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일기 (146회)
김회장은 갑자기 가족들을 불러모았다. 대상은 일용네까지였다. 그들도 평소 한가족이라고 생각한 이유에서다.
가족들이 왜 모이게 했느냐고 궁금해하니, 김회장은 사는데 바빠 너무 정서가 메말랐다며 시짓기(백일장) 대회를 연다고 하였다.
직접 잘알고 있는 시한편을 낭독했고, 모두에게 원고지를 나누어 주었다. 네개의 주제를 주며, 주어진 시간은 저녁때까지 다섯 시간이란다.
가족들은 웬 글짓기냐며 불평을 터뜨렸으나 대놓고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모두가 가족이라 대략은 이해가 갔기 때문이었다.
용식어머니는 큰방에서 혼자, 할머니와 일용엄니는 할머니 방에서 시를 짓는다. 일용엄니가 할머니껄 훔쳐보다가 퉁을 맞았다.
모두가 한나절 내내 전전긍긍했다. 용건내외는 문학을 전공했거나, 그분야의 동아리 출신이니 별로 걱정이 없었을 것같다.
저녁시간 또다시 식구들이 큰방에 모여앉았다. 개인별 낭독시간이다. 먼저 영남이부터 잠자리를 주제로한 시를 낭독했고, 막내 금동이는 고학년이라고 제법 고차원적 시를 지었다. 용식이는 윤형원의 '개똥벌레' 노래가사를 베껴 들통나 망신을 샀고, 일용이는 백지를 내었다.
일용엄니는 삶아온 아픔을 노래하듯 표현하여 박수를 받았고, 용건은 아이를 홀로 키우며 고생하는 귀동이를 생각하며 시를 지었다. 다른 사람들은 시를 지어온 원고지만 내었다.
용식어머니가 김회장 더러 '당신은 왜 안지었느냐'고 물으니, 그는 '자신의 가슴속에 항상 시가 요동친다'고 말한다. 김회장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홀어머니와 함께 살던 고향을 벗어나서 다른지역으로 옮겨 땅을 일구고, 과수원도 만들었다.
빈손으로 고향떠나 자식들 여럿 낳아 키우고, 공부시키며, 출가시킨 그 고생을 자식들 누가 알아주겠는가? 어느 누군들 애환이 없으랴마는 김회장은 그렇게 힘들지만 꿋꿋하게 살아온 세월이 바로 시라는 것이다.
용식은 방을 나와 시집을 찾아 펴들고 뒷마당에서 시를 읊는다. 취미는 없지만 그래도 살아오며 시한줄 못읽고 살아온게 서글프다는 생각이드는가보다.
형 용건이 그 모습을 보고 다가갔다. 생활에서 '여유가 없었을 것'이라 그를 위로했다. 용식은 '취미가 없는데 어쩌겠느냐'며 말하고, 계속해서 시를 읽었다. 용건은 아쉬워하는 용식의 어깨를 다독거려 주었다. 그렇게 드라마는 끝이 났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많이 배웠다고, 세상 경험을 많이 하였다고 잘쓰는 것도 아닐 것이다. 세상엔 책을 내고, 노벨문학상을 받는 사람도 있겠지만, 자신의 귀한 생각과 좋은 느낌을 글로 나타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글을 쓰는게 용기라고 말하고 싶다. 어느 밴드에 글을 자주 올리는 60대 초반 여자가 있다.
시골에서 태어나서 지금은 작은 도시에 사는 여인이다. 열심히 노력하여 자기 식구들 밥술이야 먹는 모양인데, 그녀의 어릴적은 우리네와 별반 다를게 없었나보다. 아니 글중에서 형제의 입양 애기까지 나오는걸 보니 가난하긴 무척 가난했던가 보다.
하여간 그녀는 지금의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과 그 옛날의 가슴아픈 이야기들을 소설 연재하듯 풀어낸다. 그렇다고 글솜씨가 좋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일만명 가량의 밴드 회원앞에 글을 자주 써낸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다. 글을 시작할때마다 맞춤법이나 표현방법의 잘못을 이해해 달라고 전제를 두었다. 그런 그녀의 글에는 항상 누구의 글보다 댓글과 좋아요가 많이 붙는다.
뻔히 나도는 고상한 글보다 흙냄새나고, 땀냄새 풍기는 순수한 그녀의 마음이 고스란히 글에 묻어 나오기 때문일 것이리라.
하여간 나도 그녀의 글을 대할때마다 아는체를 해주고, 심심찮게 격려의 댓글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녀의 이야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철들고부터 60넘게 이야기 같은 비운의 삶을 살아왔으니 얼마나 쌓인 사연이 많겠는가?
티비를 건성으로 보는 나로서는 거의 단골 프로그램인 흘러간 구닥다리 시리즈 '전원일기'를 보다(보는둥 마는둥)가 글에 손이 끌려가고 말았다.
시든 소설이든, 아니면 문학과 예술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표현들이 우리네 삶의 내면에서 나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들을 통하여 자신의 삶을 조명하고, 삶에서의 지식을 얻으며 새로운 생각을 가지는 것같다.
누군가가 말했다. '60중반 넘게 살았으면 옛날에 비하면 장수하는 것'이라고. 게다가 밥굶지 않으면 부족함 없이 잘사는 것이라네.
그런데 세상 돌아가는 분위기 보니 김회장의 젊은 시절처럼, 밴드의 글올린 여성의 지난 시절처럼 모든 것이 점차 힘들어지는듯 해보인다.
꽃길 가자던 사람들의 희망이 지구온난화 기상이변 결과처럼 꽃이 사라져 버릴까 두렵다.
사실은 이글도 아직은 까닭없이 시간 넘치는 밤에 적어보는 글이다.