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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질투의 빛깔은 다양했다
강 용 민
질투라는 단어는 내게는 좀 낯설다.
질투... 질투... 부러움이 짙어지면 질투가 될까?
나는 질투를 덜 느끼는 사람이다. 남이 가진것이나 남의 사람이나 남의 생각을 부러워는 하지만 질투까지는 아니라 생각된다.좋은 물건은 그에 따른 값을 줘야 얻을수 있고(돈으로 값을 줘야 하면 계산해보고 선택유무를 정하면 되고), 생김새가 멋진 사람은 (얼굴이 멋지면 값이 있다는 말을 어릴때 부터 들어서인지 내옆에 두긴 부담스럽고)그냥 멋지구나~~하고, 기발한 생각을 가진 사람은....아...많이 부러워한다. '와~~어찌 저런 생각을 저렇게 표현하지' 라고 하면서. (작가나 영화감독.영화배우.가수를 직업으로 삼는분들)
질투의 빛깔보다는 부러움의 색깔로 다가간다. 가끔 부러움은 사랑으로 변해서 팬이 되기도 한다.난 팬이 되는 순간 그의 많은것을 알고 싶어한다.그리고 그와의 거리감각이 사라지고 그의 생각을 유심히 본다. '아! 이건 이리도 표현 할 수 있구나' , '와 ...이건 나랑 비슷한 생각인데 .. ' 하며.그러면 행복해진다.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내 착각인지 모르지만)이 그 생각을 알 수 있게 표현 했다는 사실이.. 내가 알 수 없었던 부분을 내가 알 수 있게 표현 했다는것이 ...즉 "자기 생각과 느낌을 자유로이 표현한다는것" 이 부럽고 부러워 질투에 닿을려고한다.
요즘 내 주위엔 이런분들이 많다. 팬심이 생겨 부럽기도 하고 이리 많은 사람이 이렇게 자유롭다는것에서 질투가 나기도 한다.
'아..나도 질투를 느끼는구나. '
내속에 웅크리고 있는 질투를 잘 바라볼려면 내가 질투를 느끼는 그들을 알아야 되기에 조용히 이어폰을 끼고 화장실에 앉아 <니 다시읽기 질투 >모임에 접속했다.
늦게 참석한 상태라 약간의 긴장감도 느껴졌다.문선생님께서 말씀 중이셨다. 심리학으로만 보면 우리가 생각을 자꾸 그틀에 맞게 정형화 시킨다고 한다.남을 통해 배우는게 중요하다고 말씀 하신다.우리가 알고있는 지식에 상황을 끼워 넣는다는 말씀 같다. 나도 그런 모습이 있나 하는 생각중에 한 모람이 이야길 한다.질투심을 가지면 나쁜사람 된 것 같다며 ... 삼각 관계에서도 선택하는 자의 마음일거라며..선택받지 못한 자기는 상실감을 느꼈다며 ..(어라..이분이 내 생각이랑 같은생각을 하네 ...귀가 번쩍 열렸다)
그러자 문선생님과 그모람의 이야기가 들린다
"혹시 그 남동생에게서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얄미웠어요"
"혹시 ...내가 질투받는 자리에 설거라고..질투받는 사람이 되는 걸 기대하지 않았을까요?"
그 순간 ' 아... 나도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질투하는 나를 나쁘다 하기엔 내 뒤통수가 따갑고 차라리 내 맘속 질투를 누르며 내가생각하는 한 수 위의 수를 둘려고 생각지는 않았을까?
그때 선생님께서 "자기합리화"란 말씀을 하셨다.
'음..' 어쩌면 나는 자기합리화에 초점을 맞추어 지냈는지 모르겠다.집에서도 직장에서도 늘 좋은사람이 되고싶어했으니까.내 마음 보다는 좋은사람의 기준이 되는 문을 통과하고싶었으니까.그런데 내가 만든 좋은 사람의 기준은 너~무 좁았나보다. 좁은 그 문을 통과할려고 내가 얼마나 아둥바둥거렸는지 ...
이제는 안다. 내가 좋은 사람임을...조금 더 넓은 기준으로 보면 충분히 넘칠 정도로 좋은 사람임을...
'이것도 혹시...자기합리화? ... 아님 은밀하게 질투를 즐긴것?' 일까?
아쉽지만 여기까지만 모임을 참석 할 수 있었다.
2. 질투는 나의 힘?
김 현 경
나보다 24개월 후에 태어난 남동생. 열 달을 다 채우지 못하고 세상에 태어난 남동생. 인큐베이터에 들어갈 뻔 했지만 부모님은 넣지 않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병치레하지 말라고 예방접종하면 그 병에 걸렸다. 남동생인데다 아프기까지 하니 자연스레 엄마는 남동생에게 관심이 더 갔다. 더군다나 엄마는 딱 3주 쉬고 새 학년에 학교로 복귀한 상황. 큰 딸인 나는 외가로 보내졌다. 외할머니는 나를 여덟째라 생각하고 애지중지했다. 외가 식구들은 나를 귀여워해줬지만 나는 이불 끄트머리를 끌고 다니며 계속 울었단다. 무엇에 대한 서러움이었을까? 엄마가 내 곁에 없다는 것만으로도 슬펐을 것 같다. 누군들 엄마를 대신 할 수 있을까?
여자 아이치고 예쁘지 않았던 나와 달리 남동생은 얼굴도 예쁘게 생겼다. 의식적으로 엄마한테 예쁨 받아야지라는 하는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다. 나도 모르게 엄마한테 인정받으려면 엄마의 기준에 부합해야 함을 일찌감치 터득했다. 순하게 엄마가 원할 만한 것을 알아서 챙겼다. 남동생은 나에 비해 노력하지 않고도 많은 것을 얻는 것 같이 느껴졌다. 늘 놀러 다니는 것에 비해 공부도 잘했다. 나는 아등바등 열심히 해서 유지하는 것을 동생은 그저 쉽게 얻는 게 마냥 못마땅했다. 갖고 싶은 것이 있어도 잘 말하지 못했던 나에 비해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은 끈덕지게 얻어내는 남동생 어릴 적 별명은 거머리였다. 나에게 대하는 것과 달리 짠한 눈으로 동생을 대하는 엄마에게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을 하지도 못했다. 남동생과 나이가 같은 친척동생을 더 챙기는 것으로 동생에 대한 미움을 나타냈다. 그러면 엄마한테 또 한 소리를 들었다. 동생보다 사촌, 육촌동생을 더 챙긴다고. 눈치 없는 우리 엄마.
칠남매 중 둘째로 자란 엄마는 큰 이모가 이민가자 맏딸 노릇을 했다. 지금까지 외가 쪽 식구들은 필요 이상 의지하며 지낸다. 엄마는 남매 중 맏이인 내게도 누나로서 역할을 다하도록 강조했다. 늘 남동생의 우산이 되어야만 했다. 맏이인 나는 늘 알아서 길을 개척해야 했지만 동생은 내가 개척한 길을 따라오면 되었다. 의무 사항에 대한 부담으로 대학 들어와서 엄마에게 저항을 했다. 겉으로 저항하지만 내내 마음속에서 걸렸다.
대학생이 된 후 엄마한테 표현을 하기도 했다. 동생을 더 사랑한다고. 엄마는 둘이 똑같이 사랑한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 대답을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결국 결혼해 시은이만 낳았다. 2명 이상이 되면 누구든 더 좋아하는 아이가 생길 거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일종의 원천봉쇄.
작년에 변화가 생겼다. 남동생이 나를 알아줘서 마음이 풀렸다. 정확히 “누나가 그동안 많은 부담을 지고 있었네. 내 인생의 우산이 되어줘 고마워.”라는 고백을 들은 후였다. 엄마와 나는 감정적으로 얽힌 부분이 있어 별스런 이야기가 아닌데도 뚜껑이 자주 열린다. 그런 나와 달리 차분한 대응을 한다. 남동생은 엄마한테 받은 따뜻한 기억이 있다. 초 3일 때 티눈수술을 해 걷기 힘들어 하자 엄마가 동생을 업고 병원에서 집까지 왔단다. 삼사십 분 와야 하는 거리였다. 그런 기억들로부터 차분하고 반응이 나온다. 나도 그런 기억이 있나 더듬어봤다. 안타깝게도 생각나는 것이 없다. 말만 예쁘게 하고 별다른 일을 하지 않아 남동생에게 서운한 감정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착한 맏딸을 내려놓으니 동생이 움직인다. 이제 역전되었다. 동생이 행동을 하고 나는 그런 동생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주로 건넨다. 엄마와 내가 감정이 격해질 때 동생이 중간에서 범퍼 역할을 한다. 엄마가 몸 약한 동생에게 안타까운 마음이 더 있겠다는 걸 받아들이니 내 마음이 쑥 내려갔다. 엄마 말대로 똑같이 사랑한 걸로 믿기로 했다. 엄마와 관계에서 뚜껑이 열리는 횟수가 현저히 줄었다.
3. 니 9호 질투 다시읽기 모임 후기
김 지 혜
어릴때부터 나는 샘이 많았다.
난 착한아이라 생각하는데도 내가 샘이 많다는것은 마음에 걸리면서도 궁금한 부분이었다.
알트루사 온지 얼마 안되었을때, 예전 계간지 주제들을 보는데 특히 '질투' 편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 기획회의때 내가 있었으면 좋았을걸...' 하고 아쉬워했었다.
띄엄띄엄 책을 읽은지는 좀 되었는데...
질투라는 감정을 느끼는 시기가 3살부터라던가, 힘있는 자를 둘러싸고 갖게 되는 삼각관계.
혼자 사랑받던 첫째가 태어난 동생에게 갖게되는 질투심 등등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점심 먹으면서 서둘러 다른 글들을 읽는데 이인미 선생님의 글을 읽으며 뒷부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를 알려하지 않고 나중심적으로 갖게 되는 질투심.
여기서 알지 못하는 것을 나는 상대에 대한 관심과 공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샘이 많았던것은 나중심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나름 정리하며 모임에 들어갔다.
이번 모임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윤들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를 떠올린 것이었는데
윤들 선생님과 정말 다른 나를 보면서 나를 더 명확히 알게 된게 있었다.
윤들 선생님은 잘하는 것에 줄세우는것이 불편하고 누구에게 질투를 받을때 불편함을 이야기 했는데.
나는 그런 일이 있을때 잘하는 맨앞줄에 서고 싶고 누가 부러워하면 은근히 좋아했던 것을 떠올리면서
내가 얼마나 잘하는 것으로 사랑받고 싶어하고, 그렇지 못할때는 안정감 없이 살았는지를 생각했다.
그래서 질투는 나에게 아주 친숙한 감정이었다.
거기에 주류를 피해 대안을 찾오셨던 윤들 선생님의 아버지와 달리,
언제나 주류에 들고 싶어 목말라하셨던 나의 아버지의 차이도 생각했다.
그치만 반면 나는 보통의 사람들이 표준이라 생각하는 사람을 바람직하다 생각하면서도 그런 삶을 재미없게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대중적인 가치를 쫓아가는 삶을 시시하게 생각하는게 있다.
주류의 공부를 효율적으로 잘 밟아가는 (표준적인) 언니보다
좀 또렷하지 않아도 하고 싶은게 있어서 그것을 찾아 유학생활했던 윤들 선생님이 더 재미난 진짜 공부를 했다고 생각했다. (이건 그때 하고 싶었는데 못한 이야기)
윤들 선생님을 통해 나와 다른 사람을 보며 거울삼아 나를 보는 경험을 또렷하게 했다.
그리고 윤들선생님을 좀 더 알게 된것 같아 좋았다.
그러면서 여러 생각이 난다.
어릴때의 내가 어땠는지, 오빠들은 나와 어떻게 달랐는지 더 떠오르는 일들이 있는데 차차 더 정리해보고 싶다.
4. 질투조차 느끼지 못했다는 건
정 은 선
난 세자매 중 맏이다. 4살 때, 만으로 3살 생일을 지나고 난 후 막냇동생까지 태어났다. 연년생인 두 동생이 태어난 후로 난 아무래도 엄마 품을 차지하기 힘들었을 거다. 하지만 동생들을 질투한 기억은 나지 않는다. 자라면서도 엄마아빠의 사랑을 두고 경쟁하거나 동생들을 더 사랑한다고 샘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아빠가 나를 사랑한다는 건 의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크면서도 엄마의 기대랄까 사랑이 부담스러웠지 부족했다 여긴 적은 없다. 내가 바라는 대로 편하게 대화할 수 없는 엄마아빠라 실망스럽기는 했지만.
이번 다시 읽기 모임을 하면서 바로 아래 동생이 나를 질투했던 것 같다는 말을 우연히 하게 됐다. 전에 이야기 나누다 보니 자기는 동생은 처음부터 계속 사랑했고 언니는 미워했다는 말을 했었다. 오잉! 그동안은 엄마에게 들었던 두 동생의 어릴 때 이야기를 통해 둘째가 막내를 미워했을 거라고 짐작했었다. 그리고 둘째가 나와 자주 싸웠던 이유는 나를 미워해서 그런 게 아니라 둘째가 워낙 샘이 많고 사랑도 부족하고 까다로워서 그렇다고 여겼다.
두 동생 중 한 명을 더 미워하는 것도 질투다. 나는 동생의 질투를 받고도 그게 질투인지 몰랐다. 그저 난 거리를 두고 싶었다. 나와는 상관없다 여겼다. 질투는 인간관계 중의 하나라 필연적으로 경험하게 되는 것이란 말이 모임 중에 나왔다. 난 동생이 행동하는 원인을 관계 속에서 찾지 않고 그 아이의 특성이라고만 생각했다. 그 특성 역시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었을 텐데 말이다.
난 관계를 안 하려 하니 질투가 없었나 보다 싶다.(그 반대일 수도 있으려나.) 살아오면서 애착, 집착 이런 걸 끈적끈적하고 기분 나쁜 것으로 여겼다. 관계와 나를 떨어뜨려 보았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와의 관계냐에 따라 내 행동도 마음도 달라지는 게 당연할 수 있는데 그것과 상관없는 내가 존재한다고 여겼다. 지금은 그 내가 못마땅하고 마음에 안 들어서 그렇지 (누가 봐도) 괜찮은 내가 되면 누구와도 관계는 순조롭게 해나갈 수 있을 거란 생각도 했다.
딸, 아내, 엄마, 알트루사 회원, 학부모 등등 이런 관계를 빼놓고는 나를 볼 수 없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관계 속에서 나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관계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겠지? 조금 해보고 예상과 다른 반응을 만났다고 주저앉지는 말아야겠지?
5. 니 9호 질투 다시읽기모임 후기
윤 들
(1) 책 읽기 전 생각: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감정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외동이었기 때문에 부모님과 할머니의 사랑을 두고 경쟁하지 않으며 자랐기 때문에 잘 모르는 건가, 라고 생각해왔다. 부모님에게 유일한 자식이기도 했고 친할머니는 나와 같이 사셨기 때문인지 나를 가장 가깝게 여기셨다. 내가 여자아이였지만 그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할머니는 가끔 “고추만 달렸으면 얼마나 좋았을고.”라고 말씀하셨지만 가끔 보는 손자들보다 나를 좋아한다는 건 그냥 알 수 있었다.
집안에서 겪어보지 못했던 탓에 면역력이 약해서 집 밖에서 겪을 때 속수무책으로 휘둘리나 싶은 감정이기도 했다. 내게 중요한 사람의 관심이나 사랑, 인정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 것 같은 상황에 부닥치면 정말 어쩔 줄 몰라 하는 편이다. 내가 좀 더 사랑받는 상황도 불편하고 내가 덜 사랑받는 상황도 싫다.
질투라는 감정을 느꼈다고 기억하는 가장 이른 시기의 경험은 초등학교 1학년인가 2학년 때 열심히 다녔던 피아노학원을 그만둔 일이다. 고지식하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니다가 (엄마가 보기에) 어느 날 갑자기 내가 피아노학원에 그만 다니겠다고 해서 엄마가 놀라셨던 적이 있다. 체르니 30번 치다가 그만두면 나중에 이도 저도 아니게 된다면서 그만두더라도 좀 더 치고 그만두라고 선생님이 엄마와 나를 설득하셨는데 나는 단호하게 안 다니겠다고 했다. 엄마가 큰맘 먹고 거금을 들여 사준 피아노도 사촌에게 주든지 알아서 해달라고 말씀드렸다. 좀 지켜보자는 마음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억지로 뭘 시키는 편이 아니어서 선선히 그러라고 하셨다. 부끄러워서 당시에는 똑바로 그 이유를 말하지 못했는데, 나는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피아노 선생님이 나를 안아주며 얼러주지 않아서 다니기 싫었다. 나는 피아노 학원에 가면 군소리 없이 피아노를 연습하다가 레슨받고, 빈방이 없어서 잠깐 대기해야 할 때는 학원에 놓인 책(주로 만화책이었던 것 같다)을 보며 조용히 있는 아이였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피아노 안 치고 딴짓을 하거나 선생님께 뭔가를 조르다가 끌려가듯이 피아노를 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선생님이 안아주기도 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같이 놀아줬다. 그러는 아이들이 부러웠는데 선생님한테 “저도 안아주세요. 저랑도 놀아주세요.”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피아노학원이 가기 싫어졌다. 학원을 옮겨보거나 집에서 혼자 치겠다는 생각을 그때는 못 했다. 그냥 피아노 치는 것 자체가 싫어졌다. 뭐 그렇게까지 다 접어버릴 정도로 도망치려 했는지 이해하기 어려운데 그때는 그랬다.
요즘 첫째 아이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서 옆에서 같이 치고 있는데 피아노 칠 때 기분이 좋다. 선생님이 안아주든 말든 그냥 혼자 계속 쳤으면 피아노 치는 즐거움을 계속 누릴 수 있었을 텐데, 질투하는 마음이 들어 견디기 힘들었을 때 그 괴로움을 말하고 정리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중학교 때는 성적이 좋다는 이유로 질투받아서 괴롭다가 턱걸이로 입학한 외국어 고등학교에서는 성적이 안 좋다고 선생님이 친구들과 비교하며 무시해서 괴로웠다. 무시를 받지 않으려고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좋았겠지만 나는 비교 받는 상황이 싫어서 공부를 아예 놓았다. 등수는 입학 때보다 더 떨어졌고 갈수록 떨어졌다. 지치지 않고 앉아서 공부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성적으로 대학가기는 글렀다는 마음에 뭔가 가산점을 받아서 대학에 가야 되려나 싶었다. 그래서 사회봉사를 해서 가산점을 받는 것도 방법일 수 있을까 싶어서 담임선생님한테 물어봤다가 장난하냐며 혼났고 그 이후로 더 찍혔다. 학교를 옮길 생각은 못 했고 그 안에서 즐거울 거리를 찾아다녔다. 학교에는 걸스카우트가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 친구분이 대장으로 계셨던 지역대 스카우트에 가입해서 여름방학 때 보충수업을 째고 잼버리를 다녀왔다. 새까매진 피부로 학교에 돌아와서는 교지편집부에 가입해서 취재한답시고 야자를 빼먹고 수요일마다 광화문 수요집회에 나갔다. 나중에 뒤늦게 친하던 선배를 따라서 특정 대학교에 가고 싶어지면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적이 올랐지만 1~2학년 때 내신을 포기했더니 점수를 만회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왜 공부를 그렇게까지 놓았는지 지금은 이해가 잘 안 간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부럽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들었고(걔들은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로 공부했다는 걸 잘 알고 내가 그만큼 공부할 생각은 없었으므로) 성적을 두고 사람을 차별하는 선생님들과 학교가 그냥 싫었다.
고등학교 때 문제집 푸는 게 워낙 지겨웠기에 대학교에서 하는 공부는 정말 재미있었다. 그런데 진로를 결정하고 대학원에 입학하자 공부가 재미없어지고 뭔가 빛이 바래는 기분이 들어서 입학 때부터 약간 곤란했다. 좋아서 택한 길인데 이게 뭔가 싶어서 곤란했던 그 심정을 또렷이 기억한다. 그때는 이유를 정확히 몰랐다. 돌이켜보건대 지도교수님이 싫었다. 진보적인 지식인으로 유명하신 분이고 전공 분야에서 업적도 있고 나한테도 잘해주셨는데, 사람을 차별한다고 느껴졌다. 장학금이나 조교 일을 하는 모든 게 지도교수와의 관계에 달려있다 보니 교수님과 잘 지내야 좋은데, 교수님의 인정에 매달려야 하는 상황이 못 견디게 싫었다. 마침 관심 분야가 딱 맞지는 않았고 석사 논문 쓸 때 이 점을 확인했기 때문에 다른 지도교수 밑에서 박사논문을 써보고 싶었다.
이리저리 알아보고서 주제가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지원을 했는데, 박사과정의 지도교수는 공공연하게 편애를 하는 사람이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호오에 따라 표 나게 다르게 대하는 걸로 유명했다. 유학 생활에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처음에는 열심히 따라가려 애썼다. 그러다가 어느 날 우연히 지도교수가 대만 유학생을 그냥 자른 적이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그 이후로 ‘나도 잘릴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마음의 밑장이 무너졌다. 대학원생을 편애하는 것까지는 참을 수 있는데 규정을 어긴 게 아닌 학생을 자를 수도 있다니. 나랑 같이 수업을 듣던 중국 유학생 중 한 명은 지도교수와 사이가 안 좋아져서 엉뚱한 학과의 교수로 지도교수를 변경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그런 일들을 듣고 지켜보며 칭찬을 들어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고 ‘못 올 곳에 왔다’는 생각이 커져갔다. 대학원 동료들은 지도교수 욕을 하면서도 관계를 잘 유지하며 지내던데 나는 그게 안 됐다.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이 심해져서 우울해졌고 공황장애를 겪고는 휴학했다. 휴학하면서 사람들을 만났을 때 대학원 동료들은 학교를 옮겨보는 건 어떠냐고 했다. 그것도 방법이었겠지만 당시 나는 책도 펴볼 수 없었다. 복학을 해보려고 책을 펼 때면 밑도 끝도 없이 눈물이 나와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간신히 책 한쪽을 읽더라도 너무 오래 걸렸다. 그래서 휴학을 한 해 하고도 회복이 잘 안되어서 학교를 그만두었다. 피아노 학원에 다니면서 질투를 경험하고는 피아노 치는 것 자체가 싫어졌듯이, 고등학교 때 공부를 손 놓아버렸듯이, 전공 책 읽는 것 자체가 괴로워졌다.
이런 느낌을 질투라는 말로 설명하는 게 적절한지 모르겠는데, 나에게 중요한 사람의 사랑과 인정을 두고 누군가와 경쟁하며 느끼는 감정들로부터 나는 애써 도망쳐왔다. 말로 표현하며 풀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중요한 사람의 사랑이나 인정에 의미를 부여해서 그에 휘둘리는 대신 나답게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못했다.
(2) 책 읽고 모임하고서:
결혼하기 전에 남편의 전 여친을 두고 느꼈던 마음을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해본 건 처음이었다. 민망하고 부끄럽고 말하고 나니 감정이 또렷해져서 이후 며칠간 힘들었지만, 말한 만큼 그 감정을 다룰 수 있게 되는 듯하다.
질투하는 감정을 감당하기 힘드니까 그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누구라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자랐나 싶었다. 중요한 사람에게 선택받지 못할까 봐 안절 부절하는 대신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고 ‘내 자리’를 찾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거절당할 때면 그냥 그 사람과 내가 안 맞았다고 생각하는 대신 내가 충분히 잘하지/잘나지 못해서 기회를 놓쳤다는 생각에 자책과 자괴감이 들었다. 내가 어딜 가든 ‘내 자리’가 있는 팔방미인이 될 수 없고, 사실 그런 사람은 없으리란 걸 알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내가 조금만 더 노력하면 지금과는 다르지 않았을까’라는 마음이 안 가셨다.
겪을 수 있는 감정이라고 받아들이고, 그 감정을 느끼더라도 말로 애써 표현하고, 정신줄을 잡고 나답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면서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6. <니9호. 질투> 다시 읽기 모임 후
박 희 영
이 번 주제는 유독 읽으면서도 생각이 많이 들지 않았다. 모임을 하고 나서도 후기가 잘 써지지 않는다. 윤들 샘이 두 가지의 질문을 던졌는데 하나는 부러움과 질투의 차이였고 다른 하나는 질투를 하는 것만 생각하는데 질투를 받은 경험과 느낌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누고 싶다 고 했다.
나는 질투가 꼭짓점에 있는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데 잘 안 되서 그 사람의 인정을 받는 다른 사람에 대한 부러움과 미움의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서 쌍둥이 남동생 중 막내 생각이 났다. 아빠에게 늘 인정받고 싶고 사랑 받고 싶었지만 아들 사랑이 유별나고 그 중 막내는 자기를 가장 많이 닮은 아이라며 유독 예뻐 하셨다. 막내는 집안의 가장 큰 힘을 가진 아빠의 사랑을 믿고 나랑 둘째(형)를 만만히 보며 자기 멋대로 굴기 일쑤였다. 그래서 보통은 쌍둥이들끼리 한 편이 되어 내가 외로울 때가 많았지만 막내가 자기 멋대로 일 때는 종종 나와 둘째가 한 편이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동생들이 대학 때부터 내가 동생들을 돌봐 왔고 모두 결혼을 하고 나이가 먹기도 했고 동생들이 누나 고생한 것을 알아주고 난 뒤부터는 각 자 별로 먹은 맘 없이 그럭저럭 지내고 있어 내가 막내 동생을 얼마나 얄미워했는지 잊고 살았었나 보다. 크게 질투하지 않고 크게 남들을 부러워하거나 샘내지 않고 살았다고 생각한 나는 질투가 나랑 먼 감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선생님이 막내에게 들었던 감정을 물으시자 나는 냉큼 ‘얄미웠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둘째와 막내와의 감정은 확연히 달랐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그 감정이 나도 인정받고 싶었던 부러움과 미움이 섞인 질투의 감정 이였다는 걸 알게 되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나는 질투 따위 하지 않아 차라리 나는 질투를 받으면서 살거야’ 하면서 튀는 행동을 많이 했을 수 있지 않나?’라는 질문에는 지금도 답을 찾기가 어렵다. 나는 질투 받으며 사는 것 갈등이 있는 상태를 매우 싫어한다. 그리고 크게 누구를 부러워하지도 않는다. 물론 내가 재미있게 산다며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다. 그렇다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으쓱해지지도 않는다. 왜냐면 그들이 부럽게만 보이는 나의 단편적 모습만 보는 것이지 그 안에 복합적인 나의 어려움까지 보는 건 아니기 때문에 그 부러움이 내 모습의 전부는 아니니까. 하지만 내가 튀는 행동을 종종 하는 것 같긴 하다. 주목 받기 싫어하면서도 주목 받고 인정받고 싶은 양가감정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래서 막내동생에 대한 얄미운 질투감정을 잊고 살았던 것처럼 내 감정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하고 합리화 하며 산건 아닌지 고민이 된다. 질투는 갖으면 큰 일 나는 죄의 감정이 아니다. 사람으로써 갖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다만 이 감정을 어떻게 다스리는 가가 중요할 뿐이다.라고 이 번 니를 읽으며 생각을 정리했지만 그 동안 질투 감정을 죄스럽게 생각한 부분이 나를 합리화 시키진 않았을지 더 생각해 볼 문제이다.
첫댓글 모두들 "더 생각해 볼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낍니다. 이 나이의 나도 아직 더 생각해야 하니까요. 언젠가 훗 날 또 같은 제목으로 특집을 하게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