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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론』 제2장 「조사하는 자와 조사받는 자」
데릭 프라이스(Derek Price) 집필,
리즈 웰스(Liz Wells 편집
[1] 다큐멘터리 사진과 진정성
1. 다큐멘터리의 개념
(1) 다큐멘터리(documentary)는 하나의 고정된 촬영 양식이 아니다.
① 다큐멘터리는 장르, 전통, 양식, 운동, 실천으로 설명될 수 있다. 사진에 찍힌 장면의 외형만으로 그 사진을 다큐멘터리라고 단정할 수 없다.
② 존 그리어슨(John Grierson)은 1920년대에 다큐멘터리라는 말을 영화에 적용했다. 그 뒤 이 용어가 사진에도 확산되었다. 19세기 사진가 대부분은 자신을 다큐멘터리 사진가라고 부르지 않았지만, 후대의 연구자들은 그들의 사진을 다큐멘터리의 역사 안에 포함했다.
③ 과거의 사진에 다큐멘터리라는 이름을 붙이는 일은 단순한 분류가 아니다. 그 사진을 어떤 역사와 목적, 제도 안에서 다시 읽을지 결정하는 행위이다.
(2) 다큐멘터리 사진과 보도사진(photojournalism)은 겹치지만 같은 개념은 아니다.
① 보도사진은 주로 현재 일어나는 사건을 기사와 함께 설명하거나 뉴스의 이야기를 전달한다.
② 다큐멘터리는 특정 사건뿐 아니라 사회적 삶과 현실의 관계를 조사하고 기록하는 실천을 폭넓게 가리킨다. 장기간의 기록, 사회조사, 아카이브, 전시와 사진집도 그 맥락에 포함될 수 있다.
③ 두 분야 모두 현실을 정확하게 보여준다는 주장을 해왔지만, 어떤 장면을 고르고 어떻게 제시하는지에 따라 그 주장은 달라진다.
(3) 다큐멘터리의 진정성(authenticity)은 사진 내부의 기술적 특성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① 사진이 무엇을 위해 제작되었는지, 어디에 실리고 전시되었는지, 어떤 설명과 함께 사용되었는지, 사회가 그것을 어떻게 신뢰했는지가 중요하다.
② 마사 로슬러(Martha Rosler)는 다큐멘터리를 과거를 대상으로 하는 실천으로 설명한다. 여기서 과거는 단순히 지나간 시간이 아니라 실제 삶과 사진의 관계, 그리고 그 관계가 진실하고 진정성 있다는 사회적 주장이 축적된 영역이다.
[2] 사진의 진실: 아페르, 바나도, 로스스타인
1. 파리 코뮌과 에르네스트 외젠 아페르
(1) 파리 코뮌(Paris Commune)은 1789년 프랑스 혁명이나 『레미제라블』의 사건과 구분해야 한다.
① 파리 코뮌은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뒤인 1871년에 파리에서 일어난 혁명적 자치정부이다. 약 3개월간 존속한 뒤 프랑스 정부군에 진압되었다. 따라서 이를 “삼일천하”라고 설명하는 것은 잘못이다.
(2) 에르네스트 외젠 아페르(Ernest Eugène Appert)는 파리 코뮌을 다룬 사진 연작 『코뮌의 범죄』(Les Crimes de la Commune)를 제작했다.
① 이 사진들은 실제 사건을 기록한 것처럼 보이지만, 배우들이 장면을 재연하고 인물의 초상과 배경을 합성한 포토몽타주(photomontage)였다.
② 사진은 파리 코뮌 참여자들을 범죄적이고 잔혹한 집단으로 보이게 하는 정치적 선전에 이용되었다. 따라서 “코뮌 참여자들이 바리케이드 앞에서 직접 찍은 사진”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2. 토머스 존 바나도와 고아들의 전후 사진
(1) 자선사업가 토머스 존 바나도(Thomas John Barnardo)는 고아와 빈곤 아동의 구호 사업을 홍보하기 위해 ‘전’과 ‘후’ 사진을 사용했다.
① 한 사진에서는 아동을 누더기 차림의 거리 아이로, 다른 사진에서는 단정한 옷을 입고 교육과 훈련을 받은 아이로 보이게 했다. 이런 사진은 사업의 성과를 설명하고 후원금을 모으는 데 쓰였다.
② 케이티 스미스(Katie Smith)는 실제로 성냥을 판 적이 없는데도 성냥팔이 소녀로 연출된 사진에 등장했다. 교차로를 쓸어 생계를 잇는 아이로도 묘사되었다. 이는 특정 아이의 실제 이력을 찍은 기록이라기보다 거리 아동의 전형을 나타내려는 이미지였다.
③ 논쟁의 핵심은 사진이 아동의 실제 삶을 정확히 기록했는지, 아니면 그럴듯한 사회적 전형을 보여주었는지였다. 1877년 공개 조사 과정에서 사진을 이용한 ‘예술적 허구’가 문제로 지적되었다. 사회문제를 알리려는 선의가 사진의 사실성을 자동으로 보증하지는 않는다.
3. 아서 로스스타인의 소 두개골 사진
(1) 아서 로스스타인(Arthur Rothstein)은 1936년 가뭄과 토양 침식의 영향을 보여주는 사진을 촬영했다.
① 유명한 소 두개골 사진의 촬영지는 오클라호마주 시마론 카운티가 아니라 사우스다코타주 배드랜즈(Badlands)이다. 오클라호마주 시마론 카운티에서 촬영된 로스스타인의 유명한 사진은 먼지폭풍 속을 걷는 농부와 아들들을 담은 별도의 사진이다.
② 로스스타인은 두개골을 여러 위치에 놓고 촬영했다. 건조한 땅 위에 놓인 두개골은 농업 위기를 강하게 상징했지만, 그 위치가 촬영 당시의 자연스러운 상태였는지를 두고 논쟁이 일었다.
(2) 이 논쟁은 외시적 진실(denotative truth)과 함축적 진실(connotative truth)의 차이를 보여준다.
① 외시적 진실은 사진에 보이는 장면이 촬영 순간 실제로 그 상태였는지를 묻는다. 두개골을 옮겼다면 사진은 장면의 위치와 상태를 그대로 기록한 것이 아니다.
② 함축적 진실은 사진이 더 넓은 사회적 현실을 드러내는지를 묻는다. 실제로 가뭄과 토양 침식이 있었더라도, 그 사실만으로 두개골을 배치한 사진이 자동으로 진실하거나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다.
③ 이 두 진실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사진의 사회적 의미와 구체적 장면의 정확성은 따로 검토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도 곧 “사실이었다”는 증거가 되지는 않는다.
(3) 외시와 함축은 기호학(semiotics)의 개념이다.
① 외시(denotation)는 기호가 표면적으로 가리키는 의미이고, 함축(connotation)은 문화적 약호와 맥락에 따라 더해지는 의미이다.
② 두 용어는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만의 용어나 『사진의 제3의 의미』에만 한정되는 개념이 아니다. 바르트의 ‘제3의 의미’와 외시·함축의 구분을 완전히 같은 이론으로 취급해서도 안 된다.
[3] 비개입, 사진의 흔적과 사회적 신뢰
1. 비개입(non-intervention)은 사진가가 아무 선택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1) 사진가는 촬영 장소와 위치, 프레임, 촬영 시점, 셔터를 누르는 순간을 선택한다.
① 따라서 촬영 장면을 물리적으로 바꾸지 않는 것과 사진을 미학적으로 구성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② “있는 그대로 찍었다”는 말은 사진가의 선택이 없었다는 뜻이 아니다. 특정한 종류의 개입을 금지하거나 허용하는 역사적 관습을 따른다는 뜻에 가깝다.
(2) 다큐멘터리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 여러 관습이 사용되었다.
① 필름의 가장자리까지 인화해 검은 테두리를 보이는 방식은 네거티브 전체를 보여주고 잘라내지 않았다는 인상을 주었다.
② 자연광만 쓰고 플래시를 피하는 것, 사진가가 촬영 장면에 손대지 않는 것 역시 다큐멘터리의 기술 윤리처럼 작동한 시기가 있었다.
③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의 사진을 검은 테와 매트, 액자로 제시하는 방식은 사진을 예술작품으로 보이게 하는 동시에 ‘프레임 전체를 보존했다’는 인상을 만들었다. 그러나 테두리나 액자 자체가 사진의 진실성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2. 사진은 현실의 흔적이지만, 사진의 의미까지 저절로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1) 찰스 샌더스 퍼스(Charles Sanders Peirce)의 기호학에서 사진은 지표(index) 기호로 이해될 수 있다. 빛이 카메라에 닿았다는 인과적 관계가 사진에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① 롤랑 바르트는 『카메라 루시다』(Camera Lucida)에서 사진의 노에마(noema)를 “그것은-존재했음(that-has-been)”으로 설명한다. 사진이 촬영 순간의 대상과 관계를 맺었다는 뜻이다.
② 그러나 대상이 카메라 앞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진이 사건의 원인·맥락·전체 진실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사진의 의미는 캡션, 배열, 매체, 관람자의 지식과 문화적 약호 안에서 형성된다.
(2) 필름 시대에도 합성·수정·연출은 존재했다.
① 디지털 기술은 이미지 조작을 더 쉽고 정교하게 만들었지만, 조작 자체를 새로 발명한 것은 아니다.
② 디지털 사진은 모든 사진을 거짓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사진과 현실의 관계를 다시 묻게 했다. 디지털 센서도 촬영 순간의 빛과 물리적으로 관계를 맺지만, 그 파일이 쉽게 수정되고 합성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진의 지표적 신뢰는 더 복잡해졌다.
③ 인공지능(AI) 이미지가 사진처럼 정교한 화면과 인화 결과를 만들 수 있게 된 상황은, 우리가 왜 선명한 초점·정교한 구도·완성도 높은 프린트를 ‘좋은 사진’이나 ‘진정성’의 표지로 여겨왔는지 되돌아보게 한다.
3. 사진의 신뢰는 사회적 실천과 제도 속에서 만들어진다.
(1)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의 “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는 표현은 전쟁의 물리적 발생 자체를 부정하는 말로 읽어서는 안 된다.
① 이 말은 대중이 전쟁을 현장에서 직접 경험하기보다 방송·사진·영상으로 접하며, 매체가 구성한 현실을 통해 전쟁을 이해한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② 『스펙터클의 사회』(The Society of the Spectacle)는 장 보드리야르가 아니라 기 드보르(Guy Debord)의 저작이다. 두 사람의 이름과 책을 혼동하지 않아야 한다.
(2) 데이비드 캠퍼니(David Campany)는 사진이 기술적으로 무엇인가만으로 정의되지 않고 문화적으로 무엇을 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고 본다.
① 사진은 현실과 관계를 맺지만, 그 현실을 어떤 목적으로 만들고 유통하고 사용하는지에 따라 사회적 기능이 달라진다.
② 사진을 신뢰하는 사회적 관습은 진정성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그렇더라도 사회적 신뢰와 사실의 정확성은 같은 말이 아니다.
[4] 사회조사, 응시와 권력
1. 19세기 사진은 사회조사(social investigation)와 사회적 사실(social facts)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했다.
(1) 빈곤, 주거, 건강, 교육, 노동, 도덕 상태를 조사하는 정부기관·신문·의사·종교단체·자선단체·연구자들은 사진을 시각적 증거로 활용했다.
① 사진은 중산층 관객이 직접 경험하지 못한 뒷골목과 빈민의 생활을 보여주었다.
② 익숙한 일상을 사진으로 고정하면 그 일상은 관찰하고 분류할 수 있는 연구 대상으로 바뀐다. 사진은 삶을 보이게 만들면서 동시에 그 삶을 분류하고 대상화할 수 있다.
(2) 제이컵 리스(Jacob Riis)는 뉴욕 빈민가를 플래시로 촬영해 과밀한 주거와 빈곤을 드러냈다.
① 리스는 사진이 글보다 강한 증거라고 믿었으며 사회개혁을 위해 사진을 사용했다.
② 사진은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 조건을 알리는 동시에 그들을 복잡한 삶을 가진 행위자보다 빈곤의 사례나 피해자로 보이게 할 수 있었다.
③ 리스의 사진에 나타나는 시선 회피, 피로하거나 무방비한 표정, 강한 플래시 효과는 사진가와 피사체 사이의 권력관계를 함께 드러낸다. 사진가의 선의와 피사체에 대한 통제는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
2. 응시(gaze)는 단순히 눈이 있는 대상이 카메라를 보는 현상을 뜻하지 않는다.
(1) 응시는 사진가·카메라·피사체·관람자 사이에서 시선이 어떻게 배치되는지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① 피사체가 카메라를 바라보면 관람자는 자신이 일방적으로 보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게 될 수 있다. 이는 관람자의 시선을 흔들지만, 모든 경우에 같은 효과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② 피사체가 시선을 피한다는 사실만으로 그 인물이 수동적 대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프레임·캡션·전시 맥락과 함께 살펴야 한다.
(2) 사진을 보는 일에는 대상에 접근하고, 관찰하고, 아는 듯한 감각이 따를 수 있다.
① 사진 속 인물이 자신이 관찰되고 있음을 모르는 것처럼 보이면 관람자는 편안하게 들여다보는 위치를 얻는다. 이때 관음적 쾌락(voyeuristic pleasure)과 대상에 대한 소유감이 생길 수 있다.
② 사진을 통해 정보를 얻고 분류하는 행위는 지식의 축적과 연결된다. 지식은 권력과 분리되어 있지 않다.
3. 권력/지식(power/knowledge)과 진실 체제(regime of truth)
(1)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권력을 일부 집단이 독점한 힘으로만 보지 않았다. 권력은 제도와 일상, 지식과 분류, 관계와 담론을 통해 작동한다.
① 아카이브(archive)의 구축, 신체를 기록하고 측정하는 관행, 정보를 정리하고 유통하는 과정도 권력의 작동과 연결된다.
② 진실 체제(regime of truth)는 어떤 사회가 무엇을 참과 거짓으로 구분하고, 어떤 절차와 제도를 통해 특정한 주장을 권위 있는 지식으로 만드는지를 가리킨다.
(2) 존 태그(John Tagg)는 『재현의 부담』(The Burden of Representation, 1988)에서 사진이 사회조사·감시·분류의 제도와 공모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① 사진은 현실을 투명하게 옮기는 자료만이 아니라, 현실을 특정 범주와 담론 안에서 구성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② 줄리언 스탈라브라스(Julian Stallabrass)는 이 분석이 다큐멘터리 안의 다양한 정치적 신념과 저항적 실천까지 체제 유지의 일부로만 환원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다큐멘터리를 권력의 도구로만 설명하는 것 역시 충분하지 않다.
[5] 노동자 사진과 식민주의 사진
1. 노동은 근대 사회의 핵심이었지만 19세기 사진에는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났다.
(1) 사진가의 거주지와 촬영 접근성, 사진 공모전의 주제, 중산층의 취향이 무엇을 ‘찍을 만한 장면’으로 보는지 결정했다.
① 노동자가 프레임 구석에 우연히 찍히거나 건물 크기를 가늠하기 위한 인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② 빈민의 생활은 자선·문학·사회조사의 관심 대상이 되었지만, 산업 노동의 반복성과 노동자 집단의 일상은 자주 기록되지 않았다.
(2) 노동을 지속적으로 기록한 예외적 사례도 있다.
① 토머스 애넌(Thomas Annan)은 글래스고 빈민가를, 존 톰슨(John Thomson)은 런던의 거리 생활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프랭크 메도 서트클리프(Frank Meadow Sutcliffe)는 휘트비의 어업과 일상을 장기간 관찰했다.
② 아서 먼비(Arthur Munby)는 농업·어업·탄광업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사진을 수집했다. 여성의 육체노동 사진이 희귀했던 당시, 그 자료는 여성 노동의 역사적 기록으로 중요하다.
③ 루이스 하인(Lewis Hine)은 아동노동과 노동 현장을 촬영해 사회개혁을 촉구했다. 사진은 노동을 기록했지만, 기록 자체가 곧 노동자의 목소리나 노동조건의 원인까지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2. 식민주의(colonialism)와 사진은 분류와 지식 생산을 통해 연결되었다.
(1) 유럽 제국은 지형·인구·문화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고, 사진은 지도·통계·문서와 함께 식민지 아카이브를 구성했다.
① 피식민자는 정면·측면·특정 복식·정해진 배경과 자세를 통해 인종적·문화적 유형으로 분류되곤 했다.
② 누드나 ‘원시적 복식’은 원시성·저개발·이국성·토착성을 나타내는 표지로 사용되었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기록처럼 보이는 사진 안에 제국의 시각과 위계가 숨을 수 있었다.
(2) 사진은 대상을 전유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
① 존 어리(John Urry)는 사진 촬영을 대상에 대한 시각적 지식을 얻고 그 대상을 일시적으로 소유하는 권력/지식 관계로 설명한다.
② 미국의 철도회사와 관광산업은 원주민의 모습을 관광 명소와 ‘그림 같은 풍경’으로 제시했다. 사진은 낯선 장소를 관람하고 소비할 수 있는 이미지로 바꾸었다.
(3) 포스트식민주의(postcolonialism)는 식민지 시선이 남긴 기록과 범주를 다시 살핀다.
① 디아스포라(diaspora), 문화의 혼종성(hybridity), 정체성과 주체성의 형성이 중요한 쟁점이다. 문화는 한 방향으로만 전달되지 않으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② 로시니 켐파두(Roshini Kempadoo)는 「달콤함과 빛」(Sweetness and Light, 1996)에서 식민주의 시대의 이미지 관습을 참조하고 디지털로 재구성해 그 시선과 분류 체계를 비판한다.
[6] 전쟁 사진과 증언
1. 전쟁은 사진의 발전과 보도사진의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1) 크림전쟁(Crimean War)에서 윌리엄 러셀(William Russell)의 비판적 보도가 이어지자 로저 펜턴(Roger Fenton)은 전쟁터를 촬영했다.
① 펜턴은 습식 콜로디온(wet collodion) 방식으로 350장 넘는 사진을 제작했다. 장비와 현상 조건 때문에 전투 한복판을 촬영하기는 어려웠다.
② 그의 사진은 군대의 질서와 차분한 장면을 주로 보여주고 전쟁의 참혹함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사진에 기반한 목판 삽화는 신문에서 장면을 다시 구성해 이야기로 전달했다.
(2) 미국 남북전쟁(United States Civil War, 1861–1865)은 진행 과정이 광범위하게 사진으로 기록된 초기 전쟁이다.
① 매튜 브래디(Matthew Brady)는 사진가 팀을 조직하고 사진을 전시·출판했다. ‘브래디의 사진’이 모두 브래디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이라는 뜻은 아니다.
② 알렉산더 가드너(Alexander Gardner), 티머시 오설리번(Timothy O’Sullivan), 조지 바너드(George Barnard) 등 여러 사진가의 사진이 전쟁의 시각적 기록을 구성했다.
③ 전쟁터 사진뿐 아니라 병사들의 초상사진과 야영지 사진도 많이 제작되었다. 사진은 사건을 기록하는 동시에 전쟁을 이해하고 기억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었다.
2. 사진가가 현장에 있었다는 사실은 증언의 권위를 만들지만, 그것만으로 진실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1) 로버트 카파(Robert Capa)의 스페인 내전 사진 「어느 공화군 병사의 죽음」(Death of a Loyalist Soldier)은 현장성·연출 여부를 둘러싸고 오랫동안 논쟁이 되었다.
① 수전 마이젤러스(Susan Meiselas)의 『니카라과』(Nicaragua)는 컬러사진과 인터뷰·텍스트를 함께 사용해 전쟁을 단일한 이미지의 증언으로 축소하지 않았다.
② 전쟁 당국의 검열, 사진가의 접근 제한, 미디어의 속도와 편집은 “나는 그곳에 있었다”는 증언의 권위를 계속 흔든다.
(2) 전투 장면 대신 전쟁의 흔적과 여파를 찍는 다큐멘터리도 등장했다.
① 뤼크 들라예(Luc Delahaye)는 대형 카메라와 파노라마 형식으로 전쟁의 현장을 멀리서 관찰하는 사진을 제작했다.
② 폴 시라이트(Paul Seawright)의 「숨겨진 것」(Hidden, 2003)은 제국전쟁박물관(Imperial War Museum)의 의뢰로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흔적과 풍경을 담았다. 즉각적인 전투 장면보다 전쟁이 남긴 환경과 구조를 바라보게 한다.
3. 고통의 미학화와 사진의 윤리
(1) 수전 손택(Susan Sontag)은 『타인의 고통』(Regarding the Pain of Others)에서 고통의 사진이 너무 예술적으로 보일 때 관람자가 그것을 감상 대상으로 소비할 위험을 다룬다.
① 문제는 사진이 아름답다는 사실 하나가 아니다. 관람자가 무엇을 보게 되고, 그 형식이 고통에 대한 이해와 어떤 관계를 맺는지가 중요하다.
② 데이비드 리바이 스트라우스(David Levi Strauss)는 모든 재현이 선택과 변형을 포함한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미학적 구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진의 진실성이나 정치적 가능성을 곧바로 부정할 수는 없다.
(2) 아부그라이브(Abu Ghraib) 수용소의 고문 사진과 9·11,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아마추어 사진은 증언의 생산자가 전문 사진가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① 휴대전화와 개인용 카메라로 만들어진 이미지는 보도사진의 의도로 촬영되지 않았더라도 공적 증거와 증언으로 유통될 수 있다.
② 한 장의 사진은 재난의 원인과 전체 상황을 모두 보여주지 않는다. 사진 속 국기, 인물의 자세와 배치는 국가적 회복이나 공동체의 서사를 떠올리게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사진의 외시적 정보와 구분해 해석해야 한다.
[7] 다큐멘터리의 구축과 1930년대
1. 다큐멘터리의 전형적 형식은 1930년대에 형성되었다.
(1) 가벼운 35mm 카메라, 삽화잡지의 확산, 사진 편집자의 역할, 사진 에세이(photo-essay)의 발전, 현실 이미지를 원하는 대중이 그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① 당시 다큐멘터리는 빈곤과 노동 같은 사회문제를 보여주고 개혁과 사회교육을 촉구하는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② 19세기 사진을 후대에 다큐멘터리로 부르는 것은 그 사진을 1930년대의 사회개혁적 다큐멘터리 전통과 연결해 다시 읽는 일이다.
(2) 다큐멘터리를 구축(construction)한다는 말은 사진의 프레임 안을 구성(composition)한다는 뜻에만 머물지 않는다.
① 사진가의 선택과 연출뿐 아니라 편집, 배열, 캡션, 유통, 제도와 관람 관습이 함께 사진의 의미를 만든다.
② 사진 한 장만 보고 그 구축 과정을 모두 알아차리기는 어렵다. 동시대 작업은 때로 연출과 편집, 아카이브의 작동을 드러내 그 과정을 관람자가 보게 한다.
③ 구축이 드러났다고 해서 모든 윤리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피사체의 동의와 목소리, 이미지의 사용 목적과 사회적 효과는 여전히 검토해야 한다.
2. 윌리엄 스토트와 투명한 사실이라는 믿음
(1) 윌리엄 스토트(William Stott)는 다큐멘터리가 논평을 거부하고 경험적 증거를 제시하며 “사실 자체가 말한다”고 믿는 관점을 설명한다.
① 이 관점에서는 내용이 형식보다 중요하고, 관객의 해석은 불필요해진다.
② 문제는 사실이 선택·배열·설명 없이 관객에게 직접 전달될 수 있다고 가정하는 데 있다. 재현 방식도 의미 형성에 참여한다.
3. 일상 관찰과 사진가의 위치
(1) 1937년 톰 해리슨(Tom Harrison)과 찰스 매지(Charles Madge)가 시작한 여론조사(Mass Observation)는 영국인의 버스·술집·해변 등 일상생활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① 평범한 삶을 연구 대상으로 바꾸면 익숙한 일상이 낯설어지고, 관찰과 감시의 문제도 생긴다.
② 버트 하디(Bert Hardy)는 자신이 본 것을 왜곡 없이 찍었다고 주장했지만, 그런 주장도 사진가의 위치와 선택을 없애지는 못한다.
(2) 험프리 스펜더(Humphrey Spender)는 보이지 않는 스파이처럼 노동계급의 일상을 촬영하는 데서 착취의 감정을 느꼈다고 기록했다.
① 촬영 목적이 사회개혁이나 도움을 위한 것이라 해도 사진가와 피사체 사이의 사회적 거리는 남을 수 있다.
② ‘초연한 관찰자’라는 태도는 정치적 중립처럼 보이지만, 사진가에게는 관찰하고 피사체를 보여주는 권한을 부여한다.
(3) 발 윌리엄스(Val Williams)는 당시 남성 사진가의 ‘있는 그대로’ 찍는 관습과 여성 사진가들의 사적·관계적 관심을 비교했다.
① 이 차이는 여성과 남성의 본질적 차이가 아니라 당시의 사회적 조건과 사진 실천의 차이로 읽어야 한다.
② 사진가는 가난과 고통을 보여줄 수 있어도 그 원인과 권력관계, 집단적 저항을 한 장의 사진만으로 모두 설명하기 어렵다. 다만 사진 연작, 글, 인터뷰, 캡션과 아카이브를 결합하면 인과관계를 더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
[8] FSA, 『드럼』과 사진의 정치성
1. FSA 사진 프로젝트
(1) 기관 연혁은 구분해서 기억해야 한다. 1935년에 시작된 것은 재정착국(Resettlement Administration, RA)이고, 이 기관이 1937년에 농업안정국(Farm Security Administration, FSA)으로 바뀌었다. 사진 프로젝트는 RA와 FSA 시기를 거쳐 운영되었다.
① 로이 스트라이커(Roy Stryker)가 사진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도로시아 랭(Dorothea Lange), 워커 에번스(Walker Evans), 러셀 리(Russell Lee), 아서 로스스타인(Arthur Rothstein), 벤 샨(Ben Shahn), 매리언 포스트 월컷(Marion Post Wolcott) 등이 참여했다.
②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빈민만을 찍기 위한 사업이 아니었다. 농업 환경과 노동, 정부의 정책을 설명하는 보고서에 사용할 이미지를 제작하는 임무가 있었다.
③ 사진가들이 촬영한 방대한 음화 중 어떤 사진이 선택되고 출판되었는지에 따라 FSA의 역사적 이미지가 형성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FSA는 촬영된 사진 전체가 아니라 편집·복제·전시를 거친 결과이다.
(2) FSA 사진의 사회적 기획에는 특수성과 보편성이 함께 작동한다.
① 사진은 대공황과 더스트볼(Dust Bowl)로 삶의 터전을 잃고 이주한 노동자 가족의 구체적 경험을 보여준다.
② 동시에 사진은 그들의 빈곤을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보편적 고통으로 읽게 만들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특정한 역사와 계급의 경험이 보편적 인간 경험으로 바뀌기도 한다.
③ 사진은 삶에서 나온 ‘정직한 기록’이면서 사진가의 형식적 선택으로 만들어진 이미지이기도 하다. 역사적이면서 시간을 초월한 듯하고, 구체적이면서 보편적인 듯한 긴장이 다큐멘터리의 핵심 모순이다.
2. 남아프리카 잡지 『드럼』
(1) 『드럼』(Drum)은 1951년 남아프리카에서 창간된 삽화잡지이다.
① 흑인 도시 독자를 대상으로 재즈·스포츠·패션·소설·범죄 보도와 탐사보도를 함께 실었다. 짐 베일리(Jim Bailey)가 주요 창립자였고, 헨리 은수말로(Henry Nxumalo), 위르겐 샤데베르크(Jürgen Schadeberg), 피터 마구바네(Peter Magubane) 등이 잡지와 함께 활동했다.
② 은수말로는 아서 마이마네(Arthur Maimane), 샤데베르크와 함께 백인 소유 감자 농장에 잠입해 흑인 노동자의 열악한 조건을 폭로했다. 이 보도는 다큐멘터리 사진이 대중문화와 탐사보도의 결합 속에서 사회적 주장을 펼친 사례이다.
③ 『드럼』을 탄압에 저항하는 정당이나 사회단체가 없어서 살아남았다고 설명하는 것은 부정확하다. 이 시기에는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저항운동과 자유헌장 운동이 있었다. 잡지는 종종 금지되기도 했으며, 직접적인 정치투쟁을 조직하는 매체가 아니었다는 점과 당시의 검열·시장·편집 전략을 함께 보아야 한다.
[9] 전후 다큐멘터리와 주관적 시선
1. 전후 사회의 변화는 다큐멘터리의 대상과 형식을 바꾸었다.
(1) 텔레비전과 소비문화가 확산되고 삽화잡지의 영향력이 줄면서, 사회문제를 설명하는 전통적 다큐멘터리의 판로가 좁아졌다.
① 전통적 다큐멘터리는 사진과 글을 결합해 사회문제를 제시하고, 사진가 개인의 저자성보다 정보와 증거를 앞세우는 경우가 많았다.
② 전후 다큐멘터리는 빈곤과 노동 외에도 소비와 여가, 거리와 관광, 평범한 일상의 외양을 새로운 대상으로 삼았다.
2. 로버트 프랭크와 일상의 파편
(1)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의 『미국인들』(The Americans)은 미국을 여행하며 본 일상을 단편적이고 모호한 이미지로 기록했다.
① 주크박스, 자동차, 깃발, 관광지, 텅 빈 도로와 구경꾼들이 사진에 등장한다. 인물들은 빈민이나 노동자라는 하나의 범주로 제시되기보다 소비사회에서 무엇인가를 바라보는 관람자로 나타난다.
② 사진들은 하나의 명확한 사회적 이야기로 이어지지 않는다. 장면의 중요도에 대한 기존 위계가 흔들리고, 관객은 사진들 사이에서 의미를 구성하게 된다.
③ 잭 케루악(Jack Kerouac)은 책의 서문에서 “주크박스가 관보다 더 슬픈지 알 수 없게 된다”는 취지로 썼다. 이 표현은 일상적 사물과 죽음의 전통적 위계가 사진에서 흔들리는 점을 강조한다.
(2) 이후 주관적 다큐멘터리(subjective documentary)는 다큐멘터리의 대상과 표현을 넓혔다.
① 헬렌 레빗(Helen Levitt)은 뉴욕 거리의 아이들과 공동체를, 윌리엄 클라인(William Klein)은 도시의 혼잡과 무질서를 촬영했다.
② 리 프리들랜더(Lee Friedlander)는 사진가 자신의 그림자와 반사를 프레임에 포함해 사진가의 존재를 드러냈다. 로저 메인(Roger Mayne)은 런던 서부 거리의 생활을 친밀하게 기록했다.
③ 토니 레이존스(Tony Ray-Jones)는 영국인의 여가를 여러 사회계급을 아우르는 방식으로 기록했다. 빌 브란트(Bill Brandt)는 부유층의 집안에서 일하는 하녀와 여주인을 병치해 계급과 특권을 드러냈다.
④ 주관적 다큐멘터리가 곧 비정치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정치적 메시지를 직접 설명하기보다 사진가의 시선과 일상 경험, 이미지의 모호성을 통해 사회를 탐색하는 방식이다.
[10] 기호학, 문화정치학과 자기재현
1. 기호학(semiology)은 사진을 투명한 창이 아니라 의미를 만드는 텍스트(text)로 읽는다.
(1) 사진은 현실의 흔적이지만, 그 의미는 프레임 안에 완성된 채 들어 있지 않다.
① 이미지 속 기호와 약호, 촬영과 편집, 캡션과 배열이 의미를 만든다. 사진은 이미 존재하는 현실을 단순히 옮기기보다 현실에 대한 이해를 구성하고 유지할 수 있다.
② 사진을 ‘만든다’기보다 ‘찍는다’고 말하는 습관은 사진가의 선택과 이미지의 제작 과정을 가릴 수 있다. 사진은 현실의 흔적이면서 동시에 만들어진 문화적 사물이다.
(2) 관람자의 시선도 중립적이지 않다.
① 관람자는 카메라가 놓였던 위치를 이어받아 장면을 바라보는 듯한 경험을 한다. 이때 대상이 보이지 않는 관람자를 위해 놓인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② 사진을 통해 대상을 알아보고 분류하고 소유한 듯한 감각은 심리적 쾌락과 권력관계를 포함한다. 사진의 의미는 촬영자만이 아니라 관람자의 시선과 제도에도 연결된다.
2. 문화정치학(cultural politics)은 누가 누구의 삶을 재현하는지 묻는다.
(1) 돈 슬레이터(Don Slater)는 카메라가 대중을 이미지의 소비자에서 생산자로 이동시킬 수 있다고 본다.
① 노동자·여성·소수자·공동체가 자신들의 삶과 조건을 직접 기록하면, 기존의 외부자 시선에 맞서는 자기재현(self-representation)이 가능해진다.
② 카메라는 주장과 요구를 전달하고 협력을 촉진할 수 있다. 셀카와 온라인 게시물도 자기 이미지를 직접 제작하는 사례가 될 수 있지만, 그런 이미지 역시 플랫폼과 사회적 관습의 영향을 받는다.
(2) 페미니즘 사진 실천은 일상과 정체성을 자연스러운 사실처럼 제시하는 방식에 의문을 제기했다.
① 해크니 플래셔스(Hackney Flashers)는 모성·가사·육아를 몽타주와 글, 표어로 다루며 사적 생활을 정치적 문제로 제시했다.
② 앤젤라 켈리(Angela Kelly), 테사 보핀(Tessa Boffin), 진 프레이저(Jean Fraser)는 사진의 구성이 의미를 만든다는 점을 드러내는 작업을 강조했다.
③ 존 로버츠(John Roberts)는 계급을 사진으로 재현할 때 사진가가 의미 생산 과정에서 빠져 있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사진은 계급을 묘사하면서 동시에 계급 정체성이 구성되는 기호 과정에 참여한다.
④ 노동계급의 삶을 계속 다룬 크리스 킬립(Chris Killip), 닉 헤지스(Nick Hedges), 엑시트 사진 그룹(Exit Photography Group)도 계급과 노동을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주체성의 문제로 탐색했다.
3. 사진의 연출과 구성은 단순한 거짓말로만 볼 수 없다.
(1) 브레히트(Bertolt Brecht)의 소격효과(verfremdungseffekt)는 관객이 장면에 완전히 몰입해 그것을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만든다.
① 알렉산더 로드첸코(Alexander Rodchenko)의 낯선 앵글과 존 하트필드(John Heartfield)의 정치적 포토몽타주는 익숙한 시각 질서를 깨뜨려 사진 아래의 권력과 이데올로기를 드러내려 했다.
② 연출과 몽타주는 자연스러워 보이는 시각적 관습을 폭로할 수 있다. 다만 연출 여부와 공개 방식, 피사체의 동의, 관객을 속이는 정도를 따로 평가해야 한다.
[11] 컬러사진과 다큐멘터리의 확장
1. 컬러사진은 다큐멘터리가 다루는 현실과 미학을 확장했다.
(1) 컬러사진은 한때 광고와 홍보의 영역에 속한다고 여겨졌다. 흑백사진이 진지하고 객관적인 사진이라는 관습도 오래 지속되었다.
① 윌리엄 이글스턴(William Eggleston)은 강한 색채의 염료전사법(dye-transfer process)과 평범한 일상의 대상을 결합해 컬러사진을 예술사진과 다큐멘터리의 영역으로 끌어왔다.
②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존 자코프스키(John Szarkowski)가 이글스턴의 컬러사진을 전시한 일은 컬러사진의 예술적 지위가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③ 색채는 계급·지역·소비문화·기후·생활양식의 차이를 보여줄 수 있다. 색은 현실을 복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감정과 시각적 관심을 만들어낸다.
(2) 컬러사진은 여러 작가에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확장되었다.
① 폴 아우터브리지(Paul Outerbridge), 스티븐 쇼어(Stephen Shore), 마틴 파(Martin Parr), 라구 라이(Raghu Rai) 등은 컬러를 각기 다른 사회적·시각적 주제에 사용했다.
② 마틴 파의 『작은 세계』(Small World)는 관광객들이 세계 곳곳에서 사진을 찍고 포즈를 취하는 모습을 기록한다. 여행과 관광이 세계를 보는 방식을 어떻게 표준화하는지 보여준다.
③ 세바스치앙 살가두(Sebastião Salgado)의 노동 사진은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주제를 계승하면서도 정교한 프린트와 웅장한 화면으로 미술관에서 전시되었다. 고통을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형식이 관람자의 이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12] 세계화·디지털 유통과 다큐멘터리의 현재
1. 다큐멘터리는 고정된 형식이 아니라 유통과 수용에 따라 계속 변한다.
(1) 텔레비전과 디지털 네트워크의 확산은 사진가의 작업과 보도사진의 구조를 바꾸었다.
① 사진가는 신문·잡지 편집부의 통제 아래 놓일 수 있고, 직원 사진가가 줄면서 기자나 시민이 직접 이미지를 보내는 경우도 늘었다.
② 아마추어 사진은 전문 사진가의 독점적 증언 권위를 흔들었지만, 이미지가 어떻게 생산·편집·유통·해석되는가라는 문제는 계속 남는다.
(2) 사진은 새로운 맥락으로 이동하며 기존의 의미를 잃거나 새로 얻는다.
① 과거의 다큐멘터리 사진이 광고나 식당 장식, 미술관 전시로 옮겨가면 원래의 사회적 목적과 다른 의미로 소비될 수 있다.
②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은 원본과 복제,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현실과 이미지의 경계를 문제 삼았다. 사진은 고정된 의미를 가진 물건이 아니라 순환하고 재사용되는 이미지가 된다.
2. 다큐멘터리의 질문은 계속 이어진다.
(1) 레지스 뒤랑(Régis Durand)이 제기한 질문처럼, 사진에서 실제로 기록되는 것은 무엇이며 누가 기록하는가, 그 사진은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읽히는가를 물어야 한다.
① 어떤 대상을 다큐멘터리의 주제로 보는지는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② 사진이 사실처럼 보이는 이유, 사진의 의미를 구성하는 방식, 사진이 누구의 시선을 강화하거나 흔드는지는 계속 검토해야 한다.
③ 다큐멘터리는 끝난 장르가 아니다. 사진이 무엇을 기록하고, 누가 그 기록을 만들며, 그것이 어떻게 유통되고 받아들여지는지를 다시 묻는 실천이다.
핵심 정리
① 사진은 현실의 흔적일 수 있지만, 그 의미와 진실성은 사진 바깥의 맥락·제도·유통·관람 방식과 함께 형성된다.
② 다큐멘터리의 진정성은 ‘연출이 있었는가’만으로 판단할 수 없다. 촬영된 장면의 정확성, 사회적 현실을 드러내는 방식, 피사체와 사진가의 권력관계, 이미지의 사용 목적을 함께 살펴야 한다.
③ 모든 사진은 선택과 구성을 포함한다. 중요한 것은 그 구성의 사실성과 윤리, 그리고 그 과정이 관객에게 어떻게 드러나는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