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여행18 - 신주쿠에서 전철로 하라주쿠에 내려 다케시타 도리를 구경하다!
11월 7일 야마노테센 으로 후루카와 정원과 리쿠기엔에 도쿄대학교와 고이시카와 고라쿠엔 에 메이지
진구 가이엔을 거쳐 신주쿠역에 내려 남쪽 출구로 나와 신주쿠 교엔 (新宿御園) 을 구경합니다.
신주쿠역 동문으로 나와 야마노테센 전철이 다니는 철로 아래에 자리한 오모이데 요코초 (思い出横丁) 에서
꼬치구이 를 먹고는 나와서 네거리에서 가부키초 거리 를 구경하고는 다시 신주쿠역으로 돌아옵니다.
야마노테센 전철을 타고는 도쿄역 쪽으로 오다가 시부야 한정거장 전인 하라주쿠역 (原宿駅) 에 내리는데,
1924년에 건설된 도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역사인 JR 하라주쿠역 다케시타 출구 에서 메이지도리
까지 이어지는 약 350 m에 달하는 작은 골목에 들어선 상점가가 이른바 다케시타 도리 (竹下通り) 입니다.
다케시타 도오리 (竹下通り) 는 낮에 한번 본 적 이 있지만 오늘 밤에 또 다시 찾은 것인데.... 하라주쿠역
부터 오모테산도역 주변에 타케시타도오리 와 오모테산도 힐즈, 메이지신궁이 있으며 타케시타
도오리는 우리 홍대거리 처럼 각종 개성적인 아이템으로 무장한 현지인들의 패션이 볼거리 인가 합니다.
하라주쿠 에는 로리타 패션등 개성적인 사람들 이 모이는 곳이니 하라주쿠의 첫 부티끄가 세워진 1967년
이후 카페와 옷가게 등이 생기기 시작해 1970년대에 유럽에서 수입해온 옷과 악세사리 등이 갖추어진
대형 숍들이 속속들이 생겨 유행의 중심지로 부상했으며.... 최근에는 한류의 영향으로 스타일난다
(3CE) 와 에뛰드 하우스 등의 한국 화장품 전문점들과 치즈 핫도그 가게들도 생겨나는 추세라고 합니다.
80년대에는 아이돌 굿즈샵 이 대유행했으나 쇠퇴하였으며 젊은이들이 모이는 만큼 옛부터 연예
소속사의 스카웃 메카 로 유명하니 하라주쿠 거리에서 스카웃된 연예인은 다케우치 유코,
나카야마 미호, 오카다 마사키, 요시타카 유리코, 미요시 아야카, 사토 타케루 등 이라고 합니다.
하라주쿠에서 시부야역까지 도보로 갈수 있으며 한국 빙수 체인 설빙의 일본 1호점이 있었으니 여름뿐만
아니라 가을에도 대기열이 길게 생길 정도로 인기 있었지만, 2020년 1월 31일, 영업이익과 관계
없는 운영 모체의 사정으로 갑자기 폐점했으며.... 니코니코동화의 12번째 버전인 니코니코동화
(하라주쿠)도 이곳에서 유래되었다는데 저 니코니코 본사는 이곳에 있다가 이케부쿠로로 갔다고 합니다.
가수 그웬 스테파니의 노래 중에 'Harajuku Girl' 이 있고 에픽하이의 앨범 넘버 중 'Harajuku Days' 가 있으며
가수 캬리 파뮤파뮤의 노래중 'Harajuku(原宿) Iyahoi' 가 있는데.... 한일합작 여아용 아이돌 애니메이션인
프리파라의 주 배경인 파라주쿠 는 하라주쿠를 모델로 한 마을이며, 이름의 유래는 프리파라+ 하라주쿠 입니다.
명탐정 코난 애니메이션 575~576화(국내판 10기 26~27화) 검은 드레스의 알리바이의 배경이 여기이며
그외에 러브라이브 슈퍼스타, 비주얼 프리즌의 주 배경지도 하라주쿠이니 일본의 ‘ 가와이 kawaii’
문화를 체감하고 싶다면 하라주쿠에 다케시타도리 를 찾아야 하니.... 젊은 층들을 겨냥한 가게들이
밀집해 있는 다케시타 도리는 최첨단 패션이나 유행 아이템 을 찾으려는 사람들로 항상 활기가 넘칩니다.
특히 일본 젊은 여성을 포로로 만들어 버리는 저렴하고 예쁜 잡화나 패션 아이템 이 다양
하고 틴에이저의 성지 라고도 할수 있는 다케시타도리를 걷다 보면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최근 무엇이 유행 중인지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게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외국인 관광객들도 다케시타도리의 독특한 매력을 즐기기 위해 찾는다고 합니다.
다케시타 도리 (竹下通り) 에서 지나다니는 젊은이들을 구경하다 보니.... 문득 부산 문화유산연구회
이사장 권상인씨가 국제신보 인문학 칼럼에 올린 ‘짝사랑 평설’ 이라는 기사가 떠오르는데...
대중이 즐겨 부르는 노래는 작곡되기전, 먼저 노랫말인 가사가 시 구절처럼 마음을 적셔 어야 한다.
저 암울했던 1930년대에 우리 대중가요가 전통적 민요조의 노랫가락 형식에서 탈피해
획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1920년대 서구적 자유시(詩) 를 스승인 김억
시인에게 수업받은 김소월의 ‘진달래꽃’ 이란 시집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월의 시
구절들은 감각적이며 애상적, 혹은 사랑의 감정 이 순수한 우리말로 예쁘게 표현돼 있다.
이후 우리의 시가 전통적 시조 형식에서 탈피해 자유시 형식 으로 바뀌면서 대중가요 작사자들이 소월의
시를 모방 하기 시작했다. 대중가요 작사자들의 노랫말이 지어지고 있을 때, 문득 진주 출신 작곡가
손목인 (1913~99)의 등장은 우리 대중가요가 전성기를 맞이하는 지름길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30년 일본에 건너가 도쿄의 도쿄고등음악학교 에서 작곡 방법을 배우면서 관현악에 관해서도 공부했다.
특히 당시 일본에서 유행했던 미국 대중가요 재즈 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가수가 노래를
부를 때 목소리와 함께 몸동작을 곁들이게 되는 배경음악, 즉 밴드 구성의 중요함을
인식해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 등으로 구성된 스윙밴드의 구성 요소 에 관해서도 연구했다.
손목인은 여기 도쿄음악학교 재학 시절 경북 김천 출신 김능인이 작사한 ‘타향살이’ 란 가사에 곡을
붙여 히트했고, 그 이듬해 문일석이 작사한 ‘목포의 눈물’ 을 작곡해 이난영을 일류 가수 로
출세시켰는데, 이때 손목인의 나이 21세로 대학재학 중인 학부생 나이였으니 그야말로
천재적 작곡가였다. 또 그가 작곡한 고복수의 ‘짝사랑’ 은 1935년을 전후로 불리던
유행가 중 여가수 이난영의 엘레지 ‘목포의 눈물’ 과 쌍벽을 이루는 당시 남성 가수 노래였다.
짝사랑의 작사자 본명은 승응순이다. 예명이 김능인(金陵人)으로 김천 사람임을 자칭했으나 황해도
금천(金川), 혹은 강원도 홍천 출신이라는 설도 있다. 필자는 그가 자칭한 예명을 따라 경북
김천 사람으로 판단한다. 1930년대 매혹의 저음가수 고복수가 불러 지금은 우리의 가곡
으로 되어버린 ‘타향살이’ 와 ‘짝사랑’ 은 1910년 태어나 1937년 27세로 요절한 김능인의 가사이다.
지나간 세월 짝사랑하던 여인과 어쩔 수 없이 이별하고 수년을 홀로 살아 온 한 적막한 남자의 심상을
표현한 ‘시’ 이다. 노래 첫머리에 ‘아-아 으악 새 슬피우니' 라는 구절에서 한용운의 ‘님의 침묵’
에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고 한 감탄사가 짝사랑 가사에는 첫 소절에 배치되고
이어 ‘으악 새’ 가 뒤를 잇는다. 으악 새라는 고유명사는 조류인 새가 아니고 식물인 억새풀 이다.
이 풀은 주로 산기슭과 산 위의 벌판, 이를테면 영남알프스 천왕봉 밑 사자평에 10월경 꽃이 피면 장관을
이룬다. 짝사랑의 ‘으악 새’ 를 좀 주의 깊은 애청자들은 ‘어떻게 생긴 새일까?’ 라고 궁금해 한다.
필자도 중학교 시절 아버지의 애창곡이었던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으악 새의 형상이 매우 궁금했었다.
작사자가 본래는 억-새 라고 기록한 것인데 이 노래를 부른 가수 고복수는 경상도 사나이 였기 때문에
억새라는 발음이 되지 않아 으악 새로 발음한 것이다. 경상도 사람들이 ‘사랑하고 있어요’ 라는
발음이 잘되지 않아 ‘있어요’ 를 ‘있으요’ 로 발음하는 이치와 같다. 고복수가 ‘억새’ 라는
발음을 ‘으악 새’ 로 불렀기 때문에 이 풀의 이름이 새의 이름으로 졸지에 바뀌어 버린 것이다.
평안도 지역에서는 철새인 왜가리를 ‘으악 새’ 라 한다는 사전적 표기가 있기는 하지만 왜가리는 억새가
필 무렵인 소슬한 가을바람이 불어오기 전에 남쪽 나라로 이동한다. 때문에 평안도에서는 초가을
에 이미 자취를 감춘다. 본래 왜가리는 5~6월 여름철 번식기가 지나면 절대 울지 않는 조용한 새 이다.
짝사랑 2절 첫 구절의 ‘뜸북새’ 도 한여름 새끼를 길러 가을에는 왜가리보다 먼저 남쪽 나라로 떠나므로
왜가리와 뜸북새가 가을에 운다는 것은 어불성설 이다. 머나먼 고향과 옛사랑을 생각하게 하는
매혹의 저음 가수 고복수의 음색은 테너와 바리톤의 중간으로 첫 소절 부터 애절한 감정이
터져 나오므로 2절의 가사가 끝나도록 감상자의 가슴을 슬픔으로 꽉 채우는 마력 을 가지고 있다.
음악이란 모든 소리를 조화롭게 결합해 사상이나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이라 정의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대중들이 즐겨 부르는 이 고복수의 ‘짝사랑’ 은 이미 우리 민족의
명곡으로 선곡돼 100년 가까이 우리가 꾸준히 불러온 노래니 교과서에서 서양의 가곡들을 좀 빼고
명곡이된 ‘짝사랑’ ‘목포의 눈물’ ‘두만강’ 같은 우리 대중가요를 학교음악 시간에 가르치는 것은 아직은 이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