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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의 초청
비유 가운데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오라고 한 명령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사람들로 하여금 강제로 복음을 받도록 해야 된다는 가르침으로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이 말씀은 오히려 초청의 긴급성과 권면을 효과적으로 제시해야 함을 나타낸다. 복음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데 강제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 복음 기별은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사 55:1),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계 22:17)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운 능력이 우리를 강권하여 주께로 나아가게 한다.
구주께서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고 말씀하신다. 구주께서는 사람들이 멸시한다고 해서 물러가시거나 위험하다고 해서 돌아서시는 분이 아니시다. 오직 그분은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호 11:8)하시면서 항상 잃어버린 자를 찾고 계신다. 비록 마음이 완고한 자들로부터 그분의 사랑이 멸시를 받을지라도 그분은 반복해서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라는 말씀을 더욱 힘 있게 호소하신다. 영혼을 끌어당기는 그분의 사랑의 힘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분을 받아들이게 한다. 그리하여 저희는 그리스도께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시 18:35)라고 말하게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잃어버린 자를 찾으실 때에 가지셨던 그같은 애틋한 사랑을 당신의 사자들에게 나누어 주실 것이다. 우리는 다만 “오라”고만 할 것이 아니다. 오라는 초청을 듣지만 그들의 귀가 너무나 둔해서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의 눈은 너무 흐려져서 저희를 위하여 준비된 온갖 좋은 것을 보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은 저희가 너무 많이 타락했다는 것을 알고 말하기를, ‘나는 도움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니 나를 그냥 내버려 두시오’라고 한다. 그러나 주님의 일꾼들은 단념해서는 안 된다. 부드럽고 동정 깊은 사랑으로 낙망하고 의지할 데 없는 자들을 붙잡아 주어야 한다. 그들에게 그대의 용기와 그대의 소망과 그대의 힘을 불어넣어 주라. 친절로써 그들이 오도록 강권하라.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유 22, 23), 만일 하나님의 종들이 믿음으로 그분과 함께 동행할 것 같으면 그분은 그들이 전하는 기별에 능력을 주실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은혜를 거절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잘 설명해 줌으로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도록 강권함을 받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몫을 이행할 것 같으면 그리스도께서는 놀라운 기적을 행하실 것이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의 마음에 지난 세대에 있었던 것과 같은 커다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존 번연은 독신(瀆神)과 방탕에서 구원함을 받았고 존 뉴턴은 노예 매매자의 처지에서 구원함을 받은 자로서 십자가에 달리신 구주를 전파하였다. 오늘날에도 존 번연과 같은 사람과 뉴턴과 같은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 중에서 구속함을 받을 수 있다. 하나님과 협력하는 사람들의 활동으로 많은 불쌍하고 버림받은 자들이 구원함을 받게 될 것이며, 이렇게 구원받은 자들은 또 다른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는 일에 힘쓰게 될 것이다. 별로 이렇다 할 기회도 얻지 못하고 더 좋은 방법을 알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릇된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삭개오에게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눅 19:5)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들에게도 그같은 말이 임할 것이다.
완고한 죄인이라고 생각되는 사람들도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돌아보신 까닭에 저희 마음이 어린아이의 마음처럼 부드럽게 되는 것을 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극악한 죄와 허물 속에서 나와 일찍이 기회와 특권을 가졌으나 그것을 소중히 여기지 아니한 다른 사람들의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보배롭게 여기시는 그분의 택하신 백성이 될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나라를 건설하실 때에 그분의 보좌 다음에 서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히 12:25). 예수께서는 “전에 청했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그 초청을 거절했으므로 그들 중에는 한 사람도 다시 초청을 받지 못할 것이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거절함으로 저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고 저희 자신을 사단의 권세에 내어버림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오늘날도 그러하다. 만일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하게 생각지 아니하고 또 그분의 사랑이 우리 심령을 부드럽게 하고 억제하는 영구적 원칙이 되지 아니하면 우리는 완전히 잃어버린바 될 것이다. 주께서는 이미 나타내신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나타내실 수 없다. 만일 예수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을 정복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달리 감화를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대가 자비의 기별을 거절할 때마다 그대 자신은 더욱더 불신으로 굳어지게 된다. 그대가 그리스도께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을 때마다 그대는 말씀하시는 그분의 목소리를 더욱더 듣기 싫어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는 최후의 자비의 초청에 응할 기회를 점차적으로 잃어버리게 된다. 그대는 고대 이스라엘에 대해 쓴 “에브라임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두라”(호 4:17)는 말씀이 그대를 두고 기록된 말씀이 되지 않도록 하라.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에 대하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눅 13:34, 35)고 말씀하시면서 우셨듯이 그대를 두고 그렇게 우시지 않도록 하라.
우리는 지금 최후의 자비의 기별 곧 최후의 초청을 인류에게 외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길과 산울가로 가라” 라는 명령은 거의 다 성취되려 하고 있다.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초청이 주어질 것이다. 주의 사자들은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하늘의 천사들은 아직도 사람들과 협력하여 일하고 있다. 성령께서는 온갖 권면으로 그대가 돌아오도록 강권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대가 당신을 영접하기 위하여 그대의 마음의 빗장을 빼고 문을 열려는 무슨 기미라도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계시다. 천사들은 잃어버렸던 또 다른 영혼을 찾았다는 기쁜 소식을 하늘로 가져가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다. 하늘의 천만 천사는 또 다른 영혼이 복음 잔치의 초청을 받아들임으로 인하여 거문고를 타면서 기쁨의 노래를 부르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다.
첫댓글 마지막때는 심판도 은혜인거 알아야죠.. 그중에서 한명이라도 회개하고 돌이킬자는 지옥 안가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