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무죄성은 그분께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않거나, 이 땅에 살면서 모세의 율법을 어기거나, 그분의 삶에서 어느 순간에서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는 어떤 일을 결코 하지 않았다(요 8:29)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인간성에 수반되는 죄가 없는 상태에서의 한계성을 그분이 경험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은 피곤하셨고(요 4:6), 배고프셨고(마 4:2; 21:18), 목마름을 경험하셨으며(요 19:28), 주무셨다(마 8:24). 그러나 유아기, 소년기, 청년기, 성년기의 삶의 모든 단계에서, 그분은 거룩하셨고 무죄하셨습니다.
II. 그리스도의 무죄성에 대한 증거
A. 증거
성서는 분명히 그리스도의 무죄성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거룩한 자라고 언급되었고(눅 1:35), 주님은 항상 성부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신다고 주장하셨습니다(요 8:29). 주님은 수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달리시는 과정 중에 11번이나 무죄한 분이라고 인정되었습니다(유다에 의해, 마 27:4; 빌라도에 의해 6번, 마 27:24; 눅 23:14,22; 요 18:38; 19:4,6; 헤롯 안티바스에 의해, 눅 23:15; 빌라도의 아내에 의해, 마 27:19; 회개한 강도에 의해, 눅 23:41; 그리고 로마 백부장에 의해, 마 27:54).
바울은 우리 주님에 대해 “그분은 죄를 알지도 못하셨다”고 말했고(고후 5:21), 베드로도 그리스도께서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다고 선언했습니다(벧전 2:22). 사도 요한도 그리스도에게는 죄가 없다고 주장했고(요일 3:5), 히브리서 기자도 여러 구절을 통해서 우리 주님의 무죄성을 증언했습니다(히 4:15; 히 7:26; 7:27). 이처럼 그리스도 자신의 증언과 신약성경 기자의 증언은 동일하게 그리스도는 죄가 없었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B. 논쟁
보수주의자들이 그리스도께서 죄가 없었다는 점에 있어서 일치된 의견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분이 죄를 지을 수 있었느냐, 아니면 없었느냐의 문제에 있어서는 일치된 의견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즉 그분이 죄를 짓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그분의 죄를 지을 수 있는지에 관해서는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그분이 죄를 지을 수 없다는 개념은 무오염성(無汚染性, impeccability, non posse peccare)이라고 불립니다. 그분의 죄를 지었는지 안 지었든지 상관없이 그분의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개념은 유오염성(有汚染性, peccability, posse non peccare)이라고 불립니다.
반면에 자유주의자들은 주님이 죄를 지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죄를 지었다고 생각합니다.
III. 그리스도의 무죄성에 관한 시험
A. 유오염성 및 무오염성
그리스도께서 죄에 오염될 수 있는지 혹은 없는지에 관한 논쟁은 그리스도의 유혹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유오염성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죄를 지을 수 없었다면 그분의 광야의 유혹은 사실적인 사건이 아니었고 또한 그분은 ‘참된 체휼하시는 대제사장(a truly sympathetic High Priest)’이 될 수 없다고 추론합니다.
하지(Hodge)는 다음과 같이 유오염성의 견해를 피력합니다. “유혹이란 죄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그리스도의 인격의 특성상 그분이 죄를 짓는 것이 불가능했다면, 그분의 유혹은 실제적인 것이 아니었고,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이었으며, 또한 그분은 그분의 백성들과 함께 체휼하시는 주님이 되실 수 없다”(Systematic Theology [Grand Rapids: Eerdmans, 1960], 2:457).
반대로 무오염성을 주장하는 쉐드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유오염성은 죄를 지을 수 없는 사람은 죄에 유혹될 수도 없다는 논리이다. 이런 논리는 바르지 않은 것이다. 그런 논리를 펼 바에야 차라리 어떤 군대가 정복될 수 없기 때문에 공격받을 수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 더 낫다. 무오염성(impeccability)은 의지(the will)에 좌우된다. 만약 주님의 거룩한 의지에 대한 자기 결단력이 그러한 유혹들보다 강하다면, 그 유혹들은 그분을 죄로 이끌 수 없었고, 그렇다면 그분은 죄에 오염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그분은 유혹받으실 수는 있었을 것이다”
B. 그리스도의 시험의 속성(The Nature of Christ's Testings)
주님의 시험이 실제적인 것이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한 시험들은 있었고, 그러므로 그 시험들은 명백히 실제적으로 벌어졌던 일들이었습니다. 사실상 그리스도께서 겪으셨던 특별한 시험들은 신인(a God-Man)에게는 적합한 시험이었습니다. 평범한 사람에게는 돌을 떡으로 만들어 보라는 유혹이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인(the God-Man)은 그렇게 하실 수 있었습니다.
주님에게 주어진 시험이 인간의 일반적 경험과는 동떨어진 시험이었을지라도, 그 시험이 대표하고 있는 각 시험의 영역들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것들이었다. 모든 죄악된 욕망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혹은 이러한 욕망들이 결합된 것, 요일 2:16) 중의 어느 것 하나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사단이 주님에게 놓았던 시험들은 그러한 세 가지 범주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마 4:1-11).
주님은 죄악된 육신의 모양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로 인해 시험받을 수 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주님의 인성과 우리의 인성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주님은 “죄로부터 구별된(apart from sin)” 분이었습니다. 그분은 어떤 죄성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한 번의 죄도 결코 범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이 그분의 인성이 ‘죄에 오염될 수 없다(impeccable)’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분의 인성이 죄를 결코 알지 못했을지라도, 그 인성은 ‘죄에 오염될 수 있는(peccable)’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신인의 인격(the person of the God-Man)’은 ‘죄에 오염될 수 없는(impeccable)’ 상태로 존재했습니다.
쉐드(Shedd)는 다음과 같은 올바른 지적을 합니다. “결과적으로, 그리스도는 ‘그분의 구성상 죄에 오염될 수 있는 인간의 속성(a peccable human nature in His constitution)’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죄에 오염될 수 없는 인격적 존재(an impeccable Person)’였다. 무오염성은 신인(the God-Man)을 전체적으로 특징지은 것이고, 반면에 오염성은 그분의 인성과 관련된 특징이다”(2:333).
C. 그리스도의 시험의 결과
1. 감각성. 그분은 시험의 고통을 감지할 수 있는 분이 되었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정서와 능력을 가지고 그 시험을 겪으셨습니다.
2. 본보기. 그분은 우리에게 매우 고통스런 시험에 대한 승리의 본보기를 주십니다.
3. 이해하심. 그분은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 우리의 고통을 똑같이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4. 은혜와 능력. 그분은 시험을 받을 때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은혜와 능력을 또한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겪는 동일한 문제를 겪었던 사람들은 우리의 감정을 느낄 수 있고 우리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지만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거의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무엇인가를 하실 수 있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실 수 있습니다(히 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