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08월 12일 토요일
제목 : 노아의 저주와 축복
오늘의 말씀 : 창세기 9:18-29 찬송가: 426장(구 215장)
18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
19 노아의 이 세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
20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22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23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26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28 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오십 년을 살았고
29 그의 나이가 구백오십 세가 되어 죽었더라
중심 단어: 노아, 세 아들, 취하여, 벌거벗은지라, 보지 아니하였더라, 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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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
20절: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음
21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음
25절: 함의 후손인 가나안을 저주함
26절: 셈을 축복함
27절: 야벳을 축복함
29절: 구백오십 세에 죽음
도움말
1. 퍼지니라(19절):‘잘게 부수다, 조각나다’라는 뜻으로‘넓은 지역에 구석구석 흩어져 나가다’라는 의미다.
2. 종들의 종(25절): 이는 최상급 표현으로‘종들 중에서 가장 비천한 종’을 가리킨다.
3. 셈의 하나님(26절): 셈의 위대함보다 셈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표현이다. 하나님께 붙잡힌 자보다 복된 존재는 없다.
말씀묵상
선택받은 노아의 범죄
아담이 사탄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이 땅에 사망의 저주를 불러들인 것과 같이, 홍수의 심판 후 첫 사람이었던 노아 역시 새롭게 재 창조된 이 땅에 저주를 불러들이게 됩니다. 당대 의인이었던 노아는 의로움을 상실하고 술에 취해 자신의 하체를 아들들에게 보입니다. 이를 본 함이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자 셈과 야벳이 뒷걸음질쳐 들어와 옷으로 노아의 하체를 덮어줍니다. 술에서 깨어 이 사실을 알게 된 노아는 함의 아들인 가나안이 그 형제들의 종이 되길 원한다고 저주합니다.
노아의 저주와 축복
당대의 의인으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노아도 결국 인간의 한계를 보입니다. 완전한 사람이라 칭함을 받았던 그 역시, 이 땅에 속한 사람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노아는 결국 자신의 아들 함을 저주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과거에 의를 인정받은 사실에 지나치게 안심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줍니다. 한편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드림으로 축복을 받습니다. 이는 그들이 진심으로 아버지를 공경했기에 나온 행동이었습니다.
도움질문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노아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함이 저주를 받은 것과 달리 셈과 야벳이 축복을 받은 이유는 무엇입니까(23절, 메시지 참조)?
3. 본문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깊은 묵상
1. 여러분은 부모님의 허물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까?
2. 부모님 공경과 하나님의 축복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고, 이를 여러분의 삶에 적용해 보십시오.
3. 오늘 여러분에게 주시는 특별한 말씀(깨달은 점, 느낀 점, 적용점 등)은 무엇입니까?
제공:프리셉트
<오늘의 묵상>
태풍이 지나가면서 더위가 한풀 꺾인 모양새다. 새 생명 비전 축제를 준비하는 날 믿기로 작정된 자들을 주님께서 불러 모아주시길 간절히 소망해 본다.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자 땅은 노아에게 포도 열매를 내주었다. 그 포도로 포도주를 만들어 마시게 되었고 취한 노아는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채 잠들고 말았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 이전에는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죄가 들어오자 하나님 앞에 그것이 부끄러움이 되어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는 자들이 되고 말았다.
함이 술 먹고 취해 벌거벗고 잠든 아버지의 추한 모습을 보고 형제들에게 알린다.
함의 이야기를 들은 셈과 야벳은 아버지의 부끄러움을 드러내지 않고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버지의 하체를 덮어주고 돌아 나온다.
노아가 술이 깨어 이 사실을 알고 화가 나서 함은 저주를 하고 셈과 야벳은 축복을 한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노아는 아버지로서 아들들 앞에 부끄러움을 드러낸 것에 대해서 인정하고 자신의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노아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함과 그의 자손에게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한다.’라는 말을 하므로 ‘종’의 개념을 사용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노아가 함에게 내린 저주는 후대에 그대로 이루어졌다.
왜 하나님은 자식들 앞에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낸 아버지 노아가 한 말을 자식들에게 예언이 되게 하셨을까?
후대에 노아의 후손이었던 아브라함, 이삭, 야곱도 마찬가지였다.
하나님은 ‘부끄러운 아버지’라고 할지라도 그 권위를 가지고 자식들에게 한 예언을 그대로 이루어주셨다. 아버지 권위를 존중한 자들은 축복을 받았고, 그 권위를 존중하지 않은 함과 그의 자손은 저주를 받았다. 이것은 주권의 문제였다.
롬9: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가끔 주님 앞에 ‘왜 저를 주님의 종으로 부르셨습니까?’를 묻는다. 그런데 그 질문은 기쁘고 즐겁고 감사가 넘칠 때가 아니라, 힘들고 지칠 때 드리는 질문이다.
주님을 위해 ‘섬기는 종’으로 부름을 받았지만 한 번도 저주받은 존재라고 생각 해 본적은 없다.
하나님도 아들을 이 땅에 종으로 보내셨고 죄에서 종노릇 하는 자들을 십자가에서 구원하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따라 섬김의 종으로 택하여 불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주일을 준비하며 성도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섬기는 날이 되게 하옵소서.
아직도 죄에서 종노릇하는 자들에게 복음으로 자유를 얻게 하기 위해서 전도축제를 준비합니다. 그 영혼들을 주께로 인도하는 섬김의 종이 되게 하옵소서.
이 모든 섬김이 벗어버리고 싶은 무거운 짐이 아니요 주님께서 주신 가벼운 짐이라는 것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주님을 섬기고 성도들을 섬기는 종의 직분이 저주가 아니라 영광임을 고백하오니 받아주시옵소서. 이 하루도 기쁨으로 감당하며 주님의 날을 준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