 웨스팅하우스와 AC 1킬로와트당 2.5달러를 받는 조건의 계약서에 서명하였다.
이로인해, 테슬라는 그가 꿈꾸어왔던 모든 실험들을 시작할 수 있는 자금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에디슨은 이미 자신의 DC시스템에 많은 돈을 투자했기 때문에 테슬라의 평판을 나쁘게 만들기 위해 그의 모든 것을 바쳤다. 에디슨은 지속적으로 자신의 DC전력보다 AC전기가 위험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의도적으로 사형집행에 사용하는 전기의자를 AC로 작동시키게 만들기도 하였다. (ㅇㅈㄹ)
테슬라는 그러한 계획을 스스로의 마켓팅 홍보 무대에서 무력화 시켰다. 1893년 시카고에서 개최된 참가인원이 2천 1백만명에 이르렀던 세계전시회에서 그는 고주파 AC전력이 그의 몸을 통과하여 전구가 켜지는 것을 보임으로서 AC전기가 얼마나 안전한가를 시연했다. 그 다음에 그는 그의 테슬라코일에서 관중들에게 아무런 해가 없이 커다란 방전번개를 발사했다. 멋진 트릭이었다.
테슬라에게 지불해야할 로열티가 백만불에 다다르기 시작했을 때, 웨스팅하우스는 자금적인 문제에 빠져들게 되었다. 테슬라는 만일 그의 계약서가 계속 유효한 상태로 있게 된다면 웨스팅하우스는 도산하게 되고 그가 채권자들을 다루는데 아무런 희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꿈은 모든 사람들이 값싸게 AC전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테슬라는 계약서를 찢어버렸다. 그는 세계최초의 백만장자가 되는 대신에 자신의 특허권들을 216,600달러에 웨스팅하우스에게 양도하게 된다.
1898년에 그는 메디슨 스퀘어가든에서 세계최초의 무선조종 모형보트를 시연했다.
테슬라의 잠수함 타입 무선조종 보트
테슬라는 전세계에 프리에너지를 제공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1900년에 자본가 J. P. Morgan으로부터 15만불의 후원을 받았던 테슬라는 뉴욕의 롱아일랜드에 그가 "Wireless Broadcasting System"라고 부르는 타워를 짓기 시작했다. 이 방송타워는 전화, 전신 서비스 및 화상전송, 주식정보, 날씨정보등을 전세계적으로 연결시킬 계획이었다. 불행하게도 모건은 그것이 전세계에 대한 프리에너지를 뜻한다는 것을 깨닫고 자금을 끊어버리게 된다.
많은 이야기들은 그 타워가 독일의 유보트의 항로를 잡는데 사용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느낀 미국정부가 세계 1차대전당시 그 타워를 파괴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테슬라는 그 프로젝트에 대한 모건의 자금이 끊긴 후로 재정적인 어려움에 빠지게 되었고 그 타워는 채권자들에게 고철로 팔리게 되었다.
1904년에 완성된 테슬라 타워
세상은 그를 바보로 여겼다. 아무튼 이 당시에는 목소리, 화상, 전기의 전송에 대해서 귀담아 들어주질 않았다.
그들이 몰랐던 것은 마르코니의 발명이 알려지기 거의 십 년 전에 라디오의 원리를 이미 시연했었다는 것이다. 사실 테슬라가 사망한 1943년에 대법원은 마르코니의 특허가 테슬라의 이전의 기술 때문에 무효라는 판정을 내렸다. 아직까지도 거의 모든 문헌들은 테슬라가 라디오를 발명한 것에 대해 인정하질 않고 있다.
이점에 있어서 언론계는 테슬라의 주장들을 과장하기 시작했다.
테슬라는 화성과 금성으로부터 라디오 신호를 수신했었다고 기록했다. 오늘날 우리는 그가 실제로 머나먼 별들로부터 신호를 받았었다는 것을 알지만 그 당시에는 우주에 대해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알고 있었다. 그 대신에 언론계는 그의 엉뚱한 주장들이라고 지면을 할애하고 있었다.
그의 맨하턴 실험실에서 테슬라는 지구를 전기튜닝포크로 만들었다. 그는 그가 위치한 바로 아래의 땅과 같은 주파수로 진동시기키 위해 증기로 작동되는 진동장치를 작동시켰다.
결과는? 도시의 모든 주변에 지진이 발생했다. 빌딩들은 흔들렸고 창문이 부서지고 벽에서 회반죽들이 떨어졌다.
테슬라는 이론에 따르면 같은 원리로 엠파이어 스테이트빌딩을 파괴하거나 지구를 둘로 나누는데 사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테슬라는 과학적으로 그의 결과들을 확인할 수 있게 되기 60여 년 전에 지구의 공진주파수를 정확하게 알아냈었던 것이다.
그가 공개적으로 지구를 둘로 나누는 것과 같은 종류의 실험들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1899년 그의 콜로라도 스프링스의 연구실에서 그는 에너지 파동을 지구의 모든 방향으로 보냈고 그 파동들은 원점으로 다시 되돌아오게 되었다. 이것은 오늘날 지진의 진원지를 정확하게 알아내는 것에 관한 이론을 제공하였다. 파동들이 되돌아올 때, 그는 거기에 전기를 추가했다.
1899년 7월 30일 촬영한 테슬라의 콜로라도 스프링스 연구실사진
결과는? 인간이 만든 인공번개 중에 기록된 적이 없는 130 피트(약 40 미터)의 인공번개를 만들어내었으며 아직까지 그 기록은 깨어지지 않고 있다.
그와 동반된 천둥소리는 22 마일 밖에서도 들을 수 있었으며 그의 연구실 주위의 모든 초원은 이상한 푸른 발광현상을 나타내었고 그것은 St. Elmo's Fire와 유사했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그의 실제 실험에 대한 워밍업에 지나지 않았다. 불행하게도 그는 지역 발전소의 장비를 파괴시켰고 그는 그 실험을 다시는 행할 수 없게 되었다.
세계 1차 대전 초기에 미국정부는 필사적으로 독일잠수함의 항로를 찾아내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었다. 정부는 적당한 방법을 찾는 일에 토마스에디슨이 일하도록 하였다. 테슬라는 이 배들을 찾기 위해 에너지 파동을 사용하는 것을 제안하였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레이다에 해당된다. 에디슨은 테슬라의 아이디어를 웃기는 일이라 치부하고 거절하였으며 인류는 그것이 발명되기 까지 25년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그의 독창성을 가진 창조적인 일생에 대한 보답은? 테슬라만 빼고 모두에게 주어진 '에디슨 메달'이다.!! 테슬라가 에디슨으로부터 받았던 모든 언어적 모욕 후에 우리가 그를 공공연하게 비판하는 것이었다.
이야기들은 계속된다.
과학문헌들로부터 그를 지워내기 위한 산업계의 노력이 거의 20년 동안에 걸쳐 추진되었었다. 자본이 부족하게 되면서 그는 실험이 행해지지 못한 이론들을 셀 수도 없이 많은 노트에 단지 기록하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오늘날과 같은 현대적인 세상을 만든 그는 1943년 1월 7일 무일푼으로 86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장례식장에는 2천 여 명 이상의 조문객들이 참석하였다.
뉴요커호텔에서 테슬라의 사망을 기리기 위해 제작한 명판
테슬라는 그의 일생동안 800개 이상의 여러 특허권을 받았다. 그가 파산하지 않았다면 에디슨의 기록을 능가했었을 것이다. 그는 그의 인생의 마지막 30년 동안 매우 적은 특허출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에디슨과는 달리 테슬라는 대체로 과학에서 선례가 없는 아이디어들을 가지고 있었던 독창적인 사상가였다. 불행하게도 세상은 테슬라의 독창성에 금전적인 보답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단지 테슬라가 알려준 개념들을 정제하여 유용한 생산품들을 만든다는 것을 인정할 뿐이다.
과학자들은 오늘도 계속해서 그의 노트를 철저하게 조사하고 있다. 너무도 앞서있는 그의 이론들은 이제서야 최고수준의 과학자들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 예를 들어, 그가 설계한 날개 없는 디스크 터빈엔진은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재질들로 제작될 때 지금껏 설계되었던 가장 효율이 좋은 모터에 속한다고 증명되어지고 있다. 그가 1901년 특허를 얻은 극저온 액체와 전기를 사용한 실험들은 현재의 초전도체에 대한 기초를 제공한다. 그는 전자의 부분 전하를 갖는 입자를 제안하게 되었던 실험에 관해 이야기 했다. 그것은 1977년에야 비로소 과학자들이 발견하게된 것으로서 바로 쿼크(quarks)를 뜻한다.
와우~!
아마도 그것이 제대로 이해될 때 역사는 진정한 천재를 인정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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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